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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송기도
제 목 아르헨티나의 21세기와 데 라 루아(De la Rua) 대통령
‘절묘한’ 국민의 뜻

지난 10월 24일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연합’(Alianza) 후보인 데 라 루아(Francisco De la Rua)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은 과반수인 48.5%를 득표하여 38.1%를 얻은 집권 여당인 ‘정의당’(Partido Justicialista)의 두알데(Eduardo Duhalde)후보를 예상대로 손쉽게 물리치고 1차 투표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메넴(Carlos Menem) 대통령이 집권한지 10년 만에 여야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12월 10일 데 라 루아 당선자는 21세기 아르헨티나를 이끌어 갈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21세기는 새로운 ‘변화’로 시작될 것이다.

이번 선거는 최근 아르헨티나 정치사가 그래왔듯이 전통적 두 정당의 대결이었다. 즉 ‘급진시민동맹’(Unio´n Civica Radical)과 Frepaso의 ‘연합’ 후보인 데 라 루아 후보와 지난 10년 동안 집권해온 ‘페론당’의 후보로 철저한 페론주의자인 전 부통령이자 현 아르헨티나 주지사인 두알데 후보간의 경쟁이었던 것이다. 그 경쟁에 수천 퍼센트가 넘는 인플레를 진정시키며 아르헨티나 경제를 회복시킨 주역이었던 까발요(Domingo Cavallo) 전 경제장관이 ‘공화 행동당’(Accio´n por la Repu´blica)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이는 처음부터 계산 밖이었다. 어쨌든 선거 결과는 야당 ‘연합’의 손쉬운 승리와 10.1%의 득표를 올린 제 3의 후보인 까발요의 선전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의 금세기 마지막 선거였던 이번 대통령 선거는 4년 임기의 하원 257명 중 1/2인 130명을, 9년 임기의 상원 72명 중 1/3을, 그리고 24개 주(`州`) 중 6개 주지사를 선출하는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었다. 의회 선거는 야당 ‘연합’이 19석을 추가해 원내 제 1당이 됐으며, ‘공화 행동당’은 12석을 얻어 원내 교두보를 확보하며 제 3의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El Pais, 1999년 10월 26일)

페론당은 18석의 의석을 빼앗겼으나 주지사 선거에서는 승리하였다. 특히 인구 1천3백8십만 명으로 아르헨티나 전체 인구의 37%를 차지하고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지사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더불어 주요 관심사였다. 결과는 페론당의 승리였다. ‘페론당’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루카프(Carlos Ruckauf) 현 부통령은 야당 ‘연합’의 메이히데 후보에게 패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48.3%를 득표해 41.4%를 얻은 메이히데에게 손쉽게 승리하였다.

대통령에는 야당 ‘연합’의 데 라 루아가 당선되고, 아르헨티나의 제일 중요한 지역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주는 여당인 페론당이 당선된 것이다. 기막힌 여야간 정치적 균형이 아닐 수 없다. 투표를 통해 나타난 국민들의 뜻은 주요 두 정치 세력인 ‘연합’과 페론당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협력할 것을, 즉 정치적인 ‘동거’(cohabitacion)를 하도록 한 것이었다고 데 라 루아는 강조했다.(El Pais, 1999년 10월 26일)

‘세계 3대 불가사의’와 ‘에비타’

경쾌한 발놀림과 군대식 훈련처럼 끊고 맺음이 분명한 몸동작으로 추는 탱고 춤의 원산지, 축구 신동 마라도나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 지구상에서 우리 나라와 정 반대쪽에 위치한 나라. 다시 말해 우리 나라와 계절이 반대고 또 낮과 밤이 다른 나라, 그래서 우리가 서 있으면 우리와 발을 서로 맞대고 거꾸로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라. 1940년대 세계에서 6대 부국에 들만큼 잘 살았지만, 지금은 제 3세계 국가로 전락해 정치·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 바로 아르헨티나다.

