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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홍세화
제 목 어떤 프렌치 커넥션
한국 언론과 프랑스 지식인 사이의 선택적 연결 구조


{동아}와 {조선}에 기고한 프랑스 지식인

남북 두 정상의 역사적 만남이 있은 직후에 기 소르망이라는 프랑스 사람이 {동아일보}에 글을 기고했다. <북한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 일주일 뒤에 이번에는 {조선일보}에 그의 글이 또 실렸다. <북한의 '성공한 드라마'>라는 제목의 글이다. 동아는 기고자를 '전총리 경제 고문'이라고 소개했고 기고문을 '정상회담에 대한 불(佛)전문가의 시각'이라고 이름 붙였고, 조선은 기고자를 '문명비평가'라고 소개했고 기고문을 '해외 논단'이라고 이름 붙였다. 같은 사람의 글을 일주일 터울로 싣자니 인물 소개라도 달리 해야 되겠다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조선은 동아가 저지른 모순, 즉 기고자 소개와(전 총리 경제 고문)와 기고문 소개(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프랑스 전문가의 시각') 사이에 놓여 있는 모순-그가 경제 전문가인지는 모르나 한반도 전문가는 아니겠으므로, 또는 프랑스의 총리가 한반도 전문가를 경제 고문으로 두진 않겠으므로-을 피하고 싶어서 '문명비평가'라고 소개했음직도 하다.

내가 알기에 남북정상회담에 관련하여 한국의 3대 메이저 신문 중 두 개의 신문에 기고하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기 소르망 한 사람뿐이다. 아니, 한국의 신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대우를 받은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자못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스스로 '일등 신문'이라고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어떤 연유로 '일등 신문'답지 않게 {동아일보}의 뒤를 따라간 것일까? 이 또한 궁금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한 것이 이 글의 목적임을 밝혀두기로 하자.

그런데 이 두 가지 궁금증을 풀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 즉 한국의 수구 언론과 프랑스의 일부 지식인 사이를 잇는, '유착'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선택적 연결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벌써 오래전부터 나는 이 연결 구조에 관하여 한번은 꼭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해오던 차였다. 이번에 아주 좋은 사례를 제공해 주었으니 동아와 조선, 그리고 기 소르망 씨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의 차이

기 소르망.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선 우선 무지개 같은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중 어디쯤에 그가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 중에는 의아하게 생각할 분도 있겠다. "아니, '전문가' 내지 '문명비평가'라는데 프랑스의 정치 지형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정치 지형이 무지개 같은 프랑스에서는 전문가이든 문명비평가이든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잠깐 생각해 보자. 온갖 색깔의 정당이 있다고 할 때, 어느 지식인이든 그가 현실을 떠나 있지 않다면 자신의 정치사회적 지향과 일치하는 정당을 선택하려 들지 않겠는가? 또 그 정당에 참여하고 힘을 북돋우려 하지 않겠는가? 설령 자신의 정치사회적 지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최선'의 정당은 없다고 하더라도 '차선'의 정당은 있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한국에서처럼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어떤 면에서,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한국의 지식인들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지식인의 대부분은 정치 현실과 동떨어져서 정치 현실을 비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인임을 자랑할 수 있지만, 프랑스의 지식인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그 자신이 속한 진영이 어디인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에겐 각자의 주관적인 입장이 전제되고, 그런 바탕 위에서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한국의 지식인들은 객관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듯이 가정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차이 때문에 프랑스 지식인이 한국의 언론을 통해서 소개될 때에 그의 정치사회적 지향성이나 주관적인 입장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발언하는 것처럼 이해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구 기득권 언론들이 프랑스의 지식인과 '선택적 연결 구조'를 엮은 뒤에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기 소르망을 어떻게 소개했는지 돌이켜 보자. 동아는 '전총리 경제 고문'이라고 소개했고 조선은 '문명비평가'라고 소개했다. 이 소개만으로는 어느 총리의 경제 고문이었는지 알 수 없고, 또 가장 흔한 분류에 속하는 좌파인지 우파인지조차 알 수 없다. 프랑스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바로 그 부분인데 한국에 소개된 내용으로는 다만 경제 고문이며 문명비평가일 뿐이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우파의 이데올로그이며 반공주의자인 그의 정체는 사라지고 객관적인 지식인으로 탈바꿈하여-그것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우리들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우파

