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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②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②

강준만


이 글은 5월호에 독자 김영재 님께서 주신 < 강준만의 송병락 비판은 정당한가? > 라는 글에 대한 답입니다. 김영재 님의 글은 제가 월간 {인물과 사상} 1999년 12월호에 쓴 <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이라는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김영재 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영재 님의 핵심적인 말씀을 여러 개로 나누어 인용한 다음 각기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방식으로 답을 드릴까 합니다.

송병락의 ‘1등병’에 대해

제가 알기로는 기업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경우도 있는 게 현실입니다.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도덕성에서만 찾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도덕성을 잘못 강조하면 경제발전에 저해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강준만 님도 “나 역시 그간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돈버는 것을 죄악시한 조선왕조시대 경제는 덩달아 상공업도 침체되었지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송병락 교수의 1등병에 대한 강준만 님의 비판은 역시 설득력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을 다시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송병락의 ‘1등병’을 비판한 게 아닙니다. 한국의 석학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학벌과 경력을 가진 송병락이 재벌들에 대해 일방적인 찬양만 해대면서 재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식으로 선동을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그걸 선의(善意)로 해석해보기 위해 그가 가진 ‘1등병’을 지적한 것이지요. 즉, 그는 한국이 세계 제1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재벌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저지르더라도 나라를 위해 그걸 눈감아주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게 제 주장의 핵심이지요. 안에서 누가 많이 먹든 덜 먹든 나라 전체로 보아선 그게 그거니까 그런 걸 문제삼지 말자는 게 송병락의 뜻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저는 오히려 국가들 사이의 경쟁만을 문제삼는 송병락의 지극한 ‘애국심’과 ‘1등병’을 지적함으로써 송병락이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재벌의 앞잡이’라고 욕먹을 수도 있는 걸 그게 아니라고 옹호해준 겁니다. 제가 ‘1등병’을 비판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점에서 제 비판을 평가하신 김영재 님께서 ‘설득력이 약하다’고 이야기하신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비판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그걸 다시 한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송병락의 색깔 공세에 대해

저는 강준만 님의 분노에 기본적으로는 동의합니다. 경제정의를 내세우면 이를 좌파적인 것으로 몰아 색깔공세를 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송병락 교수의 좌파로의 매도는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일부 사회의 인식이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정당화가 일부분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사회정의는 옳은 말이지만 경제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는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 다시 말해서 저는 송병락 교수가 사회정의를 내세운 목소리를 일단 좌파적인 것으로 몰아 색깔공세를 연상시키는 우를 범했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송병락 교수의 대기업집단체제의 옹호는 나름대로의 전문적인 경제학적 지식에 기반한 것일 것이고, 앞서 말한 대로 일부의 전제가 있었기에 반론이 있었다는 정당화가 부분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송병락이 색깔 공세를 취한 대상은 김영재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경제에 무지한 “일부 사회의 인식”이 아닙니다. 월간 {인물과 사상} 1999년 12월호 119쪽에 제가 인용한 부분을 잘 살펴봐 주십시오. 그는 사실상 김대중 정권을 겨냥해 그 말을 한 겁니다. 김대중 정권 내에도 송병락 못지 않게 “나름대로의 전문적인 경제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따라서 김영재 님이 말씀하신 “일부의 전제”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정당화가 부분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설사 그 “일부의 전제”가 타당하더라도 송병락의 주장은 눈꼽만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김영재 님의 논리가 타당하다면, 역대 정권들의 매카시즘 수법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권은 국가안보 전문가지요. 그런데 국가안보에 문외한인 보통사람들이 자꾸 통일에 대해 떠들어댄다고 해서 그들에 대해 색깔 공세를 취하는 게 부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단 말입니까? 색깔 공세를 취하지 않고 반론을 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김영재 님의 말씀을 들으면, 송병락은 색깔 공세를 취하지 않고선 반론을 펼 수 없는 무능한 경제학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저는 송병락이 그 정도로 실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꾸짖는 거지요.

