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안티조선 커뮤니티 우리모두 -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악랄하게.. 또박또박..
관리자 메일  |   사이트맵  |   연결고리  |   관리 원칙   
공지사항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
제발 이상한 공지사항좀 ...
우리모두 후원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쟁점토론 베스트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정 안내 (~'21.01.15)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련 논의 진행 중입니다.
 미디어법과 다수결
 광복절 앞날 읽은 신채호의 글
 8개의 나라중 5는 같은 편 3은 다른편.
 균형이 다시 무너졌군. 간신히 잡아 논건데,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는군..
 악인은 너무나 쉽게 생겨나고.. 착한 사람은 쉽게 생...
 태평성대에 관하여
 음 ...이 냥반도 군대 안갔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자들 혹은 노동단체...
 세상 참 불공평하지 -박재범을 보며
 천재면 뭐하나?
 궤변론자 최장집
 국정원고소사건 환영!!

접속
통계
오늘 34
전체 7092727
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김영석
제 목 교육문제를 풀어가는 두 가지 원리: 경쟁과 정의
교육문제를 풀어가는 두 가지 원리: 경쟁과 정의

김영석 │미 조지아대학│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가장 중요한 화두 하나로 “개혁”을 꼽는데 있어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IMF를 겪고 나서 “개혁”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심각하고도 시급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혹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선전하는 대로라면, 개혁의 성패여부가 우리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당면과제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피부로 느껴지는 개혁의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고 개혁의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를 찾을 수 없다. 개혁이라는 낱말이 학자들의 깊이 있는 반성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선전에 이끌려 혼자 앞서나간 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 정부의 개혁이 빚어내고 있는 많은 혼란과 실패, 절망감도 개혁에 대한 논의의 얕음이 초래한 당장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현재의 개혁을 논하는데 있어 신자유주의니 혹은 제 3의 길이니 하는 등 우리 현실에는 부자연스러운 개념을 동원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가가 앞장서서 자유시장도 만들어내고 소수의 약자도 보호하겠다고 하는 판국에 우리가 신자유주의로 가고 있느니 생산적 복지로 가느니 하는 논의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현재의 국가 개념으로는 우리는 신자유주의로도, 제 3의 길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들보다는 보다 근원적 차원에서 작용하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리를 직접 다루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반성을 가능케 할 것이다.

경쟁에 대한 이중적 태도

그렇다면 현재의 개혁이 지향하는 사회구성 원리는 무엇인가? 이는 IMF 이후 우리가 무엇을 하려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IMF가 우리 민족에게 강제적으로 설정해주었던 개혁의 방향은 바로 서구적 시스템의 도입이다. 서구적 시스템은 다시 “경쟁”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기업들이 부패한 정치권의 그늘하에 안주하여 경쟁하기를 게을리 한 것이 경제 파탄의 원인이었다는 진단이 서구가 우리에게 준 해답이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후보초청토론회에서 “앵글로색슨족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인은 그들이 ‘경쟁’을 중시한다는 데 있고 이 점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의 인식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경쟁’의 원리는 마치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에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쟁의 원리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를 두고 ‘경쟁을 거부하는 자는 모두가 기득권세력’이라고 단순화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우리 민족의 생리가 숨겨져 있다. 언뜻 아주 친숙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우리 민족에게는 대단히 생소한 개념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있어 경쟁은 심한 경우 마치 부도덕한 원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원의 희소성이 어느 나라보다 뚜렷한지라 실생활에서는 목숨을 건 경쟁을 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경쟁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려 애를 쓴다. 경쟁은 마치 군자 혹은 선비가 피해가야 할 흙탕물 정도로 여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로 죽고 못사는 친구도 경쟁을 거치고 나면 원수로 돌변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경쟁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두려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말로는 경쟁하자고 하면서 속으로는 경쟁하기를 두려워한다. 경쟁에서 질 경우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경쟁의 적용범위를 줄이려고 애쓴다. 교육계에서 들려오는 ‘교육의 논리는 경제의 논리와 다르다’는 얘기도 경쟁하지 말자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는 특수하니까 문제를 경쟁의 논리로 풀면 안 된다’는 얘기가 각계의 전문가들이 내놓는 개혁에 대한 주된 훈수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경쟁은 부도덕하고 두렵기만 한 개념인가? 이는 거꾸로 왜 서구사회에서는 ‘경쟁’이 익숙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는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역사적 전통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고 개인주의 사회와 집단주의 사회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 해답은 ‘경쟁’이라는 말 그 자체에 숨겨져 있다고 본다. 환언하면, 우리 민족이 ‘경쟁’의 의미를 서구 사람들과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와 서구의 차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우선 나쁜 경쟁과 좋은 경쟁으로 단순화하여 구분해보자. 우리에게 있어서 경쟁은 나쁜 의미로 서구에 있어서 경쟁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경쟁의 좋고 나쁨을 다시 방법과 결과의 측면으로 구분해보자. 우선 방법적으로 좋은 경쟁은 무엇일까? 공정한 경쟁이 좋은 경쟁이라고 말한다면 이의가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결과의 측면에서 좋은 경쟁은 무엇일까? 경쟁의 참여자들이 모두 이익을 얻는 경쟁이라고 답하면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편 나쁜 경쟁은 그 과정이 불공정하고 경쟁의 참여자들이 모두 상처를 입거나 한쪽이 죽는 경우일 것이다.

