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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서강대 정외과 교수 이상우의 딱한 사정


누자 진짜 '자유민주주의자'인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밤잠을 못 이루겠지만, 그 가운데 '불안해서'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북한에 넘겨주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을망정 행여 그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비웃어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딱한 사정을 자상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들을 따뜻하게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반세기 동안 상종 한번 못한 북한 동포를 끌어안겠다는 우리가 그들을 끌어안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이번에 첫 번째로 끌어안을 인물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상우다. 이 분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이 분 스스로 힌트를 준 게 있다. 그는 {한국일보} 1997년 4월 21일자에 기고한 <황 노인 따뜻하게 맞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다.

"황장엽이 쓴 글들을 20여년동안 분석해 보았지만 학문 수련의 수준은 대학원 석사생 정도를 넘지 못한다. 조용히 더 공부할 기회를 주면 자기가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이상우가 쓴 글들을 20여 년 동안 분석해보진 못했다. 약 4년 동안 분석해 보았다. 20여 년에 비해 4년은 짧은 기간이라, 감히 이상우의 학문 수련의 수준에 대해 단언을 하긴 어렵겠지만, 일종의 '임시 중간 보고' 차원에서 말씀드린다면, 이상우의 학문 수련 수준도 대학원 석사생 정도를 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더 공부할 기회를 주면 자기가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하겠다. 이념적 편향성을 감히 수련의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즉 이상우가 이념적 편향성은 있을망정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에선 오랫동안 교수를 하면서 갈고 닦은 실력이 있는데 그걸 대학원 석사생 수준이라고 말하는 건 그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이상우가 황장엽에 대해 하신 말씀의 기본 논리를 원용한 것임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즉, 황장엽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이상우에 대해 그리 말해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게 대단히 공정한 어법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찌됐건, 나는 '대학원 석사생 수준'이라는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 아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나의 색깔은 '자유민주주의'다. 이상우의 색깔도 자신의 말로는 '자유민주주의'랜다. 물론 나는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가짜라고 생각한다.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그 판별은 독자들께서 해주시기 바란다.

이상우만 '애국자'인가?

이상우가 {중앙일보} 1996년 3월 18일자에 쓴 <대북정책이 혼란스런 이유>라는 칼럼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그는 4·11 총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건지 4대 정당의 정강정책을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핵심적인 발언을 인용한다.

가장 주목할 것은 대북한 정책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대북한관의 혼란이다. 넷중 한 정당은 남북한을 1 대 1의 대등한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바탕 위에서 연합을 통한 단일국가로 나아가는 시간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 남북한 관계를 1 대 1로 보는가, 아닌가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애국심부터 점검하고 투표해야 한다.

넷 중 한 정당이 어떤 정당인지에 대해선 말 않겠다. 독자들 각자 알아서 생각하시기 바란다. 어떤 정당이 어떤 발언을 하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걸 애국심으로 연결시켜 대중을 선동하고자 하는 이상우의 자세를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충실한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오늘 갓 배운 고등학생이라면 모를까 명색이 정치학 교수라는 사람의 수준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상우는 {문화일보} 1996년 8월 18일자에 쓴 <만성화된 안보불감증>이라는 칼럼에선 '대학생들의 폭력 시위'를 문제 삼았다. 아니 말은 바로 하자. 이상우는 정부가 그렇게 부르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며 호통을 친다. '대학생'이 아니라 '혁명 투사'라고 불러야 한댄다.

"혁명 투사를 '대학생'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 대학생들은 이런 혁명 전사들이 아니다. 이들 혁명 전사를 대학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학생에 대한 모욕이다."

언제부터 이상우가 그렇게 대학생들의 명예를 생각해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혁명 전사'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이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우의 '안보 불감증'이 나는 두렵다. 내가 알기론 지금 그 '혁명 전사'들은 '전향서' 한 장 쓰지 않고 사회 각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왜 이상우는 이걸 문제삼지 않는가? 그렇게 '안보 불감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대학에서 북한에 대해 가르쳐도 되는 건가? 우익의 이름으로 이상우를 규탄한다.

