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안티조선 커뮤니티 우리모두 -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악랄하게.. 또박또박..
관리자 메일  |   사이트맵  |   연결고리  |   관리 원칙   
공지사항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
제발 이상한 공지사항좀 ...
우리모두 후원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쟁점토론 베스트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정 안내 (~'21.01.15)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련 논의 진행 중입니다.
 미디어법과 다수결
 광복절 앞날 읽은 신채호의 글
 8개의 나라중 5는 같은 편 3은 다른편.
 균형이 다시 무너졌군. 간신히 잡아 논건데,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는군..
 악인은 너무나 쉽게 생겨나고.. 착한 사람은 쉽게 생...
 태평성대에 관하여
 음 ...이 냥반도 군대 안갔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자들 혹은 노동단체...
 세상 참 불공평하지 -박재범을 보며
 천재면 뭐하나?
 궤변론자 최장집
 국정원고소사건 환영!!

접속
통계
오늘 47
전체 7092740
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송기도
제 목 후지모리의 독선과 파국
후지모리의 독선과 파국

송기도∥전북대 교수·중남미 정치∥


대통령 당선과 ‘상처뿐인 영광’

야당 후보인 똘레도(Alejandro Toledo) ‘페루 가능성’(Peru Posible)당 후보가 부정 선거를 이유로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5월 28일의 페루 결선투표에서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후보가 당선됐다. 이로써 후지모리는 페루 역사상 처음으로 세 번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이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그는 당선의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최악의 정치위기를 맞았다.

페루선관위(ONPE)에 의하면 81%의 투표율을 보인 결선투표에서 후지모리 후보는 51.2%인 6,041,685표를 얻었고, 출마를 거부한 똘레도는 17.7%인 2,086,215표를 얻었다. 그러나 1차 투표시 2.3%에 지나지 않았던 무효표와 백지투표가 무려 31.1%에 해당하는 3,672,410표에 달했다.

무효표가 전체의 1/3이나 된 이유는 페루 선거법상 투표에 불참할 경우 월 최저생계비의 1/3에 해당하는 약 3만5천 원의 벌금을 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억지(?)로 투표장에 간 국민은 똘레도 후보의 제안대로 투표용지에 “부정 선거”라고 썼다. 그 표가 전체 투표의 1/3에 달한 것이다.

선거 결과 후지모리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국내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에 처했다. 페루 전역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군이 동원되었다. 똘레도 후보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선언했으며, 후지모리가 퇴진할 때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후지모리가 제외된 공정한 선거를 다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미주기구(OAS)와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와 미국·캐나다·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세계, 그리고 아르헨티나·칠레·브라질·코스타리카 등 역내국가들도 광범한 부정선거에 이의를 제기했다. 새로운 개표 시스템을 검증하기 위해 선거를 연기해 달라는 국제 선거 감시단의 요청을 거부하고 실시된 이번 선거가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미국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이번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진 선거’였음을 강조하고 국내외 비난을 일축하며 결선투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결선투표 연기는 선관위의 고유권한으로 그것은 법절차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페루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은 야당이 선거결과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똘레도 후보는 선관위에 대선 후보 사퇴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이번 결선투표는 공정한 게임이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번 선거는 대통령 선거만 치른 것은 아니었다. 4월 9일 동시에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후지모리가 이끄는 ‘페루 2000’ 연합은 42.2%의 득표로 의회 의석 120석 중 52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는 67석으로 과반을 넘었던 지난 의회와 비교해볼 때 참패한 것이다. 15석의 의석 감소로 인한 수적인 영향력 저하뿐만이 아니라, 여소야대 의회가 됨으로써 정국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반면 처음 선거에 나선 똘레도 후보의 ‘페루 가능성’당은 23.3%의 득표로 26석을 차지해 제 1야당이 됐다. 그리고 나머지 42석은 9석을 얻은 ‘도덕독립전선’(FIM), 6석을 얻은 ‘미주인민혁명동맹’(APRA)등 8개의 정당이 차지했다.

3선 출마와 부정선거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출마자격이었다. 1999년 말 후지모리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3선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좌·우파를 초월한 야당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새로운 형태의 쿠데타라며 일제히 비난하고, 노동자와 대학생들도 연일 항의시위를 벌이며 출마철회를 촉구했다. 야당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3선 출마가 현행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 것이라며 선거법원에 위헌소송을 내는 등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돌입했다.

지난 93년 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고쳐 개정한 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한 번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95년 신헌법에 의해 재선된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출마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관위는 후지모리 대통령이 신헌법에 의해 처음 대통령에 선출되었기 때문에 이번 출마는 3선출마를 금지한 93년 개정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헌법상 아무 하자가 없다고 해석했다.

