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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최성일
제 목 출│판│동│네│이│야│기
피부로 느끼는 보수(주의)


지난여름 우리 사회에 팽배한 보수적 분위기를 체감할 기회가 있었다. 6월 하순의 어느 날 나는 {동아일보} 출판담당 기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용건은 원고 청탁. 토요일자 출판면의 <책에 얽힌 뒷얘기>라는 코너에 들어갈 글을 써달라는 주문이었다. 이튿날까지 써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으나, 마침 그 코너에 적합한 소재가 있어서 원고 청탁을 받아들였다. ‘마감 시간이 빠듯한 걸 보니 누군가 원고를 펑크냈나보군’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로라하는 중앙 일간지에 기고하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는데, 특히 사실 관계에 오류가 없도록 주의를 다했다. 하지만 글은 막바로 OK가 나지는 않았다. 끝맺음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부랴부랴 지적사항을 고쳐서 두 번째로 보낸 것이 아래의 글이다.

대통령 징크스

출판계에도 나름의 징크스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사옥’ 징크스와 ‘베스트셀러’ 징크스를 들 수 있다. 사옥 징크스는 출판사가 책 팔아 모은 돈으로 새로 지은 건물에 입주하기가 무섭게 사세가 기우는 경우가 많아 생긴 속설이다. 베스트셀러 징크스 역시 많이 팔린 책이 화를 부른 경우를 일컫는다. 베스트셀러는 종종 해당 출판사의 마지막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대통령’ 징크스는 엎친 데 덮친 꼴이다. 대통령에 관한 책, 그 중에서도 전기를 낼라 치면, 실속을 챙기기는 고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가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예를 보자. 전집물 출판사로 유명했던 ‘휘문출판사’는 유신시대 말기 {가까이서 본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책을 내고 활동이 뜸해졌다.

비슷한 시기 박목월 시인의 {육영수여사}를 펴낸 ‘삼중당’은 대통령 징크스에 희생당한 전형적인 케이스. ‘삼중당문고’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출판사는 서거한 영부인의 평전을 출간한 이후 내리막길로 들어섰다가 결국에는 문을 닫았다. 70년대 ‘동서그레이트북스’를 낸 바 있는 ‘동서문화사’ 역시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내고 출판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5공 초기의 일이다. 문민정부의 황태자 김현철 씨가 몰고온 파장은 대통령 징크스의 가장 비근한 예. 굴지의 단행본 출판사였던 ‘고려원’은 현철 씨의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를 출간한지 2년만에 부도를 맞는다.

70년대 ‘홍성신서’를 내며 80년대 사회과학 붐의 기틀을 조성한 ‘홍성사’는 대통령 징크스의 화마를 가까스로 피한 경우다. 80년대 초반 청와대로부터 잡지 창간을 제안 받은 이재철 대표는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몇 날밤을 고민한다. 결국, 출간 계획서가 반려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닥락 되었지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이 대표는 지금도 아찔하기 그지없다.    

대통령 징크스는 역대 정권들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정통성 부족과 권력남용에서 연유한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의 책을 펴낸 출판사는 ‘어용’으로 낙인찍혀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출판의 매체적 특성이 가져온 결과로 보인다. 모름지기 출판의 본분은 권력과의 야합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아니겠는가.

“너, 그러다 다칠랴”

한번 써먹은 원고를 굳이 다시 불러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신문에 게재된 것({동아일보}, 1999년 6월 26일자, B3면)은 내 글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내가 신문사로 보낸 글과 신문지면의 글은 생판 다르다. 적어도 글을 쓴 나는 두 글의 이질감을 확연히 느낀다. 신문에 실린 글은 원고를 청탁한 기자와 데스크의 ‘합작품’으로 봐야 한다. 나는 그저 글의 소스를 제공했을 따름이다.

