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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최성일
제 목 내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출판관련 기사 셋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내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출판관련 기사 셋


대놓고 말하기가 좀 쑥스럽지만 나는 출판에 관한 한 전문가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혜안을 지닌 출판분석가는 아니고, 적어도 출판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은 무리없이 내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소설가 이윤기 씨의 ‘전문가론’에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다. “진정으로 그대들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라. 좋아하면 자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전문가가 된다.” 이윤기 씨가 산문집 {무지개와 프리즘}(생각의나무)에서 젊은이들에게 들려준 조언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의식적으로 책과 출판 관련자료를 사거나 얻어서 모으고 읽기 시작한 것은 이제 꼭 10년째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라는 전제 아래, 그 분야에 10년 정도 매진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윤기 씨의 조언은 젊은이들에게는 더 없는 충고가 된다.

전문가가 보여주는 미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해당 분야에 대한 애정을 첫 손 꼽고 싶다. 좋아해서 시작했으니 애정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을 유일한 현장 출판평론가로 여긴다. 나는 때로 그의 책과 출판을 향한 가없는 사랑에 질투마저 느끼곤 한다.

“한 책의 성공 요소를 대량 광고, 언론의 지원, 사재기, 대형서점과의 유착 등의 흙탕물적인 요소만으로 일축해 버리는 태도는 버려야한다. 그렇게 흙탕물만 보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빨리 출판시장에서 떠나는 편이 낫다”({희망의 출판}, 창해, 44쪽)는 통렬한 발언을 통해서는 대리만족을 얻기도 했다.

날마다 다른 신문

{출판저널} 기사 쓰랴, 다른 지면에 연재하는 글 쓰랴 눈코 뜰 새 없는 요즘이다. 어찌나 바쁜지 신문 한 장 제대로 볼 여유조차 없다. 물론 이건 과장법이다. 신문은 매일 본다. 그런데 날마다 사는 신문이 다르다.(사무실에서 신문을 여섯 개나 구독하고 있지만, 나는 신문을 사서 본다. 정보는 돈 주고 얻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출판 섹션이 나오는 요일에 맞춰 개별 신문을 구입하면 얼추 한 주가 커버된다. 이를테면 월요일은 {한겨레}, 수요일은 {문화일보}, 목요일은 {경향신문}, 금요일은 {중앙일보}, 토요일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산다.

신문의 출판면에 나는 대체로 만족한다. 이건 신문들이 출판면을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몇몇 출판에 애정을 가진 기자들 덕분이다. 하지만, 시사주간지와 월간지의 출판 관련기사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주간지와 월간지의 출판 관련기사에서 실망하는 것은 대부분 전문성이 결여됐을 경우다. 그런 기사에는 당연히 애정도 없다. 게다가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이제 살펴볼 세 건의 기사는 내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비판 대상이 {한겨레21}과 {말}의 기사인 것은 두 잡지를 정기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지, 다른 뜻은 없다. 나는 내가 구독하는 잡지에 출판 관련기사가 실리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가판대에서 날마다 다른 신문을 집어드는 것처럼 그 기사를 먼저 읽는다. 세 개의 기사도 그렇게 읽은 것이다.

{한겨레21} 조성곤 기자의 <참고서 할인판매, 그 더러운 먹이사슬>(제303호, 4월 13일자)은 출판계를 무슨 ‘비리의 온상’인 양 묘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참고서 유통의 문제점을 다뤘다. 나는 참고서는 책의 범주에 넣고 싶지 않지만, 참고서가 우리 나라 출판의 주류인 것이 현실이다. 참고서의 문제점이 곧장 출판 전체의 문제로 연결되는 상황인 것이다.

기사의 컨셉이나 내용에 오류는 없다. 다만, 왜 지금 참고서 문제를 언급했는지가 의문이다.
“올해 둘째를 중학교에 보낸 주부 김아무개(39·서울시 도봉구 수유동)씨는 얼마전 아이에게 들어가는 참고서 비용을 계산해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필요한 참고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10여개 과목의 자습서에 문제집을 더해 모두 20여권. 한권당 6천∼9천원씩 하는 참고서를 다 마련하다보니 15만원이 훌쩍 넘었다. 지난 2월 새 학기를 앞두고 고등학교 다니는 첫째 아이의 참고서 비용으로 이미 30여만원을 지출한 김씨로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교과서에 별도로 참고서를 갖춰야만 하는 교육 풍토는 논외로 하더라도 참고서 비용이 가계에 주름살이 지게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5∼20년 전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전체 과목의 절반에도 못 미치게 참고서를 구입했고, 문제집은 거의 사지 않았다. 그런데도 참고서를 살 적마다 대신 시집이나 소설책을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참고서의 효능에 대해 회의가 많지만 사정이 아직도 이러하니 하루빨리 참고서가 필요 없는 풍부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가 출현해야겠다.

참고서는 마약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기사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이 불특정인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를 참고서 가격 문제의 취재원으로 삼는 것은 {조선일보}가 특정 사안을 여론화할 때 즐겨 쓰는 수법이다.

