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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유홍준과 오동명: 엉터리와 진짜
잠을 빼앗아간 오동명의 책

지난해 “사장님, 힘 내세요!”라는 명언(`?`)을 탄생시켰던 ‘중앙일보 사태’ 때 {중앙일보} 내의 집단 이기주의 광풍에 홀로 외롭게 도전하여 ‘양심 선언’을 하고 {중앙일보}를 나온 기자 오동명이 최근 {당신 기자 맞아?: 오동명 기자가 작심하고 발가벗긴 한국언론}(새움, 8천원)이라는 책을 냈다. 나는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책을 한 권 펼쳐드는 버릇을 갖고 있다. 책을 읽다가 잠을 자는 것이니, 책을 일종의 수면제로 이용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 오동명의 책을 안고 잠자리에 든 거다.

나는 책을 빨리 본다. 좋게 말하자면 속독에 능한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대충 읽는 거다. 물론 모든 책을 다 대충 읽는 건 아니지만, 나는 오동명의 책은 대충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생각했다. 기자의 경험담 위주로 쓰여진 책일 터이니 언론에 대해 해박한 내가 글자 하나하나 다 읽을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책 첫 부분서부터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글자 하나하나 꼼꼼히 읽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의 책은 나를 사로잡았다. 다음 날 오전 9시 수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 3∼4시가 되어서야 그의 책을 손에서 놓은 것 같다.

나는 오동명의 책 첫 부분에서 느낀 충격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무서운 권위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인물과 사상 9}에 쓴 <겸손은 우리 시대의 악덕인가?: 더 이상 지적하고 싶지 않은 유홍준의 권위주의>라는 글에서 “이 글은 내가 유 교수에 대해 본격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글로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 말을 어기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이건 유홍준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다. 물론 본격적인 것도 아니다. 나는 좀더 다양한 사례 증거를 수집한 다음, 곧 본격적인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이건 오동명과 유홍준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작다면 아주 작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결코 작게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유홍준의 소름끼치는 ‘문화권력’으로서의 ‘권력과시’와 ‘권위주의’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과거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태들에 대한 모든 의문이 일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유홍준과 그 일행의 아름답지 못한 행동

오동명은 사진기자로서 <지식인 지도가 바뀐다>는 기사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대학로에 있는 한 기획사무실에 갔다고 한다. 유홍준을 비롯한 서울대 미학과 출신 9∼10명이 함께 모여 있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오동명의 말을 들어보자.

약속 시간보다 40분이 더 지나서야 유홍준 씨가 마지막으로 도착했고, 나는 그 분들께 좌석에 앉아 있는 모습보다는 문 밖 계단에서 촬영을 하면 여러분들의 모습을 한 장에 다 담을 수가 있으니 협조바란다고 정중히 부탁했다. 그때 유홍준 씨가 말했다. ‘여기에는 연출의 대가(연극 연출자를 말함)가 있으니 그 대가의 연출대로 사진을 찍도록 하자.’ 나는 찍사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참고, 연극 연출과 신문 사진 연출은 많이 다르니 제 부탁 좀 들어달라고 했다. 두어 번을 정중하게. 그러자 그 중 한 분이, ‘사진사 말 듣지’ 했고, 유홍준 씨는 또 ‘사진사가 아니야, 사진기자셔어!’ 하며 존칭어를 빙자해서 완전히 비아냥거리는 투로 얘기를 했다. 소위 우리 나라 문화 지식인의 한 중심에 서 있는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닌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력을 자랑으로 삼고 다니는 사람이. 그러나, 나는 또 참고 문 밖에 나와 기다렸다. 몇 번을 다시 부탁했다. 두 분이 먼저 나와 보슬비가 약간 내리고 있는 계단에 서 계셨는데, 다른 분들은 내 부탁에 응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득 이들이 소위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지식인 집단’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식인 기사에 나가는 사진입니다. 지금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니 예비군 훈련장이 연상되어지네요. 먼저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늘 손해를 보는 …`…, 저기 두 분은 미리 나오셔서 비를 맞고 계시니 좀 서둘러주시지요’라고 빗대어 말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끼어 내 옆으로 나오고 있던 유홍준 씨가 그 키 큰 얼굴로 작은 키의 내 몸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조그만 놈이 까불어. 내가 너희 중앙일보의 높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 니가 어디서 함부로!’ 이런 눈빛이었다면 내 선입관일까. 대충 자리를 잡고 선 것을 확인하고 앞에 계신 분들처럼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주문을 하자, 또 유홍준 씨가, ‘이 사람아, 이렇게 세워놓고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나!’ 했다. …`…