내가 쌓인 감정이 있어서 지난 일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신의 글을 손대는 것에 질색해 마지않는 명망가의 축에는 끼지도 못할뿐더러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도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나는 편집권을 존중하기까지 한다. 다만, 정황을 분명하게 밝히고 싶을 뿐이다. 편집 과정에서 덧붙여진 ‘홍성신서’ 부분만해도 그렇다. “(제안을 거절한) 덕택인지 ‘홍성신서’는 80년대 사회과학 붐의 기틀을 조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이 대목은 반은 맞고 반은 그르다. 홍성사는 80년대 중반 ‘홍성신서’의 출간을 중단했으며 현재는 종교서적만을 펴내고 있다.

‘홍성신서’를 ‘살아있는 책’으로 둔갑시킨 근저에는 내 책임도 적지 않다. 나는 원고를 청탁한 기자와 전화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던 중 홍성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가 이 출판사는 출판 활동이 뜸하지 않냐고 물어와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만 종교서적 전문출판사로 탈바꿈했다는 점을 빠트리고 말았다.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없고, 편집권을 존중한다고 해서 유감이 전혀 없다면 거짓이다. 내 나름대로 배치한 단어들이 여지없이 다른 어휘로 바뀌어 활자화된 것은 좀 아쉽다. 이를테면, “권력남용”은 “친인척 문제”로(이건 기자와 합의한 사항이다), “권력과의 야합”은 “권력에 가까이 가기”로,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나 아닌지”로 각각 바뀌었다. 군더더기로 여겨져 그랬겠지만 “대통령 징크스에 희생당한 전형적인 케이스”라든가, “서거한 영부인” 같은 표현은 잘려나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신문에 실린 내 글을 읽고 무척 당혹스러웠다. 내 글이 아니라는 자각이 듦과 동시에 원안의 작성자인 나로서는 거세된 글이라는 느낌마저 들어서다. 직설적 표현은 완곡한 어조로, 구체적인 지칭이 일반적인 일컬음으로 표현의 수위가 낮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러한 변주가 치밀하게 이뤄진 것에 대해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이로써 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보수주의의 실체를 실감했다고 감히 단언한다. 그 분위기에 젖어서 그것의 진면목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던 것을 피부로 체험한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약과다. {동아일보} 기고문은 보수주의의 위력을 실감하는 계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 글은 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내게 알은 체를 가장 많이 하도록 했다. 여기저기서 축하인사를 받으니 보수정론지의 위력이 새삼 실감났다. 그 중에서도 부친께서 주신 걱정이 담긴 격려의 메시지는 뿌리깊은 보수주의의 존재를 깨닫게 해줬다. “얘야, 너 그러다 다칠랴.” ‘권력’을 언급한 탓에 혹여 자식에게 닥칠지도 모를 신변의 불이익을 염려해서 하신 말씀이다.

그랬다간 진짜 다쳐

정작 얘기를 잘못 꺼냈다가 다치게 되는 주제는 따로 있다. 바로 성 담론이다. 연례행사처럼 성을 주제로 한 책에 대해 노골적인 성 묘사를 했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압박은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확인시켜 준다. 마치 그런 현실을 잊고 지내는 우리를 일깨우기라도 하는 듯이. {즐거운 사라}부터 이야기를 풀어 보자. 이른바 ‘마광수 파동’이 한창일 때,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다. 취업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이 열의가 있는 4학년 2학기 강의실. 한 여학생이 교수에게 최근의 사태에 대한 교수의 의중을 묻자 실내는 일순 정적에 휩쌓인다.

이윽고 들려오는 교수의 답변은 나의 기대를 배반한다. “그 친구, 내가 좀 알지. 박사학위 쓸 때만해도 똑똑하더니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 한다는데 난 서명 안 할거야. 교수가 그게 뭐야.” 내가 한동안 ‘스승’으로 섬겼던 교수를 향한 신뢰는 이 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한때의 스승을 찾아가지 않는다. 여기서 퀴즈 하나. 학생이 선생을 찾아가지 않는 것은 선생 탓일까? 학생 탓일까? 선생 탓이다. 나는 스승의 인격을 의심한다. 마 교수의 행동을 교수 품위손상이라는 이유로 백안시하는 태도만으로도. 하지만 교수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지탄의 대상이었던 마광수 교수의 인격은 의심하지 않는다. 믿을만한 그의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훌륭한 인격자라서.