“테크노바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60∼70%가 마약을 한다.” {스포츠 조선} ‘시선집중 오늘’(4월 25일자)의 서두다. “서울 홍대 P테크노바에서 만난 김 모씨(25)의 충격발언이다”라는 기자의 설명 다음에 경찰청 마약계장의 멘트가 이어진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유흥업소 주변의 20대 마약사범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약계장의 말을 들으면 기사의 진의가 분명하게 파악되지만, 기사의 제목은 <“테크노바 출입 70% 마약 복용”>으로 뽑아져 있다.

그래도 {스포츠 조선}은 마약계장 이름과 기사 말미의 대학생 이름은 실명을 밝히고 있다. 반면, {한겨레21}의 취재원은 하나같이 익명으로 처리돼 있다. 기사의 내용으로 보건대 취재원을 꼭 숨겨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발언 수위가 이름을 밝혔다고 사생활에 침해를 받거나 일터에서 쫓겨나는 불이익을 당할 정도는 아닌 까닭이다.

하지만, 정보 제공자의 이름을 모두 가려버림으로써 뜻하지 않은 효과가 나타났다. 출판계가 무슨 거대한 음모집단인 양 비치게 하고 있다. <동네 서점들만 죽는다>는 제목의 박스 기사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며칠째 잠복을 하고 있었다” “할인매장쪽에 참고서를 전달한다는 제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공급자를 붙잡아” “할인매장에 책을 공급하는 현장을 덮쳤다” 등의 표현은 ‘마약 밀매’를 연상케 한다. 그러고 보니, 참고서는 마약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한 번 맛을 들이면 끊기가 어려우니까.

사람은 책만 갖고서도 살 수 없어

신윤동욱 기자의 <“책읽기가 괴로워요”>({한겨레21} 제305호, 4월 27일자)는 처음에는 흘끗 읽고 넘어갔다. 그랬는데 그 기사에 대한 독자투고를 보고 다시 정독을 했다. <독서환경은 국가의 미래>(제307호, 5월 11일자)라는 제목이 붙은 독자편지는 이렇다.

“‘책읽기가 괴로워요’라는 기사를 보고 공감하는 점이 많았다. 가끔 휴일에 어린 딸을 데리고 공공도서관에 가 보면 자리가 너무 좁을 뿐 아니라 보유장서도 별로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독서는 한 나라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특히 많은 시민들이 출입하는 공공도서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서관 환경개선을 더이상 뒤로 미루어서는 안된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책읽기가 괴로워요”>에서는 동의하지 못할 대목이 적지 않다. 책을 라면이나 생수 같은 상품보다 우선시하는 시각은 반갑지만, 정말 책이 그런 상품에 비해 나은 것인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또, 어떤 기준으로 공들인 책과 공들이지 않는 책을 판별하는지 그 비법을 배우고 싶고, 책에 대한 식견이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는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명은 나중으로 미루고,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 하나만 지적하기로 하자.

“이처럼 어린이 독서환경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다. 대형할인마트의 가격파괴와 같은 무분별한 시장논리 속에 어린이책마저 내맡겨진 탓이 크다. 최소한 어린이책에 관한 한 공공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기자의 충정을 십분 이해한다. 허나, 잘못된 현상을 개선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제시한 대안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량도서를 선별하고, ‘보호’하는 방패막이 필요하다.”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나는 이런 말을 함부로 못하겠다. 마치, 파문이 일어나자 서둘러 취소한 교육부 장관의 ‘저소득층 과외비 지원’ 발언을 듣는 듯해서다. 내가 책을 끊임없이 사 모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 있다. “책에서 밥이 나오냐.” 지금은 내가 책으로 밥을 먹고 있지만, 당장 배고픈 어린이에게 책은 나중 문제다. 나라에서 어린이책에 쏟을 여력이 있으면 그 전에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과외대책으로 고작 ‘저소득층 과외비 지원책’을 생각해내는 당국이 무슨 수로 ‘우량도서를 선별’할런지 심히 의문이다.

기사의 기본은 팩트

그래도 {한겨레21}의 출판관련 기사는 {말} 2000년 5월호에 실린 기사에 비하면 ‘양반’이다. 나는 <교보문고, 가로막힌 지성의 길>이라는 제하의 글을 읽고 경악했다. 당사자인 교보문고의 반응은 가히 분노에 가까웠다. 눈썰미 있는 독자는 기억하실 게다. 나는 지난해 10월호에 대형서점을 비판한 일이 있다.`1) 실명을 언급할 용기가 없어 “어느 대형서점”으로 표기했지만, 그것마저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생각 외로 소심한 사람이다.