유홍준의 ‘권력 과시’와 ‘권위주의’

뭐 이런 이야기다. 그 뒤로도 그런 종류의 말이 몇 차례 오고간 끝에 사진 촬영은 끝났다. 공정하게 이야기해서 오동명이 무조건 잘했다고 보긴 어렵다. 유홍준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는 입바른 소리를 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사진 찍기가 싫었으면 아예 처음부터 응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아닌가? 아니면 문화부 기자의 말은 들을 뜻이 있는데 사진기자의 말을 듣는 건 싫다는 건가? 좋다. 그래도 거기까진 좋다. 나는 애써 그 정도는 이해하련다. 유홍준의 입장에서 그의 불편한 심기를 얼마든지 이해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말이지 인간이 싫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말썽을 피우고 다니나?”

국장실로 들어서자마자 편집국장은 나를 나무라듯 물었다. …`…
“기자 생활 1, 2년 한 것도 아니고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지, 그렇게 시끄럽게 일을 처리해서야 능력있는 기자라고 할 수 있나? 여기 저기서 전화 왔었다는 얘기 못 들었나? 내게 유홍준 씨가 직접 전화했고, 문화담당 국장도 전화를 받았다고 하고, 또 홍나희 이사장(삼성미술재단 이사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며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누님) 바로 밑에서 호암미술관장을 지내고 지금은 이화여대 미술관장을 지낸다는 사람은 홍나희 여사를 아주 잘 아는데 귀하를 가만 안 놔두겠다고 벼르더군. 다음날 동아일보 사진기자는 상냥하게 말을 잘 듣더라고 하더군. 귀하가 걱정돼서 하는 얘기야!” …`…

“저도 유홍준 씨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볼 때 그걸 직감으로 느꼈었습니다. 유홍준 씨가 다른 기자들에게 한 행태를 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내게는 그렇게 안될 것이다’라는 선입관이 조금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문화부의 한 차장 선배는, “오동명 씨, 큰일 한 번 치렀다며?”
“큰일은요. …`…”
나는 머쓱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유홍준 씨라면 민주화 운동도 해서 1년인가 얼만가 감옥생활도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내가 잘못을 했다면 후배뻘 되는 내게 그 자리에서 나무라든가 해야지 윗사람을 동원해서 가만 안 놔두겠다고 했다니 이게 어찌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의 행실일 수 있다고 봅니까? 그 알량한 빽을 믿고 …`….”
“오동명 씨가 정확히 봤소. 바로 그거야. 모두 가식이라는 거지.” …`…

체육부(레저팀)의 한 후배와 얘기중 유홍준 씨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대한 또 다른 사건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로구나 싶었다. 이야기인즉슨,전화가 걸려왔단다, 회사로.
‘나 유홍준입니다.’
다짜고짜로 전화로 이름만을 대니 당연히 기자는 예상 못한 경우 누군지 알 수 없질 않은가. 그리고 전화 통화시 상대방이 알 수 있게 자기를 소개하는 게 예의 아닌가.
‘예? 누구시죠?’
그러니 기자도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더욱이 한참 바쁠 때였단다. 그런데,
‘나알 몰라요?’
이 말만 하고는 전화를 뚝 끊더란다.

그러나 이걸로 끝내지 않고 이후, 이 기자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당시(1997년) 편집국장은, 신문사 기자가 자기(유홍준)를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항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했다.
‘자네가 유홍준 씨를 무시했다는데, 그런가?’ …`…
이런 수준의 사람이 다른 분야도 아닌 우리 나라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돌아다닌다고 하니, 더구나 인기도 많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스럽기가 그지없다.

여러 독자들이여, 몇몇 지식인의 가면의 뒷면도 보고 책을 사줘도 사주도록 하자. 나는 집에 가지고 있던 그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레기통에 바로 처넣어버렸다. 내가 그 2백만 부 기록에 기여를 해줬다는 사실에 불현듯 짜증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왜 권력에 취해 거들먹거리나?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읽은 분들 가운데엔 혹 오동명이 자기 위주로 이야기한 것 아니냐, 그래서 부당하게 유홍준의 명예에 누가 되는 말을 함부로 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나는 그런 분들은 꼭 오동명의 책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오동명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그게 괜한 기우라는 걸 알게 될 게다.

