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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성기완
제 목 TEPS 과연 무엇인가? ②
성 기 완 │우송대학교 영어정보학과교수·kws@lion.woosong.ac.kr│

표준화된 시험: 공공교육에 대한 정면 도전

서울대나 <조선일보>가 의도했던 안 했던, 표준화 시험을 통한 제반 교육 활동의 통제가 중대한 정치·사회적 결과를 가져옴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점수에 의해 죽고 살며(실제로 자살도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적을 잘 받아 일류대에  진학시키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도록 해주면 최대의 사랑을 베푼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젊은이들 대부분은 세상의 낙오자로 열등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실로 지금의  학교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의 기를 죽이는 것은 시험뿐만이 아니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특정한 교과서나 자료들만 써야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선거나 방송 인터뷰 때에는 교육에  대해 학자나 정치가 또는 관료들만 열심히 떠들어댄다. 일선 선생님이나 학부모와 학생들은 관심을 표명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무시당해  왔고 그런 토론의 변방에 머물러  왔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어느 학교가 좋다든지 아이들이 대학에  많이 갔다든지 하는 얘기들은 중립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 있는, 의미 있는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 서울대나 교육 단체들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해 현상 유지를 부르짖을 뿐만 아니라 지능이니 적성이니 성적이니 하는 것들을 기준으로 그들을 상품화하고, ETS나 <조선일보> 같은 단체들이 표준화된 시험으로 배움의 의미를 시험 잘 보는 것으로써 정의하며 교육을 지배하고  상업화하는 것은 바로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인 것이다.

요즘의 대학교는 정신이 없다. 오늘날 소위 대학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표준화  시험의 개발이나 적용에 무분별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학교의 영어 교육은 TOEFL·TOEIC을  가르치는 경쟁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표준화된 시험 결과에  바탕을 두고 교육 정책을 수립하여 행정을 편  결과 가치 있는 교육을 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무력해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학교를 비롯한 각 교육 기관과 단체 심지어 학술회의장 마저도 ETS나 좬조선일보좭와  같은 기업들이 만든 시험안내서나 문제집들의 경시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기업 주도로 현재의 교육이 교과 과정을 채택하고, 시험문제 저자들과 각 출판사 그리고 언론기관과의 바람직하지 못한 공생 관계가 우리 교육 및 사회 전반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소위 21 세기를 준비한다는 명목하에 초고속 통신망과 멀티미디어 등 컴퓨터 첨단 장비들이 무차별로 들어오고 이런 것들을 안 하거나 못하면 마치 뒤떨어진 교사나 학생인 것처럼  대우를 한다.

물론 이런 것을 통해서 아이들이 학습을 하면 성적이  좋아지리라는 무언의 믿음이 그 저변에 깔려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교육의 본말이 전도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소위  세계화와 기업의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철저하고도 끊임없는 상품과 지식의 소비를 강조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의 교육이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소수 엘리트를 위한 공익성 부재의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표준화 시험과 많은 학교현장에 존재하는 경제·소비 논리 등이 우리에게 엄청난 올가미는 아닌지 모르겠다.

학교에는 무의식적 순응이 너무도 팽배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감히 보다 의미 있는 평가의 방법을 연구하거나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요즘 나오고 있는 수행 평가도 그 본래의 목적은 교사와 학생들이 측정과 평가를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게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이었는데 모두들 통계라는 언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교육 상황에서 선생은 시험을  대비해 가르치는 문제풀이 기계가 되기  위해, 학생은 문제풀이 도사가 되기 위해 수도를 하는 곳이 마치 학교인 것처럼 보인다.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진정한 변화와 개선의 주역으로 설 땅을 우리는 제공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험에 맞게 얼마나 잘 가르치고 공부했느냐가 그 사람의 능력과 장래를 보장해 준다.  참 단순해서 좋다. 그렇게 단순하니 왜 시험이 꼭 이런 식으로만 치러져야 하는지, 다른 식으로 할 수는 없는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순하니 생각할 능력이  없고, 교육에 대한 여러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목표나 방법을  설정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으며 다만 많은 잘못된 흉내내기만이 있는 것이다.

과밀한 학급, 과중한 업무, 땅에 떨어진 교권이란  악조건은 개선하지 않고 수준별 교육과 수행평가를 선진국의 이름을 들이대며 일부 교육가와 행정가들이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학습이란 신기한 방법과 기술로 돈벌이를 위하여 단순지식을 실용지식이란  명목하에 가르치고 배우는 상황 부재 속의 의미 없는 허구적 미학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방법과 기술에 의존하는  선생님들은 실상 지식의 전달자로써 기존의 학습 방법을 그대로 보존·유지하는 주체가 돼버렸으며, 언제나 신기한 최고의 방법이 없을까하고 각종 참고서나 문제집, 그리고 웹사이트를 뒤지는  일회성 소모적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선생님들은 학습의 목적이나 유용성에 대한 깊은 성찰 내지는 자신과 학생의 지식 활동을 과거, 현실, 그리고  미래라는 연속선상에서 통찰할 능력을 개발할 의욕마저 상실해버렸다.

