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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정진석 교수님께 드리는 글
정 교수님. 조선일보가 그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이 정말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최장집 교수의 사상 검증에 임한 것이라고 보십니까?
조선일보가 정말 순수했다면 왜 어설픈 봉합으로 그 사건을 끝냈을까요?


공인(公人)들간의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

정 교수님의 반론문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정 교수님의 반론문을 읽으면서 내내 고민한 건 공사(公私) 구분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문제의 글을 그렇게 쓴 건 공분(公憤)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고 보니 저의 표현 방식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 교수님께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가 저의 사과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걸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한 행위에 대해선 응분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정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명예훼손 소송에 성실히 임하고 그 결과에 충실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드리게 된 건 정 교수님의 반론에 재반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 교수님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위해선 정 교수님이 [조선일보] 1998년 11월 9일자 5면에 기고하신 <공인 검증 가로막는 것은 언론자유 억압하는 행위>라는 제목의 칼럼에 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하고 또 제가 했던 주장의 사실적 근거를 밝혀야 하는데, 그건 불가피하게 정 교수님에 대한 비판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미 300매 분량(200자 원고지)의 반론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만, 정 교수님이 제기하신 소송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그건 법정에서 하는 게 온당할 것입니다. 소송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저는 그 후에라도 다른 방법으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 언론계와 언론학계의 발전에 기여하자는 차원에서 이한우 기자 소송건과 같이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낼까 합니다. 저는 여기선 법정에선 거론되지 않을 성격의 말씀만 드리고자 합니다. 결과적으로 저 자신을 위한 변명이 되겠습니다만, 그 변명의 의미와 가치는 결코 저 자신에게만 국한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에선 사회적 공인(公人)의 경우에도 개인들간의 갈등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저는 그건 잘못된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 교수님이 제기하신 소송도 정 교수님 개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언론학자로서 보다 크고 넓은 공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 역시 정 교수님의 그런 자세를 따르고 싶습니다. 정 교수님의 반론문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이슈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이슈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걸 말씀드리는 과정에서 정 교수님의 반론에 답할 일이 있으면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정 교수님께서 주신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정진석을 '그렇게 호의적인 평가' 하였다는 이유로 시비를 건 사람까지 있다는 데 강준만이 어디에 그렇게도 호의적인 평가를 했는지 꼭 한 번 보고 싶다. 밝혀달라.

저는 지난 98년 8월 다른 여러 교수들(권혁남, 김승수, 김응숙, 마동훈, 신호창)과 함께 대학 교양 과목 교재의 용도로 펴낸 [대중매체와 사회](세계사, 1998)에 수록된 <한국언론사(1883∼1998년)>라는 글에서 정 교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언론사 연구는 '가시밭길'과도 같이 외롭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언론학이 인기학문으로 대접받으면서 '거품'이 일고 있는 가운데에도 언론사 연구는 이렇다 할 지원과 관심조차 없이 극소수 학자들의 불타는 사명감 하나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교수와 고려대 김민환 교수를 비롯한 극소수 학자들의 노고엔 모든 언론학도들이 뜨거운 감사와 더불어 격려를 보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44쪽)

'최장집 사건'의 배경

정 교수님. 사람이 무슨 일에 깊이 몰두한다는 게 꼭 좋은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정 교수님께 저지른 무례가 그러한 '몰두'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권력과 언론'의 관계라는 주제에 깊이 몰두해 왔으며 지금도 그러합니다. 정 교수님께서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그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 주제에 오랫동안 몰두했던 결과,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한국의 일부 신문은 그 자체로서 정치세력화 돼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때에도 '대통령 만들기'에 전사적으로 나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신문이 공개적으로 그러한 당파성을 선언한다면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문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지요.