또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읽은 분들 가운데엔 혹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라고 그렇게 길게 인용하느냐’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나는 그런 분들께 제발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는 정치인이건 지식인이건 권력에 취해 거들먹거리는 건 그 사람이 겉으로 무슨 행동을 하건 그것 못지 않게 때로는 그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각 분야 엘리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의 만연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엔 엉터리가 너무 많다. 나는 오동명의 책을 읽으며 내내 나 자신이 그에 비해 너무 엉터리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면서 부끄러웠다. 그는 ‘진짜’다. 그러나 ‘진짜’는 ‘또라이’로 취급받는다. 오동명도 어느 인터뷰에서 아예 자신을 ‘또라이’라고 불렀다. 나는 나 자신이 ‘또라이’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걸 고백한다. 할 말은 다 하겠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엉터리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의 여론에 어느 정도 영합하기 위해 몸을 사리는 거다.

나는 오동명에 비해 유홍준을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유홍준은 기분 나빠할 것 없다. 나 역시 엉터리임을 스스로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같은 엉터리인 나에게도 유홍준의 권위주의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차라리 ‘진보’를 내세우지나 말지, 그게 뭔가? 그 알량한 문화권력마저 그런 식으로 쓰니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쥔 자들은 어떻겠는가.

유홍준이 누구에게나 그렇게 불손하게 군다면 내가 이런 말도 안 한다. 그건 잘한다고 칭찬할 수는 없을망정 일관성은 있기에 일종의 기행(奇行)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큰 권력에 대해선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예컨대, 그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일부 내용이 색깔 시비에 휘말리자 “지난 두해 동안 나는 사법연수원, 법무연수원, 부산지방검찰청, 민사판례연구원 등 법조계에까지 초청되어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라는 강연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게 꼭 그렇게까지 ‘영광’ 운운하며 저자세로 해명을 해야 할 문제였을까? 좋다. 그게 겸손에서 비롯된 거라면 좋다. 그렇다면 그 겸손을 보통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할 것 아닌가. 강자엔 약하고 약자엔 강하게 굴겠다는 건가? 이런 물음이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다. 만약 이게 지나친 비약이라면, 나는 유홍준이 이제라도 뒤늦게나마 오동명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더 이상 ‘진보’의 냄새를 피우지 말고 다니길 바란다. 그거야말로 ‘진보’를 욕보이는 짓이다.

{중앙일보}에 이용당한 강준만?

{당신 기자 맞아?}엔 그 밖에도 깜짝 놀랄 이야기들이 많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는 의미에서 더 이상 소개하진 않겠다. 다만 오동명이 나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있어 그것에 대해 좀 말씀을 드려야겠다. 나는 지난 해 7월엔가 {중앙일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정치인은 잇속 계산에 매우 밝은 경제적 동물이다. 만약 지역감정을 부추긴 경우 그로 인한 이익을 초과하는 비용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사회로부터 응징을 당한다면 감히 어떤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부추길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 사회엔 일체의 응징이 없다. …`…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 응징은 누가 해야 하는가. 우선적으로 언론이다. 그러나 언론은 원초적인 지역주의의 포로이다. …`… 언론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건 오동명이 {당신 기자 맞아?}에 인용한 걸 그대로 옮긴 것이다. 오동명은 내 칼럼의 일부를 그렇게 소개한 다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강 교수의 충고로 우리 언론이 변할 마음으로 과거 반성이라도 한 번 했으면 좋으련만, 강 교수가 중앙일보에 이용당했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이런 외부인의 글 하나 게재하고 지역주의에 관한 한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할 테니까 말이다. 조선일보가 써먹고 있는 야비한 수법을 여기저기 답습해 1등 신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중앙일보는 홍석현 사장 구속 이후 지역주의에 더욱 빠져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이 정치적 수세에 몰리면 경상도로 내려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는데도 정당한 정치 행태인 양 대대적으로 보도할 뿐이다. 국세청의 보광그룹 세무 조사가 언론 탄압이라고 동일 주장 해주는 한나라당에 대한 보은의 차원인지 모르겠으나 정당의 당리당략과 마찬가지로 이는 신문사의 ‘사리사략’일 수도 있겠다. 이렇듯 신문사들이 잘잘못을 따지기는커녕 지면의 상당수를 할애해 보도, 아니 홍보해주는데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겠는가. 역으로 정당에서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신문들이 한국에 1, 2위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들을 생각은 않고 지역감정 문제에 관한 한 자유롭다거나 공정했다라는 구실을 만들어놓기 위해 독자란에 조금 지면을 할애해 구색만 맞추고 있으니, 이 정도로는 조선일보보단 많이 나은 것 아니냐고 위안해야 하는 건지.

