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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송병락은 누구인가?

1939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한 송병락은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후,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포스트 닥터 과정을 수료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 Bank of America, 한국과학기술원 등에서 근무한 바 있고, 세계은행, 국제연합, 아세아개발은행 등에서 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으며, 1980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98년부터 서울대 부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그 동안 일반 대중들에게 어렵게만 느껴졌던 경제학의 이론들을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일에 주력해 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논문과 저서들을 집필했는데, 대표적인 저서로는 {마음의 경제학}(박영사), {한국경제론}(박영사), {경제성장과 도시화문제}(하버드대학 출판부), {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옥스포드대학 출판부), {한국은 일본을 추월한다}(일본 리바티사), {한국경제의 굴기}(중국 상무인서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공저, 동아출판사),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공저, 동아출판사), {국제화시대의 세계경제}(공저, 동아출판사), {자본주의의 웃음, 자본주의의 눈물}(김영사), {경제는 시스템이다}(김영사), {기업을 위한 변명}(김영사) 등이 있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SK 그룹의 최종현 회장과는 서로 학자와 경영인으로서 수시로 만나 격의 없는 대화와 토론을 즐겼으며, 그 결과 한국형 경제학의 새로운 방향과 모델을 제시하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상은 99년 8월에 나온 서울대 송병락 교수의 저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디자인하우스)의 저자 소개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요즘 그의 활약이 눈부시다. 물론 그의 활약은 재벌 옹호다. 재벌 옹호의 첨병이라 할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은 재벌들로부터 월급 받아 가면서 재벌을 옹호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에겐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송병락 교수의 경우엔 ‘교수’라는 타이틀에 그것도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에 또 거기다가 ‘서울대 부총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재벌을 옹호하니 일부 사람들에겐 설득력이 매우 높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겠다.

송병락과 공병호는 비겁하다

나는 송병락 교수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된 건 아니다. 조언을 드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좀 답답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어서다. 아니 그 과정에서 비판이 없을 순 없으니 비판을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우선 나의 정체부터 밝히겠다. 나는 순전히 양(量)으로만 따질 경우 송병락 교수와 공병호 소장이 하는 주장의 대부분에 동의한다. 예컨대, 나는 송 교수가 {기업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의식에 갇혀 있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기업이라든가 주식이라든가 하는 것은 생소했다. 우리는 아직도 기업을 잘 모르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커져갔을 뿐이다. 사회적 부를 만드는 기업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IMF를 맞이한 이후 우리 사회는 기업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 그렇게만 하면 국제 경쟁력은 자연히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가 팽배해졌다. 그러나 이건 오해다.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시스템,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의 경제의식 등 모든 것이 연관된 사안이다.

분명히 그런 점이 있다. 나 역시 그간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나는 기업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이다. 아니 기업을 사랑한다. 심지어 ‘개혁의 기업화’를 부르짖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송 교수나 공 소장이 일부 지식인들의 사농공상 의식과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공격하는 것에 박수를 보낼 뜻이 충만하다. 그들은 적어도 그 점에선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자신의 계급적 기반에 근거해 온몸으론 소비 자본주의의 축복을 한껏 즐기면서도 글과 말로는 현실에 비추어 택도 없는 좌파적 주장을 늘어놓는 일부 지식인들의 위선과 기만엔 나 역시 신물이 난 사람이기에 나는 송 교수와 공 소장이 느끼는 ‘분노’와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점이 있다. 그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양(量)이 아닌 질(質)로 따지자면 그들의 주장 대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고 심각한 것이다.

나는 송 교수와 공 소장이 매우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반대편은 좌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국과 같은 고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좌파 공격하기 좀 쉬운가. 그들의 헛점이 좀 많은가. 내가 송 교수와 공 소장을 비겁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좌파에 대한 공격을 주무기 삼아 자신들의 맹목적인 재벌 옹호를 정당화하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우석의 낯뜨거운 송병락 예찬

