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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조흡
제 목 정보사회의 신화
정보사회의 신화

조흡 │문화연구가│

기술천하지대본(技術天下之大本)

한국에서 키워드가 ‘정보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주요 업무를 e`-`메일로 처리하는 회사와 관공서가 생겨나고 컴퓨터를 모르면 부하 직원에게 상사가 굽실거려야 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가게에서 직접 하는 것보다 전자망을 통해 이뤄지는 전자 상거래가 활성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파트도 초고속 통신망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단연 인기다. 재래식 붙박이 전화 숫자보다 이동전화의 가입자 수가 더 많아졌다. 한국의 주산업이 자동차, 선박, 유화 등 중화학공업에서 정보·통신 분야로 옮아가면서 수출 주력상품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증권거래소보다 첨단 정보·통신 벤처회사들이 몰려 있는 코스닥이 더 북새통이다. 정부는 전 국민의 컴맹 탈출을 위해 컴퓨터 보급과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징후로만 본다면 한국은 분명히 정보사회에 이미 돌입한 셈이다. 한반도에 불고 있는 영어 열풍도 따지고 보면 정보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를 당시는 외국 손님들을 잘 안내하기 위해 영어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하는 정보사회의 국제적 일원으로 행세하기 위해서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해야 되는 운명에 놓이게 됐다. 정보사회라는 담론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고 있다. 새롭게 전개되는 세상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 나를 개조해야 한다는 개인과 국가적 합의가 빠르게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술 하나만 잘 개발해도 일확천금이 가능하다는 신화가 매일매일 언론에서 창조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젊고 야심찬 실력가들이 밤을 낮 삼아 일하면서 신기술 개발에 몸과 마음을 내던지며 몰두한다. 빌 게이츠와 손정의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들은 단순히 국가가 공포한 ‘정보와 지식의 시대’에 발맞추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훨씬 더 앞서가려는 욕망을 컴퓨터를 통해 일구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국가가 제시한 아젠다를 젊은이들이 이처럼 별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줬던 경우도 드물다. 지난 30여 년 동안 개발 이데올로기가 생산한 황금한탕주의, 개인우선주의, 성공지상주의가 정보사회 신화와 맞물리면서 그 위력을 더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까?

분명히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기술개발이 자신들의 성공을 보장하는 일종의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재벌회사가 주는 안정된 삶보다 불안정하지만 미래지향적인 모험 생활을 선호한다. 오로지 똑똑한 기술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온 인생을 거는 것이다. 일신의 영달도 꾀하면서 애국할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어디 있으랴. 국가는 더 적극적이다. 미래는 기술과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이니 이에 맞춰 인프라 구축이라는 정지작업과 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등 구체적인 정책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제 기술개발만이 한국의 번영된 미래를 보장해 줄 보험증서인 것이다. 신기술의 확보는 무역수지에 도움이 되고, 산업사회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으며, 국가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기술개발이 곧 나라의 장래와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또 어떤 난관이 가로놓였나? 우선 생각나는 질문들이다.

정보사회와 군사기술

아직까지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테크놀로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문명의 힘은 바로 신기술의 확보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확보하지 못한 동양은 서양과의 비교우위를 정신문화에서 찾고 있다. 가진 것 없고 기술이 부족하지만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철학적 바탕이 서양인들보다 깊다는 주장을 동양학자들은 자주 한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그들의 발달된 과학과 이성주의에 힘입어 세계를 움직이는 지식 자체를 만들어 냈고, 바로 그 세상의 이치를 일찍 터득한 덕분에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식민지 확보와 제국주의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신기술이 가져다 준 지식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본격적인 식민지와 제국주의가 사라진 현대에도 서양의 우위가 지속되고 있는 것 역시 기술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서양 내에서도 기술 발달의 불균형은 존재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미국과 나머지 나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미국과 서유럽 간의 기술력 차이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기술이 이렇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앞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그들은 이를 위해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다. 미국 정부는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를 국방연구의 명목으로 주로 미국의 유명한 공과대학(MIT가 가장 대표적이다)에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군사력이 세계 최강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강병정책이 부국의 지름길이라는 데 있다. 즉,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한 신기술은 항상 최첨단 상업기술로의 전환이 용이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항상 기술적 우위를 독점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 최첨단 기술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인터넷이 이런 단계를 거쳐 발전된 전형적인 예이다. 인터넷 개발에 필요한 자금도 어김없이 ARPA라고 하는 미국방연구소가 조달한 것이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여러 대학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Arpanet이라는 통신망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원래 원자탄 공격에 견뎌낼 데이터 통신체제를 만들기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이는 곧 과학자들끼리 메인 프레임 컴퓨터를 나눠 쓰거나 메시지를 송신하기 위한 통신망으로 그 용도가 차츰 변했고 이것이 바로 전자 메일의 시초가 된 것이다. 여기에 훗날 다른 컴퓨터 과학자들이 가세해 하이퍼 텍스트라고 하는 새로운 데이터 접속 소프트 웨어를 개발해 Arpanet을 대신하는 인터넷을 탄생시킨 것이다.