이상우가 {문화일보} 96년 12월 18일자에 쓴 <국난극복 국회가 앞장서라>는 칼럼은 "국회가 마음에 안든다"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왜 마음에 안 드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안기부법 개정안 때문이란다. 어디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이 개정안도 아주 예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파괴공작으로부터 나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필요와 인권침해의 소지 등 두 가지 상충하는 이익이 담겨 있는 미묘한 법안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어느쪽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지를 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할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을 다루면서 체제 수호보다 정당 이익을 앞세우는 정당이 나올까 걱정이다. …… 안기부법 개정은 국가체제보위에 관련되는 것인만큼 절대로 정당간에 흥정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이상우는 그간 인권침해를 많이 저질러 온 안기부가 인권침해를 하지 못하게끔 법을 개정하면 그건 국가체제보위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인가? 물론 그는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자유민주주의자란 말인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 기본적인 정의(定義)를 모르는 사람을 대학원 석사생 수준으로 본다면 이는 대학원 석사생들에 대한 모독은 아닐지 심히 염려된다.

서울대 안 나오면 대통령 못하나?

이상우가 낮은 수준이나마 계속 국가안보만 역설하신다면 그나마 일관성은 인정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어떻게 해서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안달을 하신다. 하기야 정치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겠다. 문제는 그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고 내뱉는 말의 수준이라는 게 평소 견지해 왔던 대학원 석사생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우는 {문화일보} 1997년 5월 29일자에 쓴 칼럼에서 대통령 후보의 자질에 대해 말했다. 그는 절대로 '김대중'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뒤통수 때리기'의 수법으로 '김대중 죽이기'를 위해 별 같잖은 말씀을 해대신다. 어디 그 말씀 좀 들어보자.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정치지도자는 파당의 대표였지 국민적 지도자가 아니었다. 이념도, 경륜도, 도덕성도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권력장악만을 목적으로 모인 '패거리'를 이끌어온 사람들이었다. 사상적으로 극좌에서 극우까지, 그리고 평생 일하며 벌어먹어 본 적이 없는 건달까지도 한패를 이루어 정치판에 뛰어들다 보니 어느 정당도 우리 사회의 누구를 대표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붕당정치로 정치판을 타락시켰다. …… 평생 일을 해본 적은 없고 오직 정치만 해온 사람이나 생각만 가지고 일에 뛰어들어 무엇을 성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곤란하다."

지금 이 글만을 갖고 내가 앞서 한 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게다. 맞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곧 줄줄이 나오게 될 그의 본심과 정체를 알게 되면 내가 그의 발언 그 어느 것 하나도 결코 선의(善意)로 해석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는 걸 이해하시게 될 거다.

이상우는 {문화일보} 97년 7월 25일자 <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에서 대통령의 자질과 조건을 제시했다. 길게 인용할 것도 없다. 이 칼럼에선 그가 워낙 노골적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분" "국정운영의 경험을 갖  분" "뚜렷한 안보관을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댄다.

이게 정치학 교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준의 말씀인가? 체계적인 교육? 국졸은 체계적인 교육이 아닌가? 상업 고등학교 졸업은 체계적인 교육이 아닌가? 만약 이것도 체계적인 교육으로 인정한다면,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는 무엇 때문에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는 대학, 그것도 자신이 나온 서울대 정도는 나와야 체계적인 교육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이게 말이 되나? 헌법은 두었다 무엇에 쓰는가? 학벌로 대통령 자격을 심사하는 조항이 우리 헌법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국정운영의 경험을 갖춘 분? 그러니까 과거 군사독재정권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만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 이런 말인가? 사람이 이렇게 뻔뻔해도 되는 건가? 뚜렷한 안보관을 가진 분?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건가? 왜 {한국논단} 사람들처럼 솔직하게 "김대중은 절대 안된다"고 말하지 않고 그런 허튼 말씀만 자꾸 해대는가?