이 대한민국엔 재벌 대변인들과 좌파만 있는 게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있다. 교수 신분을 망각하고 천박하게 기업을 차릴 만큼 자본주의 근성이 농후하지만, 아니 농후하기 때문에 한국 재벌이 전혀 자본주의적이지 않다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이제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장이 송병락 교수에게 바친 다음과 같은 찬사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송병락 교수만큼 꾸준한 사람도 드물다. 유행을 타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소신과 수준을 지키면서 한국 경제를 연구하고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한국 경제의 실상과 미래는 어떤지, 기업의 역할과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현장감 있는 연구와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송 교수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눈으로 경제를 본다. 지난 30여년 동안에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앞날에 대해서도 비교적 낙관적이다. 지난 성장 과정에서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합점수로 볼 때 플러스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시류에도 안 맞고 대중적 인기를 얻기 어렵다.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요즘의 대세다. 거기에 거슬리는 입장은 인기 없는 소수파에 속하며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선동이다.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과장과 왜곡이 심하다. 송 교수의 입장이 시류에도 안 맞고 대중적 인기를 얻기 어려우며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거라고? 얼른 보면 그런 점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재벌 개혁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은 시류에 맞고 대중적 인기를 얻기 쉬워서 그런다는 건가? 그리고 그 일은 용기가 전혀 필요 없는, 손 안대고 코푸는 일이란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순전히 머리 수로만 따지자면 최우석 소장의 말은 일리가 있다. 재벌 총수나 구멍가게 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하나의 머리를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설마 아니 최 소장이 ‘머리 수 세기 게임’을 하자는 건 아닐 게다. 재벌 총수 한 명은 구멍가게 주인 천 명, 만 명, 아니 십만 명보다 더 힘이 세다. 능력 있다고 소문난 대학 총장치고 재벌 찾아다니며 머리 굽신거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재벌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걸 모른단 말인가?

대학 교수가 재벌 총수들, 아니 계열사 사장, 아니아니 계열사 임원들 하고만 친해도 득 되는 게 하나둘이 아니다. 연구 프로젝트 따내는 것에서부터 학생 취업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수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반면 사립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재벌 비판하면 당장 위에서부터 “학교 죽일 일 있냐?”는 압력이 내려온다. 최 소장은 이런 현실을 전혀 모르는 건가? 앞으로 제발 그런 위험한 선동은 삼가주시기 바란다.

지금 나는 송병락 교수가 재벌 총수들하고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프로젝트 따내고 학생 취업시키는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최 소장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일반론으로 말씀드린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유념해주시기 바란다.

{월간조선}을 감동시킨 {기업을 위한 변명}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양해 말씀을 드려야겠다. 나는 송 교수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98년 9월에 나온 {자본주의의 웃음 자본주의의 눈물}, 99년 7월에 나온 {기업을 위한 변명}, 99년 8월에 나온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이라는 책밖에 읽지 않았다. 송 교수의 모든 책을 다 읽는 것이 예의일 터인데 그러질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은 다 사려고 서점에 주문은 해두었으니 나중에라도 다 읽도록 하겠다.

죄송하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글에 무슨 하자가 있는 건 아니다. 지금 나는 송 교수의 경제학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저널리즘 활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나는 송 교수의 책들이 아주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그 내용에 거의 대부분 동의한다. 순전히 원론 차원에서만 보자면 송 교수의 색깔이나 내 색깔에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원론을 벗어나 구체적인 현실을 보는 문제에 이르러선 길이 완전히 엇갈린다.

송 교수의 저서 {기업을 위한 변명}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는데, 특히 {월간조선}이 감동한 것 같다. {월간조선}은 99년 9월호에 그 책의 부분을 발췌해 요약, 게재했다. <재벌 해체하려다 한국의 국부(`國`富`) 해체할지도…>라는 제목을 달고 제목 밑에 굵은 활자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주범은 재벌이 아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최선이라면 기아는 왜 망했나. 전문화의 길로 나간 기업은 다 망했다. 외국 기업들은 일본점령군사령부(GHQ)가 일본 재벌을 해체하듯 IMF 위기를 맞은 한국 대기업이 해체되기를 바라고 있다.

{월간조선}은 인터뷰까지 곁들였는데, 송 교수에게 “책의 요지중의 하나는 ‘우리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기업집단(또는 재벌)은 경제력을 키우고 선진국의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만을 보면 중소기업 체제로 짜여졌어도 성공적인 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과연 대기업 구조가 나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송 교수의 답은 이랬다.

