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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황인용
제 목 '박정희 영웅화'의 비극
황인용(수필가,서울시 서초구 반포2동)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12회 동문들이 하고 있는 고전 윤독 모임에 몇 년 전 유홍준 교수도 잠시 동참한 일이 있었다. 뒤풀이 술자리에서 유 교수의 재치 번득이는 재담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는데 귓가로 흘려 버릴 수 없는 대목이 있었다.

다름아니고 5·16 후 화폐 개혁 때의 일로 1천원권에 퇴계 선생, 5천원권에 율곡 선생 존영이 들어간 것을 두고 안동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이에 한은 담당자가 1천원권에 퇴계 선생을 모신 것은 사람들이 퇴계 선생을 율곡 선생보다 더 많이 뵐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노라고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연하기를 안동 사람들은 퇴계 선생과 율곡 선생을 비교하는 것조차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은 특히 조심하고 있다는 거였다.

유 교수는 인물 평가의 어려움을 설명하기 위해 다만 하나의 본보기를 술안주 삼은 것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곰곰 반추하고 음미해 볼 만한 소중한 화두 하나를 얻은 셈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퇴계와 율곡은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으로 대표되는 우리 나라 성리학의 쌍벽이다. 여기서 쌍벽은 쌍옥가락지를 뜻하는 말로서 음양 조화의 상징임은 물론이다. 이 점 안동사람들이 퇴계 선생만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제아무리 굴뚝같다고 하더라도 율곡 선생 없는 퇴계 선생은 존재 가치가 반감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환언하면 이기일원론이 빛났던 것은 이기이원론의 존재 때문이고 반대로 이기이원론도 이기일원론 덕분에 각광받을 수 있었으니, 이러한 관계는 상호 존재 이유 고양의 원리이자 음악에서의 대위법의 원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지역적으로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참여와 순수로 나뉘는 등 완벽한 대위법을 보는 듯하지만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극명한 명암은 예외가 아니다.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쏜 도화로다 / 도화야 떠디디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퇴계 선생의 이 시조는 그가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여마지 않았는지 한 폭의 그림처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사랑이 지나쳐 부지불식간에 독점욕을 드러내고 말았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한 퇴계 선생에 비해 율곡 선생은 과연 어떠했던가?

 

이곡(二曲)은 어드메오 화암(花岩)에 춘만(春晩) 커다 / 벽파에 꽃을 띄워 야외로 보내노라 / 사람이 승지를 모르니 알게 한들 어떠리.

 

율곡 선생 또한 퇴계 선생처럼 계곡 이름으로서 호를 삼을 만큼 자연을 사랑했지만 어찌하여 그 태도는 천양지차로 다른 것인가? 그것인즉 다만 마음씨의 차이로서 한 쪽은 이기(利己)의 전형이라면 다른 쪽은 이타(利他)의 화신인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씨의 율곡 선생이었기에 돌아가셨을 때 황해도 사람들이 "이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 것이냐?"고 통곡하여 마지않은 원인이 되었을 터이다. 아울러 선생의 제삿날이 돌아오면 혼례와 음주 가무를 금하고 자신들의 부모보다 더 정성들여 제사를 모셨는데 이는 고금의 성현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율곡 선생의 고매한 인격과 아름다운 마음씨를 촌탁해 볼 수 있는 삽화랄 것이다. 이제 이러한 측면에서 맹자의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를 읽어 보면 두 시조의 차이점은 한결 분명해진다.

 

"음악을 혼자서 즐기는 것(獨樂)과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것은 어느 쪽이 더 즐겁습니까?"

"그야 여러 사람과 함께 즐기는 쪽이지요"

"지금 왕께서 연주회를 열었다고 합시다. 백성들이 음악 소리를 듣고 `우리 임금은 혼자서만 음악을 즐기며 우리들은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하고 불평한다면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닙니다. 백성들과 함께 즐기지(與民樂)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맹자와 양혜왕의 대화로서 정치의 요체를 짐작케 해 주고도 남음이 있는 대목이다. 바로 세종대왕이 <여민락>이라는 아악을 작곡케 한 까닭이었던 것이다. 세종대왕의 정치야말로 여민락의 그것이고 조화와 균형 감각의 소산이었다면 저간의 우리의 정치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었던가?

현대사 논의의 핵심인 3공 이후 문민 정부까지 국한해 본다면 한 마디로 우리의 정치는 특정 지역의 독점에 의한 독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독점 논의를 가능케 했던 것은 자기 고장의 인물만 위대한 줄 아는 독선으로서 배타적 우월감과 지역 패권주의의 허구적 논거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독선의 정치적 전개 양상은 독재, 경제적 전개 양상은 독점이었고 이러한 권력과 금력의 확대재생산 협업 체제가 정경유착이었다.

그 악순환 과정에 기생하여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지역 패권 논의를 확대재생산해 온 것은 기회주의적인 언론 재벌과 재벌 언론 및 곡학아세와 곡필을 일삼아 온 지식인과 문학인들이었다. 배운 자들일수록 교묘하고 악랄하게 망국적인 지역감정 조장에 앞장서 왔다는 사실은 그들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추악한 범죄에 다름아니었음을 반증해 준다.