{조선일보}의 경제관에 대해

{조선일보}를 보면 과연 {조선일보}가 재벌을 무조건 옹호만 하고 있는지는 조금 더 살펴볼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선일보}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원론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대기업집단체제 사주들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을 비판하는 외부 인사의 논설을 실은 적도 있지요. 물론 각론으로 들어가면 앞으로 어찌 변할지 알 수는 없지만,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정치·사회면 등과는 달리 {조선일보}의 경제관은 대체로 현실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조선일보}가 재벌을 무조건 옹호만 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김영재 님의 {조선일보} 경제관에 대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월간 {인물과 사상} 2000년 1월호에 쓴 < {조선일보}와 재벌개혁 >이라는 글을 한번 읽어보시고 그 글에 대한 반론을 주시는 게 이 문제를 논의하는 데에 더 적합할 것 같군요.

저는 {조선일보}의 ‘속임수’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재 님은 {조선일보}의 정치·사회면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어떤 분들은 {조선일보}가 문화면에선 워낙 좌파들을 팔아먹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극우 신문이라고 하면 펄쩍 뛸지도 모릅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경제 보도와 논평에 있어선 김영재 님 역시 {조선일보}의 2중성을 간파하지 못한 그런 ‘어떤 분들’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다는 점을 한번쯤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매카시즘이 지엽적인 문제일까요?

결론적으로 강준만 님은 글의 전제로 ‘그의 저널리즘 활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라고 밝히셨듯이, 송병락 교수 비판을 경제지식의 관점이 아니라, 그런 언론에 드러난 맥락의 관점에서 시도하신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아쉽게도 제가 보기에는 그 비판이 그다지 날카롭지가 않아 보입니다. 강준만 님은 송병락 교수의 주장의 핵심을 정면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공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매카시즘을 내세운 게 아니냐며 지엽적일 수도 있어 보이는 문제를 내세우는 등 약간 오버를 하신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차후에 기회가 있다면 경제학자 혹은 전문적인 경제지식이 있는 제3의 인사에게 송병락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 글을 지면을 통해서 허용하시는 것이 더 효과적일 듯 싶습니다. 사실 저의 짧은 경제지식에 비추어 송병락 교수의 주장은 일면 납득이 되지만, 그럼에도 앞서 말한 대로 근본적인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의 생각과 김영재 님의 생각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는 ‘매카시즘’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영재 님은 그걸 “지엽적일 수도 있어 보이는 문제”로 생각하시는 거죠? 김영재 님의 그런 생각은 존중하겠습니다. 김영재 님이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제 글에 대해 평가하신 내용은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100% 수긍합니다. 다만 저의 경우엔 그걸 지엽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경제학자가 경제에 관한 논쟁에서 매카시즘 수법을 동원한 건 송병락이 처음은 아니겠습니다만 그의 위상으로 보아 이건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일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 생각에 동의하시지는 못할망정 제 생각을 일단 인정해주시는 관점에서 제 글을 평가해 주신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려주실 수도 있으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 글에 대해 ‘한계’니 ‘오버’니 하는 표현을 쓰시기보다는 그냥 “이건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다”고 말씀해주시는 게 적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영재 님은 순전히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송병락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지천에 널려 있기도 하고 영원히 접할 수 없기도 한 그런 것입니다.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경제학자들이 쓴 책과 논문은 모두 다 송병락의 주장에 반하는 것으로 그런 자료는 이미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송병락이라는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판한 글은 찾기 어려울 겁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한국의 경제학자들 역시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실명비판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죠. 사실 실명비판 문화가 제대로 정착돼 있다면 송병락은 감히 그런 매카시즘적인 발언을 함부로 하진 못했을 겁니다. 실명비판이 없는 우리의 지식계 문화, 이거 하루빨리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실명비판만 없다는 것이지 송병락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자료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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