이상의 점들을 기준으로 우리가 경쟁을 싫어하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경쟁은 그 공정성이 보장이 안 되고 만약 지면 그 결과가 참담하거나 이기더라도 상처를 입기 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을 두려워하고 경쟁에 지더라도 결과에 심적으로 승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일단 경쟁에 임하더라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상대방을 아예 없애려 드는 것도 경쟁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의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쁜 경쟁을 좋은 경쟁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가? 이 근원적 과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서구 사람들이 인내심을 갖고 오랜 세월동안 매달려온 문제가 바로 정의의 개념이다. 경쟁에 정의의 개념을 가미할 경우 경쟁이 공정해지기도 하고 경쟁을 통해 승자는 물론 패자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반대로 우리의 경우 어떻게 하면 경쟁이 보다 공정해질 수 있고 모두가 이기는 게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경쟁의 개념에 정의의 개념을 더하는 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좋은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혁을 이러한 관점에서 곱씹어 봄으로써 구체화될 수 있다.

다수가 패하는 게임

우선 대학교육의 개혁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나라 대학이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서울대가 집중적으로 화살을 맞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BK21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우리 나라 대학교육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진단과 처방이 나왔지만 어느 한 가지도 모두를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주제넘게 나서서 대학원 중심 대학이니 학교장 추천제니 모교출신 임용비율 조정이니 하는 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 문제들이 근원적 해결책들도 아닐 뿐더러 이런 문제에 국가가 나서는 것도 우습다. 오히려 국가는 이해 당사자들이 제 목소리를 충분히 내도록 도와주고 그 가운데에서 생기는 선의의 피해자나 약자에 대해 신경 써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본다. 모두가 하나 하나의 문제를 정의로운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곱씹어 보지 못한 결과이다.

서울대 문제를 하나의 예로 이 관점에서 살펴보자. 서울대가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리고 그 출신들이 좋은 자리는 골라서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는데도 그 값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런데 타대학 출신들은 서울대가 많은 것을 독점하는데 있어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서울대가 좋은 학교이고 서울대 출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출신들도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은 자신들의 능력에 비추어볼 때 당연할 뿐 아니라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BK21에 대한 비판에 그들이 보인 태도는 원래는 독식해도 되는 것을 나누어 주었는데 무슨 불만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고까와하면서도 함부로 대들지 못하는 것은 피해의 당사자들이 경쟁의 공정성에 대해 따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서울대가 좋은 대학이고 서울대 출신이 우수하다는 점에 대해서 과연 공정한지의 문제를 따져보자. 일단 서울대가 좋은 대학이라는 점에 대해 따져 보자.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대학은 평범한 학생들을 입학시켜 최고의 재원으로 길러내는 대학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는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하고도 세계의 유수한 대학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대학이다. 서울대 출신들이 졸업 후 각종 고시에 많이 합격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원래가 시험 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대 출신들이 우수한가의 문제이다. 현재 서울대 출신들이 우수하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서울대 입학생들의 수능시험 성적이 타대학에 비해 확실히 높기 때문에 감히 그 우수성에 대해 의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추 보면 공정하게 보이는 경쟁을 통해 판가름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수능시험은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학수능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대체로 내신도 높고 차후에 치러지는 고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도 잘 볼 가능성이 높다.

