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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송기도
제 목 피노체트 석방과 칠레, 그리고 인권
피노체트 석방과 칠레, 그리고 인권

송기도 │전북대, 중남미정치│

기적(?)

2000년 3월 2일 영국에서 날아온 한 외신이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영국의 잭 스트로(Jack Straw) 내무장관이 지난 17개월 동안 런던 교외 한 주택에 가택연금상태에 있던 칠레의 전 독재자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Ugarte)를 석방한 것이다. 피노체트를 태운 비행기가 공항을 이륙하고 난 직후 스트로 장관은 하원에서 84세의 피노체트가 기억력이 떨어져 치매증상을 보이고 건강이 악화돼 스페인의 범인인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석방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피노체트는 건강이 악화돼 “어느 곳에 가더라도 재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칠레의 라고스 대통령 당선자는 피노체트의 귀국으로 골치 아픈 문제 하나가 해결됐으며, 이제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영국은 ‘뜨거운 감자’인 피노체트 사건을 슬며시 마무리 지었다. 피노체트 석방에 관한 영국 BBC의 여론조사 결과는 “스트로장관이 잘못했다”가 62%, “잘했다”가 37%로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결국 국제 사회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이익 때문에 피노체트를 석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날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휠체어를 타고 내린 피노체트는 두발로 걸어가 ‘지도자’를 영접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삼군 총사령관들과 악수를 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는 ‘기적’이었다. 영국에서의 피노체트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치매증상까지 보였다. 그런데 고국에 오자마자 그의 기억력과 건강이 기적적으로 좋아진 것이다. ‘신토불이’라더니 고국의 바람만 쐬어도 효과가 있는 것을 …….

문제의 시작

피노체트 문제는 1998년 10월 신병 치료 차 런던을 방문한 피노체트를 스페인의 가르손(Baltasar Garzo′n) 판사가 영국과 스페인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협정과 유럽테러협약에 따라 과거 집권 때 피노체트가 스페인 시민 등 9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하고 신병을 인도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가 종신상원의원으로서 대통령의 특명 전권대사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면책특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강력히 항의하였다.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는 면책특권은 영국을 방문하는 정부 관리나 신임장을 제정한 외교관에 한한다고 지적하고, 스페인의 요구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확인하였다. 사실 이는 블레어 정부가 그 동안 말로만 주장해왔던 ‘윤리적 외교정책’을 처음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피노체트를 가택연금 조치하였다.

사실 대통령을 관둔 10여 년 전부터 매년 한두 차례 영국을 방문해왔던 피노체트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었다. 1982년 포클랜드(말비나스)전쟁 때 모든 중남미 국가들이 아르헨티나를 지지할 때도 칠레는 영국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군사기지까지 제공했었다. 따라서 영국을 편안하게 느끼고 또 영국 정부가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럴 수는 없었다. 더구나 며칠 전 영국에 입국할 때만 해도 공항에서 VIP 대접을 받았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영국고등법원은 피노체트 체포는 ‘불법’이라고 판결하였다. 당시 피노체트는 면책특권을 갖는 대통령이었으며, 한 국가가 다른 주권국가의 주권적 행위를 재판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이유였다. 그러나 검찰의 상고 때까지 피노체트를 계속 영국에 구금해 대법원의 판결을 받도록 하였다. 피노체트는 그 같은 결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격인 영국상원의 5인 재판부는 1998년 11월 25일 피노체트가 집권기간 중 저지른 잔악 행위에 대해 국가 원수로서 면책특권을 갖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날 83회 생일을 맞은 피노체트는 생애 최악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이후 1년이 넘도록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은 피노체트 자신은 물론이고 칠레, 스페인, 영국, 미국 등 세계 많은 국가의 주요 관심사였다.

‘전쟁영웅’의 귀국

그런데 영국 정부가 84세의 피토체트가 치매 등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지난 1년 반 동안 피노체트를 둘러싸고 계속되었던 재판을 종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노체트의 건강이 반인류 범죄의 단죄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병들고 지친’피노체트와 부인 그리고 손자를 태운 칠레 공군의 특별기인 ‘아길라’(독수리라는 스페인어)는 24시간의 비행 끝에 3월 3일 오후 1시 27분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다.

사실 피노체트의 도착시간과 루트에 관한 수많은 소문들이 있었다. 그만큼 피노체트의 귀국은 보안상의 이유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오후

1시 16분 런던을 떠난 ‘아길라’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스페인과 같은 ‘적대적’의 영공을 피해 비행을 하였다. 대서양상에 있는 영국령인 아센시온 섬에 급유를 위해 착륙한 ‘아길라’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머물러 있었다. 이는 산티아고 공항에 나온 환영객들이 피노체트를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칠레 군부가 비행기의 도착시간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산티아고 공항에 착륙한 지 10여 분 뒤 검푸른 색의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피노체트가 휠체어에 앉아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에 내렸다. 그리고 ‘기적’이 발생했다. 피노체트가 곧바로 걷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지도자’를 환영하기 위해 도열해 있던 육군 총사령관과 굳게 악수하고 감격의 포옹을 하였다. 이어 해군과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경찰총장과 악수를 나눈 후 비로소 가족들의 인사를 받았다.

