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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이하천
제 목 우리의 가정을 재건설하자
우리의 가정을 재건설하자

이하천 │{나는 제사가 싫다}의 저자│


가부장제의 거대한 바윗돌에 둘러싸인 우리의 영혼

비명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
이것은 내가 이 책({나는 제사가 싫다})을 내놓고 나에게 보낸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듣고 느낀 느낌이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잘못을 어떻게 하였기에 이토록 가슴이 답답한 사람들을 많이 양산시켜 놓았는가? 제도인가? 권력인가? 아니면 바보들의 향연인가?

나는 정서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히 한국인의 심리 속으로 무수히 잠수를 해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내게 부각된 것은 지금은 먹고 살만한데 왜 이렇게 우리의 심리가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면서 내게 마지막으로 건져 올려진 것이 바로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틀이었다. 그렇다면 이 가부장제가 지속적으로 자랄 수 있는 온상은 무엇일까? 이런 과정에서 내게 부각된 것이 바로 가부장제의 핵은 제사와 호적제도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언제부터인지 어두운 그림 하나가 떠오르고 있다. 한국 여성의 내면 속에 어린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장면이다. 남성은 어떤가? 남성도 역시 그 속에 어린아이가 하나 웅크리고 앉아 피를 흘리고 있다. 이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피를 흘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아이를 거대한 바윗돌이 빙 둘러싸고 있다.

왜 이런 모습이 떠오르는가? 끔찍하게도 나는 이 어린아이의 모습이 우리의 영혼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공공성, 인간정신, 창의성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제사가 싫다}라는 책은 바로 이 거대한 바윗돌을 제거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나는 ‘시퍼런 장칼을 들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바윗돌들은 그냥 손으로 밀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세워온 가정이라는 건물을 밝은 인식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우리의 가정이 공정성과 윤리성의 바탕 위에 세워진 건물인가? 이대로 믿고 나가도 우리의 정신에 하자는 없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협박에 의해 우리의 정신이 끊임없이 개인의 틀 속에서 뱅글뱅글 돌도록 조장되는 공간을 미화시키며 오히려 웃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크지 못하고 거짓말이라는 거대한 하품 속에서 잠을 자며 자라지 못하는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에서 인간의 도리를 내세우며 또 눈빛에 희망이라는 빛나는 배를 띄우며 오매불망 즐겨 부르는 노래는 무엇인가? 바로 가정의 중심을 남자로 잡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아들! 아들!’을 부르짖는 바보들의 행진에 고개 숙여 동참을 해왔다. 돌부처의 코를 갈아먹으며 성황당을 향해 두 손이 닳도록 빌면서 여성의 자궁을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된 슬픈 역사를 갖고서 우리는 가정이라는 건물을 지어왔다. 가정이 과연 그런 곳인가? 과연 가정이 아들, 아들을 부르짖으며 남자조상만을 경배하도록 만드는 그런 곳인가?

조상은 깡패가 아니다

남자, 그것은 여성에게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여성이 그토록 환상 속에서 사랑의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사이 이들은 여성을 자신의 노예로 착각하고 후다닥 호적제도까지 만들어 여성을 자신들의 집에 시집 온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여성의 에너지를 남자와 남자 집안 사람들에게만 사용이 되도록 조상까지 팔아 협박했다. 한번 본 적도 없고 기억에도 없는 남자 집 조상을 모시지 않으면 너는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것이, 바로 조상을 협박의 조상으로 만들어버린 증거이다. 조상의 개념이 정말 그런 것인가?

여성이 자신들의 집을 빼앗긴 상실감과 불쾌감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정신의 진액이 다 말라버린 후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성들은 과연 그때까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미련스럽도록 천진한 사랑타령을 이제는 밝은 인식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과연 밝은 인식이란 무슨 음식을 먹고 자라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남성들의 조상을 경배하지 않으면 벌이 내릴 것이라고 강요를 해온 인습의 뿌리는 무엇을 먹고 그토록 오랫동안 버텨 온 것일까?

나는 이 시점에서 조상의 개념을 다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조상이란 무엇인가? 조상이란 부드러우며 따뜻하며 인정스러우며 품위가 있으며 자존심 있는 존재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격상시키자는 말이다. 조상은 깡패가 아니다. 협박하는 자는 더더욱 아니다. 나에게 경배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자손에게 벌을 내리겠다는 식으로 조상의 개념을 축소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은 조상의 개념을 너무도 모독한 것이다. 그리고 가부장제가 특권적 권력 유지를 위해 만들어낸 유아독존적 발상이다. 뿌리는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도 엄연한 뿌리가 존재한다.

책을 내놓고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다. 두 50대 여성의 입을 통해서 나온 언어다. ‘그런 말하면 칼맞는다’, ‘화형 당할라’, ‘아이구, 그런 책 보면 그 여자 데리고 온나, 한단 말이다.’ 이것은 조상을 핑계삼아 가부장제가 얼마나 여성을 심리적으로 협박해왔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래도 남성들은 할 말이 있는가? 인간은 말 한마디에 걸려 몇 십년을 고생할 수 있는 극도의 심리적 동물이다.

