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안티조선 커뮤니티 우리모두 -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악랄하게.. 또박또박..
관리자 메일  |   사이트맵  |   연결고리  |   관리 원칙   
공지사항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
제발 이상한 공지사항좀 ...
우리모두 후원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쟁점토론 베스트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정 안내 (~'21.01.15)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련 논의 진행 중입니다.
 미디어법과 다수결
 광복절 앞날 읽은 신채호의 글
 8개의 나라중 5는 같은 편 3은 다른편.
 균형이 다시 무너졌군. 간신히 잡아 논건데,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는군..
 악인은 너무나 쉽게 생겨나고.. 착한 사람은 쉽게 생...
 태평성대에 관하여
 음 ...이 냥반도 군대 안갔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자들 혹은 노동단체...
 세상 참 불공평하지 -박재범을 보며
 천재면 뭐하나?
 궤변론자 최장집
 국정원고소사건 환영!!

접속
통계
오늘 105
전체 7093012
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조흡
제 목 방송개혁을 위한 5가지 제안
방송개혁을 위한 5가지 제안

조흡 │문화연구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

꽃 피고 새 우는 봄철에 꼭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가 정기 방송프로그램 개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방송3사는 일제히 춘계 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 개편은 여느 때와는 많이 다르다. 방송사들이 대부분 오락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면서 유명한 MC 모시기 경쟁에 나선 것이다. 방송의 고질병이 덧났다고나 할까. 이런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각 방송사들이 작심을 하고 나섰는지 그렇지 않아도 강했던 오락기능을 더욱더 강력하게 만든 것 같다.

예를 열거해 보면 이 얘기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영방송 KBS는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실하에 2TV에 많은 오락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밤 남희석, 유재석, 이휘재가 시츄에이션 코미디 {멋진 친구들}에서 우리를 웃기고 있고, 이들이 잠시 쉬는 주말 저녁에는 또다른 시트콤 {사랑의 유람선}으로 시청자들의 코미디 금단현상을 달래주고 있으니 KBS의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지극해 그야말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어디 이뿐인가. 기존의 화요일 저녁 붙박이 프로그램인 {서세원쇼}의 성공(70분으로 늘어났단다)을 기념하여 하루건너 목요일의 {夜! 한밤에}까지 서세원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배려도 잊지 않은 것을 보면 KBS는 분명 의리 하나는 끝내주는 방송사인 것 같다. 그래도 시청자들에게 한 주일 동안 필요한 절대오락섭취량에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금요일 저녁에는 MBC의 간판 노릇을 해왔던 이경규를 꼬드겨 심현섭과 함께 {이경규·심현섭의 행복남녀}를 맡게 시켰으니 이 어찌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청자들은 정말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모자란다고 여겼는 모양이다. 월요병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근로자들을 위하여 주말을 월요일까지 연장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제 월요일 저녁 11시대의 텔레비전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다양하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SBS의 {이홍렬쇼}, MBC의 {세친구}, 그리고 2TV의 {TV는 사랑을 싣고}가 월요일로 옮겨 시청자들의 눈길을 독점하기 위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방송3사가 똑같은 장르의 프로그램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그것도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번 개편에서 도드라진 특징은 그렇다면 오락 프로그램의 신설 내지는 대폭 강화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불어 따라다니는 인기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인기 있는 프리랜서 MC들을 방송사에서 선호하다 보니 아나운서들이 봄개편에서는 찬밥신세가 됐다. 한마디로 아나운서들의 대참패다. 이렇게 공영방송이라는 KBS마저 시청률 경쟁에 뛰어들어 오락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을 보면 분명 깊은 사연이 있어서이리라. 원래 2TV는 그 성격이 공영인지 상업방송인지 모호하긴 했지만.

광고와 시청률연동제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변화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의 결과였다. 각 방송사에서는 방송광고공사가 ‘탄력요금제’를 확대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시청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방송편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제는 한국 방송도 외국의 경우처럼 시청률이 높아야 광고료를 더 많이 따낼 수 있는 ‘시청률연동제’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네트워크를 다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률이 낮으면 아무리 프로그램이 좋아도 퇴출시켜야 하는 그런 ‘선진제도’를 한국이 따라서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청률 게임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방송사들도 넘버 게임에 충실해왔다. 방송인들에게 시청률이라는 숫자는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무명에서 스타로 변신할 수 있는 것도 시청률 때문이요 프로그램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도 바로 이 매직 넘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주에 어느 방송사 어느 프로그램이 넘버 원이었고, 다음 주에는 무슨 프로그램이 치고 나와 시청률이 또 어떻게 뒤바뀔지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제부터는 누가 광고료를 높게 책정해 이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는지가 전적으로 시청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하루 단위로 이뤄지게 생겼다. ‘시청률연동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만 해도 프로그램이 최악의 상태만 아니라면 그렇게 쉽게 변경되지는 않았다. 이제 시청률이 곧 이익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이 마당에 방송사들의 인내심은 점점 더 짧아질 것이며 잦은 프로그램 변경 또한 시청자들이 경험하게 될 커다란 변화일 것이 틀림없다. 1년 후를 내다보고 방송 스케줄을 짜는 비전 있는 방송사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얘기다.

