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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조기숙 : 4·13 총선과 지역감정
조기숙4·13 총선과 지역감정

강준만

이 책은 아주 감동적이다. 나는 조기숙이 다른 대부분의 정치학자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 언론을 비판하고 정치학자들을 실명 비판한 것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곧 다른 기회에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서평을 쓰도록 하겠다.

조기숙의 언론 비판

나는 단행본 {인물과 사상 14}에 쓴 <머리말: 지역감정 예찬론>이라는 글에서 위와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조기숙이 {지역주의 선거와 합리적 유권자}(나남, 2000)는 책에서 언론을 비판하고 정치학자들을 실명 비판한 것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지만, 그의 주장의 상당 부분에 대해선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앞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했지만, 그 부분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기숙의 책에 감동을 받은 건 그가 매우 하기 어려운 일을 했으며 그건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학자의 언론 비판? 그거 정말 어렵다. 그걸 하면 언론이 완전히 외면해버리기 때문에 어디 얼굴 한번 이름 한번 내밀기가 어렵다. 한국의 그 수많은 정치학자들 가운데 언론 비판을 제법 하는 학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제발 나에게 그 이름을 알려달라. 거의 없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언론을 비판하는 정치학자는 ‘천연기념물’인 것이다.

만약 정치학자들의 그런 행태가 옳다면 언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언론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되 현재 아주 일을 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언론 비판은 언론학자들의 몫으로 간주하여 남의 ‘밥그릇’을 존중하겠다는 것일까? 그렇게 말할 만큼 강심장을 가진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언론을 건드리면 클 수 없기 때문에 안 건드리는 거다. 물론 정치학의 여러 전공 가운데 언론 비판을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전공의 경우는 예외다. 내가 지금 말하는 건 현실 정치에 대해 왕성하게 참여하는 정치학자들이다.

그러나 조기숙의 책에선 강한 언론 비판이 꽤 눈에 띈다. 이건 그가 그만큼 순수하다는 증거다. 내가 <지역감정 예찬론>이란 글에서 인용했던 부분을 여기에 다시 사용하도록 하겠다.

일부 신문들은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지역감정 해결’을 주문했다. 그 이전의 대통령들에겐 거의 하지 않았던 주문이었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역대 정권들이 저질러 온 기존의 ‘호남 차별’ 정책을 김대중 정권이 고수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김 정권의 출범과 함께 호남 출신이 정부 인사에서 서서히 제 몫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신문들이 왜 온갖 과장·왜곡 보도를 남발해가면서 영남 민심을 자극했겠는가? 수구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일부 신문들은 영남 민심을 인질로 삼아 김 정권의 개혁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만반의 준비를 이미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조기숙은 1997년 대선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14대 대선에서 오히려 이번 대선 때보다 지역감정이 더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격차를 해결하라거나 지역감정을 추수르라는 조언이 단 한 건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이번 선거 후에는 모든 신문이 앞을 다투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지역감정을 해결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 혹자는 언론이 바른 충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주문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더 강력하게 제기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주문은 그 동안 기득권자들이 정권교체에서 오는 불안감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조기숙이 앞으로도 계속 언론 비판을 왕성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젊었을 때엔(크기 전엔) 남들 하기 어려운 일을 하다가도 조금 나이가 먹으면(크면) 그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한국 학계의 오랜 전통이나 부디 조기숙만큼은 초지일관하여 줄 것을 감히 당부드리고 싶다.

조기숙의 실명 비판

다음으로 감동적인 것은 학계 선배 교수들에 대한 실명 비판이다. 이 또한 내가 <지역감정 예찬론>에서 인용했던 부분을 여기에 다시 소개한 다음 이야기를 더 해보기로 하자.