많은 사람들이 남미하면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이 세 나라의 첫글자를 따서 남미의 ABC 국가라고 한다)를 생각한다. 그만큼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중요한 국가이고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나라이다. 또한 남미의 선진국, 아니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히스패닉 아메리카의 선두 주자로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과 더불어 남미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국가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한반도의 12.4배 면적인 2,766,889 ㎢로 세계에서 8번째로 큰 나라이며 국토의 60% 이상이 팜파스로 이루어진 자원이 풍부한 국가이다. 인구는 3천6백만 명(1998년)인데 전체 인구의 98%(이탈리아와 스페인계 중심)가 백인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백인이 많은 국가이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90%가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데 어떤 의미에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남부 유럽의 한 국가를 아메리카 대륙에 옮겨놓은 것과 같다고 하겠다.

사실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지하자원, 끝없이 펼쳐진 농지와 교육 수준 높은 백인만으로 이루어진 아르헨티나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생활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아도 못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르헨티나가 못사는 것은 ‘세계 3대 불가사의’중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어쨌든 아르헨티나의 경제 파탄을 가져왔던 페론과 부인인 에바 페론(Eva Pero´n)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에비타}가 만들어졌다. 사실 마돈나 주연의 영화 {에비타}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당시의 아르헨티나 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비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영화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는 홍보가 대단했는데 막상 극장에서 상영되자 별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에비타}의 주제곡인 Don't Cry For Me Argentina와 마돈나와 관련된 주변의 잡다한 얘기들만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메넴의 경제 정책의 성공과 페론주의의 변질

1983년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 시민정부를 수립하며 중남미 국가들의 민주화 과정을 선도한 알폰신 정부는 민주적 제도의 정착 등 정치적 측면에서의 개혁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경제 개혁에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집권 말기인 1989년에는 인플레율이 4,000%를 넘어 알폰신은 정권을 5개월이나 앞서 넘겨주어야 했다. 당시 국민들은 은행 창구 앞에 오랫동안 줄을 서야 했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아르헨티나의 화폐인 뻬소(peso)를 미국 달러로 바꿔놓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은 사람들이 ‘경제 내전’이라고 기억하고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시사저널}, 1997년 10월 23일) 우스갯소리로 가게에서 제일 먼저 사는 사람과 제일 뒤에 사는 사람의 빵 가격에 차이가 있을 정도로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살인적인 인플레였다.  

이 같은 경제 위기 속에서 치루어진 1989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페론당’의 메넴 후보는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6년 단임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개월 앞서 정권을 인수한 메넴 정부는 국영기업의 민영화, 관세율 인하, 시장 개방 등 자유주의 정책을 전격적으로 시행하였다. 사실 이러한 자유주의 정책은 페론주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전기, 통신, 석유, 철도, 은행 등에서 실시된 민영화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현대적으로 탈바꿈시켰다.

메넴 정부는 91년에는 ‘1페소 1달러’의 고정환율 신경제 정책을 시행해 수천 퍼센트에 달하던 천문학적 인플레를 진정시켰다. 그 결과 90년에는 1,344%였던 인플레율이, 1년 만인 91년에는 84%로 줄었으며, 95년에는 1.7%, 그리고 96년에는 0.1%로 물가가 안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생산성은 향상되고 경제는 성장하였지만 오히려 부의 분배는 더욱 악화되고 실업율은 15%가 넘었다.

결론적으로 한때 중남미 최고의 복지국가라고 불려지던 아르헨티나는 메넴 정권이 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GNP는 50% 가까이 증가했지만, 의료·교육 분야를 비롯한 사회보장 제도는 크게 퇴보하였다. 은행 창구 앞에 늘어섰던 줄은 사라졌지만 아르헨티나는 이제 국회의사당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성을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시사저널}, 1997년 10월 23일)

이런 상황에서 경제 업적을 바탕으로 메넴 대통령은 대통령 중임을 위한 개헌에 착수하여 1994년 8월 여야 합의로 헌법을 개정하였다. 이로써 아르헨티나의 6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메넴 대통령은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95년 5월 선거에서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되었다.

그러나 메넴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처음과 다르게 일관성이 결여됨으로서 경기 상황은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국내 실업률은 14% 가까이 치솟고 경제 위기는 더욱 악화돼 ‘페론당’의 지지율은 하락하였다. 그러나 메넴 대통령은 경제 안정에 대한 자신의 치적을 높이 평가한 나머지, 헌법에 중임으로 제한된 대통령직을 95년 헌법 개정 당시의 취임을 제 1기로 간주하여 99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려 하였다. 결국 이는 ‘페론당’ 내에 분열을 가져오고 말았다.