수능시험의 위력 또한 대단하다. 일단 전국의 대학들은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서열이 매겨진다. 하위서열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상위서열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 앞에서 왠지 기가 죽는다. 학부제를 도입한다고 할 때 교수들은 자기가 소속한 학과에 보다 높은 성적의 학생을 유치하지 못할까봐 데모까지 했다. 인문학을 살리자는 주장도 가만히 살펴보면 인문학 소속과 학생들의 수능 평균점수를 높여달라는 얘기이다. 그것도 국가더러 알아서 해달라고 한다. 많은 기업들이 사원을 채용할 때도 수능 점수를 참고한다. 대학 학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언뜻 보기에 “확실한” 기준을 통한 경쟁인 것 같지만 이 경쟁은 결코 정의로운 경쟁이 아니다. 첫째 방법상의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고, 둘째 그 결과가 참혹하기 때문이다.

우선 방법상의 불공정성을 살펴보자. 먼저 기술적인 측면을 보면 수능시험에는 많은 결함이 있다. 한 시험의 객관성을 살펴보는 데는 신뢰도와 타당도라는 기준을 사용한다. 신뢰도는 그 시험이 한 사람의 능력을 일관되게 측정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고 타당도는 그 시험이 평가하고자 하는 바를 잘 측정하는 지를 말해준다. 매년 치러지는 수능시험의 신뢰도와 타당도가 보고되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두 기준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몇 명의 교수들과 고등학교 교사들을 납치하다시피 합숙시켜 놓고 짧은 시간 동안 뚝딱 만들어낸 시험이 높은 신뢰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수능시험이 고등학교 교육 목표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또는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를 얼마나 설명해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그저 의심스럽기만 하다. 오랜 동안의 검증을 통해 만들어진 GRE나 SAT의 경우도 대학학업성취도와의 상관관계가 겨우 0.3을 전후로 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우리 수능이 그 본래 목적을 얼마나 충족시켜주고 있는지는 뻔한 이야기이다. 또 시험점수에는 오차 한계라는 게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처럼 단 1∼2점 차로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수능은 그것이 측정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수능을 통한 경쟁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수능 성적이 낮아 2류 대학이나 3류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평생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일단 사회적 대접이 다르다. 일류대 출신들은 개개인이 어떻든 간에 일단 똑똑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승진하는 데에도 차별이 있고 심지어는 사업이나 정치를 하더라도 학벌을 따진다. 고등학교 때 일찍 어른이 되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참혹하리라는 것을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 깨닫게 되는 셈이다.
또 각 대학들은 이미 출발선상에서 승부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굳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서울대는 서울대고 지방대는 지방대이다. 서울대의 경우 ‘머리 좋은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할 것이 공공연하게 기대된다. ‘학생이 똑똑해서 서울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타 교육주체들에게도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빚어낸다. 우선 고등학교에서는 실질적 교육과정 운영은 수능시험에 맞게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 및 교사의 수업권까지 침해를 받는다. 각 대학에서는 이를 수험생의 당락을 결정하는 기준으로까지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의 자율권에 대한 침해를 입는다. 부모들이 당하는 고통은 말로 할 수 없다. 입시를 위한 획일적 교육에 부모 스스로 자식교육에 대한 선택권을 포기함은 물론 정신적, 경제적, 육체적 고통까지도 감내해야만 한다. 이 게임에서 승자는 고작 서너 개의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과 비대해진 일부 입시학원들에 불과하다. 나머지 다수가 패하는 게임인 셈이다.

정의의 논리로 풀어보는 교육개혁

일차적 문제는 이와 같은 불공정한 수단을 통해 교육 주체들에 대한 통제력을 놓지 않으려는 정부에 있다. 그들은 현재의 문제를 정의의 원칙에서 풀어가는 것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가중시키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정의의 원칙에서 볼 때, 정부는 대학수능시험을 통한 통제를 포기하고 교육 주체들간의 공정한 게임을 관장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선으로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본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이와 같은 부정의한 경쟁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교육의 주체들에 있다. 수능이 내가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했다는 학부모나 교사의 주장, 대학수능시험이 나의 능력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해서 내가 많은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이 기다려질 따름이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경쟁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경우를 가상해볼 수 있다. 우선 국가는 교육의 권리를 교육 주체들에게 돌려주고 공정한 게임을 관장하는 심판으로 물러선다. 대학들이 알아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준이나 시험을 실시하도록 맡긴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본고사 부활로 인한 입시과열을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고교 교사들은 교육과정 및 수업 운영의 자율권을 주장한다. 때문에 고교 교육과정에 영향을 주는 시험은 볼 수 없고 학생들은 대합입시로부터 비교적 안전해질 수 있다. 대학은 보다 똑똑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보다 창의적인 입시 기준을 개발한다. 미국의 경우처럼 학생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국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아주 많은 논란을 거쳐 국가는 무색무취한 시험을 문제은행식으로 개발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험을 당락의 기준으로 삼았다가는 학부모들이 소송 걸 것이 뻔하므로 대학들은 이를 대강의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 한걸음 나아가 각 대학은 입학성적만으로 자기 대학의 학생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경쟁의 수단을 고려한다. 그러나 자기 학생들을 강하게 훈련시켜 장차 사회에서의 성취능력을 통해 입증시키는 방법밖에는 별다른 수단이 없다. 실력 있는 교수들을 유치하고 자신의 경쟁력을 재고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스스로 끊임없이 개혁해 갈 것이다.