나는 그간, 아주 평범한 사람을 헹가래 쳐 공중에 높이 띄워놓고 땅바닥에 고꾸라지게 만드는 건 아주 못된 짓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점은 호남의 지역주의에 대한 정치학자 손호철의 주장과 관련하여 그간 나 혼자만 외롭게 지적해 온 것인데, 조기숙 역시 손호철과 관련하여 정중한 학술적 언사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어 이만저만 반가운 게 아니었다. 조기숙은 “호남을 신성시 영웅시하여 호남의 지역주의 투표를 주공격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손호철의 지역주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남은 변혁의 기수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실리를 위해서도 지역주의 투표를 먼저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손호철 주장의 핵심이다. 다른 지역은 워낙 명예로울 것이 없는 지역이니 지역주의 투표를 계속해도 크게 실망할 것이 없고 호남만은 과거의 명예를 위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니, 왜 호남에게만 영광의 면류관을 씌우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상적인 기준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왕 이 주제를 언급한 김에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마저 한 다음에 조기숙의 ‘실명 비판’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하자. 조기숙은 손호철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의 선의(善意)를 믿는 쪽으로 온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지난 수년간 손호철이 쓴 거의 모든 글들을 분석한 결과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호남 차별’ 정서가 강하게 꿈틀거리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호남에게만 영광의 면류관을 씌우려는 것은 신문들이 김대중에게만 지역감정 해결을 주문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론 손호철은 수구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그러나 호남 차별 심리에 있어선 기존의 ‘진보-보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권교체 이후 손호철이 영남 지역주의에 대해 ‘저항적 지역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엄청난 왜곡이요 말장난이라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호남 차별’을 위한 일종의 ‘음모’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왜 그런가? TK와 PK를 애써 구분해 그걸 호남과 같은 급의 분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잘못됐거니와 30년 이상 묵은 영남 패권주의를 2년짜리와 맞비교하겠다는 게 너무도 몰상식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굳이 최근의 영남 지역주의에 그 어떤 딱지를 붙이고 싶다면, 아마도 ‘복고적 지역주의’라는 딱지가 적합할 것이다.

너무 손호철 비판만 한 것 같은데 이번엔 손호철이 듣기 좋아할 이야기도 해보자. 한국의 학계는 대단히 보수적이어서 선배 학자들에 대한 실명 비판을 영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과거 ‘좌충우돌’식으로 실명 비판을 하다가 학계에서 퇴출당하거나 180도 전향한 사람들이 꽤 있다. 반면 조기숙의 경우 매우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아 그의 실명 비판의 수명이 결코 단명하지 않으리라는 걸 예감케 한다. 예컨대, 조기숙은 그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배교수들을 맹렬히 비판한 논문이 {한국정치학보}에 발표된 후에도 손호철 교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필자를 추천해 주시고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심으로써 큰 키만큼이나 대범한 마음을 보여주셨다. 손호철 교수의 말없는 격려에 특히 감사를 드린다.”

또 조기숙은 본문에서 손호철을 비판할 때에도 “손호철의 창의적인 사고와 탁월한 설명방식이 논리적 일관성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식으로 행여 있을지도 모를 반발을 잘 피해나가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손호철의 ‘대범한 마음’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조기숙이 비단 손호철만 비판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까지 선배 교수들의 ‘대범한 마음’에만 기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 그런 슬기로운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조기숙은 어찌하여 뜨거운 주제인 지역감정 문제를 건드리고 또 과감한 실명 비판을 하게 된 것일까? 조기숙은 “다행히 지역적 연고로부터 자유로운 필자는 지역주의 문제를 부담없이 다룰 수 있었으며, 학연이 없는 여성학자라는 이유로 지역주의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논의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공격하는 용기를 발휘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건 어디까지나 겸손의 말씀이고 조기숙에겐 ‘할 말은 한다’는 강한 소신이 원래부터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을 편 사람들에게도 당당한 실명 비판을 가하였는데, 여기에선 ‘온건한 분노’마저 느낄 수 있다. 예컨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끝으로 이는 소소한 문제에 불과하지만 유석춘 교수나 한나라당의 이사철 대변인이 주장하는 것으로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지역구에서 낙선대상 후보의 지지자와 무력 충돌하여 유혈사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문제이다. 나는 솔직히 이 분들의 시민의식이 의심스럽다. 이 분들은 우리가 해방정국이나 동티모르 정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도대체 이 나라의 공권력은 어디에서 무얼 하기에 평화적으로 낙선운동하는 시민단체와 특정후보 지지자가 무력충돌을 벌인다는 것인가?