그들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호도하기 위해 속죄양의 존재를 필요로 했고 교묘한 상징 조작으로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난을 회피코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기만적이고 이중적인 허위의식은 삼국통일 후 신라 지식인들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도 닮은 꼴인가? 그들은 당나라에는 모멸적인 굴종과 사대를 일삼으면서 동족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이중인격자였음에랴. 말하자면 당나라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동족을 멸시함으로써 보상받고자 한 심리 기제가 내포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전통이 오늘날 배타적 우월감의 뿌리인 것이다.

그들의 후예가 오늘날 삼국통일 예찬에 정신이 없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하에 있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결과론적으로 말한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친 반민족적 범죄이며 더구나 만주 벌판을 잃고 반도 국가로 전락한 치명적인 전략적 실수였다.

이 점 모화사대 사상의 극치를 보여준 바 있는 김부식은 신라 귀족의 후예로서 민족적인 사료를 깡그리 인멸해 버리고 자기 비하의 고백에 다름아닌 삼국사기를 편찬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기 기만적인 역사 인식은 박정희라는 우상 숭배에서도 하등 다를 바 없다. 맹목적인 맹신이라는 점에서 박정희는 사교의 교주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우상 숭배야말로 자기 소외의 징표라면 박정희 신도들은 집단적인 소외 증후군에 빠져 있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교는 예외 없이 그 말로가 비참하게 마련임에랴.

그러고 본다면 박정희는 본의와 상관없이 신격화 우상화되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즉, 배타적 우월감과 지역 패권 논리의 조작에 하나의 상징으로서 차용된 데 불과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이 집단적인 허위의식은 집단적인 소외의 함정에 빠지게 된 비리로서 지역 패권 논리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진단케 해 준다. 이 허구성은 독락코자 하는 독점욕에 기초하고 있는 바 그 독점욕의 자기 독소를 고찰해 보기로 하자.

공해 식물인 미국 자리공은 땅을 독차지하기 위해 독소를 내뿜어 식물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독소에 의해 자멸하고 만다고 하다. 이처럼 독점욕은 다름아닌 자기 모순에 의해 자기파멸로 귀결하는 것이 자연법칙이고 우주의 철칙임에랴. 모든 독재자의 비극적인 종언은 박정희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즉 경제에서의 독점의 폐해를 새삼스레 열거해 무엇하랴? 고비용 저효율에서 말미암은 IMF 체제도 구조적인 문제로서 박정희까지 소급한다는 사실은 정경유착의 뿌리가 이미 그때 고착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역감정에 관한 한 해결책은 결자해지 ―― 묶은 자가 푸는 길뿐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과대망상증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만 한다. 그게 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나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나 백 번 다행한 일일 테니까. 그러지 않는 한 시대착오적이고 퇴영적인 소아병(小我病)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세계문명사적으로 보더라도 다가오는 새 밀레니엄은 문화 종교적 다원주의와 생태계가 우선되는 환경의 시대가 되리라고 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독재, 경제적으로 독점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조화와 균형의 정신에 입각한 공존공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선언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혁기에 지역 패권의 발상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일 따름이다. 지금이 과연 박정희를 부활시켜야 할 시점인가? 박정희에게서 새 밀레니엄에 필수불가결한 문화적 미덕과 철학적 비전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라면, 그를 부활시켜서 쿠데타적인 상황을 바라자는 것인가? 그래서 유신 독재의 그 암울한 시대로 퇴행하자는 것인가?

박정희 숭배론자들은 역사 앞에 겸허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를 부활시키는 것은 두 번 죽이는 일밖에는 안 되는 자명한 이치를 왜 간과하고 있는가?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 그는 총으로 일어섰다가 총으로 망했다. 유시유종이라 했는데 그는 처음도 끝도 모두 좋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독재자였고 지역을 차별했다. 무엇보다 그는 "나같이 불행한 군인은 두 번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 말인즉 박정희는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자기고백에 다름아니다. 제2의 박정희는 나올 필요도 없고 나와서도 결코 안 된다. 그런 박정희를 부활시키려고 하는 박정희 숭배론자들의 단견과 허구성과 경박성은 실로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name&desc=desc&no=510

2002/06/26 (15:49:05)    IP Address : 147.46.116.76

638    "깡패 기질"과 "OOO 죽일 놈"은 같을 수 없습니다 황지연 2002/06/26 779
637    {동아일보} 김종심 논설실장에게 묻는다 황지연 2002/06/26 682
636    '김종심식' YS 증언은 절대 안 됩니다 황지연 2002/06/26 835
635    언론의 편견이 나라를 망친다 황지연 2002/06/28 1026
   '박정희 영웅화'의 비극 황인용 2002/06/26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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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월드컵 축구'의 사회심리학 한종호 2002/06/26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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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오십 보 백 보'의 재해석과 양비론(兩非論) 한자헌 2002/06/26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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