그로 인한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정 교수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모두 제도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습니다. 권력이 큰 만큼 책임과 의무도 큽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신문의 경우 '음지의 권력' 입니다. 그 신문은 스스로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도 썼지요. 이 신문 권력은 아무런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습니다. 전혀 투명하지도 않거니와 모든 게 의혹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에서부터 지식인들과 시민운동단체들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언론 플레이'의 용도로 그 신문을 이용하려고만 듭니다. 이용하려는 사람이 싫은 소리를 하겠습니까? 칭찬만 해대는 거지요. 그 신문이 오만방자해졌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요.

정 교수님. 그 신문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자기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그 신문은 김영삼 정부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가해 자기들의 뜻대로 따라오게끔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신문이야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할 망정 결과적으로 그리 됐다는 건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대북정책에 있어서 그랬지요. 그 신문은 김영삼 정부내에서 진보적이거나 좀 열려 있는 대북관을 갖고 있는 인사들에 대해선 이른바 '사상 검증'이라는 것을 시도해 그들을 쫓아내는 데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김정남씨와 한완상씨가 그런 경우에 해당되겠지요. 김영삼 정부는 그 신문의 그런 공격에 타격을 받아 대북정책에 있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그로 인한 국정 혼란이 매우 심각했지요.

정 교수님. 잘 아시겠지만, 그 신문은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저는 조선일보의 이념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 어떤 이념이건 다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전혀 다른 데에 있습니다. 언론으로서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해선 안될 일을 하면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이 그 누구로부터도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IMF 사태도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않고 바로 그런 무책임한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닐까요?

강준만도 한때는 '한겨레맨'이었다

제가 지난해에 일어났던 이른바 '최장집 사건' 때에 조선일보에 대해 공분을 느꼈던 건 바로 그와 같은 배경에서였습니다. 정 교수님께서 조선일보를 옹호하시는 칼럼을 쓰신 걸 보고 그 공분이 그만 정 교수님에게까지 미친 거지요. 저는 조선일보가 김영삼 정부 때에 했던 일을 또 다시 시도한다고 보았던 것이고 결국 저의 판단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님. 조선일보가 그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이 정말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최장집 교수의 사상 검증에 임한 것이라고 보십니까? 조선일보가 정말 순수했다면 왜 어설픈 봉합으로 그 사건을 끝냈을까요?

물론 그런 배경이 제가 정 교수님께 저지른 무례를 정당화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다만 정 교수님께서 제 글에 대해 분노하시더라도 제 뜻을 제대로 이해하신다면 정 교수님과 저 사이의 갈등이 보다 나은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갖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정 교수님께서는 매우 심각한 모욕으로 받아 들이신 것도 있는 것 같아 그 점은 해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일보맨'이라는 표현에 대해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 교수님께서 그걸 왜 명예훼손으로 간주하시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맨'이라고 하는 표현은 조선일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흉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정 교수님은 조선일보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조선일보맨'이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이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학자의 독립성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볼 때엔 어느 교수가 어느 신문사맨이라고 하는 건 그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맨'이라고 하는 표현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그 앞에 붙는 사람 또는 조직과 가깝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저는 한동안 [한겨레]에 자주 칼럼을 기고했던 관계로 '한겨레맨'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습니다만, 그걸 불명예로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너그러운 이해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제도권' 안주와 사농공상 이데올로기

이젠 가장 중요한 '돈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 교수님께서는 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욕적인 글로 상대방을 조롱하는 책을 만들어 판매부수를 늘리고 돈을 벌어들이는 그런 인기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는 당신처럼 남의 인권을 침해하는 글을 써서 출판으로 돈 버는 짓은 결코 하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저는 이 말씀에 대해 저 자신을 위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정 교수님께서 얼마든지 그렇게 볼 소지가 있으며 정 교수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은 제가 겸허히 경청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그건 주관적인 동기의 문제이기 때문에 입증하거나 반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건 시간과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 대해선 별로 개의치 않는 편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공적 차원에서 기존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이데올로기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가 한국 언론을 개혁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 말씀을 좀 드려야겠습니다.