아예 꿈까지 꾸는 이상우

이상우는 그렇게 말해놓고도 영 안심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그는 {문화일보} 1997년 9월 19일자에 쓴 <부적격자를 추려내는 선거>에서 "정당같은 정당이 없으니" "어느쪽이 덜 싫은가를 따져" 투표하자고 선동한다.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은 고등학생들의 논술 교재에 실어 마땅한 명문(名文)이다. 수준 이하의 정치학 교수가 언어를 얼마나 타락시킬 수 있는지 그 증거로 삼아 무방할 것이다. 어디 이상우의 말씀을 들어보자.

첫째, 통일 문제에서는 대통령의 정치성향에 따라 나라의 정책이 두가지 길로 갈라지게 된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한 분이면 통일 자체보다는 어떤 통일인가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아무리 통일이 민족적 염원이라 하더라도 통일을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북한이 체제개혁을 거쳐 민주화되기 전에는 통일할 수 없다는 방향을 택하게 된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덜 철저한 분은 북한이 반민주적일지라도 협상과 타협을 하겠다는 태도를 갖게 된다.

둘째로, 정치개혁 문제에서는 정당다운 정당, 즉 같은 이념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의 집단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개혁의 방향을 '안정된 민주주의 정착' 쪽으로 밀고나갈 후보가 있고 반대로 혼란이 일더라도 좌든 우든 모든 정치세력이 정치에 나설 수 있게 하려는 후보가 있다. 앞의 후보를 엄격한 체계적 민주주의자라고 한다면 후자는 개인 인기를 극대화하려는 대중운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경제개혁에서는 '안정과 성장'에 역점을 두는 분과 '사회정의 실현'에 역점을 두는 분으로 갈리게 된다. 재벌정책과 관련하여 보면 전자는 '재벌의 공룡화'에 대하여 우려하면서도 대외경쟁력 제고와 안정을 위해 묵과하자는 쪽으로 갈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혼란과 경쟁력 약화를 감수하고라도 재벌을 해체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여 몇몇 재벌들이 경제를 제멋대로 지배하는 짓을 못하게하려 할 것이다.

선거유세중에는 후보들이 되도록 여러 사람에게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마음에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니 후보들의 말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생각과 이념정향을 살펴야 한다. 지나온 날의 후보들의 언동을 되새겨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그들이 당선된 후 어떤 일을 하게 될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 어진 분들은 물불 안가리는 싸움판같이 되어버린 선거에서 모두 물러났다. 두 번 다시 이런 씁쓸한 선거를 치르지 않으려면 패거리정치가 힘 못쓰는 자리잡힌 정당정치를 구현할 후보를 이번에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글에 대해 더 이상 논평하지 않으련다. 독자들께서 잘 판단하시리라 믿는다. 지금 나의 거친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데에 기꺼이 동의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한 가지 코멘트는 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어진 분들은 물불 안가리는 싸움판같이 되어버린 선거에서 모두 물러났다"는 표현에 대해서 말이다. 언젠 다 싸잡아 욕하더니 갑자기 '어진 분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가?

이 말씀이 왜 나온지 아는가? 나는 당시 우연히 TV를 보다가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최병렬이 이상우와 죽고 못사는 대학(서울법대) 친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우가 직접 출연해 최병렬에 대한 덕담을 늘어놓았다. 한동안 같이 살기도 했다나 어쨌다나. 잘 아시겠지만, 최병렬은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중도에 물러났다. 이상우는 죽고 못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아니면 아니라고 반론을 주시기 바란다.

어찌됐건 우리의 이상우는 그렇게까지 해놓고도 여전히 불안하다. 아예 꿈까지 꾼다. 자기가 싫어하는 후보가 사퇴하는 꿈까지 꾼 다음 그 내용을 칼럼으로 써대는 만용을 저지른다. 그는 {문화일보} 1997년 10월 22일자에 쓴 <한가을밤의 꿈>이라는 칼럼에서 자기 꿈 이야기를 실컷 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믿을 수 있는 정치인도 원로도 없는 이 나라에서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일은 자기가 용퇴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후보가 스스로 후보를 사퇴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지고 이기는 경우가 많다. 승산없는 싸움에 머물러 눈총받기보다 스스로 물러나 존경받는 길이 있지 않은가.