위헌 논란 속에서 치러진 2000년 4월 9일의 1차 투표에서 후지모리 대통령은 49.8%를 얻어 40.2%의 득표를 한 똘레도 후보에 10% 가까이 앞섰으나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6개의 모든 방송사와 주요 언론을 완전히 장악한 정부 여당은 선거기간 동안 TV와 언론을 통해 원주민 출신의 똘레도 후보를 무차별 공격했다. 반면 야당은 TV를 통한 선거 홍보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가능했지만 야당은 돈을 주어도 정치광고를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정부를 비판한 기자와 신문사는 테러를 당했다. 관권과 금권에 의한 부정선거가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유권자 명부를 수천 명씩 조작했으며, 헌법상 투표권이 없는 군인들에게 위조 신분증을 발행해 투표하게 하였다. 또 1차 투표가 끝나고 발표된 출구조사가 6시간 만에 뒤바뀌는가 하면 개표가 나흘 동안이나 계속됐다.

투표 직후 발표된 {깜비오}지의 출구조사 결과는 똘레도 후보가 48.5%, 후지모리 42.7%였다. 그러나 6시간 후인 오후 10시에 정정 발표된 출구조사는 후지모리가 47.4%로 똘레도를 4.1% 앞서 있었다.

투표 다음날 40%의 개표를 진행한 선관위가 후지모리 후보가 49.8%를 득표했다고 발표하자, 국제투명위원회는 “이는 믿을 수 없는 수치이다. 어느 후보도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만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이는 부정에 의한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후지모리는 부정선거를 통해 과반수를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중되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야당의 반발로 결국 결선투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95%의 개표를 하고 나머지 5%의 개표를 하는 데만 24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페루의 정세는 긴박했다.

페루 선관위는 1위를 차지한 후지모리와 차점자인 똘레도 후보의 결선투표일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일과 같은 5월 28일로 결정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투표일이 먼저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선거를 3일 앞두고 투·개표 집계 전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며 대선과 총선을 연기했다. 반면 컴퓨터 조작 등을 이유로 똘레도 야당후보와 미주기구, 국제선거 감시단은 결선투표를 2주일 이상 연기할 것을 요구했으나, 페루 선관위는 전국의 투·개표소 컴퓨터를 하루 만에 점검한 뒤 컴퓨터 조작을 통한 선거부정 우려는 기우라며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똘레도 후보는 결선투표 참가를 거부했으며, 미주기구와 유럽연합은 선거 감시단을 철수시켰다. 감시자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결선투표에 대해 페루 선관위 뽀르띨요 컴퓨터 실장은 “神이 위대한 감시자이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개입과 불간섭원칙

미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과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 남미 주요 국가들은 후지모리의 재선은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캐나다는 대사를 소환하였다. 미국은 페루와의 관계가 재정립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후지모리가 결선투표를 강행했고 당선됐다.

국제사회는 개표 절차 등의 하자를 들어 결과 인정을 거부하고 제재조치 거론 등 압력을 가중시켰다. 미주기구와 유럽연합의 선거 감시단은 투·개표 컴퓨터의 오류를 방치한 채 선거가 진행된 이상 결선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도 결선투표일 성명을 통해 ‘후지모리 대통령의 결선 승리는 비합법적이며, 중남미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따라서 이번 결선은 무효라고 말했다. 비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국가원수가 선출된다면 그 정권은 국민들에게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후지모리 정부는 이번 결선을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를 훼손시킬 경우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미주기구 결의안 1080조에 따라 페루에 대한 경제제재를 논의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강경하던 입장이 조금씩 완화되었다. 중남미 국가들은 ‘불간섭원칙’을 들어 페루의 사태가 쿠데타나 헌정질서의 중단을 초래한 것이 아닌 페루의 국내 문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19세기 초 독립 이후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의 직·간접의 수많은 내정 간섭을 겪은 중남미 국가들은 ‘불간섭원칙’을 대외정책의 주요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도 이 같은 역내국가들의 의견에 부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독일 베를린의 중도좌파 정상회담에 참석 중인 브라질의 까르도주 대통령, 아르헨티나의 데 라 루아 대통령, 그리고 칠레의 라고스 대통령은 6월 4일 페루 사태에 대한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까르도주 대통령은 공동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페루 선거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다.

페루에서 선거가 있었으며, 그 결과 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 그곳에서는 쿠테타가 없었고 선거가 있었다. …… 페루 국민들이 결정했다.