정 교수님. 우리가 흔히 '제도권'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그게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권력과 부가 거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죠. 물론 저 역시 제도권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만, 흔히 쓰는 그 말의 용법으로 보자면 저는 비제도권에서 제도권 언론을 비판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서민들이 들으면 화를 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학 교수들 정말 월급만 갖고 살기 어렵습니다. 교수들마다 큰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만, 부수입이 있어야 살지요. 그래서 많은 교수들이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각종 위원회에 참여합니다. 물론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이 꼭 돈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 받는 돈이라는 것도 보잘 것 없긴 합니다만, 조금이라도 부수입이 생기는 건 분명하거니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을 누립니다. 각종 기고 행위를 통해 원고료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책 인세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강연료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언론개혁과 시장(市場)의 정의(正義)

점잖지 못하게 돈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전 그게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모든 돈이 제도권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달리 말해서 제도권을 비판하기가 어렵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재벌이 운영하는 언론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은 교수가 재벌을 비판하거나 언론을 비판하는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다는 건 정 교수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매사가 다 그렇습니다. 언론 매체에 기고를 하는 것도 마냥 자유로운 건 아닙니다. 비판을 하더라도 넘어선 안될 선이 있다는 걸 교수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출판까지 언론에게 먹혀 진보적인 사회과학 출판사들도 언론을 비판하는 책은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언론비판에 관한 한 이 나라엔 제대로 된 표현의 자유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 교수님. 제가 [인물과사상]에 쓰는 종류의 글을 어느 언론 매체에서 받아주겠습니까? 제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이상한 글을 쓴다는 정 교수님의 의심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론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기존의 제도권 언론매체에 성역과 금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매체를 만들어 하고 싶은 말 다 하겠다는 그런 동기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매체는 아무래도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생존하는 데에 비교적 유리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매체가 어디 가서 광고를 얻어올 수도 있는데 광고 영업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꼭 돈 벌기 위해 그런 매체를 낸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광고가 거의 없이 독자들의 구독료 수입만으로 버티는 잡지가 있다는 건 정 교수님께서도 언론 사학자로서 기록해 주셔야 할 한국 언론계의 자랑이 아닐까요? 외람됨을 무릅쓰고 제가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만, 월간 [인물과사상]은 그런 점에선 대한민국에서 가장 도덕적인 매체입니다.

정 교수님. 교수가 재벌들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건 아무런 흉이 안 됩니다. 한때 우리 학계에는 억대의 연구 프로젝트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수천만 원 짜리는 보통이지요. 부실한 연구 프로젝트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전혀 흉이 안 되고 교수의 품위를 지키는 게 되는데 교수가 직접 작은 잡지를 만들어 기존의 제도권 매체에 대항하겠다고 그러면 흉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사농공상 이데올로기가 작동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언론개혁'만을 놓고 말하자면 '시장(市場)은 정의롭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정 교수님. 재벌이 운영하는 언론재단에선 [일제시대 민족지 압수 기사 모음]이라는 책자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언론재단에서 [일제시대 민족지 친일 기사 모음]이라는 책자를 낼 수 있을까요? 절대 낼 수 없거니와 내지도 않을 겁니다. 제도권 기관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는 모든 연구엔 바로 그런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정 교수님. 저는 연구 프로젝트라거나 공적 기관의 위원 또는 이사 자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건 인정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게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요? 이 점을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빅 3 신문과 지식인의 자율성

정 교수님. 그간 정 교수님도 자주 지적해 오셨습니다만, 우리 언론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언로(言路)의 독과점 체제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닙니다. 신문 빅 3의 시장 점유율이 70%가 넘는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신문들이 다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통계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거 정말 두렵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또 그 빅 3 신문들은 겉으로는 가끔 티격태격 싸우는 것 같지만 크게 보아 다 한 패거리입니다. 사주들끼리 외국에 나가 골프를 같이 치기도 하고 자기들이 내는 월간지 광고를 서로 바꿔서 실어주기도 합니다.

