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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정권교체는 세상을 바꾸었는가?
정권교체는 세상을 바꾸었는가?
/강준만



‘김대중 대통령’을 원하는 여섯 가지 이유

나는 1997년 1월에 『인물과 사상 1』에 쓴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 ‘김대중 집권’이 그렇게 두려운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권교체를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97년 11월에 낸 『인물과 사상 4』에 쓴 <지식인의 생명은 ‘자기 성찰’: 유시민의 반론에 답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원하는 여섯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첫째, 나는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원한다. 둘째, 남북문제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탁견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비교적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넷째, 역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다섯째, ‘이지메’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여섯째, 다섯 번째 이유의 당연한 귀결이 되겠지만 지역문제 해결이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원하는 마지막 이유다.

이제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지 2년이 흘렀다. 나는 나의 장담에 대해 스스로 ‘중간 평가’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두 명의 탁월한 논객이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오셨기에 나의 ‘중간 평가’는 그 분들의 주장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할 것이다.

유시민과 손호철의 평가

유시민은 2000년 1월에 나온 『인물과 사상 13』에 쓴 <2000년 총선, ‘나’의 세 가지 투표원칙>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권교체는 세상을 바꾸었는가?” 나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강(준만) 교수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와 희망이라는 기준에 따라 변화의 정도를 평가할 것이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소감에 불과하다. 그 누구도 ‘객관적으로’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꾸었는지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한다면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것이요, 그 반대의 경우라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1997년 대선 결과를 극히 비관적으로 전망했을 뿐만 아니라 DJ가 집권을 해도 정치를 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나는 ‘김대중 필패론’이 오류로 드러났던 것처럼 김대중 정권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비관적 전망 역시 오류로 판명되기를 간절히 바랐고, 지금도 똑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태는 그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44쪽)



손호철은 1999년 12월에 나온 자신의 저서 『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푸른숲)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이에 따른 저항적 지역 정당의 집권은 수평적 정권교체론의 주장처럼 지역주의를 해결하고 있는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 지역주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수평적 정권교체론의 주장처럼 수평적 정권교체는 한국정치·사회·경제의 전면적인 구조 개편과 전면적인 민주화를 가져다주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 또한 그런 것 같지 않다. …… 그러면 수평적 정권교체는 민주적 정당정치의 확립, 정치도덕의 확립, 보수·진보의 정책 대결의 선진적 정치 질서의 확립 등 한국정치의 전면적인 구조개혁과 전면적인 민주화를 가져다주고 있는가? 나의 설명 없이도 그 답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수평적 정권교체는 전혀 그 행태의 변화가 없는 여야 간의 역할 교체만을 가져다주었을 따름이다. …… 사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와 양심수 문제의 경우, 김대중 정권 출범후 1년 동안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구속자 수가 김영삼 정권 초기 1년보다 무려 4배나 늘었다. …… 한마디로 “정권은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아니 논쟁적으로 표현하면,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양심수가 4배나 늘어나도록.”(154∼157쪽)


강준만의 진단은 83점

나는 유시민의 주장에 대해선 반론을 할 생각이 없다. 그는 정권교체를 원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평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손호철의 주장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다. 그는 정권교체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선 국면에서 그가 쓴 신문 칼럼들을 비판하면서 그 점을 충분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호철도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내 말이 맞다는 데에 동의하리라 믿는다.

손호철의 주장에 대한 나의 반론은 간단하다. 그래서 이회창이 집권했으면 세상이 바뀌었겠느냐는 거다. 이회창이 대통령에 당선 안 된 게 그렇게 억울하냐는 것이다. 손호철은 “나는 이회창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상이 바뀐다고 사기를 친 적은 없다”고 항변할 법하다. 그렇게 항변해도 될까? 나는 손호철이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손호철의 성향상 ‘세상을 바꾼다’는 주장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권영길이 대통령에 당선됐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준으로 따지자면 대통령 선거건 국회의원 선거건 대학총장 선거건 그 무슨 선거건 선거에 임하거나 관전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절대 ‘바꾼다’는 말을 써선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면 대화가 안 된다.

나는 정권교체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100%는 아니다. 내가 제시한 여섯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나의 판단 착오였음을 인정한다. 점수로 따지자면 83점이다. 아주 좋은 점수는 아니지만, 나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뻔뻔한가? 하나씩 설명을 해드리겠다.