그러면 기 소르망의 정치사회적 지향성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지금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당의 조스팽 총리가 공산당과 녹색당 그리고 시민행동당과 함께 좌파연합 정권을 만 3년째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대통령은 우파이며 드골주의당인 '공화국 연합당' 출신의 자크 시락이라는 것, 그래서 프랑스는 현재 좌우동거 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국가 수반은 우파인 반면, 대부분의 실권을 갖는 정부 대표는 조스팽 총리가 차지하고 있는 정치 상황이다. 이 두 사람은 1995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에 맞붙었듯이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맞붙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1995년과 다른 점은-금년 가을에 국민투표를 통해서 결정될 것 같은데-차기 대통령부터 임기가 7년에서 5년으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좌파 중에는 좌파연합 정권에 참가하고 있는 위에 말한 사회당(PS), 녹색당(Les Verts), 공산당(PCF), 시민행동당(MDC) 이외에 연합 정권에 참가하지 않은 트로츠키파들이-'노동자의 힘(FO)'당과 '공산주의 혁명 연맹(LCR)'-이 있다. 이들 트로츠키파는 지난해의 유럽 의회 선거에서 5% 이상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유럽 의회 진출에 성공하였다. 좌파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자. 기 소르망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우리의 목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좌파가 여러 갈래이듯이 우파 또한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충 5개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오른쪽에 둘로 쪼개진 극우정당-장 마리 르 펜의 '국민전선(FN)'과 브뤼노 메그레의 '공화국 국민운동(MNR)'-이 있고, 그 다음에 '자유민주당(DL)'과 '프랑스 연합당(RPF)'이 있으며, 자크 시락의 '공화국 연합당(RPR)', 그리고 중도 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민주연합(UDF)'이 있다. 이 '프랑스민주연합'은 문자 그대로 몇 개의 당이 연합한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의 정당 구조는 복잡다기하여 정치 현실을 계속 뒤쫓지 않으면 자칫 헤매기 쉽다. 가령 이름도 비슷한 RPF(프랑스연합당)은 자크 시락의 RPR(공화국연합당)이 드골주의에서 멀어진다고 비판하면서 그 일부가 작년에 스스로 떨어져나가 결성한 당이다. 이 프랑스연합당은 유럽연합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정당이다. 같은 우파이면서 이들과 정반대의 노선을 추구하는 당이 '자유민주당(DL-Democratie Liberale)'인데 이 당의 이데올로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기 소르망이다. 자유민주당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국민의 약 6%의 지지율을 얻고 있으며 그들의 노선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정당의 이름을 자유민주당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자유주의 우파(Droite Liberale)'라고 부른다. 첫 문자가 똑같이 'DL' 인 점에 착안한 것이다.

기 소르망의 위치

기 소르망은 이 '자유주의 우파'의 이데올로그로서 '세계화란 곧 미국화이며 미국화가 곧 세계화'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현실 정치에도 열심히 간여하고 있어서 지금은 파리 근교에 있는 불로뉴 비양쿠르라는 도시에서 부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우파 시장 밑에서다.