2차 세계대전 전 일본에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모토 그룹 등의 재벌이 있었다. 이들 재벌은 1백만 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면서 일본 국부를 창출했다. 패전 후 미 군정에 의해 재벌들은 해체되었지만 일본은 자국의 산업 부흥을 위해 다시 기업 그룹들을 부흥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의 경제강국 일본이 있게 되었다. 독일도 기업그룹들의 경쟁 체제를 갖춘 나라다. 대기업을 잘 키우면 경제력은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대기업이라 해도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면 좀 달라진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주식값만 4천억 달러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한국 전체 주식값이 3천억 달러가 안 된다. 우리끼리 ‘대기업’이라고 하는 국내 회사도 세계 수준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것이다.

재벌 비리를 문제 삼으면 나라가 망하나?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송 교수의 지극한 애국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에겐 오히려 그게 과잉이라 문제다. 그는 한국이 세계 제1의 국가가 되기를 열망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걸 국제적 기준으로만 생각한다. 미국과 한국의 나라 규모가 엄청나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한국 전체 주식값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식값과 비교하면서 논리를 전개하는 걸 보라. 그건 엉터리라고 꾸짖을 일이 아니다. 그만큼 그의 애국심이 강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의 강한, 아니 지나친 애국심은 질문의 핵심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엉뚱한 답을 낳곤 한다.
{월간조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 나라 재벌은 정부의 특혜로 성장했다. 특혜를 받기 위해 정치적인 뒷거래도 일삼았다. 비민주적이고 시장논리에 벗어난 성장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기술 개발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열중하고 돈이 되는 것이라면 새우젓 장사에까지 달려들었다. 이런 행태를 보면서 일반 국민들은 재벌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송 교수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국내적인 시각으로 좁혀 볼 게 아니다”라거나 재벌 개혁을 재벌을 없애자는 소리로 과장한 다음 그건 50∼60년대로 돌아가자는 소리라는 게 답이라면 답이다. 그러니까 재벌이 그 어떤 비리를 저지른다 해도 송 교수의 눈엔 그게 보이질 않는 것이다. 모든 건 세계 속에서의 국가의 영광을 위해 이해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인 것이다. 비약 아니냐고?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송 교수의 답을 그대로 인용해드리겠다.

개발시대 외국의 돈을 빌려 성공한 기업은 대기업을 거느린 재벌이 되었다. 실패한 기업도 많았다. 성공은 그저 오지 않는다. 목숨을 건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대기업 또는 재벌은) 중소기업의 시체를 딛고 일어섰다’고도 하는데 국내적인 시각으로 좁혀 볼 게 아니다. 지금은 글로벌 경쟁시대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에 치여 시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꼭 대결구도로 놓고 볼 것도 아니다. 자동차 업체(대기업)의 계열사(중소기업)는 수천 개에 이른다. 대기업이 있음으로 해서 많은 중소기업이 생기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반도체와 자동차는 중소기업이 감당해 낼 수 없는 업종이다. 대규모 투자산업은 대기업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1950∼1960년대 우리 나라에는 중소기업밖에 없었다. 1970년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펴면서 대기업이 생기기 시작했다. 50∼60년대가 잘 살았나, 70년대가 잘 살았나. 재벌을 없애자는 소리는 50∼60년대로 돌아가자는 소리다.

송병락의 위험한 색깔 공세

날이 갈수록 송 교수의 나라 사랑은 강해지기 시작한다. 그 압권은 99년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조찬회에서의 강연이었다. 그는 이 강연에서 김대중 정권의 재벌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고 참석자들은 기분이 후련했다고 한다. 물론 잘한 일이다. 비판할 게 왜 없겠는가. 비판할 건 가혹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비판이 ‘재벌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주장에만 머무른다면?

