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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햇귀
제 목 축구전술의 역사 18 - 아약스 전성시대
현대축구에 가장 영향을 미친 팀은 어디일까.
축구팬에게 강장 강렬한 인상을 끼친 팀은 1970년대 네덜란드 팀이다.
그리고 이 네덜란드는 아약스의 모습과 일치한다.

고리타분한 네덜란드가 자유분방한 네덜란드로의 변화, 그리고 이 변화의 핵심인 아약스 스쿨의 전술변화는 현대축구가 필요한 연령별 전술진화와 그 긍극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클럽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덜란드의 축구는 영국식 스타일이 주류를 이뤘다.
콧수염과 빅토리아시대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하고 있는 클럽의 사진을 보면 영국인지 네덜란드인지 착각하기 쉬울 정도다.

네덜란드는 다뉴비언 스쿨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피라미드 시스템을 사용한 팀이다.
문제는 이것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를 상대한 팀의 선수가 그렇게 넓은 공간이 생긴 적이 없었다고 감탄할 정도로 구태의연하고 성공적이지 못한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클럽의 변화가 1954년 제한적인 프로화와 1960년대 성장을 거쳐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는 것은 단순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성장을 축구의 역사적인 사건과 연결지으면서 읽어보면 어떻게 현대축구의 모습을 만들어냈는지가 짐작이 갈 것이다.

네덜란드 축구의 아버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레이놀즈다.
영국 출신의 이 감독은 1915년 처음 아약스의 감독을 한 이후 32년간 세차례에 걸쳐 모두 25년간 감독에 있었다.
레이놀즈는 대단히 규율에 엄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약스 유소년 시스템을 만들면서 유소년부터 아약스까지 모든 연령 및 레벨의 팀이 똑같은 스타일의 축구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에게는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를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을 가지면 지키고 공을 갖고 있는 이상 상대는 골을 넣을 수 없다는 철학이다.
레이놀즈는 아약스 선수들에게 공을 더 많이 소유하라고 주문했고 이것이 아약스의 철학이 된다.


레이놀즈의 뜻은 1945년 만난 리누스 미헬스에게서 더욱 섬세해진다.
미헬스는 레이놀즈보다 훨씬 더 규율이 엄격했다.
미헬스가 처음 아약스를 맡았을 1965년에 이 팀은 강등권을 헤메고 있었다.
이런 팀을 다음해 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엄격한 규율을 세운 다음 일은 공을 갖고 하는 훈련을 늘렸다.
한마디로 선수 개개인의 기술을 키우는 것이 다음 작업이었다.
동시에 클럼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변화시킨다.

다음 할 일은 전술의 변화다.
W-M에서 4-2-4 전술로의 변화다.
여기까지는 1958년 이후 유럽의 추세 변화를 따라가는 모습이다.

여기에 네덜란드의 시대적인 변화인 자유로움과 개인주의의 성향이 팀에 녹아들어간다.
팀의 리더 크루이프는 네덜란드 젊은이의 표상이 된다.
스메츠는 크루이프에 대해 "자신을 예술가로 이해한 최초의 선수였으며 스포츠와 예술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최초의 선수"라고 평했다.
프로보스(아일랜드의 과격한 군대로 자처하는 집단 또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크루이프가 사실은 특히 가족적인 부분에서는 보수적이었다는 아이러니는 재미 있는 여담 정도다.

아무튼 히피문화의 중심지(오노 요코와 존 레넌의 알몸시위의 장소가 암스테르담임)에서 시스템과 개인의 창의성을 결합할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네덜란드 축구팀의 색깔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약스의 리더 크루이프 역시 무정부주의적인 모습과 제도를 농락하기 좋아하는 모습에서 프보보스의 모습을 상당히 연상시킨다.
이런 일화로 이미 푸마의 협찬을 받고 있던 크루이프가 1974년 월드컵에서 아디다스 유니폼을 거절한 것 등이 있다.