교육가들의 의식의 몰락과 몰려오는 기업의 상업 논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미비한 가운데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에디슨 프로젝트(Edison Project)와 같은 회사들이 학교를 운영해주고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면 교직원들에게 돈도 많이 주며 심지어는 주식을 상장하여 배분하겠다고 나서는 기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다. 학교 스스로 더 이상 운영할 능력이 없으니 좋은사업 수단을 가진 사기업이 운영을 한다니.  어쩌면 교육이라는 것이 다 돈벌이인 마당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정부도 돈 때문에 학교  통폐합하고 국공립학교의 사립화를 추진하는 마당에 능력 있는 학교 운영 전문회사를 차려 돈을 번다?

구미가 당기는 신종 사업이니 한번 꼭 해보면 어떨지…….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목소리를 내자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시험으로 길러진 우리 학생들은 졸업할  때 사회에 나가서 그 배운 지식을 이용하여 혁신적 발전을 이루겠다는 가슴 설레임이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음에 맞는 직장 아니 밥벌이 해먹을 직장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이런 표준화  시험은 우리 학생들에게 너무 정확한 인생의 길을 예언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험 잘 본 사람만  법대, 의대, 상대, 첨단 공학과 가서 잘먹고 잘살게 만드나 보다라고 은근히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참으로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인간을 잘도 분류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시험들에서  점수 조금 높다고 그들만이 출세하고 그들만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이제 우리 교육도 지능, 적성, 시험 성적의  망령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존중하고 개성과 창의성에 따라 특성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학생 위주의 교육을 하도록  어른들 특히 교육을 좀 안다는 분들이 대오각성 하여야 한다. 그 첫 번째실천 사항은 내가 아는 방법이 유일한 것은 아니며 틀릴 수도 있고 설령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해야 한다는 획일주의는 히틀러식 전제주의나 일제의 제국주의적 독선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와  가진 특권을 생각해보시라. 그런 것을 과감히 버리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나도 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것들을 조금이나마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민주 교육을 통한 시민의 양성을 위해서 기여하기 바란다. 말도 못하는 약자들 앞에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은근히 강요하기보다는  솔직해지란  말이다. 이 세상이 정말 시험  성적순이 아니라면 말이다.

세상에는 아주 무수하게 많은 다른 인간적이고 재미있게 공부하고 사는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과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표준화된 시험만큼 큰 영향력과 위력을 보여온 것도 없다. 지금은 많은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가고 있지만 우리 학생들 아니 전 세계  학생들이 각종 시험에 인생을 걸고 있으며, 현대는 소위 모든 인생이 시험의 연속인 문화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험이 무조건 나쁘다고 얘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 중의 하나는 그들의 통계적인 오류나 실수에만 집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논리에 따라 이미 결론이 없거나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현 시대와 앞으로의 인간  활동을 지배할 표준화된 시험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그런  행동을 유발한  동기들을 이해할  때만이그  헤게모니에 대응한  반헤게모니적 말(discourse)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이유로 ETS의 설립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의 시험 문화가 바로 기득권 문화의 전형이며 그 패거리들의 수작이라는 점을 알게된다.  표준화된 시험이 우리 교육의 주권자인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습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기득권층이 어떻게 그런 분위기를 조장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럴 때 부모와 선생님들은 오늘날 교육과 사회가 왜  현상 유지의 논리만 가지고  민주와 박애적 교육 이념과는 거리가 먼 단편 지식 위주의 암기와 수업 방식을 유지하는지, 그리고 왜 대학  졸업이라는 자격증 위주의 교육을 하는지, 왜 교육이 단지 취직의 선제조건으로서의 의미밖에 갖지 못하는 지를 이해
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한 가지 꼭 이해해야할 것이 있다. 지식이나 제도는 신이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며, 필요에 따라 개선도 시키고 없애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그런 일들을 중심적으로 하며 누가 배제되어 있는 지를 보면 그런 현상들은 많은 경우에 철저한 기득권자 그리고 지식인들이 일의 당사자들을 도외시한 채 독주해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시험의 표준화를 통해 인간의 능력을 획일화하고 무력화하는 것이다. ETS나 서울대는 인간의 지식과 능력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정확히 숫자화 될  수 있다는 뉴튼과 데카르트적 논리에 근거해 양적 통계만을 신뢰함으로써 지배논리와 힘을 바탕으로 독선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표준화된 시험은 신이 준 방식이  아니고 특정 인간의 ‘수작’ 즉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특히 표준화된 시험에 사고의 바탕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말할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