송 교수는 그간 오랜 비판의 대상이었던 재벌들의 선단식 경영에 대해 그것은 경제 전쟁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일본의 소니는 자회사가 1,174개이며 미쓰이 물산은 자회사가 894개”라고 소개하면서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중기업 소기업을 선단으로 정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문어발 경영’으로 지탄을 받는 다각화경영에 대해서도 “기업 경영의 한 방법일 뿐 그 자체가 매도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강연에서도 국내 상장사의 주식총액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가 총액의 4분의 3에 불과하다는 걸 강조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관계사들의 지원을 받지 않는 한국 기업이 외국 대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 정도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놀랍게도 송 교수는 경제학자답지 않게 색깔 공세까지 취했다. 어느 신문 보도를 보았더니, “그는 또 기업의 잘못을 계속 부각시키고 공론화 하면서 처벌을 부르짖는 사람은 사회주의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지적, 재벌 총수 등의 비리 척결에 나서고 있는 정부를 우회적으로 공격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 소장이 최근 재벌 옹호를 위해 과격한 발언을 일삼았던 게 못마땅했을까? 왜 재벌 대변인 노릇을 독식하려느냐는 반감이 공 소장에게 있었던 걸까? 그의 발언 수위가 너무 지나쳤기에 하는 말이다. {신동아} 99년 11월호가 그의 강연 내용을 요약해 실었는데, 송 교수의 색깔 공세 부분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사회주의 병의 진단법을 알아보자. ‘산업사회의 농토’인 기업을 해체하자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다. 기업의 단점을 계속 부각시키고 공론화 하면서 처벌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사회주의 병에 걸린 사람이다. 기업을 공갈·협박하는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업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단점이 저절로 묻히도록 하는 체제다. …… 후진국 지도자들의 상당수는 사회주의병에 걸린 사람이다. 사회주의 병은 약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항상 사회의 잘못된 부분만을 부각시키고 공론화 하여 처벌하는 데 나라의 힘을 쏟아 부으니, 나라가 잘 될 리 없다.(236∼237쪽)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업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단점이 저절로 묻히도록 하는 체제다”? 법을 어겨도? 송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인데 미국에선 기업이 법을 어겨도 단점을 묻히도록 하고 장점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눈감아 준단 말인가?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발언이란 말인가? 차라리 법이 잘못됐으니 법을 고치자든가, 아니면 법을 어기지 않고선 기업을 할 수 없었으니 정부가 너무 고지식하게 법 집행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든가.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웬 사회주의, 공산주의 타령이란 말인가? 어느 신문 기사는 송 교수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그러나 이같은 송 부총장의 주장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은 서구 선진국 기업과 한국 재벌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주장이라며 반박했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미국의 GE 등 선진국 거대 기업들은 기업의 소유나 지배구조, 경영의 투명성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의 재벌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총수의 독단과 경영책임의 부재, 부당 내부거래 등 고질적 병폐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우리 재벌을 선진국 대기업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왜 송병락은 성의 있는 답을 하지 않는가?

송 교수의 생각이 장하성 교수와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생각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상호 논쟁을 하면 그건 나라를 위해 매우 유익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송 교수는 진지한 논쟁을 할 뜻이 없다. 너무 경제학 대중화 작업을 많이 한 탓인가? 그는 위험한 선동만 할 뿐 성의 있는 반론을 내놓지 않는다. 나는 재벌들의 선단식 경영을 찬성하는 송 교수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송 교수의 주장은 그간 제기된 선단식 경영에 대한 비판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단순하다. 예컨대, 건국대 경제학과 최정표 교수는 송 교수와 마찬가지로 선단식 경영을 지지하는 전국경제인연합 유한수 전무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선단경영이란 재벌의 선단경영입니다. 예컨대 현대그룹은 정씨 가문이 지배하면서 모든 의사결정을 한다는 말이에요. 백화점·병원·골프장·증권·건설·자동차·중공업 등 안 하는 것이 없이 다 하는 선단식 경영의 문제점을 말하는 겁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기업 단위나 관련 산업에서 영역을 넓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깁니다. 우리 재벌의 선단식 경영은 족벌 경영과 직결되는 문제예요. 법적으로는 기업들이 독립법인인데, 총수가 법적인 직책을 갖지 않은 채 경영자인 대표이사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놓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대표이사가 최고 경영자입니다. 따라서 족벌 체제를 없애면 선단식 경영은 자동적으로 없어지고, 개별 기업단위의 경영체제로 간다는 겁니다. …… 선단식 경영은 싹쓸이 경영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의 성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에서는 앞으로 재벌만 살아남게 돼요. 그건 재벌에 경쟁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경제구조 자체가 재벌만 살아남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송 교수는 이런 지적에 대해 성의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색깔 공세로 대응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재벌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반감만 해도 그렇다. 그게 무조건 잘못됐다고만 그러지 말고 명색이 (재벌 총수가 아닌) 학자라면 그런 반감의 정당한 근거를 인정한 다음 그건 나라 전체를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질 않으니 재벌들이 앞으론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따위의 건설적인 제안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송 교수는 재벌들에 대해선 일방적인 찬양만 해대면서 재벌 욕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식으로 선동만 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송병락의 ‘세계 1등’ 병(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자서전에서 “재벌이 ‘죄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사실 성실하게 노력한 기업인들로선 사회 일각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하는 점도 있을 게다. 서울경제신문 산업부 박원배 기자는 기업인들의 그런 항변을 소개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40여 년의 국내 재벌사에서 그들은 ‘문어발’을 가진 탐욕스런 존재로, 환경 적응에 실패해 도태할 수밖에 없는 ‘공룡’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시각은 ‘다이어트’를 통해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다. 실제로 대부분의 재벌, 그들은 영역(사업 내용)의 구분 없이 덩치를 키우는 게 바로 ‘능력’이었고, 성공적인 경영자의 자질로 평가됐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성공 자체가 실패를 이끄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카루스 패러독스’의 현실을 절감하고 있다. 확장에서 정경유착은 필수였다. 대부분의 재벌은 마음만 먹으면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끌어들일 수 있었다. 여기에 정치권의 ‘힘’이 작용했고, 그 대가로 막대한 로비 자금이 정치 자금이란 명목으로 전달됐다. 이를 위해 재벌의 비자금은 필수적이었다. 그들은 시장을 중시했지만 ‘시장의 논리’는 무시했다. 공정한 룰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 승부하는 것보다 특혜를 받아 독점을 향유하는 길을 더 선호했다.