사실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했어야 할 일인가? 이 일은 이 땅의 사회학자나 심리학자, 철학자 그 외 학자들이 먼저 시작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해야할 책무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시작한 것뿐이다. 학자들을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알 바 없다는 태도로 적당히 서양에서 배워 온 학문을 가르치고, 효도나 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거짓말을 깔고 학문을 하니 학문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나는 그 어떤 주의에도 나를 가두는 것을 거부한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 주의를 다루는 인간이 문제로 부각될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언제나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일 뿐이지 내가 여자냐, 남자냐의 잣대는 중요하지 않다. 더더욱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이 책을 낸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시인적 감수성으로 이 사회를 심층분석해 낸 책이다. 말하자면 이 땅의 남성과 여성의 영혼에 문제가 있다라는 문제제기인 셈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가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할 뜨거운 물결이다. 여성성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늘 비하되어 왔고 왜곡되어 왔고 또 축소되어 왔기 때문에 그 어떤 자리에 있든 이 여성성의 부활을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즉 언어싸움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갖고 있다. 이때 말하는 여성성은 남성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 논리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 사물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 등 총체적 의미의 여성성이다. 나는 이 땅의 남성과 여성의 영혼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부조화로 그만 개인논리에 갇혀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서적 언어로, 어머니의 심정으로 썼다.

사회의 정의와 가정의 정의는 같은 선상에 있는 개념이다

가부장제가 이 땅에 저지른 폐해는 첫째 우리에게 왜곡된 강자의 논리를 심어주었고, 둘째 무엇이 이익이냐라는 잣대를 심어주었으며, 셋째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면서 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금방 드러나는 결론이다. 이 땅에서 장애자나 정신병자나, 그 외의 약자 입장이 한번 되어 보라. 그들은 천형의 벌이라도 갖고 태어난 생명처럼 살다 가야 한다. 강자가 강자인 것은 강자답기 때문에 강자이다. 말하자면 약자들을 위해 에너지를 쏟으려고 강자가 있다는 말이다.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제 조상묘나 화려하게 하고 제 어머니에게 효도나 하고 고향에 가서 돈이나 뿌리라고 강자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왜곡된 강자의 개념은 강자들로 하여금 차라리 사회를 털어 가정과 고향으로 퍼 나르도록 조장을 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의 잣대를 끊임없이 심어주어 합리성을 쟁취해야 할 심리적 갈피에 무엇이 이익이냐를 심어주었다. 이익 때문에 딸보다 아들을 좋아했고, 이익 때문에 작은아들보다 큰아들을 좋아했다. 이 말은 가정에서 닭 한 마리 삶아 분배하는 과정만 보아도 금방 드러나는 장면이다. 가정에서조차 이렇게 원칙의 잣대가 무너졌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또 여성들은 시댁에 가서 써야 할 언어·표정·옷차림과 친정에 갈 때의 언어·표정·옷차림이 서로 다르다. 남성들은 어떤가? 남성들은 사회에 나가 정의를 부르짖으며 난리를 치다가도 가정에 들어오면 권력자로 돌변해 이 사회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며 무너져 내린다. 사회의 정의와 가정의 정의는 같은 선상에 있는 개념이다. 이런 남성들을 믿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런 남성들을 믿을 수도 존경할 수도 없다. 그런 자는 자신이 사회적 권력을 가지면 반드시 도둑놈이 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만 씹고 있는가?

또 친정부모는 결혼 전에는 딸에게 너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하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너를 희생하라고 말이 바뀐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너무도 황당한 장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여성들은 40만 넘으면 책을 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상과 원칙을 살리려고 책을 읽는 것 아닌가? 왜 여성들에게 이토록 패배감이 들도록 만드는가? 그 보복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느냐는 말이다.

극심한 억압은 반드시 다른 희생의 피를 빨아먹고서야 휴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억압은 반드시 다른 형태로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압의 구조를 풀어내야 한다. 이 땅의 여성은 이런 억압의 언어를 곳곳에서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이 억압은 어머니라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을 때 반드시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심리학을 조금만 공부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여성이 누구인가? 여성은 바로 우리의 할머니이며 어머니이며 딸이며 손녀이다.

어떤 지식인은 서양의 바바라 부시가 한 선택과 한국 여성의 선택을 같은 선상에 놓고 싶어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 나는 이런 장면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바보들을 길러냈는가? 라는 내 논리의 집약점을 보는 기분이다. 이 땅의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이런 허약한 정서적 논리를 갖고 있다니! 그 허약한 논리를 갖고 학문을 한들 학문이 제대로 되겠는가, 남성노릇이 제대로 되겠는가 정말 묻고 싶다.