{동아일보}가 소개한 바와 같이, 그는 우파 정권 시절이었던 1995∼1997년에 알랭 쥐페 총리 밑에서 경제 고문역을 맡았었는데 당시 그가 경제 고문으로 참여했던 작업이 다름 아니라 프랑스에 신자유주의를 수입하여 관철시키려는 것이었다. 독자 중에는 95년 11∼12월에 프랑스의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들이 3주 동안 전면 파업을 일으켰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사회보장 체제를 개악하려는 이른바 '쥐페 안(案)'에 대해 노동자들이 반발하여 들고일어나 그 안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던 바, 그 여파로 우파 정권은 97년에 정권을 좌파에게 넘겨주게 되었던 것이다.(95년의 대파업 당시에 저명한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파업 노동자 앞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을 고취시킨 바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파에 속하는 좌파 지식인들은 쥐페안에 찬성했던 일부 좌파 지식인들을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들의 주 비판 대상은 알랭 투렌, 자크 쥘리아르 등의 기득권 좌파 지식인들이었다. 기 소르망 같은 우파 지식인은 아예 비판 대상에 속하지도 않았다. 기 소르망이 프랑스의 지식인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독자는 또 대우가 프랑스의 공기업 중의 하나인 톰슨 멀티미디어를 인수하려 했다가 톰슨 노동자들의 반대로 실패했던 일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우의 톰슨 인수 시도도 기 소르망 씨가 쥐페 총리의 경제 고문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조선일보} 등 한국의 수구 언론들은 인수 실패에 대해 "한국인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처사"라며 대단히 분개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실소해야할 일이 되고 말았다. 쥐페 씨 또한 톰슨의 노동자들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다. 정작 그때에 인수가 이루어졌다면 그의 정치적 생명은 영영 사라지게 될 터였으니 말이다. 대우에 대하여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톰슨은 지금 흑자 기업으로 돌아섰으니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기왕에 대우 얘기가 나왔으니 여기서 프랑스의 정당 중에서 '자유주의 우파(자유민주당)'당이 대우, 나아가 한국의 보수정치권과 - 따라서 한국의 보수-수구언론과도 - 가장 가깝다는 점도 밝히기로 하자. 이데올로기가 서로 맞아떨어지므로 이 연결맥은 실상 아주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우파 안에서 시락의 라이벌이었던 에뒤아르 발라뒤르 총리 밑에서 산업장관을 지냈던 제라르 롱게는 이른바 친한파이다. 대우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바로 이 제라르 롱게라는 사람인데 그는 '자유주의 우파'당의 당수인 알랭 마들랭의 친구이며 당의 제2인자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은 1968년 학생 혁명 당시에 이에 반대했던 반공청년 행동 부대의 수장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68 학생 혁명에 대한 반대 활동을 통하여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인데 친한파로도 알맞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이제 독자는 프랑스의 정치 지형에서 기 소르망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의 와중에 있는지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기고문은 그의 정치사회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가 한반도 문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은 그의 글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또 논리 전개가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무지와 궤변

그는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북한이 스스로 개혁시킬 것으로 믿지 않는다. 경제 부문에서도 북한이 개혁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중국보다도 훨씬 완화된 속도로라도 북한의 시장 개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찾아 보라. 북한의 기업가들이 어디 있는가. …… 나는 그들의 쇄신 능력에 회의적이다."

그는 북한에 기업가들이 없다는 것을 개혁 불가능성의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시장 경제'에 만족하지 않고 '시장 사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자의 궤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나라가 왜 사회주의 나라인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가 없는 대신에 관리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 나라가 아니던가. 그의 주장은 무의미한 순환론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글을 보자.

"상황은 두 가지 방향 중에 한쪽으로 진행될 것이다. 북한이 더욱 호전적이 되거나 군사 쿠데타에 의해 내부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그것이다. 나는 두 번째 시나리오가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북한이 군사 쿠데타에 의해 내부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많다는 주장이다. 나는 남북정상회담에 관련된 논평에서 이처럼 북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글을 보지 못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번 정상회담에도 자신 있게 임했다고 보는 것은 모든 논평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거의 상식에 속하는 얘기가 아닌가.

그는 그 글의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있다.
"TV를 통해 방영된 북한 정권의 한국대표단에 대한 환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예전에 노르돔 시아누크가 나에게 주었던 충고를 떠올렸다. 그는 그 때 '조심하세요. 그들은 연극의 도사들이예요. 당신이 북한에서 보게 될 모든 장면은 꾸며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이 영화 애호가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많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전 세계 텔레비젼을 통해 방영된 장면들을 통해 또 다른 영화를 만들려는 그의 꿈은 실현됐다."