이는 그들이 학문의 민주주의적 바탕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시험이 곧 과학이며 따라서 그들은 그런 실증의 논리가 모든 문명을 이루고 발전시켰다는 어불성설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는 지능이니 적성이니 시험 성적이니 하는 것으로 학교,  사업, 심지어는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할 사회의 모든 활동까지 제어하고 간섭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자산들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  결과는 이 사회의 민주적 기반을 무너뜨리며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사회적 정의의 부재와 불평등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를 위해서는 교육 제반에  대한 정책의 구성이나 입안 그리고 시행을 하는데 있어서 선생님들·학부모들·학생들이 자유로운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진정한 기회 균등의 장이 보장되어야 한다.그 과정이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갈등이 노출되더라도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현장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하는 형식적인 공청회나 토론회는 뚜껑을 열고 보면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회의가 아니라 공지 사항 전달식의 시간인 경우가 많다. 일부 지식인과 정책가들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식의  모임보다는 선생님이나 학부모들 그리고 아이들이 과감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존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반헤게모니적 목소리가 나올 수 있으며, 이것이 획일주의와 상의하달의 교육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을 통한 인간의 표준화라는 지배적인 작태에 대해 주체적 의식을 가진 변화의 주역으로서 행동할 때,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  질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것이 공공의 자산이라는 점과 교육현장을 상업화하고 사적인  영리를 취하는 시장바닥으로 만드려는 존재에 대해 경계하도록 알릴 수 있을 것이다. ETS나 서울대를 이용한 <조선일보>의 존재와, 그들의 상업적 활동과, 숨겨진 논리를 파헤치고,  그것들을 중요한 교육적인 도구로써 다루며 비판의식을 고양할 때, 우리 학생들은 단순한 소비자에서 의식 있고  파워 있는 소비자로 성장할 것이며, 민주적 박애주의에 입각한 삶의 원칙들을  지키는 시민으로 변화하여 개혁의 주역으로서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ETS를 비롯한 서울대와 <조선일보>의 상업적 담합은 우리에게 귀중한 대응 장치 즉 저항의 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할  것이다. 세상은 반드시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우리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고 하는 것들이 반드시 내가 원해서 또는 선택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정치적 행동의 원동력이며 사회의 정의를 생각해볼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인 것이다.

우리는 “시험을 통한 인간의 표준화”라는 지배적 논리와 특권 그리고 “함께”라는 의식보다는 “차별”이라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교육을 지배하고 통제해온 집단에 대응하는 변화의 장을 우리 학생들, 교육 현장에서 실제 활동하는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TS나 서울대 그리고 <조선일보>와 같은 기득권자들의 안하무인적인 독선은 많은 인류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기 마련이다. 양심 있는  지식인조차도 권력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 즉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과 대화를  잘 인식하고 관찰할 때  자신들의 오류를 발견할 확률이 높으며, 그들의 행동은 기득권의 생각과 논리의 허구와 오류를 상징적으로 반영해 주는 좋은 장이 라는 것을 지나쳐 버리기 쉽다.

오늘날 시험이 만연하고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의미 있는 학습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바탕으로 한 접근,  즉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에서의  공론이 아니라 현실로 뛰어들어 적어도 자기의 가설과 이론을 검증해 보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할 때 인간 모두는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 경쟁보다는 협조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타고난 능력이 다르더라도 모두 다 타고난  인생, 가난하고 실력 없다고 차별  받기보다는 그러한 차별을 조금씩이나마 없애나가려는 노력이 돈 있고,힘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 속에서 많이 나오길 바란다.

생각해 보시라. 여러분이 아니면 이제  더 이상 표준화 시험의 그 약육강식·적자생존의 기득권 논리로 억울하게 피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누가 말하고 행동해 주겠는가?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no=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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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아르헨티나의 21세기와 데 라 루아(De la Rua) 대통령 송기도 2002/06/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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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교육계에 불어닥친‘신자유주의’의 허와 실 이기홍 2002/06/28 991
   TEPS 과연 무엇인가? ② 성기완 2002/06/28 1025
615    ‘오 기자님 힘내세요’ 위택환 2002/06/28 1133
614    김정환씨와 김창은씨의 반론에 답합니다 강준만 2002/06/28 881
613    사고(社告) ‘ 인물자료 이용 회원’ 에 관한 안내 편집부 2002/06/28 1187
612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 오동명 2002/06/28 1071
611    ‘폭로’하는 길이 중앙일보를 영원히 살릴 수 있다 오동명 2002/06/28 1009
610    TEPS 과연 무엇인가? ① 성기완 2002/06/28 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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