‘합리적 선택이론’의 문제

이제 감동은 그만하고 나의 이견(異見)을 말씀드려야겠다. 조기숙은 지역감정 연구에 있어서 ‘합리적 선택이론’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학자이다. 합리적 선택이론이란 무엇인가? 그건 “유권자들이 습관이나 세뇌 등에 의해 자신의 이익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한 후에 주어진 대안으로부터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나는 ‘합리적 선택이론’이 선거와 관련된 지역감정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설명력이 강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조기숙이 모든 걸 다 합리적 선택이론으로 설명하려 든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건 학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경향이라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나는 조기숙이 그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객관적이지만 피상적인 국외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다행히 지역적 연고로부터 자유로운 필자는 지역주의 문제를 부담없이 다룰 수 있었으며”라는 조기숙의 말은 그의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의 한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합리적 선택이론이 부분적으론 또는 어떤 상황에선 매우 유효한 설명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 한국의 선거와 관련된 지역감정을 다 설명할 수는 없거니와 다 설명하려고 시도할 경우 그 이론이 갖고 있는 몰역사성과 몰가치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이 이론을 한국 상황에 무차별적으로 적용시킬 경우 ‘영남’과 ‘호남’은 아무런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간 자행되어 온 ‘호남 차별’이라는 문제를 배제한 가운데 지역감정 문제를 제대로 논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 이론이 가치 판단을 배제하면서 전제하고 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정당하고 합리적이다”는 식의 기능주의적 보수성은 선거에서 그 어떤 추악한 최악의 결과마저도 ‘합리적 선택’으로 보게 되는 문제를 드러내게 돼 있다.

‘호남 차별’이 빠진 지역주의론은 껍데기다

조기숙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적 상황과 한국적 상황은 얼마나 다른지 그것도 따져볼 문제다. 미국의 여야(與野)와 한국의 여야가 같은가? 미국에도 공권력에 의한 자국민 학살과 인권유린이 있었으며 그러한 과거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려 드는 수구기득권 세력이 있는가?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할 수 없는 합리적 선택이론의 가장 큰 허점은 흥미롭게도 {경향신문} 2000년 4월 13일자 30면에 실린 조기숙의 인터뷰 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조기숙은 “유권자들에게 지역주의 투표를 하지 말라고 계몽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지역주의 투표는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으로 비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니까 문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조기숙은 뒤이어 “한 개인에게는 투표를 하지 않고 소풍을 가는 게 단기적으로 가장 큰 이익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합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민주주의 정착과 시민사회의 성숙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자기 손해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조기숙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투표에 참여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 큰 효과는 없을망정 어떻게 캠페인을 전개하느냐에 따라 적잖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만약 조기숙이 투표 참여 계몽운동을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지역주의 투표를 하지 말라고 계몽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둘 다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에선 같은데 왜 어느 것에 대해선 계몽이 소용 없고 또다른 어느 것에 대해선 소용이 있는 걸까? 혹 합리적 선택이론이 안고 있는 몰가치성이 구체적 사안에 이르러 그 본원적인 문제를 드러낸 건 아닐까?

