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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조흡
제 목 시청자 중심의 방송 민주화
서세원 방송독점의 문제점

조 흡 문화연구가


서세원의 성공비결

서세원이 바쁘다. 그는 현재 SBS의 「좋은 세상 만들기」와 「밀레니엄 수퍼 스테이션」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KBS 2TV에서 「서세원 쇼」와 「시사 터치 코메디 파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또 KBS라디오에서도 두 시간짜리 음악 프로그램의 DJ를 맡고 있다.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을 담당하다 보니 그의 인기도 치솟을대로 치솟아 방송세계에서는 그의 이름 석자가 이제 태산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서세원이 휘두르는 인기의 힘은 대단하다. 그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성공작이며, 그러다 보니 광고주들은 앞을 다퉈 그 프로그램의 광고시간을 확보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정도다. 경제위기로 방송이 전반적인 위기를 맞고 있던 1998년, 대부분 프로그램의 광고 확보율은 40%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담당했던 「좋은 세상 만들기」는 100%의 광고가 따라 붙었으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세원의 이런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무슨 이유로 그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하나같이 히트작이 되느냐는 말이다. 우선 그는 다른 코미디언이나 사회자와 달리 전혀 요란하지가 않다. 억지나 과장이 절제돼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그의 역할을 뽀족하게 집어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는 쉽고 편하게 진행한다. 서세원의 성공비결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자신의 존재를 별로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게스트로 하여금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내는 능력이 그의 장점인 것이다.

이런 조용한 역할 뒤에 간혹 파격적으로 터지는 서세원의 빠른 상황판단과 재치가 그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순발력이 있다. 그래서 서세원의 방송은 자세한 대본이 필요치 않으며, 대신 순간 순간을 임기응변으로 대부분 넘어간다. 준비된 스크립트를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남다른 능력이다. 서세원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드문 연예인이다.

막 떠오르는 신인 TV 배우들이 자신들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사회를 볼 때, 열심히 준비해 온 대본조차 더듬거리며 읽는 모습과 비교해 보면 이는 서세원의 자질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만, 그런 일조차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연예인이 많지 않다는 것도 그의 인기를 높여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서세원의 이런 남다른 능력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오랜 경험과 시련, 그리고 시행착오가 오늘의 그를 만들어 준 것이다.

따라서 서세원은 그만한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가 방송 수입만으로 1년에 3억 원(본인이 주장하는 액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상을 벌고 있으니 자신의 재능 값을 톡톡히 챙기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배보다 큰 배꼽같은 광고수입까지 합치면 그의 한해 수입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가 된다. 광년(光年)단위의 수입인 것이다. 서세원이 한국 최고의 방송스타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그는 ‘이대로 영원히’를 외칠 수 있는 몇 안되는 한국인 중 하나다.

빈익빈 부익부의 스타 시스템

그러나 이렇게 하늘을 찌르는 서세원의 인기가 과연 개인의 능력에서 전적으로 비롯된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그의 편하고 쉬운 진행 솜씨와 순발적 기지가 너무나 특별한 재능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것인지는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몇 개 되지도 않은 방송 프로그램 중 그가 혼자서 다섯 개씩이나 맡고 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위에 던진 수사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부정적이다. 이 땅에는 서세원만한, 또는 그 보다 뛰어난 예비 방송인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그들을 만나보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기회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런 나의 전제가 틀렸다면 시청자들은 아주 불행한 것이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텔레비전에서 같은 얼굴만 봐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왜 방송사들은 아직도 세상에 감춰져 있는 훌륭한 재주꾼들을 제대로 발굴하지 않고 몇 안되는 ‘방송스타’들 만을 선호할까? 소수 방송 엘리트들이 네 댓의 방송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해 똑같은 말투, 똑같은 몸짓, 똑같은 유머, 똑같은 스타일로 많은 시청자들을 식상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방송사들은 오히려 그들을 스카우트하지 못해서 안달일까? 왜 이렇게 기회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방송의 스타 시스템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구조와 꼭 닮았다. 텔레비전 배우, 기자, 아나운서, 개그인(人), 가수가 되기 위해 짧게 살아온 일생을 바치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키워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학원에서, 연습실에서 그야 말로 피를 쏟으며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할 수 있는 자리는 적은 시장구조에서는 인재들이 남아 돌아가게 마련이다.