정권교체는 세상을 이렇게 바꿨다

첫째, 나는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원한다고 했다. 정권은 교체됐다. 세상을 바꾼 게 있는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결혼했다고 그 다음날 바로 애 배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권은 늘 여당만 해 처먹는 게 아니며 정권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 사회 각 부문의 독립성과 자율성 신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정치공작은 정부여당의 전유물만이 아니며 야당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도 바로 그런 변화의 산물이 아닐까? 정권교체는 절대 안 된다는 범국민적 패배주의를 깬 것도 엄청난 변화다. 이 변화는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삶의 미덕으로 간주해 온 수많은 국민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정부여당`=`수구 기득권 세력’이라는 등식을 깬 것도 엄청난 변화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여당이 용공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변화다. 왜 이런 엄청난 변화가 손호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혹 바뀐 게 전혀 없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결론에 합당한 증거만을 찾는 데에 주력했던 건 아닐까?

둘째, 나는 남북문제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대중의 탁견과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야 김대중 정권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아우성치지만 적어도 진보주의자라면 대북정책에 있어서 지난 수십 년 간 지속돼온 냉전주의와 북한 카드의 정치적 이용만큼은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크게 변화됐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도 인정할 수 없단 말인가? 아니면 김 정권이 오히려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회창과 한나라당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말인가?

셋째, 나는 김대중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비교적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나는 이 점에선 나의 진단이 실패했다는 걸 인정한다. 구태의연한 권모술수의 자질은 여전히 탁월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기대를 걸었던 것은 그게 결코 아니었다. 나는 김대중이 정권교체를 이루고 나면 어떤 식으로건 대대적인 정치개혁을 하리라고 믿었었다. 그토록 욕을 먹어온 이른바 ‘보스 정치’도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요악’이었음을 실토하면서 구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무언가를 보여주리라 믿었었다. 이와 관련된 나의 판단 착오에 대해선 그 어떤 비판도 흔쾌히 감수하겠다. 혹자는 DJP 연합이라고 하는 원초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김대중을 옹호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DJP 연합마저 지지했던 내가 왜 그걸 감안하지 않았겠는가? DJP 연합으로 인한 한계와 무관한 분야를 살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바로 여기서 호남이 문제가 된다. 호남 내부의 개혁이 DJP 연합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정권교체 이후 호남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없다. 전혀 없다. 그간 정권교체 하느라고 춥고 배고팠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논공행상(論功行賞) 차원에서 재미본 걸 빼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넷째, 나는 역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김대중 정권이 크게 실망스러울망정 나의 ‘역사에 대한 보상론’을 무력화시킬 만큼 엉망진창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이타적인 운동을 열심히 했거니와 똑똑하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과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개인적 안일을 추구하되 적당히 좋은 평판을 누린 사람이 4·13 총선시 어느 지역구에서 격돌한다고 치자. 나는 두말없이 전자(前者)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왜? 역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중산층은 달리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를 표방하는 손호철이 이 역사에 대한 보상 정신을 외면하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권교체 덕분에 전부는 아닐망정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국민 뇌리 속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물론 오히려 실망을 시켜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좌절감을 더 안겨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나, 손호철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꾸짖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다섯째, 나는 ‘이지메’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대중에 대한 역대 정권들과 일부 국민들의 ‘이지메’에 대해선 기꺼이 동의하리라 믿는다. 나는 이 주장을 하면서 “이지메를 당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건 결코 감상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이지메를 가능케 했던 구조와 관행을 깨는 것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발상의 산물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 보자. 정권교체 이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김대중과 전라도에 대한 이지메가 그럴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결국 ‘힘의 논리’에 따른 탐욕의 산물에 불과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입증되었다는 말이다. 이게 왜 놀라운 변화가 아니란 말인가? 일부 영남인들이 권력 금단 현상으로 인해 겪는 고통으로 혼란스러워진 점도 있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하는 관점에서 멀리 내다보자면 한국 사회는 엄청난 진보를 이룩한 것이다.

여섯째, 나는 지역문제 해결을 주장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지역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된 면이 없지 않다. 손호철은 그걸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나는 그걸 반드시 겪어야 할 일시적 과정으로 생각한다. 손호철은 정권교체로 “호남의 한을 푼 것은 여간 다행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지만 뭐 그렇게 진심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 그는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을 경우 호남인들이 느꼈을 좌절감, 아니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갖게 될 생각이 무엇인지 그 점에 대해서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는 그저 “지역주의는 지역주의로 깨지지 않는다”는 자신의 평소 모범답안만을 되뇌이고 있을 뿐이다. 그의 모범답안을 듣고 있자면 이런 광경이 연상된다. 어느 고등학교 학급에서 이지메를 당하는 어느 학생이 있다. 나는 그 학생이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자신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한 방 먹이고 “야 이 개새끼들아!”라고 외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손호철 담임선생님은 그 이지메를 당한 학생을 데려다가 나무란다. 폭력은 폭력으로 깨지지 않는대나 어떻대나. 그 담임선생님이 이지메를 가한 학생들의 폭력을 평소 꾸짖어왔다면 그리 말해도 무방할 게다. 그러나 그 담임선생님은 자기 학급에 이지메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 왜 자신의 직무 유기에 대해 먼저 반성할 생각은 않는 걸까?