나는 “유권자들에게 지역주의 투표를 하지 말라고 계몽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조기숙의 말에 동의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동의한다. 나는 ‘계몽’이 아니라 ‘질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공에 대고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 외치는 식의 하나마나한 질타가 아니라 “경상도 사람들은 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모르고 탐욕을 부리는가?”라는 구체적인 질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대안은 무력하다. 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총선연대 지도자들마저도 지역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거니와 옳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집단적 광기 앞에선 입바른 소리를 하기 어렵게 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기숙의 대안이 더 실천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문제라면 옳은 길로 가야 한다. 물론 조기숙은 영남인을 우선적으로 탓하는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또 동의한다 하더라도 ‘질타’라고 하는 나의 방식이 엘리트주의적이거나 독선적인 것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의 책을 읽어본 바로는 그렇다. 그런 비판은 감수해야겠지만, 나는 조기숙이 속는 셈치고 나의 책 {전라도 죽이기}(개마고원, 1995)를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 책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제발 ‘호남 차별’과 ‘호남 이지메’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서 지역주의에 대해 논해주셨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호남 차별’ 문제가 빠진 지역주의론은 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나친 단순화’와 ‘도덕 부재’

조기숙은 {지역주의 선거와 합리적 유권자}라는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지역주의 선거에 대한 세 가지 오해를 반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기’부터 흥미진진하다. 그 세 가지 오해란 무엇일까?

첫째, 지역주의 선거의 가장 큰 원인은 유권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의 지역주의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시각이다. 셋째, 후보자의 지역주의 선거전략이 우월한 전략이라고 믿는다.

첫 번째 오해의 경우 과연 그것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오해라고 볼 수 있는지 그건 의문이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지역주의 선거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인에 있다고 생각한다”가 적어도 사회적 언로(言路)에선 그간 더 많이 유포되어 왔던 게 아닐까? 아닌게 아니라 조기숙도 “정치인이 유권자의 수준을 못 따라가는 것이 우리 선거의 뿌리 깊은 문제이다”라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조기숙의 그러한 주장이 주류였다고 생각한다. 어찌됐건 유권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조기숙의 반론을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로 지역주의 선거의 주범은 유권자가 아니다. …… 다른 거시적인 근본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권자를 도덕적으로 계몽한다고 해서 지역주의 투표를 멈출 수 없다. 지역주의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낮은 의식수준을 개탄하는 것도 옳지 않다. 유권자는 단지 주어진 대안 가운데 선택한 데 지나지 않으므로 지역주의 선거에 대해 최종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자기 지역 챙기기를 계속하고 자기 사람 쓰기를 계속하는 한 지역주의 투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당이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낡은 지역주의 전략에 계속 머무는 한 유권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가운데 지역주의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주장에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할 건 없지만 조기숙이 매우 복잡한 그림을 너무 단순하게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차원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각 차원마다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의외로 매우 복잡한 주제라는 말이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조기숙의 지역주의론엔 ‘호남 차별’이 빠져 있다. 물론 그도 호남 차별을 모르는 건 아닐 게다. 그러나 그가 쓰는 합리적 선택이론이라는 그물로는 그걸 잡아내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지메’라는 건 유권자의 의식수준이 높고 낮은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른 문제다.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할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나 조기숙의 합리적 선택이론엔 도덕이 없다.

또 대통령의 인사 정책은 지역주의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조기숙은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영남 차별’을 했다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식 시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반론을 하도록 하겠다. 두 번째 오해에 대한 조기숙의 반론으로 넘어가보자.

지나친(의도적/정치적) 낙관주의

“둘째로, 우리의 지역주의가 세계 유례가 없는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갈등이 우리의 지역주의와 비슷하게 인종, 종교, 지역 등의 원초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에 기인한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갈등과 비교할 때 우리의 지역주의 갈등의 정도가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며 또한 독특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비교연구의 중요성은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 연구함으로써 오히려 이러한 갈등에 대한 보편적인 원인을 추론할 수 있으며 인과관계의 규명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이러한 작업이 우리의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을 역사적 기원에서 찾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이라고 믿는다.”