공정한 기회의 분배는 그래서 중요하다. 시청자들을 훨씬 더 즐겁고 상큼하게 만들어 줄 재주꾼들이 사장될 수 있기 때문에 기회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들을 외면한 채 기존의 소수 방송스타들에게만 프로그램을 맡긴다면 이는 방송사의 직무유기다. 분배에 공정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방송은 영화와 달리 공익 상품이기 때문이다. 전파가 시민의 소유이기 때문에 그것을 잠시 빌려 쓰는 방송사는 영화와 달리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우선 공정한 기회의 분배부터 말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그런 빤한 얘기를 몰라서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자신도 재능있는 다양한 신인들로 구성된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 제작을 염원하고 있다. 그들도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기쁨주고 칭찬받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방송사가 스타들의 겹치기 출연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방송의 구조적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 구조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돈’이라는 것이 숨어 있다. 결국 돈의 문제인 것이다.

방송의 정치경제 : 방송은 시청률을 먹고 산다

그렇다면 방송국에서 서세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세원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98년 서세원은 황금이었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이 지난 한해동안 KBS 2TV에 벌어준 수익효과는 1백40억 원에 이른다. SBS의 경우는 이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서세원의 프로그램에서만 1백70억 원을 방송사에 벌어 주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서세원이 곧 황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좀더 정확하게 비유하자면 서세원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이다.

이들 두 방송사로서는 서세원이 은인인 셈이다. 한참 경제위기에 몰려 잘 나가던 프로그램도 적자가 났던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다 줬으니 두 방송사는 아마 그에게 한두 프로그램을 더 맡기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면 말이다. 이렇게 방송사에서는 서세원 또는 서세원 같은 방송인들만 찾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재주꾼에게는 기회를 몰아 주게 돼 있다. 돈이 되니까 말이다.

바로 여기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이다. 방송사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아야 하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서세원을 불러 들여야 하고, 서세원이 담당하면 광고주가 좋아하고. 물론, 이 역(逆)도 성립한다. 서세원이 없으면 시청률이 떨어지고, 시청률이 떨어지면, 광고가 안 붙고, 광고가 없으면 방송사가 손해고, 손해를 만회하려면 서세원을 불러야 하고…… 끝이 없다. 돌고 도는 다람쥐 쳇바퀴다.

따라서 서세원이 다섯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을 하는 속사정엔 이런 돈의 문제가 개입돼 있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그리고 그 현실은 시청자의 현실이 아니라 방송사의 현실인 것이다. 조금 달리 말하면, 방송은 오로지 방송국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물론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어떤 형태의 방송이든 그 기구가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청률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지 시민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교양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공익적 목표가 방송의 1차적 사명이 절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방송사 현실이 더 중요하니까.

시청률 확보는 그렇다면 시청자와는 상관없는 방송국 내부 사정인 셈이다. 공영방송의 경우 예산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사 조직원들의 사기, 자존심, 그리고 경영자의 명성 등 여러 이유로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도 대중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싶어한다. 이는 한국의 반(半)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 KBS 2TV와 MBC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산을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확보해야 된다는 절박함이 그들을 상업방송보다 더 상업적으로 만든지 이미 오래다. 그들에게 시청률 확보는 최고의 목표이자 가치인 것이다.

상업방송의 경우 시청률 확보는 말 할 것도 없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들로부터 인기가 있어야 거기에 할당된 광고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이 만약 같은 값으로 매겨져 있는 여러 프로그램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가장 많은 시청자가 몰려있는 것을 우선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시청자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상업방송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상업방송의 1차적 사명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다.