이를 지켜보던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적처럼 되살아난 피노체트의 건강과 피노체트를 환영하기 위해 몰려든 수백 명의 시민들, 정부의 명령도 무시하고 공항에 나와 줄지어선 군 수뇌부들, 독일 나치스의 노래이자 피노체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 릴리 마르린(Lili Marlene)과 에리카(Erika)를 연주하는 군악대, 그리고 피노체트를 둘러싼 공수부대원들의 살기 등등한 모습에서 피노체트는 ‘손댈 수 없는 사람’(Untouchable)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된 헬기를 타고 마치 ‘전쟁 영웅’처럼 피노체트를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육군 병원으로 향했다. 3일 동안 병원에서 정밀 건강진단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8시간 만에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공수부대의 철통같은 호위 속에 귀국 첫날밤을 보냈다.

이 같은 군이 주도한 피노체트 환영행사에 대해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뜨론꼬소(Raul Troncoso) 내무장관은 “군악대를 포함한 환영행사는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 피노체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신중한 고려 끝에 석방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정부 각료나 차기 정부 고위 공직자는 한 사람도 환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군에 의한 피노체트 환영행사가 거행된 다음날 산티아고 대통령궁 앞에는 6천여 명의 시민이 운집해 피노체트를 심판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피노체트가 영국에 억류된 이후 최대 군중시위였다.

피노체트와 인권

어쨌든 피노체트가 503일 만에 칠레로 되돌아옴으로써 1년 반 동안 계속되었던 피노체트 구속과 재판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는 몇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피노체트 사건은 인권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촉발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은 전세 계 모든 국가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지만 결국 피노체트가 석방됨으로써 결과가 없이 끝났다고 할 수도 있다. 그 동안 ‘국제사면위원회’(AI) 등 전 세계 인권단체들은 피노체트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강력히 요구했었으나, 영국은 국가이익을 인권보다 우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이 피노체트 자신이나 칠레 그리고 전 세계에 결코 헛된 일은 아니었다. 피노체트에 대한 심판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 이후 ‘종이 선언’에 머물러 있던 인권이 한 단계 더 진전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영국 상원은 피노체트가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직접 심판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국가원수가 고문 등 인권유린을 범했을 때 이에 대한 면책특권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인권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수십 년 간 지켜져 왔던 ‘성역’이 깨진 것이다. 앞으로 각국의 전·현직 독재자들은 재임 중 인권유린 등 반 인권적인 행위를 했을 경우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재판정에 세워질 수 있다는 전례가 생긴 것이다. 즉 ‘형법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국제 형법재판소를 통해 더 구체화 될 것이다.

당연히 이 같은 세계화는 인권유린을 자행한 세계 각국의 독재자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다. 이들 독재자들은 이제 미국이나 유럽에 쇼핑을 하러 가거나 병을 치료하러 가는 것을 신중히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영국 정부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피노체트를 석방했지만 국제 사회가 독재자 피노체트에게 이미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전직 국가원수를 17개월간에 걸쳐 구속하고 또 국제적 관심 속에서 심판을 했다는 것은 이미 그것으로 형을 집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스페인, 칠레는 인도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피노체트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칠레판 역사 바로 세우기

칠레 역사에 있어서 정치적, 외교적, 법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논란이 됐던 ‘피노체트’ 문제가 17개월 만에 해결됐다. 그러나 아직 칠레 내부에 있어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은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다. 피노체트는 20세기 후반 칠레 하늘을 그늘지게 한 칠레의 얼룩이었다. 아직도 칠레의 하늘에는 앞서 설명했던 대로 피노체트의 그늘이 드리워져있다. 이제 칠레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점차 엷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그늘은 칠레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 멀리 스페인과 영국에서 부는 바람에 의해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칠레의 국가적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강대국 중심주의적인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에 대한 심판과 처벌은 외국이 아니라 칠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이제 칠레는 그 동안 주장했던 대로 그들 손으로 피노체트를 단죄해야 하는 ‘어려운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피노체트는 지치고 힘든 몸으로 칠레에 돌아왔다. 더구나 칠레의 상황은 피노체트가 영국으로 떠날 때와는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27년 전 자신이 잔인한 유혈 쿠데타로 쫓아냈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라고스가 일주일 후면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군부가 있음을 피노체트는 귀국하는 공항에서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 정부는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공항에 나간 군 수뇌부에 대해 적절한 제재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그만큼 역사 바로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동 정권인 ‘연합’(Concertacio′n)내에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부는 피노체트 종신상원의원이 정치에서 은퇴할 것을 종용했다. 물론 이는 피노체트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만 분명한 것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3월 11일의 대통령 취임식에 피노체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정치권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칠레에는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만만치 않은 우익이 있다. 더구나 ‘충성스러운’ 군이 있는 것이다.

17개월 만에 강제 억류에서 풀려나 귀국한 피노체트는 이제 칠레의 ‘시한폭탄’이 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아옌데의 후계자인 라고스 대통령과 군부의 실질적 지배자인 피노체트의 대립. 뜨론꼬소(Raul Troncoso) 내무장관은 피노체트가 칠레의 국가 화합과 평화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괜히 해보는 말이 아니라 정말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칠레는 한치 앞을 정확히 보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갖자

이번 피노체트 재판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중남미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피노체트가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인간 도살자였음을 전 세계가 확인하였다. 그러나 칠레의 우익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판단과 정서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들의 ‘지도자’를 칠레 경제를 일군 국가 영웅으로 맞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나라는 피노체트를 ‘지나치게’ 미화하여 왔다. 이는 한편으로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가 피노체트의 독재와 동질성을 갖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박정희라는 개발독재자의 망령이 떠돌아다니고 있지 아니한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를 붕괴시킨 1973년 유혈 쿠데타에 깊숙이 개입한 미국은 피노체트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리고 중남미에서 미국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우리 나라의 대외정책도 그 동안 피노체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중남미 국가에 대해 우리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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