<표 1> 대통령 선거 정당 득표율(1983∼1999년), %
www.//habitantes.elsitio.com/cacastro/legislativas.htm

‘준비된’ 대통령

데 라 루아는 “위대한 변화”를 선거 구호로 내세우고, “나는 이 나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또한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며, “수년 전부터 나는 보다 나은 아르헨티나를 건설하기 위해 준비하여 왔다”고 자신이 충분히 준비된 대통령임을 강조하였다.

데 라 루아는 1937년 9월 15일 꼬르도바(Cordoba)에서 안토니오 데 라 루아 박사와 엘레오노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연합’(Alianza)의 대통령 후보 홍보(www.delarua.com.ar/biog.htm) 자료에 의하면 데 라 루아는 조류 기르기와 원예, 그리고 자연에 관심이 많으며, 이들과 관련 있는 책을 읽거나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독서를 즐기며, 친구들과 정치적이 아닌 일상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선거 홍보자료에 손녀딸인 솔(스페인어로 ‘해’란 뜻)과 함께 놀고 있는 사진이 2장이나 포함되어 있는 데서 드러나듯 그는 무척이나 가정적인 인물이다.

어릴 적의 데 라 루아는 요즘 젊은이들이 잘 쓰는 표현으로 ‘범생이’였다. 고등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했고, 21살에 꼬르도바 법대를 우등(금상 수상)으로 졸업했으며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같은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6살이던 1963년에 아르뚜로 정부의 내무부 관리로 특채되었다. 이렇게 빠른 ‘출세’ 때문에 데 라 루아는 직장에서 “애송이”(Chupet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El Mundo, 1999년 10월 24일) 그는 33살에 장군의 딸인 이네스(Ines Pertine)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가장 귀족적이고 웅장한 삘라 교회에서 결혼했는데 현재 세 자녀와 두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

데 라 루아는 대학 시절인 18살 때부터 사회민주 성향의 ‘급진당’에 가입했으며, 197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1976년 군부 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그는 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 기간 중 그는 미국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부에노스 아이레스 형사법 연구소’의 형사법 중남미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데 라 루아는 1983년엔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알폰신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으나, 그 해 10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62%의 득표로 상원의원에 재선되어 상원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1992년엔 상원의원에 재선되었다.

루아는 96년 6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첫 민선 시장에 당선돼 활동하면서 ‘정직한 시장’이라는 명성을 얻었다.(El Mundo, 1999년 10월 24일) 그는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6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부정부패 척결 기구를 설치하는 등 부정부패와 연루된 공무원들을 파면하고 투명한 시정을 펼치는 등 탁월한 행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는 데 라 루아의 정치적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그는 97년 야당 ‘연합’ 경선에서, 재야 운동단체인 ‘5월 광장 어머니회’의 회장 출신으로 Frepaso 후보인 메이히데 의원과의 경쟁에서 예상을 깨고 64%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리고 그는 2년 동안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데 라 루아는 선거가 끝나고 “이제 위대한 조국을 다시 건설할 시간이다”라고 선언하였으며, 모든 정치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부패를 척결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그는 공식 발표를 통해 모든 정당 및 지방 정부들과 함께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모임을 소집하였다.(Clarin, 1999년 10월 26일)

아르헨티나에서는 데 라 루아의 당선으로 대통령은 국가의 강력한 정치 지도자여야 한다는 등식이 깨졌다. 이번 선거에 여야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데 라 루아나 두알데는 자당 내에서조차도 절대적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아니다.(El Pais, 1999년 10월 25일) 그들은 과거 알폰신이나 메넴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카리스마가 전혀 없는 정치인이다. 메넴 대통령이 현란한 수사와 쇼맨십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적 정치인이라면, 데 라 루아는 권위적이지도 않고 따분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재미없는 성격의 소유자다.({한겨레}, 1999년 10월 26일) 그는 가정적인 남자이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낙태를 반대하며, 책 중에서 성경을 제일 좋아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투표 후 곧바로 성당으로 가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미사에 참석했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메넴 대통령의 ‘My Way’와 배신당한 두알데

아르헨티나 국기를 배경으로 메넴 현 대통령의 활짝 웃음 띤 얼굴과 “2003”이라는 큼지막한 숫자가 쓰여진 벽보가 선거 다음날인 10월 25일 새벽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곳곳에 붙어있었다. 물론 전날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데 라 루아 후보의 압승이 확실해졌지만, 공식적으로는 선거 투표 집계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메넴 대통령은 4년 후에 있을 선거 운동을 이미 시작했던 것이다.  