자, 그렇다면 송 교수가 할 일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법한 위와 같은 진단에 대해 나름대로 성의 있는 반론을 펴는 일일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업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단점이 저절로 묻히도록 하는 체제”라고 주장하면서, 그러니까 단점에 대해선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말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한국의 석학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학벌과 경력을 가진 송 교수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앞서 그의 지극한 애국심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오히려 그게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 속에서의 국가의 영광을 위해선 국가 내부의 문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사소한 것이며 그걸 자꾸 지적하는 건 나라 망치는 길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뭐라고 해야 하나? 국가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지극하다는 말론 모자라다. 분명히 지나치다. 그의 애국심이 지나치다는 말이다. 그는 한국이 세계 제1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책제목까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이라고 달지 않았나. 그걸 마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거의 대부분 그리 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할 망정 그걸 현실적인 목표로 정해놓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시각을 조율하진 않는다. 그러나 송 교수의 경우엔 그 목표에 따라 자신을 완전히 개조해버린 것 같다. 거의 병(`病`)의 수준이다. 놀랍게도 내가 읽은 그의 책 3권은 모두 ‘세계 1등’을 강조하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자본주의의 웃음 자본주의의 눈물}의 경우 “이렇게 하면 다음 세기는 기필코 한국인의 세기가 될 것이요, 한국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선진국으로 건설될 것이다”이다.

{기업을 위한 변명}의 경우 “국민 모두 이 전략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여 제품, 조직 및 하는 일을 모두 혁신하여 다음 세기를 한국인의 세기로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해 본다”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의 경우 “한국도 경제 시스템을 잘만 만들면 미국이나 일본을 1인당 소득 면에서 몇 배나 앞서는 떼부자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이다.

너의 선진국 의존은 사대주의, 나의 선진국 의존은 애국주의

감동적인 점이 없지 않지만, 어째 좀 꺼림칙한 생각도 든다. 송 교수가 그 목표를 위해 재벌들이 그 어떤 못된 짓을 저지르더라도 세계 1등을 위해 그건 눈감아줘야 한다고 호통칠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세계 1등을 해야 한다는 송 교수의 집념은 지나친 외국 의존도로 나타난다. 그는 재벌 개혁에 대해선 외국 음모론으로 맞서며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내지만, 재벌 옹호를 위해선 무조건 외국 사례를 국내에 대입시키는 적나라한 이중성을 드러낸다. 너의 선진국 의존은 사대주의지만, 나의 선진국 의존은 애국주의라는 말인가?

송 교수의 지나친 외국 의존은 경제학자 치고는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그가 의존하는 외국은 소위 선진국들이다. 그의 책엔 자신이 얼마나 선진국 연구를 많이 하는가 하는 걸 강조하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송 교수는 {자본주의의 웃음 자본주의의 눈물}의 ‘책머리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한국인에게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선진국을 건설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믿고,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것을 위하여 세계의 많은 초일류 국가, 초일류기업들을 방문하는 한편, 세계적인 석학들도 여러 사람 만난 바 있다.”