{즐거운 사라}를 습득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 졸업 직후 몇 달간 취직공부 한답시고 동네 독서실에 다닌 적이 있다. 독서실의 휴게실 서가에 {즐거운 사라}가 꽂혀 있었다. 내용이 별 것 아닐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독서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얻을 걸 그랬다. 자료적 가치만으로도 소장할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에. 자료집 {마광수는 옳다}(사회평론, 1995)에서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된 음란한 대목을 보니, 역시 별 것 아니다. 아울러 마 교수가 구속된 것은 그가 단지 교수 신분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 1996)가 나왔을 때, 나는 {출판저널}에 다니고 있었다. 사무실의 책꽂이에서 보았는데 책이 구설수에 오르자 어느 틈에 없어졌다. 개인적으로 작가와 출판사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관심 없던 책이었다. 그래도 책이 화제에 오르면 손에 넣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까닭에 백방으로 책을 구하러 다녔다. 이럴 때 출판사를 찾아가는 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무 연고도 없이라는 단서가 따라붙지만.
출판사의 얘긴즉슨 책 가운데 구멍을 두 개 뚫은 다음 모두 폐기 처분했단다. 나는 이 얘길 듣고 가슴이 아팠다. 책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암시장에서 {내게 거짓말을 해봐} 복제본이 10만 원에 거래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나는 그 책의 카피를 뜨는데 한푼도 들지 않았다. 어느 출판단체 직원이 갖고 있는 책과 사무실에 있는 복사기를 공짜로 이용했다. 이 책이 쓰레기라는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그런데 쓰레기면 어떠랴! 허슬러 회장 래리 플린트의 말마따나 쓰레기의 권리가 보장된다면 다른 건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여기는 한국이라고 따져 물으시면 할 말이 없지만서두. 작가는 포르노그라피를 글로 옮겼으며 자기모멸이 주제라고 했다. 작가의 솜씨가 아무리 뛰어난들 글이 그림을 따라잡기는 난망하거니와 나는 자기모멸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복사물은 이런 글을 쓸 때라야 봉투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나는 판권면을 보고 제목은 맞는지, 출간연도는 언제인지 확인한다. 이제 배우 서갑숙 씨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J-pub)를 이야기할 차례다. 편의상 일지 형식을 취하겠다.

10월 22일
어제, 내일자 {스포츠신문}에서 서갑숙씨가 SBS 라디오 ‘김갑수의 책하고 놀자’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하다. 부러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서 사온 공테이프로 녹음 준비를 한 다음, 라디오의 다이얼을 맞춘다. 나는 {초록빛 모자}라는 단막극에서 서갑숙 씨를 처음 봤다. 그의 시니컬하면서도 격정적인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서씨가 맡은 ‘기정’이라는 이름의 시인은 허구적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로 비쳐졌다. 기정은 서갑숙 씨 자신이었다. 나는 이후 서갑숙 씨를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배우로 생각하게 되었다.

라디오 방송은 내가 서씨의 육성을 처음으로 듣는 자리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배우에 속할 것 같다. 서씨에 대한 내 인상 목록에 ‘지적인 배우’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녹음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무슨 불길한 징조람.