제가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을 포기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나머지 빅 2가 하는 짓이 날이 갈수록 실망스러워 조선일보만을 타깃으로 삼는 게 대중적 공감을 얻기 어려워졌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전 그런 현실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 운동을 슬그머니 그만 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과잉일 망정 겸손과 성실과 자기 성찰은 제가 하는 비판의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기에 저는 저 자신을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각종 언론매체가 그걸 보도해대는데 제 선의(善意)는 완전히 무시하고 온갖 과장과 왜곡으로 저를 조롱하느라 신바람이 났더군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지식인들 대다수가 그 빅 3의 영향권 하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정 교수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 지식인이 독립성을 잃고 거대 일간지를 미화하거나 홍보하는 발언을 하는 건 아무런 흉이 안됩니다. 그런데 그 체제에 도전하겠다고 작은 잡지를 만들어 비판을 가하면 돈 벌려고 환장했다고 욕을 해댑니다. 이게 과연 공정한 처사일까요? 저는 각 분야별로 지식인들이 '장사꾼'이 되어 독립적으로 만드는 잡지가 막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벤처 기업이 별건 가요? 이공계 교수들이 하는 벤처 기업은 예찬받는데 왜 언론학 교수가 하는 건 매도돼야 할까요? 혹 전북의 지식인들이 모여 만든 월간 「열린 전북」이라는 잡지를 들어보셨나요? 지식인들 각자 1백만 원을 내서 만든 겁니다. 그 지식인들이 돈 버는 데에 환장해서 그걸 만든 걸까요?

정 교수님. 거대 신문들의 독과점 체제에 구멍을 내려는 시도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각론으로 들어가 이견을 말씀하실 수는 있을 겁니다. 교수들도 월급을 받습니다만, 돈 벌기 위해 교수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누가 돈벌이를 위해 교수를 한다고 말하면 말 자체는 틀린 게 아닐 망정 그거 얼마나 피차 비참한 기분이 들겠습니까?

신문방송학과 교수들의 직무유기

정 교수님. 전 정말 돈 좀 벌면 좋겠습니다. 언론학계에서 나오는 연구 프로젝트의 100%가 기존 언론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돈을 벌면 제가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싶습니다. 유명 만화가를 모셔다가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만화로 만들어 널리 유포시키겠습니다. 언론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시민사회의 압력을 이끌어 내겠다는 겁니다.

젊은 언론사학자들을 모시고 '빨갱이 사냥'을 빙자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조선일보의 인권유린사'라는 책을 내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조선일보에 글을 쓰거나 그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지식인들에게 그 책을 한 권씩 보내주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님. 그런데 이게 다 돈이 필요한 일입니다. 정 교수님도 이사(理事)로 계셔서 잘 아시겠지만, LG상남언론재단과 같은 재벌 재단에서 그런 연구하는 데에 돈을 주겠습니까? 그러니 저라도 부지런히 벌어야지요.

그리고 아까 "남의 인권을 침해하는 글을 써서 출판으로 돈 버는 짓" 운운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 개념에 있어서 정 교수님과 저 사이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에서도 활발히 논의될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운동가들이 들으면 욕하겠습니다만, 저는 그간 일종의 인권운동을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 교수님의 그런 말씀을 들으니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제가 정 교수님의 칼럼에 분노한 건 그게 인권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건데, 이젠 정 교수님이 인권을 말씀하십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가져주시고 인권 개념을 좀 더 넓고 크게 생각해주시기를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정 교수님. 저를 포함한 우리 신문방송학과 교수들은 그간 너무 소극적이었습니다. 기존 언론 체제에 너무 안주해 왔습니다. 물론 그간 비판은 흘러 넘쳤습니다만, 그 비판은 늘 이론과 추상에만 머물러 언론도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약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실명 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실수를 하기도 하고 무리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제가 정 교수님께 퍼부었던 독설도 그런 실수요,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걸로 인해 그간 제가 해온 작업이 전면 부정되고 모욕당하는 건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 글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 주십시오.