{기업을 위한 변명}의 ‘책머리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기업그룹 문제에 관하여 좋은 도움말을 주신 시카고대의 노벨상 수상자들인 게리 베커 교수와 로버트 포겔 교수, 에프엠 셔러 하버드대 교수, 레스터 써로우 MIT대 교수께 감사드린다. 이들과의 대화 일부를 이 책에 포함시켰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의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기업의 국제경쟁력 연구의 최고 기관인 스위스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와 하버드대 경영대학 등을 찾아 다니면서 기업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에즈라 보겔(Ezra Vogel) 하버드대 교수와 같이 「한국기업의 정신」을, 그리고 조지 로지(George Lodge)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와는 「한국의 발전과 서양 경제학」이라는 글도 쓰게 되었다.”

송병락은 대학 1학년생인가?

이번엔 송 교수가 {기업을 위한 변명}에 포함시켰다는 선진국 석학들의 ‘도움말’을 살펴보자. 나는 그 부분을 읽다가 낯이 뜨거워졌다. 송 교수와 선진국 석학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건 양국의 석학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었다. 선진국 석학과 한국 대학 1학년생과의 대화라면 모를까. 이러한 표현이 지나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기업을 위한 변명}에 실린 ‘게리 베커 시카고대 노벨경제학상 수상 교수’(1996년 10월 30일)와의 대화를 살펴 보자.

송병락 : 한국 재벌의 장단점에 대하여 평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베병커 : 글쎄요. 재벌기업들은 아주 좋은 기업들이었습니다.
잘 경영되었는데, 주로 25년 또는 30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섬유업에 종사하던 아주 작은 기업인 SK가 재벌이 된 걸 압니다. 대우나 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기업들은 모두 재능이 뛰어난 기업가들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국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왔습니다. 제 생각에 이들은 한국 발전에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재벌에 대하여 다소 적대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적대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재벌들이 한국 발전에 아주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송병락 : 저도 동의하려고 합니다만, 어떤 언론인들은 재벌에 대하여 혹평을 합니다.

베병커 : 저도 압니다. 어느 정도의 비판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벌들이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경영도 잘된 회사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베커가 한국 재벌에 대해 무얼 얼마나 안다고 그에게 한국 재벌의 장단점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한국의 일부 언론인들이 재벌에 대해 혹평을 하는 걸 왜 베커에게 하소연하는가? 그것 역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한국 언론의 대부분이 재벌에게 먹힌 이야기는 왜 하지 않는가?

이번엔 ‘로버트 포겔 시카고대 노벨경제학상 수상 교수’(1996년 10월 29일)와의 대화를 살펴 보자. 포겔은 베커에 비해 만만치 않다. 무조건 송 교수의 장단을 맞춰주진 않았다는 말이다. 대학 1학년생 같은 송 교수의 겸손한, 너무도 겸손한 질문들이 낯뜨겁다.

송병락 : 한국은 재벌이라고 하는 대기업 그룹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벌은 경제 성장의 엔진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주 비판적입니다. 그 장단점에 대하여 평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중략)

송병락 : 어떤 공무원들은 재벌은 반드시 정부에 의해서 해체되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포병겔 : 그런 주장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재벌은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 문제입니다. 그리고 재벌 문제에서 정치 문제를 떼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재벌이 비능률적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송병락 : 저 자신은 기업 그룹에 대하여 호의적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금융 제도가 취약하고 정부 규제도 과다하고 노동 시장도 잘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본과 인적자원을 동원하는 데 있어서 재벌과 같은 기업 조직이 아주 효율적일지 모릅니다.  

재벌은 시장 경제에서 시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지요?

포병겔 : 글쎄요. 제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재벌들은 차이가 있을텐데 그 차이를 잘 모르고, 또 모두가 다 잘 경영되는지, 그리고 재벌을 지속시키는 것이 강한 가족관계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서는 시장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서 콩글로머릿이 형성되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

송병락 : 이론적인 질문입니다만, 한국의 재벌 내에는 기업도 있고 산업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벌을 ‘기업 및 산업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포병겔 : 그건 확실히 저에게는 이치에 맞는 말 같습니다.

