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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한국엔 '겸손의 자유'도 없다
이 글은 제가 썼던 <강준만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글이 빚은 논란과 오해와 관련하여 여러 기자들로부터 받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면서 제 생각을 글로 써서 기자들에게 보내준 겁니다. 다른 지면에서 한 이야기와 중복되는 것도 있겠지만, 독자들께서도 제 생각을 확실히 아는 게 좋겠다 싶어 여기에 싣기로 했습니다.

코미디를 하자는 건가?

저는 최근 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자꾸 웃음이 나옵니다. 논란이라기보다는 해프닝으로 보아야겠지요. 자꾸 제가 나쁜 놈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제가 장난을 쳤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전 장난을 친 건 아니거든요.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강준만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글을 썼었지요.

저는 그 글을 써놓고 나서 매우 홀가분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예전보다 더욱 강한 전의(戰意)로 불타오르는 데 여기저기 매체들을 보았더니 제가 고뇌하고 있고 우울하고 뭐 하여튼 힘이 쪽 빠진 그런 불쌍한 모습으로 비쳐지더군요. 저를 지지했던 사람마저 공개적으로 저를 비판하는 글을 써대니 이건 완전히 한 편의 코미디 같습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기에 그런 어이없는 오해가 생긴 걸까요? 그래서 전 제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 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눴던 것입니다. 그간 제 글을 제대로 쭉 읽어온 독자들은 제 말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저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그간 제 글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은 오해할 소지가 있겠더군요.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제가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그간 큰 소리를 많이 쳤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상황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요. 전 그렇게 하기 싫었고 나름대로 겸허하고 성실하게 고백을 한 겁니다. 제가 그간 독자들에게 쳤던 큰소리가 별난 것이었던 만큼 제 고백도 좀 별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그 고백이 그런 특수한 맥락을 벗어나 엉뚱한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면 얼마든지 오해가 생기겠더라구요.

언론의 과장·왜곡 보도

물론 이건 제가 저에 대해 보도한 기사들을 선의로만 해석한 겁니다. 언론매체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악의까진 아니더라도 명백한 조롱의 뜻을 갖고 과장·왜곡보도를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보도 패러다임이야 사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온갖 독설을 내뿜으며 혼자 더럽게 잘난 척 하던 놈에 대해 단 한 줄도 긍정적이기는커녕 중립적인 보도조차 해주지 않을 정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던 매체들이 그 놈이 스스로 제 풀에 쓰러졌다면 그거야말로 얼마나 재미있는 뉴스이겠습니까? 설사 저를 조롱하겠다는 뜻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 대비되는 모습 자체가 뉴스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그 뉴스 가치를 살리는 쪽으로 기사를 쓰자니 제 글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없었겠지요.

세상엔 언론매체에 의해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제 경우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파급력에 있어서 큰 차이는 있을 망정 저 스스로 자신을 변호할 수단을 갖고 있으니 제가 그런 보도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짜증을 낼 만큼 이상하게 쓰여진 보도를 몇 건 접하긴 했습니다만, 그것 역시 제게 즐길 거리일 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곧 보복(?)하면 되니까요. 하하하.

제가 인터뷰를 거절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건 인터뷰를 할 하등의 가치가 없는 해프닝입니다. 제 모습만 더 우스워지죠. 물론 달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제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이야기를 더 들으시면 기꺼이 수긍하시리라 믿습니다.