방송은 누구를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정된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공영방송과, 준공영, 그리고 상업방송은 매일 매일 각기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이런 경쟁을 마치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한다. 각 방송사 팀을 대표한 프로그램이라는 선수들, 그들은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기 위해 시청률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기가 없는 프로그램은 가차없이 퇴장시킨다. 보다 더 새롭고, 강하고,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으로 그 빈자리를 메우면서 다른 방송국과 끊임없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승 팀에게는 트로피는 물론 더 많은 몫의 광고가 주어진다. 안타깝게도 KBS 1TV의 경우는 상금 없이 월계관만 수여된다. 그들은 명예를 먹고 사는 집단이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방송사에서는 가장 손쉽게 시청률을 올리는 비법을 터득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여전히 결과가 별로 신통치 못하다. 그럴 때마다 방송사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외국의 히트 프로그램 포맷을 그대로 모방하는 일, 외국의 인기 연속극을 표절하는 일, 그리고 섹스와 폭력이 프로그램에 흠뻑 스며들게 하는 일 등으로 방송사들은 간혹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 모든 소동이 시청률 게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런 현상은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애교로 봐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정도만 심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다 저지른 실수라고 속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전세계의 주요 방송 프로그램을 살펴봐도 이제 더 이상 독창적인 창작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든 성공한 프로그램을 조금씩 모방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요즈음 국제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X파일」의 경우도 이것 저것 기존의 성공한 프로그램 형식과 내용을 짜맞춰 만든 ‘혼성모방’이 아니던가?

이는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제작자들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을 재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방송사들이 외국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것은 별로 나무랄 일이 못된다. 문제는 그런 행태가 아니라 그 정도에 있는 것이다. 너무나 노골적인, 그리고 파렴치한 베끼기가 문제인 것이다. 조그만 노력도 없이 모든 것을 거저 먹으려고 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다.

이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진행되는 방송게임이 시청자와는 거의 무관한 일이라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이 게임에서 단지 방송사와 광고주 사이에 주고 받는 상품에 불과한 존재다. 시청자들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방송사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시청해 준 시청자들의 값을 매기고, 그 값을 광고사와 흥정하고, 결국은 그들에게 팔아 넘기는, 그런 상품의 존재가 시청자들인 것이다. 방송사끼리 치고 받아가면서 더 많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싸워 봐야 거기에서 시청자들 몫으로 떨어지는 떡고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바로 이 게임의 불공정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단물은 항상 방송사 차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시청자를 중심으로 한 방송으로 바뀌어야 한다.

서세원의 독주 : 시청자를 무시한 결정

서세원이 다섯 개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것도 분명 시청자들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그런 결정을 시청자들이 내려 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에서는 시청자들이 원하기 때문에 그를 많이 기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그 시청률을 증거 삼아 하는 얘기다. 그러나 만약 서세원의 프로그램보다 더 재밌고, 더 유익한 대항 프로그램을 경쟁사가 방영하여 그보다 많은 시청률을 얻었다면, 그 때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서세원의 존재는 항상 상대평가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상대는 시종일관 유익하기만 한 프로그램이든지 아니면 재미를 도통 찾아 볼 수 없는 프로그램,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은 채, 대부분 재미만 앞세운 서세원의 프로그램과 맞싸워 패배하는 방송사는 물론이려니와 그를 기용한 방송사 또한 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오로지 단물만을 추구하는 악덕 상인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서세원의 프로그램이 과연 재미있느냐를 판단하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의 프로그램이 재미있다고 응답한 많은 시청자들이 대부분 어느 특정 연령 그룹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 중 「좋은 세상 만들기」는 모든 연령층을 망라한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미와 유익성을 함께 갖춘 보기 드문 걸작이다. 서세원의 존재 가치가 바로 그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세계 어느 방송사에서 한 사람이 방송 프로그램을 다섯 개씩이나 담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각기 다른 두 방송사에서 말이다. 한국의 방송사들은 외국방송을 좀더 철저하게 모방해야 한다. 방송의 질을 따지기 전에 우선 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런 기현상은 물론 다섯 프로그램 모두의 질 저하를 초래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것이 출연자의 무성의에서 비롯된 문제라기 보다는 그가 물리적으로 그 많은 프로그램 모두를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세원의 경우 하나만으로도 한국이 아직 전근대적 후진국형 사회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민주적 원칙을 고려하여 의견(여기서는 오락이겠지만)의 다양성을 중시한다면 어떻게 한 사람이 다섯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똑같은 말, 똑같은 유머, 그리고 똑같은 제스처로 일관하는 것을 방송사가 허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폭력을 시민들에게 강요하고도 무사하게 살아 남는 방송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한국 사회는 몇 사람의 연예인이 시민들의 웃음을 책임질 만큼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시민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당연히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가 존재하며, 시민들 자신의 처지에 맞춘, 그리고 그들 자신의 일상을 대변하는 그런 오락을 즐기고 싶어한다. 이런 다양성의 요구를 무시하고 소수의 방송인이 여전히 방송을 독점하고 있다면 이런 바람은 실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비민주적이다. 설령 그것이 방송사의 절박한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해도, 이런 대원칙 앞에서는 그 생존법칙이 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전파는 시민들이 주인인 공공 자산이라 하지 않는가?