  '민족대란'을 염려하는 이상우

그러나 김대중이 이상우의 고언을 들을 리 만무한 일이었다. 결국 김대중은 이상우의 말을 안 들은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상우의 기분이 어땠을까? 좌절?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이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으로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상황에 처했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더욱 맹렬히 글을 써대기 시작한다. 이상우는 대선이 끝난 다음, {문화일보} 1997년 12월 27일자에 쓴 <바른 대북정책 위한 고언>이라는 칼럼을 다음과 같이 아주 '싸가지 없게' 시작하고 있다.

"무능한 지도자가 냉혹한 국제경제질서를 가볍게 보고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인기를 위한 대중영합만 하다 국가부도라는 엄청난 벌을 자초한 것이 오늘의 '금융위기'라면, 감상적인 기분에 들떠 북한정체를 가볍게 인식하고 '통일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대한민국의 기초를 흔드는 대북한정책을 펴다가는 금융위기보다 훨씬 더 큰 '민족대란'을 자초할 수도 있다. 새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바른 대북한 정책을 펴나갈 수 있도록 몇가지 고언(苦言)을 감히 드린다."

이상우는 절대 김영삼에 대해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그는 김영삼 정권 시절 개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입각 대상자로 신문지상에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자기 입각 안 시켜 주었다고 그렇게 말해도 되나? 그리고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출범하게 된 마당에 '민족대란' 운운하는 수작을 함부로 해대도 되는 건가? 서울법대가 아닌, 상업 고등학교 출신이라 못 믿겠다는 것인가? 어디 무슨 말씀인지 그 내용 좀 들어보자.

첫째로, 대통령은 임기중에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 둘째로, 대북한정책과 통일정책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다루어야 하는 어려운 직책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 셋째로, 우리 정부가 왜 통일을 원하는지,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통일을 이루려 하는지를 선명하게,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정리하여 내놓아야 한다. …… 넷째로,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고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므로 결정적인 발언은 삼가야 한다. …… 다섯째로, 정상회담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 통일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루어 나가려면 우리의 주도역량을 갖추는 일부터 해나가야 한다. …… 손자(孫子)는 '우리가 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고 상대가 질 때를 기다리는 것(可勝在敵 不可勝在己 先僞不可勝而待敵之可勝)이 가장 확실한 승리의 길'이라 했다. 대북정책에서도 이 원리를 따라야 한다.

이상우는 손자(孫子) 전문가다. 아니 나는 그가 전문가인지 아닌지 그건 잘 모른다. 그가 손자의 말을 자주 인용하기에 하는 말일 뿐이다. 늘 인용하는 게 정해져 있어 어떡하다가 하나 얻어들은 걸 써먹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남북관계를 손자병법의 차원에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다른 글에서 손자를 인용한 걸 몇 개 살펴볼까?

이상우는 {문화일보} 1996년 1월 5일자에 쓴 <남북한 관계를 바로 알자>에서 "북한은 자기 마당을 철저히 봉쇄하고 남의 마당 속에서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는 손자(孫子)의 전략(先爲不可勝而待敵之可勝)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우는 {중앙일보} 96년 4월 8일자에 쓴 <선거에 묻힌 북한 전쟁위협>에서 "손자(孫子)가 이르기를 내가 지지 않도록 내부단속을 해놓고 상대가 질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先爲不可勝而待敵之可勝)이 전쟁을 막는 길이고 이기는 길이라 했다"고 말했다.

이상우는 {문화일보} 97년 6월 25일자에 쓴 <'제2의 6·25'를 막는 길>에서 "손자(孫子)가 이르기를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상대에게 달려있고 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내게 달려 있으므로 잘 대비하고 상대가 스스로 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기를 기다리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可勝在敵 不可勝在己 先僞不可勝而待敵之可勝)'고 했다"고 말했다.