이제 그 빚을 갚게 되어 기쁘다. 이런 계기를 마련해준 월간 {지오}의 박형숙 기자에게 감사드린다. 내가 갖고 있는 {지오} 표지에는 “생생한 다큐멘터리 잡지”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잡지다. 다큐멘터리 잡지 기자가 서점에 관한 글 쓰지 말란 법은 없지만, 가급적 안 쓰는 게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서점 이용자의 단순한 인상기가 아니라, 이 글마냥 ‘전문’ 영역을 ‘침범’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말}지가 진보적 잡지임을 표방해서 그런지 초장부터 ‘민중’이 자주 언급된다. 일례로 “민중적 할인구조”를 뜬금없이 내세운다. 그건 그렇고, 박형숙 기자는 “2백30만종의 책, 하루 평균 6∼7만 명이 거쳐가는 2천7백평의 공간은 우리에게 생각의 과정을 제공한다. 또 가끔씩은 역사는 진보하지 않을까 하는 아름다운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책들의 거처”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칭송”은커녕 야유로 들린다. 일주일에 두 번 가량 교보문고를 찾는 나지만(박형숙 기자는 월 2회 교보문고를 출입한다), “생각의 과정”이나 “역사의 진보”를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솔직히 “생각의 과정”은 도대체 뭔 말인지 감도 안 잡힌다.
박형숙 기자는 “서점의 기본은 책”이라면서 책들이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는 ‘국어와 언어’라는 푯말이 서 있는 진열대의 혼란을 지적한다. 마침, 진열대의 사진이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말 바로쓰기부터 맞춤법, 출판의 성공학, 수사학, 촘스키까지 진열”돼 있는 것이 혼란스럽지 않다. 그리고 “출판의 성공학”이란 범주가 언제 새로 생겼나 보다. {희망의 출판},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신한미디어) 같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 듯한데, 그 책들은 “성공학”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신간과 잘 팔리는 책(그 역시 독자들의 선호에 의한 것인지 출판사 로비를 통한 것인지 알 수 없다)을 위주로 한 교보의 진열 방식은 독자에게는 편식 습관을, 또한 신간도 아니고 잘 팔리는 책도 아니어서 ‘다이’에서 내려온 책들에는 일종의 아노미 현상을 안겨준다.”

박형숙 기자는 교보문고를 서점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독서편식은 대형서점의 진열 방식 때문이 아니다. 독자들의 편식이 심하기 때문에 서점이 진열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문예출판사 전병석 대표 같은 분이 우리 독자들의 행태를 두고 “충동구매라기보다는 추종구매라고 하는 편이 맞다”고 했을까. “출판사 로비” 운운하는데 증거도 없이 그런 말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글쓰기의) 전문화가 문제다

“문제는 전문화다. 제목이 아니라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전문사서와 좀더 세분화된 검색시스템(가령 ‘12번 인문과학→철학→인간론’식으로)을 갖춰 독자의 책 찾는 즐거움을 돌려주는 것이 진정한 전문화의 길이다.” 계속 박형숙 기자는 서점을 도서관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억력에 의존한 도서검색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되면 큰 불편은 없다. “출판 동향을 분석하고 고전을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의 재교육”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힌다. 석·박사 소지자를 서점직원으로 채용한들 가능한 일일까?

“서점은 평등한 곳이다. 교수든, 정치인이든, 노동자든 서점에선 모두가 같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목적은 하나다. 책과의 대화. 책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가려줄 사람을 기다린다.
빈부는 지성, 교양의 차이에서 비롯될 뿐이다. 서점에서의 스트레스는 그뿐이어야 한다. 자신의 지적 빈곤을 체감하는 뼈저림.”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목을 길게 인용한 것은 “서점은 평등한 곳”이라는 전제가 엄청난 망발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건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박형숙 기자는 교보문고가 시장바닥 같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다분히 취향의 문제다. 지난 5월 1일 교보문고에서 {경향신문} 조운찬 기자를 만났다. 조 기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이는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시끌벅적한 서점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박형숙 기자는 지난해 교보문고가 24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고 전한다. 그리고는 그 많은 이익을 내게 해준 독자에게 교보가 무얼 해줬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극언을 하기에 이른다. 결론 부분은 내게 이 글의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때 자신이 교보의 책도둑이었음을 저서에서 밝힌 어느 문화평론가는 자신의 범법행위에 대해 당당히 고백했다. “교보는 서점재벌이다. 무수한 독자들을 통해 축적한 교보라는 대자본의 이윤을 나는 도둑질을 통해서라도 사회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초 서점의 태생과 성장엔 늘 독자가 있었다. 그것이 서점의 생리다. 하지만 ‘살 것 사고 빨리 나가라’는 서점에서 연간 3억원어치나 되는 책을 도둑질하는 행위는 혹시 자신들이 투자한 것을 강제압류 하려는 독자들의 숨죽인 테러가 아닐까. 비약인가. 왠지 즐겁다.

우선, 나는 ‘또라이’ 같은 생각을 “당당히 고백”하는 문화평론가가 누군지 궁금하다. 상서럽지 못한 표현을 쓴 것은 증거를 확보해 그 문화평론가를 감옥에 집어넣고 싶어서다. 책도둑질도 명맥한 절도 행위다. 또, 그런 생각은 집집마다 냉장고 문을 열어놔 자본주의 체제를 파탄으로 몰고가겠다던 어느 래디컬 그룹의 천진난만과 다를 바 없다.

끝으로 박형숙 기자에게 한 가지만 묻고 싶다. 허면, 도서관에서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난도질해가는 것도 엉망인 도서관 시스템을 향한 “숨죽인 테러”인가요?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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