프로그램 제작을 일선에서 담당하는 PD들도 일하기가 어려워진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제 프로그램 개발에 시간을 쏟기보다 최소한의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인기 연예인 확보에 더 많은 공을 들일 것이 뻔하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PD연합회보} 2000년 4월 12일자 보도는 “아직 심각한 상태는 아니나 개편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출연자 섭외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PD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이런 문제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또 시청률이 나쁠 경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대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표절의 유혹에 빠져들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시청률연동제 이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동안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시사와 다큐멘터리 같은 교양 프로그램의 제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시사·교양물들은 연예·오락물에 비해 시청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들이 그 동안 여전히 존속했던 이유는 이익이 남는 연예 프로그램으로 돈이 안 되는 교양 프로그램을 보조하는 교차원조(cross-subsidization)원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적이고 공익적이며 일부는 재미있기까지 한 프로그램조차도 시청률이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오락 프로그램이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 비해 저속하거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오락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면 그 자체가 시민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준다는 징후일 것이며, 따라서, 가장 대표적인 민의(民意)가 그 프로그램 속에 담겨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가장 많은 시민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그만큼 민주적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TV배우 김남주보다 못할 것이 없는 아나운서 임성민

한국의 방송에서 가장 심각한 비민주적인 요소 중 하나는 아마 성차별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의식수준은 그야말로 몰상식한 정도다.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여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따지고 보면 배려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배려라는 말속에는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약한 존재쯤의 의미로 남성들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속뜻이 배려라는 단어 속에 배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여성비하(?)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방송 현실이다. 남녀가 공동 MC를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나는 아직까지 여성 파트너를 ‘배려’하는 남성 MC를 본 적이 없다. 1시간짜리 프로그램에서 남성 MC들이 과시하는 오프닝 멘트에서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안쓰럽고 처절하기까지 한 마초근성을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여자 아나운서나 MC가 끼여들 틈을 주지 않는다. 혼자서 제 잘난 모습을 보여주기에 급급하여 결국은 꼴불견으로 추락하는 ‘과잉’의 부메랑 원칙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보라! 허참, 이상벽, 손범수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이는 상대가 여자 연예인인 경우에 특히 심하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텔레비전 여배우를 MC로 기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방송사에서 그들을 기용하는 이유는 대부분 현재 누리고 있는 인기를 이용하자는 것이지 그들의 진행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에 MC로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입의 가치보다 얼굴값을 더 높게 쳐준 결과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진행은 남자가 도맡아 하고 여자는 멍청하게 서 있는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마치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예쁜 얼굴이 전부라는 듯이 말이다.

이런 현상은 여자 MC가 아나운서일 때도 다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쇼를 진행하면서 줄기차게 말을 독점하는 쪽은 남자 아나운서이고 여자 아나운서는 남자들이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하거나 가볍게 의미 없는 코멘트를 하는 것이 여성 MC의 ‘근무수칙’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여자 아나운서들도 대체로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남성들보다 무능하게 보인다.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끔 방송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남성 못지 않은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은 조금도 중요치 않다. 방송 현실이 그런 여성의 능력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봄프로그램 개편에서 가장 큰 희생자 또한 여자 아나운서들이다. 시청률연동제의 불똥이 여자 아나운서에게로 튄 것이다. KBS 2TV의 경우 세 개의 프로그램에서 기존의 여자 아나운서가 담당하던 프로그램이 연예인이나 전문 MC의 몫으로 바뀌었다. {연예가 중계}를 담당하던 임성민 아나운서는 텔레비전 배우 김남주로 바뀌었고, {TV는 사랑을 싣고}의 이금희 아나운서는 프리랜서 MC 이매리로 대체되었으며, {비디오 챔피언}에서는 정세진 아나운서가 물러나고 대신 연예인 박시은이 등장하고 있다.

나는 이런 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임성민, 이금희, 정세진 아나운서가 김남주, 이매리, 박시은보다 어떤 점에서 못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들이 아나운서들보다 더 매력적인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있다. 적어도 아나운서들이 연예인들보다는 프로그램을 더 잘 이끌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개편된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것이 개편 이전의 것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나운서들이 진행했던 예전 프로그램이 훨씬 더 신선하고, 차분하며, 정연하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물론 텔레비전을 보는 재미 또한 개편 이전의 것이 더 쏠쏠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바로 이런 점이 시청률연동제가 가져온 모순이자 병폐인 것이다. 시청률을 높여보려는 욕심 때문에 연예인으로 사회자를 대폭 물갈이했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아나운서가 맡아 했었을 때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방송사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방송은 그래서 모순의 연속이다. 하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랄 수 있는 시청률 조사라는 것 자체가 허구요, 신화요, 미신인지라 크게 놀랄 만한 일은 못된다. 진정한 프로그램 개발의 노력 없이 알려진 연예인의 얼굴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띄워보려는 방송사들의 행위야말로 시청률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조사해낼 수 있다는 신념만큼이나 허황되고 황당한 생각이다.