손자(孫子)가 객지 나와 고생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우는 손자를 넘어설 생각을 단 한번이라도 해볼 수는 없는가? 그의 화석화(化石化)된 두뇌와 마음이 그걸 용납하지 않는 건가? 어찌됐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수준으로 미루어 앞서 인용한 이상우의 글에 대해 굳이 나의 해설이 필요하진 않으리라 믿는다.

김규항의 반론

이상우가 집요하다는 건 인정해줘야 한다. 그는 이후 계속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딴지를 거는 글을 써댔다. 그는 {조선일보} 1998년 1월 9일자에 쓴 <'빠른 통일'보다 '바른 통일'>이라는 글에선 "통일문제에 관한 한 절대로 서두르면 안된다"느니 "정상회담, 4자회담 등 회담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반복해 내뱉고 있다.

이상우는 김대중이 남북정상회담을 할까봐 이만저만 겁을 내는 게 아니었다. 그는 {문화일보} 99년 4월 18일자에 쓴 <안보정책 통일이후 대비해야>라는 칼럼에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북한이 응할 생각도 없는 회담을, 회담을 했다는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추진한다든지, 내실도 없는 공허한 정책을 발표한다든지 하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이다. …… 상식으로 다룰 수 없는 고도의 전문지식과 안목을 요하는 통일정책, 안보정책에서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여야 한다. 그 길이 독선의 우(愚)를 범하지 않는 길이다."

김대중, 너 혼자 잘난 척하지 말라는 말이다. 김대중을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의 전문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순전히 지식으로만 따져도 내가 보기엔 김대중이 이상우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이상우가 그 점을 인정할 리 만무하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 불안감을 지나치게 갖게 된 나머지 거의 노이로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상우가 {조선일보} 2000년 4월 26일자에 쓴 <남북정상회담 이렇게 하자 ⓛ: 통일의지·원칙 분명히>라는 칼럼은 김규항이라고 하는 이 시대의 확실한 자유민주주의자를 열받게 만들고야 말았다. 김규항은 {한겨레 21} 5월 11일자 '쾌도난담'에서 이상우의 그 칼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규항: …… 근데 오늘 아침 {조선일보} 보니까 어떤 교수가 칼럼을 썼던데 …… 너 서강대 이상우라고 아니?
김어준: 몰라.
김규항: '통일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라고 물으면서 그 답이 '북한이 우리와 다른 통일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래.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를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우리와 통일을 할 수 없다는 거야. 이 논리가 말이 되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데, 북한도 사회주의를 포기 못하기 때문에 통일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예넨 만날 이런 식이야. 그 다음 말이 뭐냐면 …… 공존의사 확인 이상은 논의해선 안된다는 거야. 너무 깊게 들어가면 역사적인 실책을 할 수 있대. 그 다음에 어떤 약속도 하면 안 된대. (웃음) 이게 저거하고 비슷해. 보험회사에서 나눠주는 교통사고시 행동수칙 있잖아. (웃음) 자기과실을 먼저 인정하면 안 된다. 면허증을 주면 안된다. …… 이런 X같은. 하다못해 교통사고 접촉 사고 나서 두 사람이 싸우든 부부가 별거 아닌 일로 냉전상태에 들어가든 친구끼리 오해가 생겼든, 자기 입장을 철저히 지키는 한도 내에서는 어떠한 화해나 합의도 이뤄질 수 없는 거 아냐. ……
김어준: 상호 실체를 인정해야지.
김규항: 이상우라는 사람이 또 뭐라고 하는 줄 알아? 70년대 서독 브란트 총리하고 동독 슈토프 총리가 처음 만난 정상회담은 아주 간단히 끝났다. 서로 인사도 안 나누고 단 한 가지만 합의했대. 다음에 언제 만나냐는 것. (웃음) 요걸 모범이라고 앞에 쓴 거야. 이런 XX가 서강대 교수야. 그러니까 {조선일보}를 곰곰이 읽어보면 정상회담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야.