이 주장 역시 그대로 수용하긴 어렵다. 다른 나라의 갈등과 비교할 때 우리의 지역주의 갈등의 정도가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라는 주장엔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최악의 사례와 비교하는 한에서) 독특한 것도 아니라는 주장엔 수긍하기 어렵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잠복성’이라고 하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것이다. 각 지역별로 뿌리가 다른가, 언어가 다른가? 차라리 뿌리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면 그걸 현실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세우기가 쉽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수십 년 간에 걸친 호남에 대한 일방적인 이지메가 가능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 번째 오해에 대한 조기숙의 반론은 무엇인가?

“세째로, 필자는 지역주의 선거가 유권자의 죄수의 번민 게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했지만 후보자도 죄수의 번민 게임에 빠져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만일, 후보자가 죄수의 번민 게임에 빠져 있다면 유권자와 마찬가지로 후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항상 지역주의 선거전략을 부추기는 것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 동안 치른 선거에서 지역이나 선거의 종류에 따라 지역주의 전략을 구사한 후보나 정당이 궁극적으로 결코 유리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목격하였다.”

여기서 조기숙이 말하는 죄수의 번민 상황은 “우리 고장 주민은 지역주의 투표를 그만 두었는데 상대지역 주민은 여전히 지역주의 투표를 한다면 우리만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지역주의 투표를 그만 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 딜레마 상황”을 가리킨다.

조기숙은 지역주의에 관한 한 대단한 낙관론자다. 나는 그의 낙관이 분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기숙은 또다른 지면에서도 “나는 지역주의 선거전략이 항상 유리한 전략이 아니며 특히 제1당이 되고자 하는 정당일수록 지역주의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러 번 주장한 바 있다”고 말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당위’이거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여기서 또다시 앞서 거론한 바 있는 ‘지나친 단순화’의 문제가 나타난다. 지역주의 선거전략이 항상 유리한 전략이 아니라는 건 옳다. 그러나 특히 제1당이 되고자 하는 정당일수록 지역주의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그 정당이 어떤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4·13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지역주의 전략으로 제1당이 되었다. 조기숙은 한나라당의 지역주의 전략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나는 비관론이 낳을 수 있는 심리적인 ‘자기충족적 예언’ 현상을 경계하는 수준의 낙관론엔 지지를 보내지만 그 선을 넘는 낙관론은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은폐해 오히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조기숙의 낙관론이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의 낙관론은 지나치다. 지나치다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요 정치적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게 선의(善意)에서 비롯된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선의가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의 이론을 지키기 위한 ‘영남 옹호론’

조기숙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지역주의 선거가 빠른 시일 내에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히면서 언론과 학자가 조심하고 시민단체가 나서면 지역주의는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 선거에 관한 담론이 비관적인 이유는 우리가 사실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객관적인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데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이론적인 논의를 할 때엔 조기숙의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어느 정도 끄덕일 수도 있었는데, 그가 현실 문제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걸 보니 영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너무 순진한 면이 많다고나 할까? 그가 내린 다음과 같은 16대 총선 전망은 그의 지역주의에 대한 ‘낙관’이 분석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한나라당의 공천파동과 이의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이(회창) 총재의 정치력 부족은 일부 영남 유권자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이 총재에 대한 지지도 하락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 이탈로 나타났다. 수도권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는 후보자의 자질에 기대어 선거를 치러야 할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한나라당은 선거를 DJ 대 반DJ로 이끌고 갈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민국당은 제2의 이인제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영남권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영남에서 민국당과 한나라당의 싸움은 어차피 인물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수도권에서는 오히려 사태를 더 불리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지역감정이나 자극하는 정치에 식상한 수도권 유권자가 한나라당 지지자 중 다수 기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쉽게 생각하고 정책이나 쟁점 개발을 게을리 한 한나라당은 쉽게 이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상당한 고전을 하게 될 것이다.”