송병락 : 한국 재벌 내에는 기업도 많고 산업도 많아서 서로 경쟁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재벌은 경쟁을 촉진하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것 같습니다만.

포병겔 : 글쎄요. 미국의 콩글로머릿들은 비록 한국 재벌처럼 가족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는 않으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재벌과 비슷합니다. 이런 콩글로머릿에는 항상 세개의 요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첫째는 규모의 경제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본소요량이 아주 많다는 것이며, 그리고 셋째는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포겔은 송 교수의 ‘유도 질문’에 대해 계속 ‘글쎄요’를 연발한다. 송 교수는 왜 자꾸 한국 재벌의 장단점을 외국 지식인에게 묻는 걸까? 외국 지식인들이 그 질문을 받기 이전에 한국 재벌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 거라고 믿는 걸까?

왜 자꾸 ‘맞습니까?’라고 묻나?

‘에프 엔 셔러 하버드대 교수, 전 미국 공정거래위원회 수석경제학자’(1996년 10월 11일)와의 대화도 낯뜨겁긴 마찬가지다. 한국 제1의 대학의 부총장이라는 분이 한국 재벌들의 행태에 대해 외국 지식인들의 답을 보채고 별것도 아닌 내용에 대해 ‘맞습니까?’라고 물으며 자신의 지식을 확인 받고자 하는 모습은 보기에 애처롭기까지 하다.

송병락 : 한국에서는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 집단들이 많은 분야에 다각화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중에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싫어하는 이유는 기술도 없이 많은 사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셔러 : 그러나 한국의 재벌들은 신기술 습득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비상할 정도로 잘하고 있습니다.

송병락 : 선진국 기업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다각화가 좋은지 또는 나쁜지 평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셔러 : 글쎄요. 한국은 아주 잘해 왔습니다. 제가 볼 때는 한국 기업들이 선진국 기업들을 따라가는 데 아주 영리한 전략을 추구해왔고 뛰어난 기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송병락 : 유럽에서 14개 국어로 번역된 어떤 경영학 책은 기업의 성장 방법으로 유기체적 성장, 다각화, M&A(인수합병) 및 전략적 제휴의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셔러 : 맞습니다.

송병락 : 그런데 기업은 어떤 방법에 따라서 성장해야 할까요? 셔러 : 글쎄요, 그 기업이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

송병락 : 제가 공정거래위원으로 있을 때 어떤 언론인은 한국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막도록 해달라고 저에게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셔러 : 어떤 법적인 근거가 있기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까?

송병락 : 물론 없지요. 그래서 저는 다각화는 기업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대답했습니다.

(중략)

송병락 : 선진국 중에서 한국의 재벌과 같은 기업 집단을 가진 나라는 일본과 독일뿐이라는 것이 맞습니까?

(중략)

송병락 : 미국에도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같이 대기업들로 구성된 단체 같은 것이 있습니까?

(중략)

송병락 : 한국인들 중에는 기업 그룹의 총수를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전문경영인을 앉혀야 된다고 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은 소유자 경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셔러 : 그것은 진리입니다. 저도 전문경영인에 의한 경영이 좋은가 소유자 경영이 좋은가에 관하여 연구를 한 바 있는데, 큰 차이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장점과 약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점에 관한 한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된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셔러의 답도 헷갈린다. “그것은 진리입니다”라고 답해놓곤 “난 모르겠다”고 나자빠지지 않는가. 그리고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분이 미국에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같은 단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걸 묻는 모습도 보기에 영 씁쓸하다.

‘레스터 써로우 MIT 경영대 교수, {제로섬사회} {자본주의의 미래} 저자’(1996년 11월 5일)와의 대담은 너무 짧아 인용할 것도 없지만, 송 교수의 질문만큼은 여기에 인용하는 게 좋겠다. 내가 아무리 경제학을 모르는 문외한이라지만,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이 질문의 수준은 너무 낮다. 선진국 지식인들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한국의 내로라 하는 지식인이 던진 질문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그 질문은 이랬다.

산업조직에 관한 문제입니다만, 미국의 미시경제학 교과서들은 산업 안에 기업들이 있고 기업들은 산업 안에서 경쟁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과 일본 종합상사의 경우에는 그 안에 기업도 있고 산업도 있지 않습니까?