여전히 ‘김대중 죽이기’에 눈이 먼 손호철

위에 인용한 손호철의 글엔 나오지 않았지만, 손호철이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여 비판하는 건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이므로 이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그는 여전히 활발한 기고 활동과 『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김 정권에게 끔찍한 독설을 퍼부어 댄다. 그는 김 정권의 개혁이 성공하면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노예’ ‘국제금융자본의 사냥터’로 전락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외국 좌파 학자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가리켜 “서울의 IMF 지부장”이라고 조롱하고 김 정권이 지금 이대로 가면 “제2의 이완용 정부”가 된다고 경고한다.

이미 사망한 ‘종속이론’이 부활한 건가? 종속이론이 풍미할 때에도 한국은 제3세계가 아닌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 나라였다는 데에 대해 배신감까지 더해진 것인가? 그런 의아심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좋다. 다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손호철은 자기가 뱉었던 침은 다시 삼켜야 할 것이다. 그는 지난 대선시엔 신자유주의고 나발이고 오로지 ‘김대중 죽이기’에 눈이 멀어 그가 지금은 저주해 마지않는 국제금융자본과 IMF의 편에서 김대중에게 혹독한 비난을 했었다는 걸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가 지난 대선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사운(社運)을 걸었던 『중앙일보』 1997년 12월 12일자 6면에 기고했던 <필요한 건 ‘고통의 약속’>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그 증거다.

손호철은 그 칼럼에서 김대중을 겨냥해 모 후보가 집권하면 IMF와 재협상하겠다느니 하는 “감언이설만 늘어 놓음으로써 국제 시장의 불신을 가속화시키고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서울의 IMF 지부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그의 주장을 여기에 더 인용해보자.



국가를 생각한다면 설사 재협상 의지가 있더라도 외환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그같은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 올바른 처신이다. 오죽했으면 외국 언론이 귀와 눈과 입을 막고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 무책임한 정상배들로 묘사하며 힐난했겠는가.



눈여겨 볼 것은 손호철이 그런 비판을 하면서도 김대중 후보라고 밝히지 않으면서 ‘대선 주자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더 역겹다. 자신이 자문교수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권영길 후보의 IMF 협상에 대한 견해를 알고서 그 따위 말을 늘어놓았던 것인가? 권영길은 IMF 협약을 ‘제2의 을사조약’이라고 했다. 김대중이 ‘재협상’을 거론했던 것도 대량실업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이건 바로 권영길이 목을 걸었던 이슈였던 것이다. 그런데 손호철은 ‘김대중 죽이기’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지지한다는 국민승리 21은 아예 정신 나간 얼간이 집단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것 아닌가? 국민승리 21이 이런 ‘위장 진보’를 자문교수랍시고 끌어들였으니 표가 많이 나올 리가 없었다.

손호철이 지난 대선시 ‘김대중 죽이기’를 위해 했던 발언을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비판과 비교하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비판에 따르면 환란시 그의 ‘대안’은 IMF는 물론 미국과도 완전히 단절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시종일관 ‘김대중 죽이기’이기 때문이다. 손호철은 우리가 어떻게 지난 반세기 동안 고착된 구조를 하루아침에 파괴하고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지, 북한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자동차 공장을 어떻게 자전거 공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인지, 그런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웃으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발상의 연장선상에서 김대중 정권을 씹어대면 아무도 웃지 않는다. 박수를 보낸다.

나는 손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세상과 그 세상을 염원하는 그의 정열에 반대하거나 비판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존경을 보내고 싶다. 내가 짜증을 내는 건 손호철이 꿈꾸는 세상엔 절대 찬성하지 않을 극우 및 보수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저 손호철이 김대중 정권 씹어대는 게 마음에 들어 그를 띄워주는 코미디가 너무 역겹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는 손호철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생산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내가 손호철의 주장에 반론을 폈다고 해서 내가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나의 주장이 들어맞았다고 흡족해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정권교체를 반대했던 사람이 정권교체 이후의 상황을 비아냥대는 건 못 봐주겠다는 항변일 뿐, 나 역시 당시 정권교체를 이뤄야한다는 열의가 앞서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과대평가했다는 점에 대해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역문제와 관련해 정권교체 이후 호남인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너무 실망스럽다. 이 점은 『인물과 사상 13』에 쓴 <김대중 정권의 몰락>이라는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했기에 반복하지 않겠지만, 『조선일보』를 열심히 구독하는 전라도 사람들의 우둔함과 비굴함에 대해선 한마디 더 보태야겠다.