메넴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매우 만족해했다. 두알데 후보가 압도적 차이로 선거에서 패배했는데도 메넴은 이를 기뻐한 것이다. 선거 다음날 편한 마음으로 낮잠(siesta)을 즐기고 일어난 메넴 대통령은 축구 선수인 마라도나(Diego Maradona)와 일부 각료들, 그리고 측근들이 모인 가운데 딸과 함께 대통령 관저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축하하는 삼페인을 터트리며 자축하였다.

메넴 대통령은 “이제 자정이 되면 내가 다시 당총재가 될 것이야”라고 측근들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당선자인 데 라 루아 후보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필요한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El Mundo, 1999년10월 26일)  

오후 10시 30분에 마라도나 등 측근들과 함께 데 라 루아 대통령 당선자의 대 국민연설을 지켜보는 것으로 파티는 끝났다. 이날 파티에 참석한 인사들은 메넴 대통령이 너무 기쁜 나머지 약간 격앙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후보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뽑기 위해 투표장에 들어서는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묻자, “다음 번에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미소지으며 대답했다.(El Mundo, 1999년 10월 26일)

두알데 후보는 최근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 지도층의 잇따른 부정부패 추문 등으로 인한 집권 여당의 전반적인 인기 추락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두알데 후보는 페론당 내에서조차 메넴 대통령의 3선 출마를 추진하던 세력과 충돌해 선거 기간 중 당의 완전한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메넴은 6월까지도 대선 출마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결국 페론당 내 대통령 후보에 대한 메넴과 두알데의 투쟁과 10년 동안의 메넴의 통치 실적은 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두알데에게는 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메넴 대통령의 3선 출마를 놓고 벌어진 당내 갈등으로 제대로 선거 운동을 할 수 없었던 두알데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선거의 최대 피해자이다. 메넴 대통령과의 갈등의 정도는 두알데 후보가 “메넴이 선거 마지막 유세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지나치게 우리에게 피해를 주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El Pais, 1999년 10월 23일) 이는 연초의 여론조사에서 데 라 루아 야당 연합후보와 비슷한 지지를 보였던 두알데 후보의 지지가 선거 운동 후반으로 갈수록 루아와 격차가 벌어진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력지인 끌라린(Clarin)지의 5월 30일 여론조사까지도 데 라 루아 후보가 39.9%, 두알데 후보는 38.3%로 두 사람의 지지율은 비슷하였다. 그러나 한 달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데 라 루아 후보는 비슷한 지지를 보였는데 반해 두알데 후보는 29%로 10%나 하락하였다. 7월 24일 나시온(Nacio´n)지의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간 13%나 차이가 났다. 이 같은 격차는 선거일까지 좁혀지지 않았다.  

두알데 후보는 노동법 변호사 출신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으며, 1983년 대통령 선거에서 페론당이 패하자 당내 개혁 선봉에 섰다. 1989년 메넴과 함께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1991년 사임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95년에 주지사에 재선되었다.

두알데는 제 ‘2의 에비타’라고 불리는 일다(Hilda Chiche Gonzalez)의원과의 사이에 다섯 자녀를 두고 있으며, 한 딸의 이름을 에비타(Eva Peron)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이름인 에바(Maria Eva)라고 지었다. 그는 페론당이 사회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순수하고 철저한 페론주의자이다.(El Pais, 1999년 10월 23일)

이번 선거에 또다시 증명된(?) 믿기 어려운 징크스가 있다. 그것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지사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현직에 있으면서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인구의 37%를 차지하고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지사를 맡고 있으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지금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지사이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70년 전 단 한 명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두알데 후보가 낙선함으로써 다시 한번 이를 확인시킨 셈이다. 우리 나라에 비교해 설명해 보자.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동시에 맡고 있는 정치인이 현직에 있으면서 대통령에 출마하면 꼭 떨어진다. 이게 말이 쉬워서 그렇지 오히려 떨어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21세기와 아르헨티나