10월 26일
영풍문고에서 출발해 서대문을 거쳐 충정로로 이어지는 길가에 위치한 서점 다섯 곳을 들러 문제(별 뜻 없는 표현. 서씨의 책이라고 하든가 제목을 줄여 불러야 하겠으나 그냥 이렇게 썼음. 서씨의 책이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음)의 책을 찾았다. 한 군데도 없다. 영풍문고. 직원이 “없다”고 퉁명스럽게 답한다. 내가 있는데 일부러 없는 척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들자 직원이 짜증스러워 한다. 있던 책은 다 팔리고 지금은 공급이 끊긴 상태란다. 내가 이렇게 따지고 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 달 전쯤, 영풍문고 인문·사회 코너에서 한 손님이 김지하의 {율려란 무엇인가}를 찾았다. 대뜸 직원 한 사람에게서 없다는 대답이 날아왔다. 무심코 종로통 큰길 쪽으로 연결되는 출입구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방금 어떤 사람이 찾던 김지하의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 직업 의식이 발동한 나는 인문·사회 카운터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잘 모르는 신입 직원의 단순한 실수였다는 것이다. 대형서점은 늘 이런 식이다. 교보문고. 소문대로 책이 아예 없다.

내가 존경하는 출판 언론계 선배 두 분은 이번 사태와 바람직한 대처방안을 이렇게 보았다. “우스운 짓거리”와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하지만,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그냥’ 있지를 못하고 일을 더 우습게 만들었다. 오늘 열린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회는 문제의 책을 유해간행물로 판정함. 판관들이 신이 아닌 이상 오심이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의 책에 대한 결정은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초등학생 구독불가’ 정도면 족하다. 한 발 양보해도 ‘중학생 구독불가’가 무난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10·26이네. 이와 관련한 엉뚱한 상념 하나. 박정희 대통령(이하 ‘박통’) 기념관을 짓는 것은 못 말린다 치자. 그런데 박통 기념관을 짓고 운영하는데 국민의 세금을, 그것도 100억 원씩 매년 지원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통탄할 노릇이다. 그래도 박통 기념 사업에 세금을 쏟아 붓겠다면, 한해 예산의 10%는 역사의 진실을 가리는데 써야 마땅할 것이다. 그 돈으로 숨겨진 박통의 사생활을 낱낱이 파헤치는 거다. 그러면 {모택동의 사생활}(고려원, 1995)에 못지않는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당연히 ‘19세 미만 구독불가’다. 너무나 찐할 것이기에.

오늘, {동아일보}에 실린 유시민 씨의 칼럼은 문제의 책에 관련된 보수 일색의 논조와는 시각이 전혀 다른 한줄기 빛 같은 글이다.        

10월29일
검찰에서 문제의 책에 대한 내사를 ‘무혐의’로 종결한 덕분에 표지에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빨간딱지에다 비닐을 덧씌운 책을 동네서점에서 구입. 공신력 있는 기관이 내린 판정인 탓에 앞서 ‘구독불가’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으나, 이 표현에는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나는 ‘구입불가’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책 사는 것과 읽는 것은 별개의 행동인 경우가 많아서다. 또한 ‘구독불가’는 진시황의 ‘분서’와 히틀러의 ‘책 불태우기’를 연상케 한다. 이 희대의 책과 원수진 자들은 책을 못 읽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아예 불태워 없애버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책을 읽는 것은 사상의 자유다. 나이·성별·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 누가 나서서 감내라 콩내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좀 다르다. 아무런 표현이나 다 할 수 없지 않는가. 특히, 남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된다.

10월 30일
{동아일보} 출판면의 ‘책과 사람’(1999년 10월 30일자, B1면)에는 교보문고의 영업부 직원이 초대되었다. 교보문고는 자체 심의를 거쳐 문제의 책을 랩을 씌워 성인에게만 팔려고 했지만 출판사가 이에 응하지 않아 한동안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판매 심의’의 주역이라는 교보문고 영업부 과장의 말이 재미있다. “랩을 씌워 판매할지의 여부는 출판사가 최종 결정하는 겁니다. 물론 책을 매장에서 팔고 안 팔고는 우리가 결정합니다.” 인터뷰 기사는 교보문고를 상도덕이 투철한 건전기업으로 미화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다. 유통 조직을 통해 얼마든지 책의 전달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서점 이용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고 안 사고는 독자가 결정합니다.” 지지난호에서 인터넷 서점에 일말의 회의를 표명했는데 한번 이용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인터넷 서점이 적어도 대형서점보다는 낫다.

