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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최성일
제 목 프리랜서와 원고료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프리랜서와 원고료


내가 프리랜서라는 주제를 놓고 고민하게 된 건 얼마 안된다. 「현대사상」(민음사) 창간호에 수록된 김영민 교수(한일장신대)의 인터뷰를 보고나서부터였으니까 이제 겨우 2년 남짓이다.

남한 사회에서 싱글로 살려면 원칙이 꼭 필요합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보통 세 가지를 들지요. 첫째, 자기 정비, 둘째, 자기 절제, 셋째, 박해에 대한 예감. 아주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생긴 원칙이지요. 우리 사회에는 프리랜스 문화와 마찬가지로 싱글 문화도 없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따질 때 싱글과 프리랜서에 대한 대접을 눈여겨 보면 아마 좋은 잣대가 될 것입니다.

맞다. 우리 나라에는 프리랜스 문화가 없다. 할거주의와 연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서 프리랜서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조직의 울타리와 직함을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신문과 잡지에서는 틈만 나면 독자들에게 프린랜서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는다. ‘프리랜서 붐’이니, ‘프리랜서의 허와 실’이니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살아 있는지 프리랜서에 관한 기사의 모두에는 언제나 유보적인 단서가 따라붙는다. “프리랜서 직종이 대량 실업시대 전문인력의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를 전망이다.”

프리랜서, 환상 속의 그대

그러나 어느 기사에서도 프리랜서 시대의 도래 시기를 분명히 밝히는 경우는 없다. 기껏해야 ‘선진국으로 갈수록 각광받는 직업’이라는 표현을 쓸 뿐이다. 물론 프리랜서에 관한 기사를 쓰는 이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프리랜서의 존립을 어렵게 만드는 제반 여건에 대한 언급은 자칫 기사의 전제를 위태롭게 할뿐더러 명확한 시점이야 그네들이 점쟁이도 아닌데 어찌 알겠는가?

문제는 프리랜서에 관한 기획기사의 팩트에 왜곡이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프리랜서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 대상인 보수 부분이 그렇다는 것은 자못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출판관련 프리랜서의 수고비는 기사와 현실 사이에 격차가 있다. 프리랜서 알선업체가 제시한 자료와 내가 받아온 금액 사이에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선 보수의 명목부터 다르다. 일부 알선업체에서는 원고료를 취재대행료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여간 취재 대행으로 받는 보수의 단가가 적게는 8,000원에서 많게는 1만 5천 원이나 된다. 단가의 기준은 200자 원고지 한 장 분량이다. 이러한 수고비는 알선업체 몫인 얼마간의 알선 수수료를 제하더라도 실제 원고료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오히려 하한선은 취재대행비가 원고료에 비해 훨씬 높다. 나의 원고료 단가는 3,000원에서 1만 2천원 사이를 오간다. 물론 실제 원고료의 진폭은 이 보다 크다. 대략 1,500원에서 5만원까지로 보면 된다. 이 한도를 벗어나는 액수는 큰 의미가 없다.

원고료가 가장 짠 매체는 지방자치단체의 간행물로 가히 ‘관급 공사비’ 수준이다. 풍문으로 들었을 적에는 설마 그러려니 했는데 소문의 진실을 확인할 기회가 왔다. 구정소식지를 보다가 다음과 같은 문구에 눈길이 갔다.

지역문화예술인 및 사회저명인사, 구민, 학생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글을 실어 소개함으로써 문예창작활동의 저변 확대를 기하고 구민정서 함양에 기여하고자 종합문예지 발간에 따른 구민여러분의 원고를 받습니다.