데 라 루아 당선자는 “도덕적 변화”를 추구하고, ‘합의의 정치’를 강조하였다. 선거 결과는 48%의 득표로 야당 연합 후보인 데 라 루아 후보가 압도적 국민의 지지를 받아 승리했지만 실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앞으로의 정국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메넴에 의해 임명된 대법관들은 계속 그 직을 수행할 것이며, 상원은 적어도 2001년까지는 페론당이 지배하게 되어 있다. 하원은 257석 가운데 야당 연합이 124석을 차지하였지만, 페론당은 97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24명의 주지사 중 18명이 페론주의자들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오는 12월 10일 취임하는 데 라 루아 당선자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야당과의 ‘합의’를 찾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당선을 확인한 데 라 루아는 첫인사말에서 “대통령 당선자로서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또 나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투표가 보여준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아르헨티나인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야당과 정치적 대화와 협상에 임할 것을 강조하였다.(El Pais, 1999년 10월 15일)

데 라 루아는 “위대한 변화”(El gran cambio)라는 정책 프로그램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증진시키는 것을 국제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설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는 현 메넴의 경제 정책이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그는 부패를 청산하고 구조 조정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교육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대외정책은 현 기조가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이다.(El Pais, 1999년 10월 25일)

다른 한편으로는 데 라 루아의 당선으로 아르헨티나의 정치문화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스정치의 종말’로 1인 지배의 정치 구조가 타파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83년 시민정부가 들어선 후 계속된 알폰신과 메넴 같은 카리스마적 정치가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no=225

2002/06/28 (22:06:52)    IP Address : 147.46.116.76

638    편집부의글 편집부 2002/06/28 998
637    김수환 추기경님께 강준만 2002/06/28 966
636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은 법에 의해서라도 무조건 막아야 한다 오동명 2002/06/28 1185
635    신문 개혁을 바라는 한 독자의 애절한 편지 임명균 2002/06/28 1010
634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기관지인가? 김동민 2002/06/28 960
633    『조선일보』 이규태 논설고문의 빛과 그림자 강준만 2002/06/28 1157
632    박수빈의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고>에 대한 생각 이성은 2002/06/28 1233
631    박수빈의 부모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기홍 2002/06/28 1066
630    H·O·T 죽이기, 그 왜곡된 정서에 관하여 서하니 2002/06/28 1055
629    ‘여성차별철폐 협약’에 대한 최강국님의 논지를 비판하며 고은광순 2002/06/28 1043
628    법조인의 절대지존을 타파하라 서울대 공대생 2002/06/28 1201
627    대중문화와 일상에서 바라본 남녀 관계 조정용 2002/06/28 969
626    출│판│동│네│이│야│기 최성일 2002/06/28 1094
625    이도흠의 한국 대중 문화와 미디어 읽기 이도흠 2002/06/28 1247
624    새천년에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들 조흡 2002/06/28 1004
623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강준만 2002/06/28 1145
622    프란시스 후쿠야마‘스타 지식인’의 사회학 강준만 2002/06/28 1155
   아르헨티나의 21세기와 데 라 루아(De la Rua) 대통령 송기도 2002/06/28 1159
620    어느 고등학생의 외침 허태연 2002/06/28 1344
619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황인용 2002/06/28 1287
618    내안의 고3 강정호 2002/06/28 1145
617    교육계에 불어닥친‘신자유주의’의 허와 실 이기홍 2002/06/28 992
616    TEPS 과연 무엇인가? ② 성기완 2002/06/28 1026
615    ‘오 기자님 힘내세요’ 위택환 2002/06/28 1133
614    김정환씨와 김창은씨의 반론에 답합니다 강준만 2002/06/28 881
613    사고(社告) ‘ 인물자료 이용 회원’ 에 관한 안내 편집부 2002/06/28 1188
612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 오동명 2002/06/28 1072
611    ‘폭로’하는 길이 중앙일보를 영원히 살릴 수 있다 오동명 2002/06/28 1009
610    TEPS 과연 무엇인가? ① 성기완 2002/06/28 1193
609    “똘레랑스” 혹은 “관용”, 그 미덕과 해악 조상식 2002/06/28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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