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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조흡
제 목 주영훈의 뮤직 비디오와 상징적 폭력
주영훈의 뮤직 비디오와 상징적 폭력

조흡 │문화연구가│


가수 변신에 성공한 주영훈

주영훈의 뮤직 비디오 {노을의 연가}가 인기다. 이는 그가 각 방송사의 토크 쇼에 출연해 홍보 활동을 활발히 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화려하게 제작된 뮤직 비디오에 많은 청소년들이 열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노래 자체가 들을 만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1집 앨범이 ‘한국 최고의 작곡가’라는 위상에 먹칠을 하는 ‘참패’의 쓴맛을 안겨주었다면, 2집 앨범은 ‘작곡가는 가수로 성공할 수 없다’는 불문율을 깔끔하게 뒤바꿔 놓은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노을의 연가}는 한국 가요에서 드물게 사용하는 28인조 오케스트라 반주를 곁들인 장려한 소프트 락(soft rock)이다.

주영훈의 이런 성공은 최근 한국 가요의 유행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것은 조성모의 {투 헤븐} 뮤직 비디오 제작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점차 가요계에 관행처럼 자리잡고 있는 실정이다. 즉, 가수들이 새로운 곡을 발표하면서 새 앨범의 타이틀 곡을 위한 뮤직 비디오를 아주 화려하게 제작해 그 자체가 화제가 되게끔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배우와 제작감독을 고용해 뮤직 비디오 한 편당 3∼4억이 넘는 제작비를 투자하는 것이 이제는 보통의 일처럼 되어 버렸다. 주영훈의 {노을의 연가}에서도 예외 없이 차승원, 유지태, 장진영과 같은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화를 방불케하는 캐릭터와 영상미를 담고 있다. 듣는 노래에서 보는 가요로 전환되는 유행가의 시각화가 심화되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런 조건을 만족시켰다고 모든 노래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마지막으로 진한 섹스나 난무하는 폭력이 반드시 가미되어야 한다. 실제로 뮤직 비디오가 히트곡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섹스는 단골 주제였다. 동성애를 실험하기도 하고, 강간과 윤간을 묘사하기도 했으며, ‘퇴폐적’ 삼각관계를 제시하는 등 ‘비정상적’ 섹스는 초창기 뮤직 비디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소재였다. 이제는 이런 얘기들이 영화나 광고의 주제로 재생산되면서 가요계의 최신 유행은 총기 사용을 재현하는 폭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의 뮤직 비디오들이 획일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갑자기 모두가 오로지 폭력에만 탐닉하는 ‘냄비속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것을 보아도 형식과 내용에 차이가 없어 그게 그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YTN의 오동진 기자는 ‘천편일률적인 가사’가 ‘획일적인 뮤직 비디오’를 낳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조성모의 {슬픈 영혼식}, 주영훈의 {노을의 연가}, 스카이의 {영원}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스타일로 제작된 것이 사실이다. 뚜렷한 차이가 없을 만큼 서로가 서로를 닮아있다는 말이다.

이런 형식적 비판 말고도 내용을 문제삼는 비평도 있다. 이는 대부분 뮤직 비디오에서 즐겨 이용하는 총기 사용에 맞춰져 있다. 각종 무기를 이용해 주인공이 살인이나 폭력을 일삼고 있는데 이런 행동이 모두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뮤직 비디오 소비자들이 청소년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에게 폭력과 살인을 노출시키는 것은 ‘모방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증거도 제시한다.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를 보고 실제로 주유소를 턴 10대의 경우나 홍콩 액션영화를 즐겨보던 한 남학생이 여중생을 ‘화풀이 살인’하는 일이 현실이라는 점이 이 분석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텍스트의 결정력을 과대 평가한 환원적 결론일 뿐이다. 포르노가 섹스범죄를 야기시키고, 범죄영화가 모방범죄를 생산해내며, 폭력적 텔레비전 장면이 어린이들을 난폭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 사실인 현상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전체의 모습으로 결론 내리기에는 무리한 얘기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텍스트에 참여하고 있는지, 뮤직 비디오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유행문화가 소비되고 있는지 등의 입체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따라서 해결책 또한 지극히 단순하다. 도덕의 이름으로 또 청소년 보호를 명목으로 검열만이 감행되는 것이다.