나는 독후감을 한 편 써서 보냈고, 한참 후에 구청으로부터 두툼한 책 한 권이 배달됐다. 그 책에는 내 글이 실려 있었다. 원고료를 받을 요량으로 구청 문화홍보실에 문의전화를 했다가 나는 엄연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반 시민에게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이 기회에 구청에서는 원고료를 얼마나 주는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대답은 2만 5천원. 단가가 아니라 편당 고료가 그렇다는 얘기였다. 그나마 지역문화예술인 또는 사회저명인사의 축에 들지 못하는 나같은 프리랜서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원고료는 그 매체의 거울

분명히 번듯한 직함은 ‘몸값’을 올려주는 중요한 요소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출판전문 매체에 1년 가까이 기획물을 연재한 일이 있다. 이 때 고료가 원고지 한 장당 1만원으로 나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명망가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안 다음에는 그런 기분이 싹 없어져버렸다. 일주일에 한번 쓰는 유명인사의 고료가 내가 한 달에 네 번 써서 받는 돈과 맞먹어서다.

“무엇을 당장 주는 자는 두 배를 주는 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원고료를 당장 받아서 두 배의 기쁨을 누린 경험은 흔치 않다. 원고료는 철저하게 후불제다. 그것도 글이 지면에 실린 다음에야 기대할 수 있는 절차다. 아무리 정성들여 쓴 원고라도 게재 안된 글에 대해서는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원고료가 내 통장에 입금되는 시기는 매체마다 다르다. 대체로 매체가 유통을 개시한 시점으로부터 일주일에서 한 달 사이에 이뤄진다. 어떤 때는 한 달 넘게 지급이 늦어지기도 한다. 연재를 하는 경우, 두세 달 넘게 원고료가 밀리기도 한다. 이러면 원고료를 떼일 염려가 있다. 원고료의 지불이 늦어진다는 건 해당 매체의 자금사정이 나쁘다는 증거다. 아니면, 늦게 줘서 행복체감지수를 반감시키려는 악의의 소산이든가 둘 중의 하나다.

나는 원고료를 받아오며 매우 흥미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됐다. 원고료는 그 매체의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원고료의 수준은 해당 매체 종사자들의 급료 수준에 정확히 비례한다. 또 원고료의 지급 방식은 그 매체의 복지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외부인에게 두배의 기쁨을 주는 자는 어김없이 내부의 사람들에게 두 배의 기쁨을 주고 있었다.

양반기질과 희작정신

우리네 정서에서 원고료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점잖치 못한 짓이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와는 사정이 다른 모양이다. 사나다 히로코(인하대 국문과 박사과정)씨가 문학의 상품가치를 중심으로 두 나라 작가들의 의식을 비교·고찰한 <글 파는 사람들>(대학원 리포트)에는 문학의 상품가치에 대한 양국 작가들의 판이한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일본에서 원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한 건 18세기 후반이다. 일본에서 원고료의 출현은 ‘희작’(戱作)이라는 장르와 관련이 있다. 희작은 에도시대 후기의 대중소설을 일컫는 용어로 심심풀이 삼아 지은 글을 말한다. 1791년 산토 교덴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교덴이 전업작가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담배 가게 주인이었고, 희작은 그의 부업이었다.

한국에서는 1910년대까지도 원고료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이광수가 1917년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하며 다달이 사례를 받기는 했었다. 허나 그것은 ‘학비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되었다. 실질적으로는 원고료였으되 매문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 나라에서 원고료의 개념은 1920년대 초반 움을 틔우기 시작해 20년대 후반에 가서 정착하기에 이른다.

사나다씨는 두 나라 작가들의 상이한 작가의식은 독자와의 관계 설정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상품으로서의 문학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희박한 한국 작가는 항상 독자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데 비해, 일본작가는 글을 파는 장사꾼이라는 낮은 지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양반기질’과 ‘희작정신’이라는 서로 다른 작가의식의 발로로 본다.