'나중이 처음을 결정한다'

제가 지난 98년 11월에 낸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 한국언론 115년사]라는 책에 대해서도 정 교수님께 사과드립니다. 저는 그 책에서 우리 학계의 언론사 연구가 구한말과 일제시대에만 집중돼 있어 전혀 실용적인 가치를 갖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를 한 바 있습니다. 제가 그것 때문에 정 교수님도 잘 아실 어느 젊은 언론사학자로부터 개인적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비판에 수긍했습니다. 제가 너무 뻔뻔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데 그런 일은 전혀 하지 않다가 엉뚱한 소리를 해댔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요. 정 교수님께서도 아마 그 책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 책이 매우 뻔뻔했거니와 부실했습니다만 좀더 시간적 여유를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책의 개정판을 매년 낼 생각입니다(개정판에선 '실용적 가치' 운운했던 말은 빼겠습니다). 매년 1권 분량을 추가해 궁극적으로 10권이 넘는 분량의 책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감히 정 교수님이 보여준 학문적 경지까지 넘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거기에 근접할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그 작업은 정 교수님과 같은 선구적인 언론사학자들의 피땀어린 노고 덕분에 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언론사관에 있어서 정 교수님과 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 교수님이 그간 보여주신 노고에 대해선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정 교수님. 저는 박노해 시인의 <역사 앞에서>라는 글을 좋아 합니다. 그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저의 인생 좌우명이기도 하다는 걸 말씀드리면서, 저에 대해 조금 더 유보적인 자세를 취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혹 법정에서 뵐 기회가 있다면 저의 인사를 웃는 얼굴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역사는 무서운 것입니다/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다 죽는가가/더 중요합니다/처음이 나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나중이 처음을 결정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11

2002/06/27 (14:46:46)    IP Address : 147.46.116.76

338    법조인을 위한 변명 선의종 2002/06/28 859
337    90년대 문화적 코드 한 석 규 정혁 2002/06/28 756
336    남미 ‘해방자’, 볼리바르 송기도 2002/06/28 958
335    이 신 범 의원은 ‘3김 체제의 희생자’인가? 강준만 2002/06/28 951
334    페 리 : 페리 보고서를 아십니까? 강준만 2002/06/28 961
333    벤 추 라 : 대중은 정치인의 ‘솔직’에 굶주려 있다. 강준만 2002/06/28 930
332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8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836
331    머리말: [현대사상] 김성기 주간에게 묻는다 강준만 2002/06/27 821
330    한국엔 '겸손의 자유'도 없다 강준만 2002/06/27 1001
   정진석 교수님께 드리는 글 강준만 2002/06/27 853
328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께 강준만 2002/06/27 924
327    소신있는 친일파이면 면죄의 대상인가 이희진 2002/06/27 784
326    거꾸로 선 역사바로세우기 - 희비 엇갈린 양 김씨 위택환 2002/06/27 959
325    김대중 대통령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강준만 2002/06/27 814
324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을 위하여 강준만 2002/06/27 1225
323    김훈사건으로 본 국민의 권리,나라의 주권 위택환 2002/06/27 887
322    주인공과 순서가 뒤바뀐 김대중 정권의 역사와의 화해 홍남희 2002/06/27 984
321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 강준만 2002/06/27 775
320    시청자 중심의 방송 민주화 조흡 2002/06/27 809
319    홍세화, 갈 수 있는 나라 : 모든 나라 홍세화 2002/06/27 1252
318    ‘두뇌한국 21’은 왜 저지되어야 하는가? 김현아 2002/06/27 771
317    연정희를 위한 변명 지유철 2002/06/27 1174
316    마치(Macchi)대통령과 새로운’ 파라과이 송기도 2002/06/27 896
315    프리랜서와 원고료 최성일 2002/06/27 1139
314    생활의 반성과 후학으로부터 배우는 가르침 박금주 2002/06/27 936
313    강준만 글에 대한 반론 권현민 2002/06/27 911
312    강 고수님 너무 많이 반성하지 마 황연숙 2002/06/27 1129
311    대도들과의 축배 서석권 2002/06/27 798
310    독자들께 드립니다 위택환 2002/06/27 955
309    지방자치단체장 탐구문제있다 한희정 2002/06/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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