남미의 주요 국가인 세 나라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후지모리 정부에 제재를 가하기 위해 역내국가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미국은 최근 새롭게 선출된 3명의 남미 대통령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또한 헬러 멕시코 대사는 미주기구 결의안 1080조는 쿠데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미주기구 총회에서 페루에 대한 제재조치가 내려지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을 명확히 표명했다. 사실 이는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멕시코는 1848년 텍사스,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뉴멕시코 등 국토의 반을 빼앗기는 등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수많은 고통을 당했다. 멕시코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외국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웠다. 따라서 1910년 혁명 이후 ‘불간섭원칙’을 대외정책의 초석으로 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국제사회, 특히 미주기구 내에서 미국에 저항해 싸워왔다.
2000년 6월 4∼6일 캐나다의 윈저시에서 아메리카 대륙 3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미주기구’ 외무장관 특별회의가 열렸다. 예상했던 대로 페루에 대한 제재조치는 논의되지 않았다. 단지 페루 결선투표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페루 선거절차와 민주주의 제도상의 결함을 나타냈다고 지적하고, 미주기구는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하는 데 협력하기 위해 페루에 대표를 즉각 보내기로 했다.

후지모리의 업적과 신독재

페루 사회의 ‘변화’를 주장하며 지난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된 일본인 2세인 후지모리 대통령은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정치인이다. 후지모리는 ‘변화 90’(Cambio 90)당을 만들어 부패한 정부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정직·근면·기술’을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고 ‘가난한 자의 혁명’을 외치며 백인 중심의 기득권 세력에 도전했다.

그리고 1990년 6월 10일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세계적인 작가인 바르가스 요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예상 밖의 결과였다. 1차 투표에서 25%를 득표해 바르가스 요사에 3% 뒤졌으나 결선투표에서 57%로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민영화와 시장개방, 긴축정책 등 신경제 정책을 펴 연 7천%에 달하는 인플레를 진정시키고, 모택동주의자인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과 뚜빡 아마루(Tupac Amaru) 등 반정부 무장 게릴라를 궤멸시킴으로써 국내 치안을 안정시켰다. 또한 대외관계에 있어서 독립 이후 계속돼 온 에콰도르, 칠레와의 국경 분쟁을 페루에 유리하게 해결했다. 덕분에 95년에는 60%의 지지율로 1차 투표에서 꾸에야르(Javier Cuellar) 전 유엔 사무총장을 손쉽게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후지모리 대통령은 민주주의 제도를 무시하고 정치적 독단을 주저하지 않았다. 소위 ‘신독재’를 편 것이다. 후지모리는 1990년 예상을 깨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의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채 집권했다. 여소야대의 국회였다. 따라서 후지모리는 야당과의 타협보다는 대통령령에 의존해 정책을 추진했고, 야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후지모리의 이 같은 태도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의회와의 갈등은 결국 92년 4월 5일 군부의 지원을 받은 후지모리가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킨 뒤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기능을 정지시킴으로써 끝났다.

또 야당의 저항 속에 대통령 연임을 보장하는 새 헌법을 제정해 1995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 또다시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당선되었지만 5년의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르헨티나의 까를로스 메넴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결국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고 5년 후를 기약했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헌법재판소 판사들을 파면하면서 자신의 정권연장 야욕을 합법화하는 무리수를 강행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몬떼시노스 국가정보원장을 통한 정보정치와 군부 및 정보기관의 인권유린을 폭로한 방송사 사장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10년 전 변화와 개혁을 주장했던 후지모리가 이제는 독재자로서 바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선투표 직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군중들은 후지모리의 하야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지만 침묵을 지키고 있는 후지모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모든 TV방송사들은 눈과 입을 닫고 있었다. 선거 직전 후지모리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을 생방송으로 방영하던 TV들이 그 시간에 영화를 방영하였다.

‘똘레도 현상’

똘레도는 5년 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4%도 득표하지 못했다. 그리고 작년 말까지만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선거를 한 달 남겨둔 시점부터 똘레도 후보의 지지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똘레도 현상’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인기가 수직상승하며 후지모리의 3선 연임을 막을 유일한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54살의 똘레도 후보는 페루 180년 역사에 처음으로 “잉카 문명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에 참여해 당선 가능성을 보인 인디오 출신이다.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수백 년 전 망망대해로 떠난 태양의 신 ‘비라꼬차’가 다시 나타난 것이라고 흥분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가난과 억압에서 구원할 새 지도자로 똘레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10년 전인 1990년에 후지모리를 지지했던 인디언과 메스티조들이 후지모리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똘레도에게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지난 수백 년 간 12%도 안 되는 백인이 정치와 경제를 독점하고 메스티조와 인디오들은 이들 백인들에게 굴종해왔다. 지난 2백 년 간 메스티조와 인디오는 말 그대로 페루 사회의 대상이자 객체였다.