한국작가들의 양반 문인적 집필태도에서 오는 부정적인 면으로서는 글쓰기에 있어서의 서비스 정신의 결여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더 많은 고객을 모으려는 백화점이 서비스를 개선하고 화려한 선전을 하는 것처럼, 글을 팔아서 먹고 살려면 필연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 독자나 편집자의 눈에 띄기 쉬운 글을 쓰게 되지만 한국문학은 그런 customer friendly(손님에게 친절한)한 면이나 오락적인 요소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이토 세이(伊藤整)의 글처럼 익살스럽고 웃기는 문학평론을 상상할 수가 있을까? 이어령 같이 자극적인 평론을 쓰는 사람도 그 태도는 역시 고답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리랜서 문필가에게 가해진 비판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된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지식게릴라·문화비평가·자유기고가로 불리는 프리랜서 문필가의 세계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때 프리랜서 문필가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된 것이 바로 ‘시청률 지상주의 글쓰기’라는 혐의점이었다.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를 못입어

특히, 「한국의 지식게릴라」(민음사)에 실린 글들이 집중적으로 그런 혐의를 받았는데 이 책은 스타급 프리랜서 문필가들을 총출동시킨 기획물이다. 나로서는 나보다 한발 앞서 있는 동업자들의 글을 한꺼번에 접하게 되어 무척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조병준씨의 <프리랜서 또는 ‘튀는 팝콘’을 위하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글은 첫 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초짜’ 프리랜서의 자기규정부터 그랬다. 그는 후배의 안사람으로부터 프리랜서의 정체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한다. “간간이 벌어 근근히 먹는 사람을 말해요.” 이윽고 그는 월수입이 30만 원 가량 되었던 당시의 광고카피 하나를 떠올린다.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를 입는다.” 어느 제화업체의 의류사업부에서 만든 ‘프리랜서’라는 브랜드의 옷 광고에 들어 있는 문구를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뿐이었다.

이제 그는 월수 1백만 원은 되는 잘 나가는 프리랜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무려 10년의 모진 세월을 참아낸 점을 필히 기억해야 한다. 둘째 장 ‘어느 잘 나가는 프리랜서의 수입에 관한 짧은 기록’을 읽는 내 심정은 그래서 편치 않다.

(일당 4만3천원) 그 일당으로 한 달 내내 글을 쓰면 약 1백30만원의 월수가 가능해진다. 가방끈도 남들만큼의 길이는 되고, 그래도 잡지 동네에서는 꽤 팔리는 축에 속하는데도 내가 순전히 ‘내 글’만 써서 벌 수 있는 돈은 그게 최고치다. 원고지 장당 6천 원.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언론사와 대출판사에서 제시하는 금액이 바로 그것이다. 대학 신문은 3천 원, 여성지는 5천 원. 조달청 가격 비슷하게 공시가가 형성되어 있다. 큰 매체는 이를테면 필자의 ‘프로모션’ 기회가 되므로 원고료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는 묵계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고료 안 받고 쓰겠다는 사람들이 줄 서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내 원고료의 평균치도 6,000원이다. 더러 1만 원짜리 원고를 쓰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는 예외없이 분량이 적다. 고작 10장 안쪽이다. 이런 상황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나는 ‘원고료의 현실화’를 고대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평균 단가가 1만 원만 됐으면 좋겠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나름대로 두 가지 원칙을 세워 지키려고 노력한다.

‘원고료 꼭 받기’와 ‘남의 일감 빼앗지 않기’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다. 우선, ‘원고료 꼭 받기’는 가수 최백호씨에게서 한 수 배운 것이다. 그는 「말」(98년 11월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방송공사의 「열린음악회」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무료공연이 없어져야 해요. 「열린음악회」가 전국을 다니면서 무료 공연을 하다 보니까 가수들의 콘서트에 청중이 모이질 않아요. 이건 문화 말살이에요. 2천 원을 받든지, 5천 원을 받든지 받아야죠. 그걸 공짜로 보는 사람이 3, 4만 원 내고 가수들 콘서트 오나요. 안 와요.

물론 나는 아직 그 정도의 프로의식은 갖추지 못했다. 그래도 유가지에 대해서는 이 원칙을 관철하려고 한다.