기술의 역사를 보면 인터넷에서도 미국의 우월한 지위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상업용 최첨단 기술은 주로 미국의 국방연구에서 결실을 본 군사기술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가 그랬고, PC도 마찬가지며, 심지어는 그래파이트 골프채까지도 첨단 우주기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한 다른 나라에서는 미국의 기술을 추월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일본이 1980년대까지 미국을 바짝 뒤쫓다가 90년대 내내 제자리걸음을 하며 주저앉은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군사력의 열세에서 기인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비판학자들이 주장하는 ‘군산합작’(軍産合作)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인 첫 번째 이유다.

정보사회의 신화는 바로 이런 미국의 첨단기술에 대한 구조적 우위의 바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첨단기술에 관한 한 미국이 국제 경쟁에서 도저히 뒤떨어질 수 없을 만큼 비교우위가 확실히 보장된 상태에서 알 고어 부통령이 ‘정보초고속망’의 건설을 제의했고 또 전 세계를 연결한 전자상거래를 미국정부가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미국의 상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초석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계획에 방해가 되는 그 어떤 반발도 강력히 제거해 나가려는 의지를 미국은 가끔 만방에 과시하기도 한다. 자국의 이익과 권한을 제한하는 유네스코나 WTO를 언제라도 탈퇴할 수 있다고 실제로 행동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미국뿐이다. 미국은 유럽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의 들러리가 되기를 원할 뿐이다.

정보사회의 신화를 창조한 다니엘 벨

미국이 세계 최첨단 기술을 독점하는 것은 ‘명백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니엘 벨은 정보사회의 신화를 철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학자 중 하나다. 그의 정보사회론은 지식과 정보가 국가의 전략적 자원이며 후기산업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정보사회가 가능한 것은 물론 기술의 혁신 때문이다. 바로 이런 기술 중심의 정보사회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대신하게 되고 동·서를 함께 이끌어 나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기산업 또는 기술사회는 정치인들을 대신해 전문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인 것이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테크노크라트와 거짓말만 일삼는 정치인이 임무 교대를 하는 것이다.

다니엘 벨의 공식은 아주 단순하다. 기술은 대중사회의 질서를 관리하는 도구가 된다. 많은 사회 문제들은 그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며 정보기술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막대한 양의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은 합리적인 관리, 행정, 그리고 기획을 실행하는데 중요한 전략적 토대가 된다고 벨은 믿고 있다. 이 전략은 직접적인 인구통제에서부터 단순한 정보의 조정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렇게 기술과 정보는 현대사회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해나가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주관과 편견을 배제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운영이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술정보사회는 바로 민주사회인 것이다.