인디오 출신인 똘레도는 16남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구두닦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 똘레도는 주경야독 끝에 페루 산프란시스코대학 경제학과에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지방의 신문기자로 일하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장학금을 받아 경제학 석사와 교육학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그리고 미국의 힐러리와 비교되는 벨기에 출신인 카프(karpf)와 결혼했다. 카프는 7개 국어에 능통한 인류학자인데 페루 원주민 언어인 께추아어를 구사해 인디오와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똘레도 인기의 급격한 상승은 정치공작에 의해 우연히 이루어진 측면도 있다. 사실 후지모리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안드라데(Alberto Andrade) 현 리마시장이었다. 여론조사에서 40% 가까운 지지를 받아 후지모리를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오른팔인 몬떼시노스 국정원장의 집요한 정치공작에 의해 결국은 경쟁 대열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연합의 까스따네다(Luis Castaneda) 후보를 다시 선택했다. 까스따네다의 지지가 상승하자 다시 몬떼시노스의 정치공작이 되풀이 됐다. 결국 두 후보가 모두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저질, 황색보도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 동안 똘레도는 산간오지를 돌며 인디오들에게 자신을 호소하며 선거전을 펼치고 있었다. 주요 상대 후보를 모두 ‘제거’한 후지모리 진영에서 볼 때 똘레도는 관심 밖의 후보였다. 선거 3주 전까지도 똘레도에 대한 후지모리 측의 비판이 전혀 없었다. 똘레도는 마음놓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유일하게 남은 똘레도에게 민중들의 지지가 밀려든 것이다. 하루에 반 포인트씩 지지가 늘어갔다. 어떤 의미에서 똘레도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국민들이 만든 후보였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4

2002/06/27 (23:10:34)    IP Address : 211.195.124.241

608    수학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변정수 2002/06/27 1033
607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7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1215
606    정형근 씨가 압승한 현실에 대한 짧은 생각 홍세화 2002/06/27 1250
605    비판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강준만 2002/06/27 1013
604    김대중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2002/06/27 1163
603    한나라당내 개혁파 의원들과 {조선일보}에 드리는 편지 구교형 2002/06/27 1079
602    강 교수님과 {인물과 사상}에 드리는 글 박상희 2002/06/27 879
601    386세대의 허와 실 박주현 2002/06/27 928
600    들어라 학생회! 김성식 2002/06/27 862
599    나는 이제 희망을 버렸다 정창호 2002/06/27 856
598    '서울공화국'은 지역감정을 키우는괴물이다 강준만 2002/06/27 1016
597    중국이 서부로 눈을 돌린 까닭은? 송원찬 2002/06/27 877
   후지모리의 독선과 파국 송기도 2002/06/27 1190
595    {말}과 {한겨레} 어디로 가야 하나? 강준만 2002/06/27 979
594    {조선일보}; 뻔뻔해야 성공한다 강준만 2002/06/27 1135
593    '오버'와 '가치판단' 신선우 2002/06/27 887
592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아라 2002/06/27 1069
591    어둠의 세력이 지배하는 사회 고은광순 2002/06/27 1011
590    전지현의 테크노 댄스와 카니발 조흡 2002/06/27 997
589    솔직(率直)함에 대한 오해 유승재 2002/06/27 853
588    국방군사연구소장의 '폭행', '인권 유린' 유재성 2002/06/27 1009
587    교보문고 비판에 대한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재비판 최희경 2002/06/27 919
586    좀더 개성 있는 출판섹션을 보고 싶다 최성일 2002/06/27 880
585    그래서 언론개혁! 김현석 2002/06/27 792
584    강준만 교수는 먼저 자신을 팔아라! 미둥 2002/06/27 865
583    봉두완의 {SBS 전망대} 유감 엠버 2002/06/27 1007
582    민주노총 지도부에 바란다 유근종 2002/06/27 862
581    문병란 교수의 {조선일보} 사랑 유재권 2002/06/27 899
580    5월 광주는 젊은 의원들의 음주를 허락한다 정계훈 2002/06/27 917
579    {조선일보}는 E-메일 서비스도 대단하더군요 정철웅 2002/06/27 909

[1] 2 [3][4][5][6][7][8][9][10]..[22] [NEXT]

Admin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WiZ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