'운동'과 '비판'의 차이

제가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을 하면서 '오버'를 했던 건 사실입니다. 저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조선일보에 너그러운 분들 10인'이라는 명단을 게재했었는데 사람에 따라선 자기 이름이 실린 것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더군요. 또 [조선일보]에 너그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로부터 구체적으로 비판을 받은 사람들은 저에 대해 이를 갈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게 참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디다. '오버'한 거죠. 똑같은 비판을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조선일보에 글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격을 가하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자신의 지나쳤던 점을 화끈하게 인정하는 겸손과 용기, 한국 지식인들에겐 이게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별나게 보이나 봅니다. 아무래도 한국엔 '겸손의 자유'가 없나 봅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운동' 차원의 발상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운동'과 '비판'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저에게 있어선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성공하는 '운동'을 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놈입니다. 그래서 무리를 범하게 되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운동의 성과에 집착하느라 심적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겁니다. 전국 순회 강연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 강연은 사람들 웃게 만들어주는 강연이 아닙니다. 육체적 피로뿐만 아니라 심적 부담이 매우 큰 강연이었습니다. 그것뿐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꾸 '운동'을 생각하면 '비판'의 전략과 전술에 필요 이상으로(제가 보기엔) 집착하게 됩니다. 남들의 평판을 애써 무시하면서도 '운동'을 위해선 귀 기울여야 된다는 당위에 충실하느라 그로 인한 심적 부담이 매우 컸습니다.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 자체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그 운동은 어느 한 개인, 그것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양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 총대를 메선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운동입니다. 오히려 제가 총대를 멨기 때문에 정작 나서야 할 사람들이 미친 척 구경만 하는 문제도 생겼다고 봅니다. 제가 느끼는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거 제가 나중에 실명 비판으로 다 밝힐 겁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체의 갈등을 피해다니면서 점잔 빼고 진보적인 척하는 사람들이 진짜 수구 기득권 세력 아닐까요? 적어도 개혁을 위한 실천의 관점에서 보자면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태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저를 씹어대는데, 그 강도가 극우 파시스트들의 그것보다 더하고 더 야비합니다. 그런 풍토를 그대로 두고선 대한민국 절대 개혁 안됩니다. 저 개인이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처음부터 '지는 게임'을 하겠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비판'만 하겠다는 겁니다. 그건 성과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걸 의미합니다. 조선일보 비판은 그만 두느냐구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묻던데 아니 그게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른 인간들 따라오든 말든 나 혼자 하겠다는 겁니다. 그걸 운동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가지고서야 운동이 되겠느냐는 따위의 뒷공론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간 상대적으로 침묵해왔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해서도 비판할 겁니다. 그래야 조선일보 비판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될 겁니다.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응징도 포기한 게 아닙니다. 선별적으로 더 강해질 겁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조선일보 99년 7월 2일자에 <'삼성차 처리' 이의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장 교수는 재벌의 횡포에 대항해 싸우는 분이니까 그렇게 급박한 목적을 위해선 조선일보의 힘을 이용할 수도 있는 겁니다. '조선일보 이용'을 사안에 따라 신축적으로 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제가 한 운동은 그런 신축성이 결여돼 있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조선일보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제가 그렇게 하는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운동합네' 하면서 큰소리치고 할 것 뭐 있냐는 겁니다. 이거 길게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곧 두고 보시면 압니다. 진보를 팔아먹으면서 조선일보와 무분별하게 유착하는 사람들은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겁니다. 이 점 널리 알려 주십시오(하하하. 이거 또 '오버'하네!).

그러니까 사실상 달라지는 게 거의 없습니다. 개입의 정도는 약해지고 무리를 범할 가능성은 낮아지겠지만 비판의 강도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제 야심의 수위를 낮춘 겁니다. 제 독자들에게 '이기는 게임'을 하겠다고 큰소리친 걸 철회하고 처음부터 '지는 게임'을 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제가 월간 [인물과사상]을 시작하면서 큰소리쳤던 걸 다시 읽으면 제가 왜 겨우 이 정도의 변화를 갖고 스스로 '변질'이니 '변절'이니 하는 과격한 용어를 쓰지 않으면 안됐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하는 일은 저 죽어서나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묵계적으로 성역과 금기로 간주하고 있는 영역을 마구 건드려대니 어느 누가 절 좋아 하겠습니까? 제 주장에 다 동의했다가도 자기 건드리면 저의 다른 주장까지 다 폄하합디다. 그게 우리 인간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저 살아있을 때엔 전혀 인정받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나 제가 떠들었던 소리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운동'의 정의를 자의적으로 내리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 이제부턴 '운동'을 포기한 이상 '비판'에 있어서 더 악역(惡役)을 맡을 수도 있습니다. 전엔 "이 정도의 사람에겐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보여야지" 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저를 완전히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죠. 물론 전에도 저 스스로 '왕따가 되겠다'는 말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런 말이야말로 제가 내심 '왕따'가 되는 걸 두려워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젠 아예 그런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겁니다.

강준만을 양쪽에서 때리는 김성기와 정운현

'오버'한 걸 잘라내겠다는 게 자꾸 오해를 빚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지지자였던 [대한매일] 정운현 기자가 [미디어오늘]에 쓴 칼럼에서 저를 비판한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듭디다. 그 양반 참 성질 더럽게 급하네요. 그는 저에 대해 ‘배신감’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정 기자의 저에 대한 신뢰도가 겨우 그 정도라니 제가 느끼는 ‘배신감’에 비할까요? 어찌됐건 정 기자가 이렇게 설명해주면 알아들을까요?