‘남의 일감을 빼앗아선 안된다’

‘남의 일감 빼앗지 않기’는 프리랜서가 명심해야 할 대원칙이다. 이건 독신자의 ‘자기 절제’에 버금가는 기율이다. 프리랜서는 결코 ‘대체 인력’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프리랜서는 자원봉사자와 비슷한 처지다. 그러므로 지난번 서울시 지하철공사 노동조합의 파업 때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준 ‘월권 행위’는 프리랜서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월) 22일 아침부터 서울시내 일부 지하철역에는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역무원이 하던 매표와 승차안내 업무에 나섰다. 이것은 시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것으로 보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하철 노조의 파업을 방해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자원봉사자는 직원의 고용 안전을 위하여 직원이 하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윤리원칙을 지켜야 한다.

‘볼런티어21’ 이강현 소장이 「한겨레」의 독자투고란을 통해 환기한 자원봉사자의 윤리원칙이다. 또한 이 소장은 “자원봉사자가 시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활동은 좋은 일이나 다수의 혜택을 위해 소수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자원봉사는 윈·윈 결과를 위해서 하는 활동”이라고 덧붙였다.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나는 경제난이 가중돼 잡지사의 기자들이 대거 쫓겨나면 일감이 많아지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어리석은 발상이었다. 실제로는 정규직의 입지가 탄탄해야 프리랜서에게 오는 기회가 많아진다. 반대로 정규직의 입지가 흔들리면, 프리랜서의 일거리는 거의 없어진다. 왜냐하면 프리랜서는 고용 피라미드의 최말단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유기고가는 그렇다.

최근 들어 CD 비디오 인터넷 등 첨단 멀티미디어의 발달은 첨단문명과는 거리가 먼 듯하게 느껴지는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승희, 김정란 시인의 자작시 노래 및 낭송 CD 시집 「사이렌 사이키」는 그런 점에서 선두라 할 만하다.

시 전문 월간지 「현대시」가 모체가 되어 설립한 현대시 엔터테인먼트는 첫 작품으로 두 시인의 음반시집(신나라뮤직·1만5천원)을 펴냈다. 이 시집은 두 시인 이외에도 사공들이 많다. 14편의 시를 위해 감독 신시사이저 키보드 프로그래밍 어린이합창 등에 수십 명의 인원이 동원된 것이다. 두 개의 CD로 나눠진 이 시집은 1집 정신측정(위승희 편), 2집 건너편의 여자(김정란 편)로 이뤄져 있다.

장중하고 때론 경쾌하며 열정적이고 고요한 음향들은 시와 시인의 의도를 쉽게 느끼게 해주는 효과적인 전달수단이다. 물론 두 시인의 생생한 음성은 시적 효과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위 시인의 음반은 말로와 김만중 두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말로의 곡은 재즈와 발라드가 조금씩 가미됐고 김만중씨의 곡은 한국적이며 드라마처럼 구성돼 있다. 김 시인의 시 6편은 모두 김만중씨가 새로 작곡한 곡에 실려 있다.

제목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선원들은 물로 걸어내려와 죽는다고 한다. 사이렌의 목소리는 일상 속에 함몰돼 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운다. 반면 사이키는 에로스의 연인이다. 그녀와 에로스의 깨가 쏟아지는 사이를 시샘한 언니들의 농간으로 애인에게서 버림을 받지만 고통스런 방황 끝에 다시 에로스와 재회한다. 사이키는 고통스러워 헤매는 모든 영혼을 위안한다. 그 사이렌역을 위승희 시인이, 사이키역은 김정란 시인이 맡았다. 김정란 시인을 만나 멀티미디어 CD시집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 멀티 미디어 시집은 어떻게 만들게 됐습니까?
오래 전부터 늘 생각을 해왔습니다. 미디어 환경이 많이 바뀌었는데 언제까지나 종이에만 머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출판인들에게 제안을 해 봐도 이들에겐 그런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월간 현대시와 뜻이 맞았어요. 시 낭송에서 진일보해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노래형식으로 포맷을 정했습니다. 가수를 시켜 시를 낭송하거나 노래하는 것도 생각했으나 이 경우 가수라는 정형화된 퍼스낼리티에 시가 종속되는 본말전도 현상이 생길까 우려됐습니다. 시인이 주체가 되는 시를 원했으니까요. 그래서 노래의 형식으로 시를 전달할 수 있는 탤런트 기질을 가진 시인을 찾았습니다. 바로 위승희씨였죠. 그 분은 탁월한 록 비트 감각을 갖고 열정적인 정열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와 만나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낸 시집을 만들게 됐습니다.