이소라를 본받으라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방송인들이 본인들의 매너리즘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시청자들에게 항상 어필할 것이라는 자기 최면으로 날마다 똑같은 스타일을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채널에서 되풀이 하는 것은 연예인으로서 자살행위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급급해 평소의 시간관리와 자기개발의 노력을 게을리 하다가 결국은 ‘재충전’ ‘유학’ ‘방송활동중단’ 이라는 코미디보다 훨씬 더 코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프로포즈」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가수 이소라는 본받을 만하다. 그는 「프로포즈」 하나에만 전적으로 매달려 다른 채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차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녀의 관심과 노력의 결과 이제 이 프로그램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노래를 정말 부를 줄 아는 가수들이 나와 립싱크가 아닌 실제로 노래하는 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방송 시간대의 오락 프로그램이 온통 ‘유치원생들의 유희’만으로 구성돼 있는 현실을 감안해보면 더 더욱 그렇다.

이소라는 방송 연예인들에게 하나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셈이다. 그녀의 절제된 방송 출연이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겹치기 출연을 자랑스런 성공으로 알고 있는 연예인들은 본받아야 한다. 이소라는 프로그램을 하나만 맡는 대신 오랫동안 장수할 당위성을 부여 받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모습을 여기 저기 자주 내비치지 않는 까닭에 자신의 독특한 기행(奇行)마저도 매력으로 돋보이게 하는 부가 급부까지 얻고 있지 않은가. 그는 서양 속담의 교훈을 너무나 잘 숙지하고 있다. 텔레비전에 자주 출연해 시청자들과 ‘너무 허물없이 굴면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familiarity breeds contempt)는 속담 말이다.

물론 서세원은 항변할 것이다. 자신도 겹치기 출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방송사의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사정이라고. 자신을 데뷔시켜준 PD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고, 자신을 출세시켜 준 방송사 간부의 말을 거역하기 어려우며, 자신을 남달리 대우해 준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는 말 할 것이다. 그럴 듯한 변명이다. 그래서 스타들은 모두 자신들의 겹치기 출연에 대한 책임을 방송사에 돌린다.
그러나 이 변명이 그로 하여금 다섯 개의 방송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게 할 당위성을 부여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나 권한이 없다. 전파가 시민들의 재산이기에 그렇다. 다양한 시청자의 취향과 요구를 그가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시청자 그룹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하나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의 그런 역할까지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서세원의 경우 자신의 가치를 드높일 유일한 프로그램은 「좋은 세상 만들기」다. 그가 이 프로그램에 전념하는 것이 곧 훌륭한 방송인으로 오래 남는 길이라는 얘기다. 서세원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가치는 아마 ‘절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절제와 반대되는 과욕의 실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겹치기 출연이 한국 방송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해도 그 1차적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본인의 의지와 결정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물론 출연자 개인의 결심을 강조한다고 해서 방송사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실제로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전적으로 방송사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섯 프로그램을 담당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한마디로 방송사의 직무유기다. 그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가장 손쉽게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방송사의 과욕이 부른 미개한, 반민주적, 후진국 형태의 방송인 것이다.