이것이 이른바 '전문가의 시각'의 결론이라는 것이다. 노르돔 시아누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어조로 말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와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논거로 삼는다는 것은 학자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유명한 정치인을 내세워 자신을 마치 영향력 있는 인물이나 되는 듯이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그런 말은 발설하는 것도 아니다. 또 아무리 김 위원장이 영화광이라고 한들 "또 다른 영화를 만들려는 꿈을 실현"시켜야 할 만큼인가. 그는 "남북한이 화해를 향해 내딛는 첫걸음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썼지만 실제는 그 첫걸음을 폄하하는 글로 시종일관했다.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한 군데만 더 인용하기로 하자. {조선일보} 기고문은 {동아일보} 기고문과 별다른 내용이 없는데 글의 분량이 좀 늘어서인지 첫부분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남북한 정상의 만남은 민주정권과 공산정권 간의 협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줬다. 1930년대 유럽인들은 나치나 공산 정권을 맞아 남한과 유사한 딜레마에 빠졌었다.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전면전을 초래하고 여론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대화는 지독한 독재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더구나 분쟁 준비의 시간까지 주게 마련이다"

민주정권과 공산정권으로 구분함으로써 그 스스로 반공주의자임을 밝히고 있는 셈인데,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위해 프랑스의 역사까지 왜곡시키고 있다. 1936년에 성립된 프랑스의 '인민전선' 정부가 부딪힌 제1차적 문제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쇼 정권이었지 소련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오늘날 스탈린주의가 비난받고 있음을 근거삼아 1930년대의 소련과 나치 독일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우리는 아나크로니즘(오늘의 평가 기준으로 과거 사실을 평가하는)의 오류라고 말하는데 이른바 '문명비평가'가 그런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오류는 남북정상회담을 같은 민족의 문제라는 시각으로 보지 않고 서로 다른 나라의 관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조차 인식 못하고 있다.

선택적 연결 구조의 두가지 측면

이상과 같이 그의 글은 '시장 사회'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자이면서 반공주의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문제는 앞에 말했듯이 그의 글이 객관적인 '프랑스 전문가의 시각'이라거나 객관적인 '문명비평가'의 논평으로 분장되어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끝으로 왜 한반도 문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의 글이, 또 별다른 내용도 없는 글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실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하면서 이 글을 마치기로 하자.

우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흠집내기, 찬물 끼얹기, 딴죽 걸기에는 틀에 박힌 반공주의자의 글이 적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55년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동토에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는 것은 지금까지 냉전 상황을 이용하여 계속 살쪄온 한국의 극우-수구 기득권 세력에겐 여간 심각한 비상 사태가 아니다. 남북의 화해는 곧 냉전의 와해이며 냉전의 와해는 곧 기득권의 허물어짐이다. 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예전 그대로(수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 소르망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동원된 것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조선일보}가 왜 {동아일보}를 뒤쫓는 짓을 아랑곳하지 않았겠는가.

두 번째는 기술적인 측면이다. 기 소르망은 지식인 중에서 친한파에 속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즉, 한국의 언론과 프랑스 지식인 사이의 선택적 연결 구조에서 그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한국의 언론은 그를 대단한 인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으며 실제로 그는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지 모른다. 이미 한국의 언론은 그를 석학(!)으로까지 소개했었으니 말이다. 그는 더욱 친한파가 되었고 한국 언론의 파리 특파원들과 안면도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프랑스의 시각'을 '취재'하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은 파리 특파원에게 기존의 '선택적 연결 구조'의 중요한 고리인 기 소르망이 가장 쉬운 '섭외'의 대상이었음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그렇게 {동아일보}가 먼저 선수를 쳤던 것인데 글 내용이 {조선일보}의 입맛에 아주 맞아떨어진 것이다. {조선일보}의 재기고 요청에 기 소르망도 조금은 멋쩍었을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사양했음직하다. 그러나 파리의 하늘 밑에서 집요한 섭외가 있었을 터이고, 급기야 궤변과 무지에 찬 글, 비스름한 글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일주일 사이에 실리는 한국 신문 사상에 남을 만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분노심보다 비애감이 더 드는 까닭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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