싸워서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앞뒤 안 맞는 일들을 무관심하게 넘겨서는 안 된다. 눈앞에 보이는 모순 덩어리들을 당장 도려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은 가장 대중적인 것이다. 그런 대중적인 영역에서조차 민주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 이 사회에 널려있는 더 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사회적 권위주의는 쉽게 비판하면서도 텔레비전 화면에서 벌어지는 봉건적 행태에 대해 단순히 오락의 영역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바람직한 내일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락 부문의 민주화는 사회변동의 선행조건인 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된 부분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 주변환경의 민주화를 꾀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더 나아가 제도와 사회가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보다 나은 사회, 그것은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가야 하며 또 하기 나름이다. 사회의 민주화는 싸우지 않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락 영역의 민주화는 총선연대가 펼쳤던 낙선운동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문제가 또다른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상관관계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행동이다. 방송사들이 공익을 저버리고 자사의 이익에 어두워 일상적 봉건주의를 일삼는다면 시청자들은 자신의 주권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방송사에 따져 묻고 그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시청자들이 아주 손쉽게 행동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점은 오직 하나. 그것은 시청자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생활하면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실천해달라는 것이다.

방송개혁을 위해 수용자들이 첫 번째로 실천해야 할 사항은 전문 MC들이 2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맡지 못하도록 시청자들이 방송사에 항의하는 것이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를 막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일주일에 프로그램을 2개 이상 이끌어 나갈 능력이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방송을 하려면 일주일에 하나도 벅찬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얼굴을 일주일에 2시간 이상 바라본다는 것은 시청자로서도 괴로운 일이다. 현재 서세원이 방송3사에서 4개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한국 방송이 저질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산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서세원이 4개의 프로그램 중 두 개만 선택하여 방송을 보다 더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둘째로 남녀 MC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뉴스 진행까지 포함해서다) 가능하면 역할 분담을 50 대 50의 비율을 지키도록 노력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60 대 40까지도 허용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남성 MC가 모든 멘트를 독점하려고 들거나 여성 MC를 요식행위로만 대할 때는 그 남성 MC를 프로그램에서 퇴출시키도록 방송사에 요구한다. 이 점은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나서서 실천해줘야 할 문제다. 그 동안 이런 사실 자체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위대한 가부장주의 이데올로기의 승리 덕분이었다. 이제라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시정하는 데 여성 시청자들이 직접 나서야 할 때다.

셋째, 모든 방송사들이 최소한 2 대 1의 비율로 연예·오락 프로그램과 교양·문화 프로그램을 제작하도록 유도한다. ‘탄력요금제’ 또는 ‘시청률연동제’로 불리우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압박에서 벗어나 보다 창조적이고 수용자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제작자들이 만들 수 있도록 엄밀한 의미의 교차원조를 시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심지어 KBS마저도 이익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기구이다. 회사가 이익을 얻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화의 영역까지 순전히 자본의 논리로만 판단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따라서 연예·오락 부문에서 얻은 수익으로 교양·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할 수 있도록 방송사를 감시하고 독려해야 한다.

넷째, 수용자들은 이런 모든 사항을 방송사에 직접 요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정이 즉각 이뤄지지 않을 때는 또다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방송사는 다른 권력기관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시민들의 항의에 상당히 민감하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월간 {인물과 사상}의 독자만으로도 방송의 잘못된 점을 상당히 많이 바로잡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과 실천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항의와 수정요구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컴퓨터 통신과 아직까지 한국에서 실행되고 있지 않은 방송 프로그램 스폰서에 대한 직접항의를 제안하고 싶다.