기술은 또 효과적인 사회 통제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부의 축적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생활 수준을 높이는 지름길이 된다고 다니엘 벨은 주장한다. 신기술로 인해 얻어진 고급 지식은 결국 노동력을 대신하게 되고 생산성과 이익을 증대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이 국민들에게 완전고용과 더불어 더 많은 레저 시간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인간의 노동이 필요한 곳은 신기술로 대체하고 늘어난 여가시간은 노동자들의 오락과 취미생활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곳은 한마디로 유토피아인 것이다. 이 세계의 한가운데에 기술이 자리잡고 있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오로지 기술만이 완벽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사회는 미국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최첨단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은 이렇게 장밋빛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8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속적인 경제호황을 누렸으면서도 그 혜택은 기업과 상위 20%의 인구만이 누리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대량 해고를 감행했던 대기업들과 정보·통신업계에 종사하는 소수의 전문 기술자들만이 활황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그러나 근로자 대부분은 다니엘 벨이 약속했던 완전고용이나 더 많은 레저 시간은 고사하고 낮은 임금의 임시직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들은 가계부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한두 개의 부업을 가져야 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분명 정보사회가 가져다주는 유토피아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정보사회에 관한 벨의 레토릭이 잘못된 것이다. 정보사회의 이데올로기에 큰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우선 벨의 주장 자체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산업사회가 전통사회보다 낫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미국과 같은 기술사회에서는 과학적, 객관적, 합리적 결정과정을 바탕으로 모든 일이 처리되는 반면에 전통사회는 아직도 직관과 가치판단, 종교적 신념과 편견, 그리고 전통문화에 의해 움직이는 낙후된 사회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다니엘 벨의 후기산업사회론에 배어 있다. 그러나 정보사회라는 개념이 미국의 종교적 가치나 문화적 신념, 그리고 국가이익과 무관한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왜냐하면 후기산업사회론은 미국 상품이 전 세계 시장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을 전제로 했을 때만 부분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벨의 정보사회론은 미국의 강점과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 자본논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니엘 벨이 주장하는 사회적 자본과 개량 테일러리즘으로서의 정보사회는 산업자본주의의 사회적 관계를 강화시키는 기능밖에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는 행정과 관리에 적합한 이론을 개발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을 지극히 단순하게 바라봤을 때만이 가능한 작업이다. 무비판적 사회이론이라는 뜻이다. 그의 이론에서는 사회적 가치라는 것을 도대체 찾아볼 수 없다. 미국식 소비주의만 가득 차 있을 뿐 사회적 우선 순위나 목표가 그의 이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꽉 막힌 비전 속에서 사회라는 개념은 지금 이 순간 첨단기술의 비교우위가 확보된 미국이라는 사회를 지칭할 뿐이다. 그런 현재의 모습을 박제해 놓고 진정한 대안적인 역사적 가능성을 영원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 이데올로기의 함정

이런 논리적 맹점에도 불구하고 정보사회에 관한 신화는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근대화 후발국가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국가 부흥이라는 거대한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보사회 건설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유수한 은행들이 또 그렇게 권고하기도 한다. 그들은, 예를 들어, 개도국의 유전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위성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온갖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조그만 섬나라에 그런 첨단 통신시설이 설립된 실제 이유는 그 나라 관리들이 미국의 위성회사들로부터 뇌물을 챙기기 위한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통신시설은 그 곳에 상주한 미국의 정유회사와 뉴욕의 증권회사 간의 효과적인 정보 교류를 위해서였지 그 곳 주민들의 통신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꾸며낸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이 예는 개도국들이 정보화 사업을 추진할 때 교훈으로 삼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정보사회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얘기다. 그러나 정보사회를 이렇게 나쁜 의미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후발주자들도 첨단 통신기술의 혜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기술에 내포된 잠재적인 위험성을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국제 시장에서 경쟁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정보사회로의 입문마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보사회 구축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일부 낭만적 비평가들이 정보사회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전통문화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가능성이 전무한 지적 유희에 불과한 얘기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보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안팎으로 아주 커다란 딜레마를 제기한다. 이는 정보화에 관한 중간적 입장을 취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뜻이다. 정보사회를 추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나눠 갖는 것이라지만, 이는 신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이용되고 적용되는지를 무시한 신화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모든 정보 자산을 개인 재산으로 관리하고, 모든 지식을 조직적으로 상품화하는 것이며, 유용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하려는 데 그 진짜 목적이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은 자신들이 우주와 바다를 개발하면서 특권을 누렸듯이 정보 또한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안과 밖의 정보 불균형은 국가 내에서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정보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존재하는 격차가 약소국 국가 내에서 그대로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사회영역 간에 크게 벌어진 불균형이 정보 신기술을 새로 도입하게 되면 더 큰 사회적 불평등과 긴장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발전이 사회발전으로 이어지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오히려 기술발전이 기존의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다니엘 벨이 주장하는 정보사회의 장밋빛 미래는 이런 현실적 상황을 감안해 보면 한낮 허황된 농담으로 들릴 뿐이다. 그래서 정보사회론은 어쩌면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론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도 많은 이론적 결함이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한국과 같은 나라가 정보사회를 건설하는 데 따르는 부작용은 안팎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를 지배하는 그룹들이 이런 기술의 부정적 측면을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기술을 이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본가들은 이익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정보사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사회에 관한 이데올로기는 대중매체를 통해 평범한 일상영역에까지 침투해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사이버 아파트 광고에서, 전화기 선전에서, 그리고 대중가요에서 보여주는 사이버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할 바 없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정보사회는 분명 우리 주변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온갖 문제점을 포함해서 말이다.