정 기자는 대한매일 99년 3월 17일자에 <친일고백 현 전총리의 수난>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친일파 사냥꾼'이라 할 정 기자가 현 전총리를 비난하는 칼럼을 쓴다고 해서 놀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 과거를 숨긴 채 총리를 할 수 있느냐고 비난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정 기자는 현 전총리를 옹호했습니다. 만약 정 기자가 현 전총리를 비난했다면 그거야말로 '오버'지요. 그런 '오버'는 해선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정 기자의 다른 '친일파 사냥'이 아무리 강도가 높아도 더 큰 설득력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는 '오버'하지 않으면서 내가 '오버'한 걸 잘라내겠다는데, 나와 절연하겠다고 협박하다니! 정 기자는 저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월간 [인물과사상]의 독자 50명을 책임지고 확보해줄 걸 요구합니다. 너무 약한가?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지는 건 이런 거죠. 가령 [현대사상] 김성기 주간이 저의 오만과 편견을 지적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그걸 인정했죠. 그런데 김 주간의 비판은 이제 곧 부메랑이 되어 김 주간을 향해 날아가게 돼 있습니다. 김 주간은 저의 자격을 문제삼았습니다만, 김 주간 역시 그 말을 할 때엔 심판석에 앉아서 그라운드에 뛰어든 저를 향해 한 말이거든요. 꼭 김 주간만 그런 게 아니라 그간 저를 비판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제가 운동을 포기하고 비판만 하겠다는 건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이론적 차원의 역공을 취하겠다는 걸 의미합니다. 저 역시 심판석이건 관중석이건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너의 대안은 뭐냐? 너의 조선일보관과 언론관을 밝혀라. 뭐 그런 추궁을 할 수 있겠지요. 예전보다 더 사나워진 제 모습을 보고 그들이 충격이나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참 제 팔자도 기구합니다. 정 기자는 제가 '오버'를 인정했다고 저를 때리고 김 주간은 제가 '오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저를 때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팔자를 기쁨과 영광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강준만이 투사요 전사라고?

저는 앞으로도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전에 운동을 한답시고 생각할 때엔 늘 그게 고민거리였죠. 운동을 위해 가능한 한 언론매체를 이용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러나 이젠 그런 부담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욱 그간 제가 해온 일에 몰두할 겁니다. 제 주장의 이론화 작업에도 몰두할 생각입니다. 그런 작업에 집중하려면 은둔이 필요합니다. 그간 사실상 은둔을 해왔습니다만, 더욱 은둔할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그러지만, 그거 알고보면 사교(社交)에 지나지 않습디다. 물론 그로 인해 얻는 것도 많겠지만 기회비용까지 따지면 적어도 제 작업 하는 데 있어선 남는 장사 아닙니다.

저는 제 작업에 있어서 지속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간 제가 해온 작업은 저 죽는 날까지 계속 될 겁니다. 그간 저를 지지했던 입장에서 저를 오해해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제발 성급하게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한 말씀 드려 주십시오. 평소엔 전혀 도와주지 않다가 갑자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7월 중순 경 나올 [인물과사상](개마고원간) 제11권과 7월 20일 경 나올 월간 인물과사상 8월호를 보면 자신들의 호들갑을 뉘우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 지면들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이번 해프닝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제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투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저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것 같지 않은 매체들까지 제게 전사(戰士)라는 타이틀을 붙여줍디다. 저는 바로 그런 시각과 이미지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태까지 '스턴트'를 해온 겁니까? 그러니까 무대 위엔 강준만 너만 올라가고 우리는 밑에서 구경만 하겠다는 겁니까? 무대 위에 올라섰으니 연기를 잘 하라 이겁니까?

솔직히 저도 연기, 그러니까 제 이미지 메이킹을 해볼까 하는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걸 의도적으로 깨기로 했습니다. 그건 대단히 위험한 짓입니다. 저는 지식인입니다. 여기서 지식인이라는 말은 폄하하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식인으로서 제 비판의 생명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겸손입니다. 아니 때론 자기 조롱도 필요합니다. 권위를 축적해선 안됩니다. 신화를 만들어선 안됩니다.

이 세상은 정말 겸손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진보적입네' 하는 사람들까지 개인적으론 그렇게 권위주의로 무장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유홍준씨를 보십시오. 저는 그의 재능을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의 권위주의는 정말 역겹습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돼먹지 않은 풍토도 제가 타파해야 할 대상이기에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저 자신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자기 성찰과 겸손을 버리진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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