11월 3일
한국언론회관 19층의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한국인의 성(`性`)의식 변화와 음란성 간행물’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청중으로 참석했으나, 너무 재미가 없어서 주제발표만 듣고 나오다. 주제 발표자들이 내 관심사인 ‘음란성 간행물’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고, 한국인의 성의식 변화 양상에 대한 고찰 또한 기대 이하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모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발제문은 좀 심각했다. 그 중에서도 “현대 한국 사회의 도덕성 붕괴에 따른 위험 사회의 징후는 성 관련 폭력이나 성희롱, 스토킹의 성범죄 문제이다”라는 대목이 눈에 걸렸다. 선행연구자의 전거를 요약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전공자가 위험 사회의 징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보고는 약간 놀랐다. 내 독서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나 울리히 벡의 책에 나타난 위험 사회는 성범죄와는 그닥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가 벡의 위험 사회 개념을 곱씹어 봤겠느냐는 의문은 참고문헌 표식을 보자 더욱 증폭되었다. 번역서의 제목을 {위험사회}가 아니라 {위험사회론}으로 적어놓았다. 사소한 것 같아도 이런 실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또, {풍속의 역사}의 저자는 ‘푹스’인데 ‘폭스’로 돼 있다.

주제 발표에 대한 토론을 마저 방청하지 않은 건 토론자로 이나미 씨와 구성애 씨가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와 보수정론지를 넘나들며 칼럼을 써대는 정신과 의사 이나미 씨의 정체(`?`)가 헷갈렸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통해 그가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미나 몇 일 전 KBS ‘뉴스투데이’에서 보여준 문제의 책에 대한 그의 진단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이 충격은 구성애 씨가 보여준 활약에 비하면 약과다. 관련 TV 토론에도 등장한 구씨는 ‘말리는 시누이’를 자임하는 듯했다. 이나미 씨와 구성애 씨는 공히 문제의 책이 “상업(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얘길 들으면 나는 내가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다른 경제구성체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마저 생긴다.

일례로 지난해 문화방송을 통해 방송된 구성애 씨의 ‘아우성’ 프로그램은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건 상업주의와 무관한 현상인가? 나는 지난해 연말의 문화방송의 자체 시상식에서 구씨가 특별상을 받는 걸 보고 약간 당혹스러웠지만, 그 때만해도 구씨의 선구적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80년대 운동권이 거둔 ‘90년대적 성과’의 혁혁한 증좌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구씨는 시청률의 볼모가 되어 보수 기득권층에 투항했다.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구씨가 여전히 브라운관에 출몰하는 점이 그 증거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구씨는 이번 기회를 빌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우성’은 보수다.          

구성애 씨는 문제의 책제목을 아주 못마땅히 여기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나는 생각이 다르다. 참 잘 붙인 제목이다. 포르노그라피를 은유로 이해하면 될 걸 갖고서 구씨는 포르노의 세계를 알기나 하냐고 따진다. 구씨의 이런 태도가 정말 문제다. 구씨는 성담론에 한하여 자신이 절대적 판관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참에 문제의 책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기로 하자. 나는 이 책이 화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서 중간까지는 그런대로 흥미롭게 읽었으나, 정작 화제를 불러모은 대목에 이르러선 흥미가 반감되었다. 야하기로는 {푸슈킨 비밀일기}(작가정신, 1997)가 문제의 책보다 훨씬 심하다.