신화에서 깨어나야 대안이 가능하다

이는 분명 바람직한 정보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회의 정립이 자본이나 정치 세력에 의해 좌우된다면 공적영역의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대신 계층적인 사회적 관계만 형성되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치와 자본의 전략으로서 정보사회를 논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들이 정보사회에 대한 신화만을 조작하며 머지않아 한국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선전 생산에 몰두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미래에 관한 참다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단지 국가와 기업이 정보사회의 환상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정보사회에 대한 담론이 보다 더 솔직하고 진보적인 목적을 위해 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사회에 관한 논의가 기업이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전적으로 통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우리 귀에 주로 들릴 담론은 능률적 사회통제와 상품으로서의 정보와 지식이 전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보 담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이 논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훨씬 더 늘리는 것이다. 단순히 정부의 립 서비스로 전국 가정의 정보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신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보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정보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식사회 건설의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정보와 지식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정보사회론의 특징 중 하나는 정보가 무한정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이에 따라 지식 또한 한없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제다. 그러나 정보가 불어나는 대로 지식도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분배하는 것은 지식을 전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단지 변형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으로의 전환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사회구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정보사회는 한 사회가 얼마나 지식을 제대로 분배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단순히 정보 접근권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안적 개념의 정보사회를 이룩했을 때에만 한국이 미국의 정보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지식으로 무장한 두뇌가 정보로 가득 찬 머리보다 창의력이 훨씬 더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헤게모니의 본래 의미도 힘의 일시적 우위를 말하는 것이지 영원한 지배적 위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기술력이 워낙 앞서 있기 때문에 세력 구조가 당장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는 도전이 결국 그 판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빗방울이 바위를 깨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은 정보를 무기 삼아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불안하다는 사실을 오히려 역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에 대한 저항심만 고취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경계해야 할 일은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가능할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이미 밝혔다. 실제로 미국의 기술적 우위가 당분간 더 오랫동안 유지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최첨단 기술개발만을 고집하고 정보사회의 달콤한 이미지를 약속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한 행동이며 과열된 수사임에 틀림없다. 단순히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정보사회 담론을 그렇게 몰고 가기에는 정보사회라는 주제가 너무나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수용자들이 우선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술은 정보사회에 대한 지배적 담론을 거꾸로 읽어내는 것이다. 이는 또 정보를 지식화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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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자식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말라(?) 최성일 2002/06/28 854
528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4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57
527    이문열과 '젓소부인' 의 관계 (2) 강준만 2002/06/28 1747
526    임지현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강준만 2002/06/28 888
525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 최근 감명깊게 읽은 책 세 권 최성일 2002/06/28 857
524    피노체트 석방과 칠레, 그리고 인권 송기도 2002/06/28 1029
   정보사회의 신화 조흡 2002/06/28 787
522    에셜론, 미디어제국주의, 그리고 지식사기꾼들 이도흠 2002/06/28 1103
521    “인터넷을 모든 교실에”, 그 문제점과 제언 이재경 2002/06/28 819
520    교육문제를 풀어가는 두 가지 원리: 경쟁과 정의 김영석 2002/06/28 672
519    미국 멤피스시의 법정 풍경 신선우 2002/06/28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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