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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홍세화
제 목 홍세화, 갈 수 있는 나라 : 모든 나라
1969년 박정희 정권이 삼선개헌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미 ‘저항’의 몸부림을 시작했던 사람, 그러나 ‘많은 사람 앞에 서면 먼저 얼굴부터 벌게’지는 타고난 천성 때문에 ‘학생총회가 있을 때’면 ‘앞에 나서지’ 못하고 ‘청중에 속해 있었’던 사람, 홍세화씨가 6월 22일, 23년만에 모교인 서울대학교를 찾았다. 많은 사람 앞에 서야만 하는 강연을 위해서였다. 얼추 600명 정도는 돼 보이는 청강생(?)들로 소강당은 꽉 들어찼다.

반갑습니다. 젊은 분들을 만나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솔직히 말씀드려서 후배를 만나러온 것이 아니라 젊은 분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들을 젊은 분으로 보고 싶지 서울대 학생으로 보고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준만 교수와 연합뉴스 김종철 사장이 서울대 망국론에 대해서 말한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울대망국론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고 그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봅니다.

여러분은 장래 한국사회의 특권층 후보자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별로 서울대생들한테 동질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한국 사회 특권층의 후보에서 벗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정확한 사회인식이 남다르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홍세화씨의 특권층 개념은 좀 특이하다. 좥한겨레좦 99년 6월 16일자 홍윤기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는 “자아실현을 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 수입을 얻는 사람들을 특권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대학교수라면 공부한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 행위 자체로 봉급을 받을 수 있어 자아실현과 동시에 생존이 해결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파리에서의 그의 택시운전 경력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결과인 것 같다. 같은 글에서 곧바로 그는 “제가 택시운전을 했지만, 택시운전이 제 자아실현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도발적인(?) 인사말이 끝난 후 열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프랑스 사회와 한국 사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홍세화  프랑스 사회는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하는 사회입니다.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하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개념이 발달해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한국 사회라는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프랑스 사회의 지도층에게는 사회적 책무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사회적 책무의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참 뻔뻔합니다. 뻔뻔하더라도 수세적으로 뻔뻔해야 하는데 공격적으로 뻔뻔합니다. 한마디로 수치심이 없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로 한국은 질서나 안보가 사회정의를 억압하는 사회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볼 수 있는데 강준만 교수와 홍세화씨가 ‘사회정의’라는 개념을 그들의 주요 화두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월간 좥인물과사상좦 99년 3월호 <왜 조선일보 제 몫 찾아 주기 운동인가>에서 이 운동을 “‘이념·성향·취향’이 아닌 ‘사회정의’의 문제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홍세화씨는 그의 모든 글에서 ‘사회정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낸 그의 책 좥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좦(한겨레신문사간)(이하 좥쎄느강좦)에서는 사회통합의 가장 중요한 고리로 사회정의를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사회정의는 무얼 뜻하는 걸까? 그는 좥쎄느강좦에서 이를 “사회 안에서 사유권이 중요하다면 사회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더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한겨레 99년 6월 16일자 홍윤기 교수와의 대담에서 “사회정의는 우선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가지는 데서 시작”된다고 밝히고 있다.

선생님께서 활동하신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은 이름부터가 새내기들에게 무섭고 생경합니다. 조직의 이름의 의미와 활동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정식명칭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입니다. 그 전에 한국민주화투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민전 전사가 되려면 일단 투사생활을 거쳐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만큼 저도 남민전에 가입할 때 두려웠습니다. 남조선이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왜 남조선인가? 저 역시 그 의미를 옥사하신 이재문 선생의 공소이유서를 통해서 프랑스에서나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활동가에 지나지 않았고 제가 한 일이라고는 삐라를 뿌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삐라를 뿌리는 일조차도 당시에는 5년 정도 감옥행을 각오해야 했는데, 조직 이름에 ‘남조선’자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10년은 감수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재문 선생은 고문을 당해서 옥사하셨고 신향식 선생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안재구 교수는 지금도 감옥에 계십니다. 그분은 일단 남민전으로는 가석방으로 나왔는데 다른 것이 있어서 지금 대구교도소에 계십니다. 그러고 다른 사람 중에서는 한 10년 가까이 징역을 살고 지금 나와 있는데요, 저는 좀 특이한 경우입니다.