─ 시를 살려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를 일상의 피로를 위로하는 멜로적 감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편견은 그동안 문학을 애매모호한 감성의 틀에 가둠으로써 의도적으로 주체의식과 비판정신을 갖지 못하도록 했던 권력자의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시대를 해석하는 인식의 틀입니다. 시적 인식을 통해 자신의 깊은 내면 속에서 세계와 역사를 이해하고 억압에 버티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시가 감상성에 안주함으로써 대중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면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에 우리가 한 시도는 미디어를 바꿈으로써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 이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시집의 기본 컨셉은 ‘영혼관리’입니다.

─ 사이렌, 사이키라는 형식을 빌린 이유는.
문명과 정보세계에 파묻혀 있는 자아, 신화적 자아를 일깨우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우는 게 사이렌이라면 일깨워진 자아를 데리고 내면여행을 떠나는 것이 사이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여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로 돌아와야 합니다. 역사 안에서 현실을 이해하고 발언하며 바람직한 현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 이 시에서 내면여행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요.
사이렌은 <문>을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문에서 나와 광주를 거쳐 80년대의 비극적 현실을 되돌아봅니다. <겨울여행>에선 마지막으로 영혼의 대수술이 진행됩니다

─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군홧발 소리를 담은 <비겁한 정원사>는 어두웠던 과거에 너무 집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80년 당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을 야유하고 비겁했던 자신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80년대의 원죄의식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80년대는 절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박정희와 화해할 권리를 주었습니까.

─ <건너편의 여자>에서 잃어버린 내면은 무엇을 말합니까.
남자든, 여자든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여성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이 나아질 수 있는 희망적인 요소입니다.

─ 심청, 장화, 홍련은 이해가 가는데 뜬굼없이 민비가 나오는 이유는.
앞의 세 사람이 신화라면 민비는 역사입니다. 민비는 남성화된 담론의 비참한 희생자라고 봅니다. 식민통치야 말로 남성담론의 전형입니다. 하나의 코드화된 상징으로 보면 됩니다.

─ 대중성을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웃음).
HOT CD도 1만 원 이상 합니다. 그런데도 사겠다고 장사진입니다. 시인과 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열을 모아 만든 시집입니다. 좋은 시는 많으나 시인들 사이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조차 시인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시인 스스로 대중을 찾아가야겠다는 절박감을 인식하고 나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 시집의 출반이 시단 전체와 시의 활성화를 위한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정리 : 위택환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1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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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남미 ‘해방자’, 볼리바르 송기도 2002/06/28 958
335    이 신 범 의원은 ‘3김 체제의 희생자’인가? 강준만 2002/06/28 951
334    페 리 : 페리 보고서를 아십니까? 강준만 2002/06/28 961
333    벤 추 라 : 대중은 정치인의 ‘솔직’에 굶주려 있다. 강준만 2002/06/28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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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김훈사건으로 본 국민의 권리,나라의 주권 위택환 2002/06/27 888
322    주인공과 순서가 뒤바뀐 김대중 정권의 역사와의 화해 홍남희 2002/06/27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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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랜서와 원고료 최성일 2002/06/27 1139
314    생활의 반성과 후학으로부터 배우는 가르침 박금주 2002/06/27 937
313    강준만 글에 대한 반론 권현민 2002/06/27 914
312    강 고수님 너무 많이 반성하지 마 황연숙 2002/06/27 1131
311    대도들과의 축배 서석권 2002/06/27 800
310    독자들께 드립니다 위택환 2002/06/27 957
309    지방자치단체장 탐구문제있다 한희정 2002/06/27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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