나와 관련된 오동명의 주장에 대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차이, 그리고 운동의 전략과 관련된 반론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그 칼럼을 썼을 당시 오동명은 {중앙일보}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만약 내가 {중앙일보}는 아예 상종해선 안 될 신문이라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게 과연 오동명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을 지는 의문이다. 나는 월간 {인물과 사상} 1998년 9월호에 쓴 <오동명의 {사진으로 세상읽기}>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음을 상기하여 주시기 바란다.

“정말이지 오 기자에게 뜨거운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행여 노파심에서 {중앙일보} 고위 간부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오 기자와 같은 기자가 있다는 건 귀사의 긍지요 자랑이다. 그걸 아셔야 한다. 마피아 또는 조폭 조직의 냄새를 피우는 어느 신문사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나는 오 기자로 인해 {중앙일보}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했다.(너무 순진한가?)”
그러나 중요한 건 ‘이제부터’일 것이다. 나는 문제의 그 칼럼 이후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일보}는 물론이고 {중앙일보} 이외에도 {동아일보}까지 기고 및 인터뷰를 아예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기존의 ‘빅 3’ 독과점 체제가 깨지는 그 날까지는 말이다.

“{조선일보}만 문제냐?”

그러나 다른 지식인들의 경우 ‘빅 3’ 신문을 아예 상종하지 말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지금 가장 문제가 많은 {조선일보} 하나만을 문제삼아 상종하지 말라는 호소를 해도 전혀 먹혀들지 않는 판국에 세 신문을 모두 상종하지 말라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다. 나는 오동명이 언론운동의 실효성 차원에서 이 점에 유념해주기를 바란다. 우선 {조선일보} 하나만 문제삼도록 하자. 이와 관련, 월간 {인물과 사상} 5월호(2000)에 독자 김동현이 기고한 <어느 원로 언론인의 조선일보관>이라는 글의 일부를 인용한 다음 내 이야기를 계속해보겠다.

나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교수님께서는 그런 진보적 인사들이 {조선일보}에 글을 올리는 게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극우적 성향을 감추려는 전략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교수님의 대답. “전략이라구? 그럼 {중앙일보}는 그러지 않나? 왜 {조선일보}만 가지고 그러나? 그럼 {조선일보}의 독자들은 뭐고 그들의 광고주는 뭔가? 너무 {조선일보}만 가지고 그러지 말게.”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그 원로 언론인이라는 교수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대단한 엉터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기야 자기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 치고 엉터리 아닌 사람이 드물다. 그 원로 언론인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이렇게 답했어야 했다.

“그거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네. 그런데 말이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그런 짓을 하거든. 이 ‘빅 3’ 신문들이 큰 문제라구. 신문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는 데다 광고시장 점유율은 그것보다 더 크다고 그러니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지. 게다가 이 세 신문들이 문제가 제일 많거든. 다 상종하지 말아야 돼. 자네들도 집에서 웬만하면 그 세 신문 이외의 신문을 보도록 하게나.”
나의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에 대해서 “{조선일보}만 문제냐?”고 항변하는 지식인들도 모두 다 엉터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조선일보}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조선일보} 외에 자기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신문까지 상종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 {조선일보}만 문제가 아니라는 게 왜 자기가 {조선일보}를 상대해야 할 이유가 된단 말인가?

그리고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자꾸 까먹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그 운동이 ‘최장집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며, ‘최장집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만 문제냐?”는 수작이 더욱 말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일보}를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떼

나는 ‘최장집 사건’은 이미 끝난 사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시 쏟아져 나온 사회 각계의 성명의 주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고자 한다. 내가 월간 {인물과 사상} 1999년 5월호에 쓴 <{조선일보}와 한국 사회의 ‘냄비 근성’>이라는 긴 글을 꼭 한번 읽어주시기 바란다.