1974년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언론은 현대축구에 길이 남는 용어를 만들어낸다.
그 이름은 totaalvoetbal이다.
토털축구다.

토털축구가 나온 문화적 배경을 느꼈으니 전술적 진화과정을 다시 살펴본다.
미헬스가 먼저 추구한 것은 수비의 안정이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4회의 리그우승 사이에 나타난 문제는 공격수와 수비수를 미드필더에 지원을 나가도록 하자 미드필드에 지나치게 많은 선수가 몰린다는 것이다.

미헬스는 드디어 결론을 내린다.
전방에 4명의 선수가 있다면 공 소유에 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공격수 중에 한 명을 미드필드로 옮겼다.(4-3-3)

그리고 이것은 수비수 중에 한 명이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으므로 3-4-3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말은 수비수가 전진을 하면서 미드필드에 합류하는 틀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비수가 전진을 하면서 압박을 했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상당히 오랫동안 네덜란드에 남아 유능한 스위퍼를 배출하게 된다.

어느 사이 아약스의 수비라인은 전체가 상당히 올라 있게 됐다.
오프사이드 트랩이 강화된 것이다.
이 말은 상대의 공간을 줄이기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브라질에게 당나귀라인이라고 비웃음을 받았을 때 크루이프는 남미의 기술을 넓은 공간에서 상대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비웃음을 받는 오프사이드 트랩 때문에 브라질은 수비수 뒷공간에 넓은 침투공간을 알면서도 공을 패스할 공간을 차단하는 압박에 속절 없이 무너진다.

네덜란드의 오프사이드 트랩은 압박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트랩은 상대 선수가 걸려 있게 되면 순간적으로 미드필드에서 맨오버가 이뤄지고 이것은 바로 공을 뺏어 선수의 숫자가 많은 상태에서 공격을 하게 되는 대단히 공격적인 전술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02년 히딩크의 한국은 바로 이 전술로 상대를 당황시켰다.

여기에 아약스가 네덜란드에서 강팀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전술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빠른 포지션의 이동이다.
디나모나 헝가리의 포지션 변화가 공격수는 공격수끼리, 수비수는 수비수끼리의 체인지였다면 아약스의 변화는 공수의 순간적인 포지션 변경이다.
이것은 상대의 밀집수비를 뚫기 위해 필요해진 것이다.

4-3-3으로의 전술변화는 이를 더욱 강화시켰다.
최소한 한쪽 라인에서의 포지션 변경은  좁혀진 라인과 공수의 안정 속에서 확실히 수월해진 것이다.
특히 수비수가 전진을 했을 때 이를 커버하기 위한 움직임이 중요했다.

이렇게 완성된 시스템은 미헬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나고 루마니아 출신 코바치가 후임으로 오면서 빛을 본다.
코바치는 엄숙했던 미헬스에 비해 너무 착했다.

지나친 간섭에서 풀린 아약스는 하얀발레 이후 처음으로 유러피언컵을 세차례 거머쥔 팀이 된다.
뮤렌은 레알 마드리드와의 원정경기에서 크롤에게 패스를 하기 전 잠시 공으로 저글링을 한다.
마드리드와 아약스의 위상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아약스는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4분만에 골을 넣고 이후 패스연결을 통해 한골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기를 선보이고 유러피언컵에 입을 맞춘다.

그러나 1년 후 1974년 월드컵에서 서독에게 똑같이 하다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아약스는 코바치가 떠나고 정신적인 지주인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급격하게 전성시대를 끝낸다.
또한 토털축구는 바르셀로나에게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역사상 최강팀을 셋만 꼽으라고 한다면 하얀발레(레알 마드리드)와 1958년 브라질 팀과 함께 1970년대 초반의 아약스를 꼽겠다.
이 세팀 정도의 업적과 그 정도로 축구전술의 혁신을 가져온 팀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to be continued
햇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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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5 (23:56:18)    IP Address : 59.5.10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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