조직 이름과 관련하여 저는 그때 그렇게까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마는 그런 의문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 것은 깃발이었습니다, 그 깃발은 지금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75년 4월 9일날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처형된 여덟 분의 마지막 수의를 모아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여덟 분은 하루 전인 4월 8일날 사형 언도를 받고 채 24시간도 지나기 전인 4월 9일 새벽에 모두 처형됐던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박정희 유신시대의 실상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모든 조직원들에게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서, 특히 제 경우에 있어서는 실존적인 요구였습니다. 따라서 명칭은 저에게 크게 중요하게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홍세화  참 슬픕니다. 아직도 구속자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해야 된다는 것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면서도 한총련 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파업했다고 감옥에 집어넣고. 이런 문제들이 일단 해결된 뒤라야 겨우 여성의 인권이나 어린 학생들의 인권,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을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아직까지도 철창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양심수들이 많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않으면 그 사회는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파업했다고 구속되는 상황이 통용된다는 것은 너무 많은 뻔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 꼭 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일은 없으신지요?

홍세화  젊었을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사랑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허물을 벗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제 자신도 모르게 여러분하고 똑같이 서울대 의식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추방되었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제가 택시를 하는데 8년이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택시를 했던 게 아니예요. 상황이 바뀌었으면 바로 그 상황에 몸을 던졌어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머리를 써서 할 일이 없을까 하고 찾아 헤맸던 것입니다. 그만큼 인텔리 근성이랄까 혹은 엘리트 의식이랄까 하는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인데 이런 것은 제가 후회하는 점입니다.

강연시간 내내 홍세화씨를 ‘선배님’으로 부르는 사회자와 질문자들의 호칭사용법과 단 한 번도 ‘후배님’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그의 호칭사용법이 묘한 여운으로 뒤엉켰다. 그날의 강연은 강당에서 끝나지 않았다. 풀지 못한 갈증이 좀체 가시지 않는 듯 서울대 앞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 2층에 있는 ‘이야기 까페’로 ‘젊은이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2주일 후인 7월 5일,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7박 8일간의 지방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였다. 구릿빛 얼굴의 건강한 모습이었다.

귀국하시면서 진보를 고민하는 젊은이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는데, 많은 대화를 나누셨는지요?

홍세화  한국 사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외향적인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면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아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인 셈이죠. 특히 언론에서 저를 ‘최후의 망명객’으로 부르는 데에 대단히 불쾌합니다. 여전히 들어오지 못하거나 감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실제로 좥뉴스 플러스좦 98년 7월 16일자에 따르면 해외체류중인 반체제(?) 인사들은 대략 전세계에 걸쳐 200여명 정도이다. 이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실정법을 위반했으나 신병이 확보되지 않아 기소중지 중인 케이스. 박성희, 성용승, 최정남, 류세홍, 도종화씨 등 91년부터 96년까지 전대협, 한총련, 범청학련 등의 대표로 방북했다가 독일에 체류중인 사람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둘째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케이스. 프랑스에 망명중인 홍세화씨가 이런 경우였다. 셋째 귀국할 경우 사법 처리될 가능성이 보여 귀국을 미루고 있는, 다소 애매한 케이스다. 대개 간첩사건 등에 대한 당국의 발표에서 연루자로 지목된 경우다.