당시 사회 각계의 단체들과 지식인들이 생산해낸 성명과 글을 읽어보면 {조선일보}를 때려잡지 못하면 나라가 끝날 것처럼 분기탱천해 있었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분기탱천했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 태연하게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단 한마디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전혀 흉이 되지 않는 우리 풍토에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한국의 지식계가 전반적으로 대단한 엉터리인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잘못은 있다. 아니 내가 정말 나쁜 놈이다. 나는 오동명의 선배가 했다는 “바로 그거야. 모두 가식이라는 거지”라는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원래 성명이라든가 글이라는 게 다 엉터리로 그 순간에 ‘쇼’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나는 어리석게도 언행일치를 하고자 했던 큰 죄를 저지른 거다. 그래서 나는 그 죄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강준만이 깃발 들면 꼭 따라가야 되느냐?”는 비아냥에서부터 “강준만은 {조선일보}를 ‘종족의 우상’으로 섬기는 두더지”라고 매도하는 똥물까지 뒤집어쓰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간 나 자신을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동명을 보니 나는 ‘엉터리’다. 엉터리에도 ‘급’이 있다는 걸로 위로를 삼아야 할까? 이 세상엔 웬 엉터리들이 그리도 많은지! 나는 수구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은 허깨비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수구기득권 세력이 아닌 것처럼 입으로는 제법 진보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들 속에 엉터리들이 득실득실하니 싸움이 될 리도 없고 이길 리도 없다. 모두가 다 끼리끼리 뜯어먹고 사는 세상의 이치라는 게 그런 건가?

수구기득권 세력이 도덕적으로 전혀 켕기지 않는 이유도 그들 역시 이른바 개혁 세력의 엉터리 근성을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불빛을 향해 몰려드는 나방 떼처럼 자기 이름 빛내줄 신문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몰려드는 그 수많은 지식인 군상들을 향해 “조선일보의 제몫을 찾아주자”는 허튼 수작을 해댄 나는 얼마나 큰 죄를 진 것인가! 하나님, 이 놈의 죄는 가혹하게 벌하시되 저 불나비 떼들은 용서하소서. 저는 이승의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신성 모독을 범한 게 아니겠나이까.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5

2002/06/28 (00:14:38)    IP Address : 211.195.124.241

578    왜 잘못을 시인할 줄 모르나 조용훈 2002/06/27 887
577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6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1052
576    박원순 변호사님께 강준만 2002/06/28 974
   유홍준과 오동명: 엉터리와 진짜 강준만 2002/06/28 1381
574    박노해 {조선일보}와 ‘논쟁’에 대하여 강준만 2002/06/28 1060
573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 고승원 2002/06/28 919
572    {전남일보} 편파보도와 신문의 개혁 임동욱 2002/06/28 769
571    부일시론 <지역당? 영남당!>을 쓴 뒤 내게 일어난 일들 노혜경 2002/06/28 846
570    영남인들에 대한 분노와 김대중의 어리석음 구본영 2002/06/28 916
569    조기숙 : 4·13 총선과 지역감정 강준만 2002/06/28 898
568    4·13 총선과 소설가 배수아의 고민 김동민 2002/06/28 859
567    이문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2002/06/28 1205
566    엘리안 곤잘레스의 진실 송기도 2002/06/28 1017
565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② 강준만 2002/06/28 908
564    서울대 지방 이전?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김완수 2002/06/28 946
563    과외(課外)에 관한 단상 기호민 2002/06/28 728
562    < TEPS 과연 무엇인가? > 그 후 성기완 2002/06/27 968
561    시간강사는 21세기 문명 시대의 야만이다 최영환 2002/06/27 979
560    <미국 멤피스시의 법정 풍경>을 읽고 김형수 2002/06/27 1040
559    좋아하는 대중문화, 소비로 말하자! 이시우 2002/06/27 896
558    "난(亂)" 유감 안한준 2002/06/27 865
557    방송개혁을 위한 5가지 제안 조흡 2002/06/27 925
556    ‘아름다운 책’과 ‘예쁜 책’ 이미영 2002/06/27 864
555    내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출판관련 기사 셋 최성일 2002/06/27 827
554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5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1032
553    정권교체는 세상을 바꾸었는가? 강준만 2002/06/28 892
552    손학규와 최영희 정실주의는 안 된다 강준만 2002/06/28 1141
551    유석춘 : “{중앙일보}의 앞잡이”인가? 강준만 2002/06/28 1175
550    김승수 교수에게 묻는다 김동민 2002/06/28 859
549    ‘특권 중독증’을 추방하자 강준만 2002/06/28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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