맞다. 괜히 복잡하게 이야기할 거 없다. 이상우와 {조선일보}는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대단히 못마땅한 거다. 그러나 그걸 대놓고 씹자니 대세(大勢)를 거스르는 것 같아 차마 그렇게 말하진 못하고 이런저런 궤변만 늘어놓는 것이다. 이 점에선 {한국논단}의 발행인 이도형이 참으로 돋보이는 인물이다. 이도형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말을 쓰기조차 불쾌하다"고 했다. 나는 이도형의 생각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상우와 {조선일보}의 생각은 결코 존중해 줄 수 없다. 궤변을 어떻게 존중해줄 수 있단 말인가?

  '최장집 사건'에 대한 시각

어차피 이상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당에서 그가 {조선일보} 1998년 11월 18일자에 쓴 <사상의 선명성 입증해야>라는 칼럼의 문제를 빼놓고 갈 순 없겠다. '이상우식 궤변'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칼럼이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최장집 사건' 때 나온 것인데, 당시 이상우가 뭐라고 했는지 어디 좀 들어보자.

진보적 성향의 글을 많이 쓰는 중진 정치학자인 최장집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사상 문제가 최근 범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최 위원장의 글을 읽어온 많은 학자들은 최 위원장을 친북한 '인민해방론자'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민중적 시각을 가지고 한국사회를 분석하려는 학자로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최 위원장이 현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직에 있다는 점이다. 공직자의 사상적 선명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때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최 위원장의 사상 성향에 대한 공개적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가진다.

새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과감한 북한 수용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흔들림이 없는 국민의 단합된 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북한 수용이 북한 동조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져야 북한 도전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와 높은 열의를 가진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정책을 지지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정부의 사상적 선명성이 의심받게 되면 정부와 국민간의 사상적 괴리가 생겨나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온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상 논쟁은 방치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루빨리 슬기롭게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 논쟁에서 이득을 볼 세력은 북한밖에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여 정부에서 앞장서서 수습에 나서야 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문제된 당사자가 '인민해방'을 주장하는 북한 동조자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입증하여 주고 나아가서 앞으로는 정부의 사상적 선명성에 흠집이 갈 일은 다시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요즘엔 논술시험 준비하느라 훈련한 덕에 웬만한 고등학생들도 이렇게 말이 안 되는 글은 쓰지 않는다. 왜 말이 안 되는가? 이상우는 최장집을 '인민해방론자'로 보지 않는다는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를 자신도 수긍한다는 듯이 소개했다. 그래놓고선 한다는 말씀이, 최장집 스스로 '인민해방'을 주장하는 북한 동조자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입증해야 한댄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월간 {인물과 사상}이 이상우를 극우 파시스트로 규정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상우는 자신이 극우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런 딱지에 대해 대단히 억울해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서강대 교수 정도 하려면 문제된 당사자가 극우 파시스트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입증하여 주고 나아가서 앞으로는 서강대의 사상적 선명성에 흠집이 갈 일은 다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상우는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조중훈에 대한 낯뜨거운 아첨

이야기를 끝맺자. 나는 화석화(化石化)된 두뇌와 마음을 갖고 있는 냉전주의자들에 대해 결코 적대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건 결코 이성으론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실향민의 자식으로서 그런 사람들의 정서와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 이게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건 내가 {인물과 사상 13}에 쓴 <'반공투사'의 역사적 명예를 위하여: 이철승과 {조선일보}의 위험한 장난>이라는 글을 보시면 이상우조차도 수긍하실 거다.