홍세화씨는 자신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87년에 만료됐다는 사실을 DJ정부가 들어선 지난해에야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강준만 교수가 전개했던 좥조선일보 제 몫 찾아 주기 운동좦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홍세화  대단히 중요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극우세력의 정당한 몫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정권의 역할과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해방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극우 헤게모니가 최초로 견제 받는 상황이 됐는데, 극우세력의 대표주자인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제 몫을 찾아주고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토론이 가능한 사회로 재편해야 합니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과 진보세력은 대치개념이 아니며, 김대중 정권 이후 다음 정권을 누가 이끌어 가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 홍세화씨를 만나실 일이 있으신 분은 좥조선일보좦를 ‘보수신문’이라고 부를지 ‘극우신문’이라고 부를지를 신중히 생각해서 용어선택을 하시기 바란다. 그는 월간 좥말좦 98년 5월호 <김대중 정권은 극우 헤게모니 배제된 최초의 보수 정권>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사회에서 보수와 극우의 차이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보다 더 중대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극우와 보수가 마구 뒤섞여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얘기가 아니다. 더욱이 좌우의 스펙트럼이 무지개 같은 프랑스와 달리,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거의 없는 한국의 현실을 볼 때 극우와 보수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한다는 것은 한국의 정치현실 전체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말지 98년 4월호에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신문모니터팀은 조선일보 2월 19일자 사설 <미전향간첩과 국가체통>을 최악의 사설로 골라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글에서 민언협은 조선일보를 보수언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보수언론이 아니다. 극우언론이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에 대한 강 교수의 작업은 차라리 쉬운 것 같습니다. 오히려 소위 ‘진보’로 인정받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한 비판 작업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비판작업을 ‘실명’으로 하다보니 반발이 심한 것 같은데요.

홍세화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토론문화가 없었고 그 속에서 양극사회로 치달아 왔습니다. 100% 아니면 0%인 거죠. 저는 진보도 60%만 하자는 쪽입니다. 가령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 중엔 돈이 없어 당장 생존을 해결해야할 어려움에 처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 경우 ‘이 친구 이런 점은 있지만 이런 점도 있어’ 라는 식으로 보수성 60%, 진보성 40%로 봐줘야 하는데 보수성 100%로 봐버리는 게 문젭니다. 저는 60%의 진보성과 60%의 보수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되는 사회를 원합니다.

홍세화님은 몇몇 강연회에서 몇 년 후 영구 귀국하면 시민운동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시민운동 단체나 진보 단체들은 ‘가치 중심적’ 원리가 아니라 인맥·학맥·지연 등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식의 작업이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절대 그런 분위기에 타협은 없습니다. 실명비판도 할 겁니다. 그것은 자아실현 계층이 가져야할 당연한 ‘사회적 책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강연 때, 서울대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강준만 교수의 ‘서울대 망국론’식의 해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다른지 말씀해 주시죠.

홍세화  서울대 문제는 곧 패거리주의 문제인데, 서울대를 해체한다 할지라도 제2, 제3의 서울대는 계속 등장할 것입니다. 저는 서울대 문제는 사회지도층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행하지 않는 ‘사회적 책임의식’과 ‘소외’를 당연하게 여기는 교육과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은 끊임없이 소외되는 사람들을 양산해내는 시스템입니다. 이러한 소외 문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는 사회는 정말 끔찍합니다.

홍세화씨는 귀국 전 한겨레 99년 6월 3일자 인터뷰에서 한국의 산하와 사람들이 그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 있다. “그것은 ‘우리’예요. 나는 이곳에서 우리가 없어 몹시 외로웠어요. 우리의 산과 강, 그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겐 하나의 연결된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그 속에서 지난 20년 동안 한시도 잊지 못했던 우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사람에 대해선 실망하지 않으셨나요?
홍세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저와 정서가 비슷한 곳은 한국입니다. 4∼5년 후로 잡았던 영구 귀국이 자꾸 2∼3년 후로 단축되는 것 같아요. 가서 환경문제에 대해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에 있게 되면 자꾸 형식적 인간관계에 얽매이게 되고 그만큼 시간 낭비도 클 우려가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사상이 한국에서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벌써 시간은 두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있었다. 20분을 멀다하고 울리는 그의 휴대폰이 그의 바쁜 일정을 알려주고 있었다. 카페 한곳에서 홍세화님을 알아보고 두 여성분이 다가왔다. 사인공세(?)가 이어졌고 그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방인이 이방인에게’. ▣ 정리 : 김학수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name&desc=desc&no=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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