지나친 애국심을 자제해달라

송 교수는 {기업을 위한 변명}의 <제 14 강의 : 해외 석학들은 이렇게 말한다>에서 10쪽에 걸쳐 ‘해외 석학’들의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이야기를 실어놓곤 “약 20명이 넘는 석학들과 대담했는데, 그들의 견해도 저자와 비슷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주장하는 재벌 옹호론은 ‘해외 석학’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거라는 걸 과시하기 위한 것 같다. 그것 참 이상하다. 재벌 개혁을 비판할 때엔 사대주의를 버리라고 호통을 치는 분이 재벌 옹호를 위해선 사대주의, 그것도 아주 수준이 낮은 사대주의를 구사하시니 말이다.

나는 송 교수에게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앞으로 제발 알맹이 있는 말씀을 해주시기 바란다. 재벌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색깔공세로 대응하지 마시고 성실하게 반론을 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기업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단점이 저절로 묻히도록 하는 체제다”는 사상을 너무 남용하지 마시기 바란다. 송 교수가 응용하는 방식에 따르자면, 그 어떤 부정부패도 저절로 묻히게끔 내버려둬야지 그걸 파헤치는 건 나라 망치는 짓이 되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접근하는 길이 되고 만다.

생각해 보라. 경제보다 더 중요한 건 국가 안보다. 국가 안보를 최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군(`軍`)의 경우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건 나라 망치는 일이다. 송 교수의 논법에 따르자면 말이다. 정치는 안 중요한가? 정치판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것 역시 나라 망치는 길이다. 왜?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장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단점이 저절로 묻히도록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다. 송 교수의 말씀이다.

송 교수께서는 제발 그 지극한, 아니 그 지나친 애국심을 버려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세계 제 1등의 목표도 좀 수정해주시기 바란다. 꿈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꿈이 크면 희생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진다. 송 교수가 세계 1등을 위해 한국 국민에게 요구하는 희생은 너무 크다. 재벌들이 저지르는 모든 부정부패도 국제 경쟁에서의 1등을 위해 모른 척하자니 도대체 무엇을 위한 1등인지 헷갈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경제(經濟)의 뜻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것도 알아두시기 바란다.

대화는 불가능한가?

비록 몸담고 있는 대학과 전공은 다르다고 하지만, 학계의 대선배이신 송병락 교수님께 매우 무례한 어법과 표현으로 말씀드린 것에 대해 내 마음도 편치 않다. 아니 마음 한구석 괴롭기까지 하다. 나에게 이득 될 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왜 이래야 하는 지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 주장에 동의하다가도 내 어법과 표현을 보고 나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질 그런 분들도 있을 게다. 그걸 잘 아는 인간이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내 사연을 들으시면 조금은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경제정의(經濟正義)라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경제와 정의가 늘 상호 친화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정의감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도 현실적인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의를 너무 앞세운 경제적 주장에 대해선 다소 불길한 느낌을 갖는다. 내가 경제를 잘 모르는 탓이긴 하지만, 나는 재벌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좀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

나는 재벌을 위한 변명을 하는 분들이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아무리 경제를 몰라도 그들의 대화 또는 토론을 듣고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할 능력은 있다. 아마 이 나라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절대 다수일 것이다.

앞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원론’만을 놓고 보자면 나는 송병락 교수나 공병호 소장의 주장에 대부분 공감한다. 그런데 이 분들은 진지한 대화를 할 뜻이 없는 것 같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지나치게 과격하다. 이 분들은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전혀 그렇지 않다.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그 어떤 학자도 재벌을 옹호하는 분들을 가리켜 ‘파시스트’라거나 ‘재벌의 앞잡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그런데 송 교수나 공 소장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하는 식의 색깔공세를 취한다. 그렇게 나오면 대화와 토론은 불가능하다. 치고 박고 싸우는 힘 겨루기밖에 없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나의 거친 말투는 내 분노의 표현이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분노하는 건 그만큼 송 교수나 공 소장을 선의로 해석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이 분들이 진지하고 성실하고 겸손하게 대화와 토론에 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티켓을 먼저 어긴 쪽은 이 분들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정치적 매카시즘 못지 않게 경제적 매카시즘에 분노한다. 누가 조금만 경제정의를 부르짖으면 그 사람의 색깔을 의심하는 발언으로 누르려고 드는 경제적 매카시즘에 대해선 분노를 터뜨리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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