11월 4일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문제의 책은 서점에 따라 3∼7일 가량 책의 공급이 원할하지 못했다. 출판사가 알아서 책의 출고를 자제한 측면을 무시하기 어려우나, 문제의 책은 그 기간 동안 사실상의 판매금지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많이 파는 것이 목적인 책은 큰 타격을 입는다. 이는 비행기 이륙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초기 붐업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문제의 책을 둘러싼 구설수가 엄청난 홍보효과를 발휘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주일 남짓 책의 유통 흐름이 경색된 것으로 말미암아 책의 판매에 지장을 초래한 점 또한 지적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베스트셀러를 사갈시하는 출판인에게는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배달된 {한겨레 21}(제282호, 1999년 11월 11일자)에 등장한 어느 출판인 역시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형 베스트셀러 중심의 상업주의 출판은, 설혹 그 책의 내용이 정당하고 의미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더라도 출판시장을 크게 왜곡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런 분에게는 또 다른 출판인의 일갈이 기다리고 있다. “한 책의 성공 요소를 대량 광고, 언론의 지원, 사재기, 대형서점과의 유착 등의 흙탕물적인 요소만으로 일축해 버리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그렇게 흙탕물만 보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빨리 출판시장에서 떠나는 편이 낫다.”(한기호, {희망의 출판}, 창해, 1999, 44쪽)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덧붙여 말하면, 책을 통한 상업주의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책을 아예 내지 않거나 내더라도, 김종철 교수처럼 공연히 종이 아까운 짓을 하지 않았냐는 회의를 머리말 등을 빌려 공표해야 할 것이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no=220

2002/06/28 (22:10:27)    IP Address : 147.46.116.76

638    편집부의글 편집부 2002/06/28 999
637    김수환 추기경님께 강준만 2002/06/28 967
636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은 법에 의해서라도 무조건 막아야 한다 오동명 2002/06/28 1186
635    신문 개혁을 바라는 한 독자의 애절한 편지 임명균 2002/06/28 1011
634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기관지인가? 김동민 2002/06/28 960
633    『조선일보』 이규태 논설고문의 빛과 그림자 강준만 2002/06/28 1158
632    박수빈의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고>에 대한 생각 이성은 2002/06/28 1235
631    박수빈의 부모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기홍 2002/06/28 1067
630    H·O·T 죽이기, 그 왜곡된 정서에 관하여 서하니 2002/06/28 1056
629    ‘여성차별철폐 협약’에 대한 최강국님의 논지를 비판하며 고은광순 2002/06/28 1043
628    법조인의 절대지존을 타파하라 서울대 공대생 2002/06/28 1203
627    대중문화와 일상에서 바라본 남녀 관계 조정용 2002/06/28 969
   출│판│동│네│이│야│기 최성일 2002/06/28 1096
625    이도흠의 한국 대중 문화와 미디어 읽기 이도흠 2002/06/28 1247
624    새천년에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들 조흡 2002/06/28 1004
623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강준만 2002/06/28 1146
622    프란시스 후쿠야마‘스타 지식인’의 사회학 강준만 2002/06/28 1156
621    아르헨티나의 21세기와 데 라 루아(De la Rua) 대통령 송기도 2002/06/28 1163
620    어느 고등학생의 외침 허태연 2002/06/28 1346
619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황인용 2002/06/28 1288
618    내안의 고3 강정호 2002/06/28 1148
617    교육계에 불어닥친‘신자유주의’의 허와 실 이기홍 2002/06/28 993
616    TEPS 과연 무엇인가? ② 성기완 2002/06/28 1027
615    ‘오 기자님 힘내세요’ 위택환 2002/06/28 1135
614    김정환씨와 김창은씨의 반론에 답합니다 강준만 2002/06/28 882
613    사고(社告) ‘ 인물자료 이용 회원’ 에 관한 안내 편집부 2002/06/28 1189
612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 오동명 2002/06/28 1073
611    ‘폭로’하는 길이 중앙일보를 영원히 살릴 수 있다 오동명 2002/06/28 1011
610    TEPS 과연 무엇인가? ① 성기완 2002/06/28 1194
609    “똘레랑스” 혹은 “관용”, 그 미덕과 해악 조상식 2002/06/28 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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