나는 김대중이 구태의연한 정치 패러다임을 버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나는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김대중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위세를 시민사회가 꺽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위세에 편승해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한 ‘권력 비판’과 ‘정치 비판’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적대적인 환경에서 정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김대중 정권이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시민사회엔 ‘김대중 마니아’를 자처하는 전라도 사람들도 포함된다. 죽어라 하고 『조선일보』를 구독해 『조선일보』의 힘을 키워주면서 김대중 정권이 잘 되기를 빈다니 그게 말이 되나. 말이 되지 않는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전라도 사람들의 우둔함과 비굴함을 가리켜 나는 그들이 “당해 싸다”는 말을 했던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다. 자신 있는 사람 내게 돌을 던져라.

정치인은 여론에 죽고 사는 동물이다. 특히 대통령이 더 그런다. 그런데 그 여론이라는 걸 수구 기득권 세력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 이 기존의 여론형성 구조 또는 언로(言路) 구조를 시민사회가 바꿔주지 않는 한 이후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구태의연한 정략에 몰두하기 십상이다.

나는 손호철의 『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가 그런 문제를 단 몇 줄이라도 지적해주길 바랬지만, 그는 ‘김대중 죽이기’를 위한 역사적 사명에만 눈이 먼 것인지 그 문제엔 완전히 침묵했다. 그래서 신문들마다 손호철의 책을 크게 다뤄준 것인가? 세계 어느 자본주의 국가에서 좌파 지식인이 주류 우파 매체들로부터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배가 아파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게 기이한 현상일 수도 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을 왜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지식인은 자신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 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면, 한국의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극우 및 보수 언론매체에 크게 보도될 때 무작정 좋아할 게 아니라 그 ‘용도’가 무엇인지 그 점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극우 및 보수 신문들이 좌파 지식인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하는 걸 연구하는 건 아주 훌륭한 박사 학위 논문 소재가 될 것이다.

나는 그간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좌파 이용’에 대해 이야기해 왔는데, 손호철의 경우 여전히 그렇게 이용당하는 걸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이만저만 안타까운 게 아니다. 내 말에 화부터 내지 알고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처럼 좌파 지식인들이 주류 매체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다는 나의 관찰에 동의할 수 없단 말인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마저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나라임을 감안할 때 그 기이한 현상은 ‘관용’보다는 ‘악용’에 가까운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나라의 정치학자들이 저지르는 그 한심한 작태`─`언론은 오직 언론플레이의 대상일 뿐이라는 그 완고한 믿음`─`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신문방송학과라는 전공 분야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다시금 하고 있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7

2002/06/28 (00:42:46)    IP Address : 211.195.124.241

578    왜 잘못을 시인할 줄 모르나 조용훈 2002/06/27 887
577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6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1052
576    박원순 변호사님께 강준만 2002/06/28 974
575    유홍준과 오동명: 엉터리와 진짜 강준만 2002/06/28 1381
574    박노해 {조선일보}와 ‘논쟁’에 대하여 강준만 2002/06/28 1060
573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 고승원 2002/06/28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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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    4·13 총선과 소설가 배수아의 고민 김동민 2002/06/28 859
567    이문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2002/06/28 1205
566    엘리안 곤잘레스의 진실 송기도 2002/06/28 1017
565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② 강준만 2002/06/28 908
564    서울대 지방 이전?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김완수 2002/06/28 946
563    과외(課外)에 관한 단상 기호민 2002/06/28 728
562    < TEPS 과연 무엇인가? > 그 후 성기완 2002/06/27 968
561    시간강사는 21세기 문명 시대의 야만이다 최영환 2002/06/27 979
560    <미국 멤피스시의 법정 풍경>을 읽고 김형수 2002/06/27 1040
559    좋아하는 대중문화, 소비로 말하자! 이시우 2002/06/27 896
558    "난(亂)" 유감 안한준 2002/06/27 865
557    방송개혁을 위한 5가지 제안 조흡 2002/06/27 925
556    ‘아름다운 책’과 ‘예쁜 책’ 이미영 2002/06/27 864
555    내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출판관련 기사 셋 최성일 2002/06/27 827
554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5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1032
   정권교체는 세상을 바꾸었는가? 강준만 2002/06/28 891
552    손학규와 최영희 정실주의는 안 된다 강준만 2002/06/28 1141
551    유석춘 : “{중앙일보}의 앞잡이”인가? 강준만 2002/06/28 1175
550    김승수 교수에게 묻는다 김동민 2002/06/28 859
549    ‘특권 중독증’을 추방하자 강준만 2002/06/28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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