감히 누군들 16대 총선 전망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조기숙의 전망이 빗나갔다고 흠잡을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지역주의에 대한 조기숙의 ‘희망 사항’이 그의 전망에 너무 깊이 개입한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조기숙이 16대 총선과 관련해 자신의 ‘희망 사항’이 실현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16대 총선 결과마저도 해석에 있어서 여전히 자신의 ‘희망 사항’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중앙일보} 2000년 4월 18일자 6면에 기고한 <지역주의의 정체>라는 칼럼에서 “이번 총선은 지역쟁점이 약화되는 선거였다”고 말한다. 그가 ‘감히 주장’한다는 표현을 쓴 걸로 미루어 자신도 그게 매우 ‘튀는’ 주장이라는 건 인정하는 듯하다.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이 의문은 조기숙이 한나라당의 영남 석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걸 들으면 보다 쉽게 풀릴 듯하다. 여기서 조기숙은 자신의 ‘합리적 선택이론’을 지키기 위해 과감한 ‘영남 옹호론’을 전개한다.

지역이 정당의 주요 지지기반을 구성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발견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동안 기득권에 속했던 영남이 중도보수인 한나라당과 일체감을 느끼고, 과거 소외지역이었던 호남이 중도진보인 민주당과 일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념이라는 새로운 쟁점이 영·호남의 분열을 강화했기 때문에 표면상 지역주의가 심화된 것으로 보일 뿐이다. …`… 한나라당이 영남의석을 석권하게 된 것은 영남인들에게 더 나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남 정서의 핵심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역적 차별을 받았다는 서운함에서 현정부의 실책을 심판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국당에 대한 질타는 매서웠다. 게다가 자민련은 공동여당이었다. 민국당이 무소속을 흡수하는 바람에 변변한 무소속 후보도 많지 않았다. 결국 영남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표를 주는 것뿐이었다.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되었다고 자만해서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이론을 지키기 위한 ‘이념 쟁점론’

이 글에서 조기숙은 전혀 조기숙답지 않은‘얼버무림’을 범하고 있는데, “영남 정서의 핵심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역적 차별을 받았다는 서운함에서 현정부의 실책을 심판하고 싶다는 것이다”는 표현이 바로 그렇다. 조기숙은 그 ‘지역적 차별’이라는 게 얼마나 타당한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아무래도 조기숙은 그게 꽤 타당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니까 지역주의가 더 심화된 게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물론 나도 16대 총선에서의 영남 지역주의를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데엔 동의하지만, 그건 분명히 지역주의 그것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모르는 탐욕스럽고 추악한 지역주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기숙은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기숙이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이 피해가려고 애쓰는 그 ‘지역적 차별’을 언론의 보도와 논평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종합적인 검증을 해주길 바란다.

영남과 호남을 싸잡아 각기 ‘중도보수’요 ‘중도진보’라고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이건 조기숙이 자신의 평소 주장대로 ‘지역 쟁점’ 대신 ‘이념 쟁점’을 강조하기 위해 무리를 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선 동(洞)마다 여야 지지율이 각기 다르게 나오는데 어떻게 그 덩치 큰 영호남 전체가 그렇게 이념 하나로 갈라질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다. 더욱 믿기 어려운 건 조기숙의 다음과 같은 결론이다.

“지역주의가 더 심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그렇게 성공적일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번 선거결과를 무조건 미화할 생각은 없다. 영·호남의 배타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원인분석에서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지역주의의 근본 원인이 중앙정부의 지역차별정책에 있음을 상기한다면, 김 대통령이 나서서 영남 유권자의 서운함을 달래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과 같은 일회적 전시행정으로는 지역감정이 완화되지 않는다. 공평한 인사탕평책,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꾸준한 자세가 결국에는 영남 유권자를 감동시키게 될 것이다.”

지역주의의 심화와 낙선운동의 성공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조기숙의 낙선운동에 대한 애정은 아름답지만 나는 그 애정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2000년 1월 24일 오전 10시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 발표를 생중계한 TV를 시청하면서 “모든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100인 유권자 위원회의 대표가 ‘정치인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할 때 내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긴 대단히 죄송하지만, 낙선운동은 지역주의를 피해 간, 아니 비겁하게 도망다닌 운동이었다.