그런데 나는 이상우에 대해선 도무지 그의 순수성을 믿을 수가 없다. 즉, 잘못된 생각일망정 순수하기만 하다면 그 생각을 선의(善意)로 해석해줄 수도 있겠는데, 이상우의 경우엔 그럴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우선 독자들께서는 내 답을 듣기 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닦는 일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 정석 조중훈 선생이다. 그 길은 땅, 바다, 하늘로 뻗었고 세계의 뒷골목에 있던 한국을 넓은 바깥 세상에 이어 놓았으며 과거에 발목잡혀 있던 한국인을 미래로 이끌었다. …… 정석 선생은 모든 일에 사익(私益)보다는 공익(公益)을 앞세우셨다. 기업인이시면서도 회사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나라의 이익을 앞세우셨다. 그 분을 잘 모르는 분들은 그 분이 내린 여러 결정에 놀라면서 '이해 못할 분'이라고 했었다. …… 정석 선생은 어느 학자보다도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신다. 해외출장 때는 반드시 책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신다. 내릴 때까지 두권 정도는 독파하신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본 사람은 정석 선생의 박식에 모두 감탄한다. 선생은 30년쯤 앞을 내다보고 일을 처리한다. 그래서 오늘만 생각하는 직원들은 회장을 '알 수 없는 분'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아니, 조중훈이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지난해 11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진 사태'는 무엇이란 말인가? 조중훈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분인데, 김대중 정권이 그 어떤 음흉한 보복 차원에서 한진의 잦은 사고와 탈세와 정관계 로비를 문제삼았단 말인가? 어느 신문은 1면 머리 기사에 <"나라 망신 그만 시켜라" 대한항공기 잇단 사고 국민원성 높아>라는 제목을 달았던데, 그러니까 대한항공의 잦은 사고도 김대중 정권의 음모 차원에서 저질러진 일이란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 위와 같은 극찬은 도대체 누가 한건가? 한진그룹 사보(私報)에 실려도 너무 민망하다고 사보 편집자가 거절할 만한, '낯 뜨거운 아첨'을 한 인물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인물이 바로 이상우다. 이상우는 왜 그렇게 조중훈에 대해 극찬을 할 생각을 했을까? 그는 그 문제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정석 선생을 만나 뵌 지 20년쯤 된다. 그후 오늘까지 수시로 정석 선생을 뵙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어 왔으며 한진그룹이 커 오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아 왔다. 정석 선생의 말씀에서나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대목마다 정석 선생이 일을 처리하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점차로 나는 정석 선생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 분의 뜻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인가?

나는 이상우의 의리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에게 공사(公私)를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곤 말못하겠다. 자나깨나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그의 우국충정(憂國衷情)도 나는 못 믿겠다. 그게 그의 진심이라면, 그는 함부로 대통령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난을 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후보의 학력과 민주화투쟁 경력을 문제삼는 따위의 망언(妄言)은 삼갔어야 했다.

이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인가? 지식인이 아무렇게나 장난쳐도 괜찮은 나라냐 이 말이다. 지금까진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나는 한 개인으로서나마 더 이상 그런 꼴을 용납 못하겠다. 이상우가 정녕 이 나라의 국가안보를 염려한다면, 수준 이하의 신문 칼럼 그만 쓰고 국정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프로젝트나 따내서 연구에 몰두하시기 바란다. 나 역시 그 못지 않게 국정원이야말로 국가안보의 보루라고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국정원은 뭐하나? 국정원이 당파적으로 놀면 나라 망한다. 이상우에게 큰 프로젝트 하나 맡겨라! 제발 신문에 칼럼 쓸 시간조차 없게 아주 굵직한 걸로 계속해서 말이다.

'언론 윤리'에 대해 잠시 한 말씀 덧붙여야겠다. {주간조선} 2000년 6월 22일자 88∼89면을 보았더니 이상우의 얼굴과 함께 그의 책 소개가 돼 있다. 기사 제목이 <'북한 정치 입문' 펴낸 이상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 정치의 작동 원리 명확히 알아야">로 돼 있다. 본문을 읽어보아도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처럼 되어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이 책은 지난 97년 9월에 나온 거다. {주간조선}이 아무리 이상우를 밀어 주더라도 '개정판'이라고 밝혀야지 그런 식으로 독자를 속이는 건 옳지 않다. 우리 아무리 '멸공 통일'을 외치더라도 최소한의 윤리는 지켜가면서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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