이러한 가상의 내용이 이론적 혹은 실천적 검증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정의의 문제가 사려 깊게 고려된 경쟁을 통해서만이 교육개혁이 보다 많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예시한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개혁이 실패해온 이유도 기득권층이 저항해서가 아니라 공정성이 보장되고 패자의 복지가 고려되는 경쟁을 권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원 정년 축소의 경우도 자질 없는 젊은 교사는 그대로 두고 나이든 교사들만을 일괄적으로 희생시켰기 때문에 개혁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처벌권을 빼앗은 대신 교육을 포기할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선 선생님들은 자신들만 당했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많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가르치라고 해놓고 학생들이 공부 안 하는 책임을 교사에게만 돌리니까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정의의 문제를 생략한 개혁의 문제점이자 실상들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정의로운 경쟁의 시스템이 현재의 개혁을 보다 탄탄하게 뒷받침해줄 것이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0

2002/06/28 (01:01:31)    IP Address : 211.195.124.241

548    우리의 가정을 재건설하자 이하천 2002/06/28 856
547    한국의 현실 마광수 2002/06/28 1028
546    주영훈의 뮤직 비디오와 상징적 폭력 조흡 2002/06/28 954
545    대중매체의 노출 문화 난무 김재현 2002/06/28 824
544    박노해와 김규항‘도량(度量)’에 관하여 강준만 2002/06/28 1191
543    영어공용화 왜 허구인가 ? 최용석 2002/06/28 805
542    인터넷의 허(虛)와 실(實) 김찬영 2002/06/28 771
541    노란 머리 의사들이 기다린다 정해권 2002/06/28 913
540    슈퍼맨이 아니면 맨(사람)이 아니다? 백한주 2002/06/28 843
539    사비나의 배반-변희재에게 정혁 2002/06/28 977
538    <이문열과 ‘젖소 부인’의 관계 (2)>를 읽고 답변 박경범 2002/06/28 1169
537    김용옥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강준만 2002/06/28 1059
536    강준만의 송병락 비판은 정당한가? 김영재 2002/06/28 788
535    어느 원로 언론인의 조선일보관 김동현 2002/06/28 867
534    『인물과 사상} 13권을 읽고 이동유 2002/06/28 1003
533    {Midnight Express}-정신적 감옥으로부터의 해방 방재신 2002/06/28 757
532    잘못된 장학금제도, 이대로 좋은가? 전지훈 2002/06/28 869
531    교육자치와 민주주의 홍현성 2002/06/28 1002
530    아름다운 책에 대하여 박혜인 2002/06/28 789
529    자식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말라(?) 최성일 2002/06/28 854
528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4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57
527    이문열과 '젓소부인' 의 관계 (2) 강준만 2002/06/28 1747
526    임지현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강준만 2002/06/28 888
525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 최근 감명깊게 읽은 책 세 권 최성일 2002/06/28 856
524    피노체트 석방과 칠레, 그리고 인권 송기도 2002/06/28 1029
523    정보사회의 신화 조흡 2002/06/28 787
522    에셜론, 미디어제국주의, 그리고 지식사기꾼들 이도흠 2002/06/28 1103
521    “인터넷을 모든 교실에”, 그 문제점과 제언 이재경 2002/06/28 819
   교육문제를 풀어가는 두 가지 원리: 경쟁과 정의 김영석 2002/06/28 671
519    미국 멤피스시의 법정 풍경 신선우 2002/06/28 972

[1][2][3] 4 [5][6][7][8][9][10]..[22] [NEXT]

Admin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WiZ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