자신의 이론을 지키기 위한 사실 왜곡

“지역주의의 근본 원인이 중앙정부의 지역차별정책에 있음을 상기한다면, 김 대통령이 나서서 영남 유권자의 서운함을 달래야 한다”는 조기숙의 발언은 참으로 유감이다. 물론 정치인이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정치학자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하나. 앞뒤가 전혀 맞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앞에선 ‘이념 쟁점’이 부각된 선거라고 해놓고선 ‘서운함을 달래야 한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념’을 포기하란 뜻인가?

어찌됐건, 앞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중앙정부의 지역차별정책’이 어떤 것인지 조기숙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나는 조기숙의 결론 부분을 읽다가 {말}지 2000년 5월호에서 정치전문기자 양동주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렸다.

보수세력의 선봉인 {조선일보}는 4·13 총선은 김대중 정부의 독선과 독주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기 때문에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여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고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주창하고 나섰다. 직설적으로 번역하면 “너희 개혁세력이 졌으니 개혁을 멈추고 우리의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일종의 협박인 셈이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재벌의 총공세가 선포된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을 그대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정당들간의 갈등이 늘 ‘넌 제로섬 게임’이라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문자 그대로 한국적 상황에 어울리는 ‘화합과 상생의 정치’가 가능한 부분도 있긴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에게도 적잖은 잘못이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기득권 세력이자 극우 세력과 재벌들이 왜 목을 걸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지 그 이유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치라는 게 늘 ‘니캉 나캉’ 좋을 수 있는 소꿉장난이 아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도저히 ‘화합’과 ‘상생’을 할 수 없는 그런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조기숙의 결론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97년 대선과 관련된 글에서 그가 갖고 있던 입장이나 생각이 그간 바뀐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조기숙은 자신의 지론을 옹호하기 위해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아 안타깝다. {조선일보} 2000년 4월 18일자 4면에 실린 4·13 총선에 대한 ‘전문가들 분석’에는 그의 말이 인용돼 있는데, 그의 말인즉슨, “이번 선거는 지역성 외에 이념성 등이 드러나면서 양당 구도가 정착되어 가는 과도기적 과정이며, 지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후보들이 낙선하는 것을 볼 때 앞날은 상당히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후보들이 낙선했다니 도대체 누굴 염두에 두고 한 말인가? 물론 그런 후보가 없진 않다. 그러나 나는 조기숙이 대는 이름보다 두세 배 더 많은 반대 경우의 이름을 댈 수 있다. 매사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사실 왜곡은 곤란하지 않은가.

내가 감동을 받은 언론 비판과 실명 비판을 빼고, 조기숙의 책에서 내용상으로 내가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던 건 다음과 같은 대목이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유권자의 지역주의 투표를 합리적 선택이라고 옹호하는 주범으로 종종 지목되곤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유권자의 지역주의 투표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실제로 유권자에 대한 옹호는 정치학회에서도 학연, 지연에 의한 선거가 판을 치는데 유권자를 비난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과연 학자나 언론인들이 유권자의 지역주의 투표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오히려 유권자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지배집단일수록 원초적인 인간관계가 2차적인 사회관계를 지배한다. 엘리트들 스스로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국민에게는 근엄한 이중 잣대의 사용을 극복하지 않는 한, 철저히 자기 반성에 기초한 문제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역주의 문제는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나는 조기숙의 불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조기숙이 이와 같은 내부 비판을 앞으로 계속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16대 총선 결과에 대한 그의 분석과 해석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지만, 또 어떤 점에선 다소 신경질적인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한국 학계의 해묵은 ‘침묵의 카르텔’ 체제를 혁파하는 새 바람을 일으키는 한 나는 그에 대한 감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의 고귀한 뜻에 적극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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