삶이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 엉터리라는 말인가? 그러니 맨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저 멀리 제쳐놓고 서양의 위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 놓은 것을 아직 단계도 맞지 않은데 위대한 지식이라도 알아온 것처럼 이 사회에 뿌리며 으스대고 있는 것 아닌가?

으스대는 것을 시비하는 것은 아니다. 틀리기 때문에 맞지 않다라는 것이다. 맞는 일을 한다면 으스대는 것쯤 못 봐 줄 게 없다는 말이다. 어머니의 잘못된 애정구조를 독인 줄 모르고 무조건 받아먹고 나서(준다고 돈봉투를 다 받다가 영창신세가 되는 공무원들과 무엇이 다르랴) 이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한 마리 가여운 새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 가여운 새가 사회에 나가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아세요?’라고 지저귀고 있으니 정말 이 어리석은 바보들을 어이할꼬.

바바라 부시에게 한국 여성의 억압구조를 설명하면 아마 ‘오 마이 갓!’ 할 것이다. 서양은 이미 거지 노릇조차도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사회다. 그래서 나는 서양 거지를 한번도 불쌍하다는 느낌을 갖고 보지를 않았다. 우리 사회의 거지노릇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선택의 의미를 재해석해 내기를 바라고 있다.

인식의 깊이를 원한다면 어머니의 왜곡된 사랑의 그림자를 먼저 치워야 한다

한국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남의 집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그 집 조상을 모셔야 하는 선고를 엄중히 받든다. 그래서 나는 가부장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문제로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래도 못 알아듣겠으면 남성들의 위치를 여성과 바꿔보면 그 해답은 금방 드러날 것이다. 아마 남성들은 벌써 3·1운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이 사회에 어떻게 근대성을 확립할 것인가 하는 화두로 이 책을 던지는 것이다. 이 울고 있고 피 흘리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자라도록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개인을 빠져 나와 사회로 걸어나오도록 싸움을 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실행되었을 때 우리는 참다운 근대성을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지식인은 또 “페미니즘을 절대선으로 강요하는 것은 다원주의에 대한 모독”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또다시 웃음이 나온다. 절대선을 강요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바로 이 가부장제의 귀신들이다.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절대선을 강요하지 말라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자고, 여성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받들어야 한다는 논지로 꽉 차 있다. 나는 그 지식인의 심리의 잣대가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무엇이 자신에게 이익이냐’에 가 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식의 깊이를 막고 있는, 아들과 딸을 차별해서 키워내는 어머니의 왜곡된 사랑의 그림자가 보인다. 어머니의 그림자가 막고 서 있는 것이다. 인식의 깊이를 원한다면 어머니의 왜곡된 사랑의 그림자를 먼저 치워야 한다. 그래야 저 깊은 인식의 세계로 잠입이 가능할 것이다.

내가 거짓말이 왜 안 되는가 하는 이유가 이곳에 있다. 나도 봐 줄 수만 있다면 이 땅의 어리석은 아들들을 봐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 어머니라고 큰 소리로 불러보라면 그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어머니!’라고 한스럽게 외치는 이 순진하고 가엾은 남성들을 말이다. 나는 한번도 여자들을 모아놓고 어머니를 불러보라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만 속하는 게 아니다. 그럴 때 남성들은 ‘노’라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준다고 다 받아먹나? 틀려도? 어깨를 으쓱하며? 쑥스러워하며?

나는 잘못된 것에 물을 주면서 방긋 웃음을 웃으며 뒤로는 잽싸게 내 이익을 쟁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 그런 이익을 꿀꺽 삼킬 수 있는 나이와 입장에 있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그런 이익을 거부한다. 그런 거짓은 아무리 공부해도 인식을 깊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복한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심정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나에게 반박문을 내는 그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완벽한 논리의 세계로 내기를 바란다. 시시하게 적당히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반드시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에 잣대가 가 있는 글을 생산하기를 바라겠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대참패를 당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 사회적 뿌리와 개인적 뿌리가 이렇게 썩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꿈속에서조차도 믿고 싶지 않다. 이 거짓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마치 의사가 메스로 환부를 열었을 때 암세포가 확 번져 있는 장면을 보고 후다닥 놀라 도로 닫아버리는 그런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거짓말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다. 어른이 어른인 것은 어른답기 때문에 어른이다. 겨우 공경이나 바라고 효도나 바라고 남의 집 자식을 데려다가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벌떼처럼 달려들고, 아들 아들 부르짖으며 며느리에게 관련도 없는 조상을 숭배해야 복을 받는다고 협박하는 게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자, 나는 많은 말을 하며 우리의 가정에 문제가 있다라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있다. 거짓 위에 세워진 가정이라는 건물을 부수는 작업이 첫걸음일 것이다. 그 다음 다시 지으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서 가정을 재건설하자는 슬로건을 내거는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우선 조상의 개념을 다시 설정하고 전 국민의 일인일적제를 제안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태어나는 생명 하나하나에 자존심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실현되어야 우리는 패거리 문화와 지역감정으로부터 해방될 것이고 세계인으로서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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