독립제작제도를 빨리 시행해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스타 시스템 자체를 해체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스타들에겐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타 시스템이 영화에서처럼 소수의 독점현상으로 방송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된다면 이것은 문제다. 그 이유는 방송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방송은 영화와 달리 공익을 우선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에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기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기회의 민주적 배분만이 다양한 공연자를 확보할 수 있고 바로 그것이 곧 시청자를 위하는 길이다.
이런 일을 보다 더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해서는 현재 모든 방송제작을 방송사에서 거의 독점하고 있는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몇몇 스타들을 중심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시청률을 확보해 주기 때문에 방송사에서는 다양한 편성, 과감한 신인들의 기용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현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실험과 모험이 결여된 소수 특정 연예인에 의한, 소수 특정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의 양산을 보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제 이런 전근대적인 프로그램 제작 관행에서 벗어나 방송 프로그램의 접근권을 과감하게 새로운 그룹, 새로운 얼굴, 새로운 목소리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신인들의 프로그램 접근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다양한 재주꾼들을 공개적으로 경쟁시킬 수 있고 그 승자가 방송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택과정에서 다양성이 보장돼야 함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시대정신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또 방송 프로그램을 교양물 위주로 제작하고 편성해야 한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해도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만일 방송사들이 다양성을 존중한 프로그램은 시청률 확보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걱정한다면, 또 그렇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의 제작이나 구매를 주저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방송사가 바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재미라는 욕구와 의미라는 필요를 충족시켜 줄 가능성을 찾아 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프로그램 제작을 맡겨야 한다.

물론 이렇게 바뀐 제도가 방송의 민주화를 하루 아침에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연예 스타 자신들의 절제와 자기계발이 필요하며, 공익을 우선 생각하는 방송사의 자세 변화도 요구되고, 무엇보다 전파의 주인인 시청자들이 그들 자신의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들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에 불만이 있을 때는 그 시정을 당당하게 방송사에 요구해야 한다. 때론 광고주에게까지. 방송사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상전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노력한다 해도 바꿔지는 것은 실상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발전이다. 기회의 민주화를 실현한 작은 진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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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90년대 문화적 코드 한 석 규 정혁 2002/06/28 757
336    남미 ‘해방자’, 볼리바르 송기도 2002/06/28 958
335    이 신 범 의원은 ‘3김 체제의 희생자’인가? 강준만 2002/06/28 951
334    페 리 : 페리 보고서를 아십니까? 강준만 2002/06/28 961
333    벤 추 라 : 대중은 정치인의 ‘솔직’에 굶주려 있다. 강준만 2002/06/28 930
332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8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838
331    머리말: [현대사상] 김성기 주간에게 묻는다 강준만 2002/06/27 821
330    한국엔 '겸손의 자유'도 없다 강준만 2002/06/27 1002
329    정진석 교수님께 드리는 글 강준만 2002/06/27 854
328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께 강준만 2002/06/27 924
327    소신있는 친일파이면 면죄의 대상인가 이희진 2002/06/27 785
326    거꾸로 선 역사바로세우기 - 희비 엇갈린 양 김씨 위택환 2002/06/27 959
325    김대중 대통령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강준만 2002/06/27 814
324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을 위하여 강준만 2002/06/27 1226
323    김훈사건으로 본 국민의 권리,나라의 주권 위택환 2002/06/27 888
322    주인공과 순서가 뒤바뀐 김대중 정권의 역사와의 화해 홍남희 2002/06/27 986
321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 강준만 2002/06/27 775
   시청자 중심의 방송 민주화 조흡 2002/06/27 810
319    홍세화, 갈 수 있는 나라 : 모든 나라 홍세화 2002/06/27 1254
318    ‘두뇌한국 21’은 왜 저지되어야 하는가? 김현아 2002/06/27 771
317    연정희를 위한 변명 지유철 2002/06/27 1175
316    마치(Macchi)대통령과 새로운’ 파라과이 송기도 2002/06/27 896
315    프리랜서와 원고료 최성일 2002/06/27 1139
314    생활의 반성과 후학으로부터 배우는 가르침 박금주 2002/06/27 936
313    강준만 글에 대한 반론 권현민 2002/06/27 913
312    강 고수님 너무 많이 반성하지 마 황연숙 2002/06/27 1130
311    대도들과의 축배 서석권 2002/06/27 800
310    독자들께 드립니다 위택환 2002/06/27 957
309    지방자치단체장 탐구문제있다 한희정 2002/06/27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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