컴퓨터 통신과 스폰서를 이용하자

자본, 자유, 법치, 대의민주주의를 200년 넘게 경험한 서구에서는 이제 시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정치인들이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리나 정당의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일 뿐이라는 비난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불신은 심화되고 그 단적인 징후가 투표참여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정도 서구와 비교해서 더 나을 것이 없다. 지난 총선에서 보여준 낮은 투표율은 바로 이런 염려스러운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위기론 사이에 일부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이제 막 새로 등장한 전자통신이 대의민주주의의 폐단을 해결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그들은, 예를 들어, 전자투표제도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에 해당하는 획기적인 방법으로서 현대사회에 팽배해 있는 ‘정치의 위기’ 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얼핏 이 얘기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인터넷 사용자의 증가율을 감안해 보면 인터넷이 전화만큼 흔하게 보급될 날도 별로 멀지 않았으며, 바로 그 순간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가 회생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는 제법 그럴 듯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설령 사이버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중요한 안건에 대해 신중한 논의 없이 무작정 총체적 의견만 수렴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 반영된 여론으로 보기 힘들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말할 공간이 확대된 사실에만 주목할 뿐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 결국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듣기연습의 부족을 초래할 것이라는 염려 또한 근거 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에서 나타난 소수의견의 무시라는 폐단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재현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자통신이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펼 기회를 확대해 주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PC통신을 잘 이용하면 누구라도 기성 일류 신문기자의 역할을 수행해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런 가상공간의 잠재력을 이용해 방송개혁을 이뤄보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물론 이미 네티즌 사이에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평이나 불만사항의 게시가 성행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 대부분은 연예인들에 관한 사소한 가십거리나 제작과정에 나타난 오류를 지적하는 등 방송공익에 관한 토론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오락적 욕구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네티즌들은 방송사에 직접 ‘편지쓰기’운동을 통해 이제까지 지적한 비민주적인 방송의 행태에 대해 시정요구를 조직적으로 감행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스폰서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불만스러운 방송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스폰서를 직접 설득하는 방법으로 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제 우리도 프로그램이 잘못됐을 경우 그 스폰서들까지도 프로그램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책임을 묻는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간단하다. 수용자들이 방송사에 제시한 불만사항을 스폰서에게도 전달해 만약 그들의 시정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그 스폰서 회사의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일종의 스폰서 연좌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세원이 {夜! 한밤에}나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퇴출될 때까지 이들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스폰서들에게 항의를 계속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방법들이 방송민주화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다. 현재의 월간 {인물과 사상} 독자들만으로도 서로 힘을 합치고 위에 제시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실천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방송을 수용자들이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의 텔레비전은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반민주적이어서 고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한꺼번에 개혁하려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인 방송개혁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텔레비전을 대하면서 순간순간 나타나는 잘못된 관행들을 곧바로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는 개혁의 생활화일 것이다. 수용자들의 이런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송개혁에 대한 실천이 없이 텔레비전이 스스로 변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민주방송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는 시청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3

2002/06/27 (23:54:26)    IP Address : 211.195.124.241

578    왜 잘못을 시인할 줄 모르나 조용훈 2002/06/27 887
577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6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1053
576    박원순 변호사님께 강준만 2002/06/28 976
575    유홍준과 오동명: 엉터리와 진짜 강준만 2002/06/28 1384
574    박노해 {조선일보}와 ‘논쟁’에 대하여 강준만 2002/06/28 1061
573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 고승원 2002/06/28 919
572    {전남일보} 편파보도와 신문의 개혁 임동욱 2002/06/28 769
571    부일시론 <지역당? 영남당!>을 쓴 뒤 내게 일어난 일들 노혜경 2002/06/28 846
570    영남인들에 대한 분노와 김대중의 어리석음 구본영 2002/06/28 917
569    조기숙 : 4·13 총선과 지역감정 강준만 2002/06/28 899
568    4·13 총선과 소설가 배수아의 고민 김동민 2002/06/28 859
567    이문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2002/06/28 1206
566    엘리안 곤잘레스의 진실 송기도 2002/06/28 1017
565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② 강준만 2002/06/28 909
564    서울대 지방 이전?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김완수 2002/06/28 947
563    과외(課外)에 관한 단상 기호민 2002/06/28 728
562    < TEPS 과연 무엇인가? > 그 후 성기완 2002/06/27 969
561    시간강사는 21세기 문명 시대의 야만이다 최영환 2002/06/27 980
560    <미국 멤피스시의 법정 풍경>을 읽고 김형수 2002/06/27 1041
559    좋아하는 대중문화, 소비로 말하자! 이시우 2002/06/27 896
558    "난(亂)" 유감 안한준 2002/06/27 866
   방송개혁을 위한 5가지 제안 조흡 2002/06/27 925
556    ‘아름다운 책’과 ‘예쁜 책’ 이미영 2002/06/27 864
555    내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출판관련 기사 셋 최성일 2002/06/27 827
554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5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1032
553    정권교체는 세상을 바꾸었는가? 강준만 2002/06/28 894
552    손학규와 최영희 정실주의는 안 된다 강준만 2002/06/28 1142
551    유석춘 : “{중앙일보}의 앞잡이”인가? 강준만 2002/06/28 1176
550    김승수 교수에게 묻는다 김동민 2002/06/28 859
549    ‘특권 중독증’을 추방하자 강준만 2002/06/28 1083

[1][2] 3 [4][5][6][7][8][9][10]..[22] [NEXT]

Admin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WiZ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