문제는 {거짓말} 영화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검열이라는 행위가 오히려 검열된 텍스트를 유행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는 옳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할 텐데 그것이 무엇인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청소년들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적 조건과 경험을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텍스트의 문제를 살펴본다면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혼성모방의 뮤직 비디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음악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음악적으로 별로 실력이 없는 가수도 뮤직 비디오만 잘 만들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수일수록 무대에서 립싱크를 고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첨단 녹음장비 사용과 음향 조작으로 모자라는 노래를 어느 정도 수정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노래 실력을 현란한 춤으로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라이브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수들이 많지 않을 정도로 요즘 가수들 대부분의 가창력은 듣기 거북할 정도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인기가수 생활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한마디로 노래 실력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마돈나가 바로 이런 타입의 가장 전형적인 가수일 것이다. 그녀는 노래 이외의 모든 것에 능한 가수다. 항상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화제를 몰고올 만큼 노래 외적인 요소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가수다. 실제로 마돈나의 경우 그녀의 음악보다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녀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 그리고 높은 자신감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가부장적 가치에 야합하지 않으면서 여성 자신의 섹슈얼리티 구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돈나는 퍼포먼스를 통해 보여준다. 바로 이점이 그녀의 상품성이다. 그녀가 톱가수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많은 소녀들이 마돈나를 모방하며 자신들만의 ‘끼’를 발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게끔 ‘모범’을 보인 셈이다.

주영훈의 {노을의 연가}가 성공한 데에도 노래 외적인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물론 마돈나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음악적 재능이 필요했듯이 주영훈도 가수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노래 실력을 갖춰야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그가 현재 인기가수가 되었다는 얘기는 그의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영훈의 경우, 그가 내세울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이 이번 앨범의 성공에 큰 공헌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빈번한 방송활동으로 이미 주영훈이라는 인물은 화제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앨범만큼 홍보가 잘 된 경우가 드물 정도로 외부지원이 활발했다는 말이다.

물론 또다른 이유도 있다. 주영훈이 가수로서 성공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무엇보다 그의 뮤직 비디오가 제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노래보다 영상이 더 좋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주영훈의 노래 속에 담겨 있는 ‘못다한 사랑’ 또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메시지에 공감했다기보다 뮤직 비디오에 담겨 있는 영상에 빠져들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상 텍스트가 제공하는 의미는 폭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 폭력은 현실적 폭력이 아니라 상징적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지극히 오락적인 폭력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존재하는 사이버 폭력만큼이나 허구적인 폭력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노을의 연가}에서 연출된 상황이 허용되지 않는 통제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노을의 연가}는 그렇다면 가상세계인 것이다. 만화의 세계라는 말이다. 만화인지라 여기서 제시할 수 있는 비쥬얼 스타일은 전형적인 혼성모방(pastiche)이 제격이다. 이는 패러디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스타일을 모방하는 방법이다. 그 특유한 스타일은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 홍콩 갱스터, 그리고 할리우드 필름 느와르에서 차용한, 한마디로 온갖 것을 뒤섞어 놓은 잡종 수법인 것이다. 문제는 이 뮤직 비디오에서 패러디처럼 또다른 목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즉, 풍자적인 충격이나, 폭발하는 웃음, 그리고 어떤 확고한 신념이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폭력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뜻이다. 왜 그 뮤직 비디오에 폭력이 사용되어야 하는지 뚜렷하지 않다는 얘기다.

만약 {노을의 연가}에 나타난 혼성모방의 수법에서 아무런 풍자적 의도를 찾아볼 수 없다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했단 말인가. 단순히 그럴듯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모방한 수법이라면 이는 지극히 창조력이 결핍된 행위일 뿐만 아니라 공허하기까지 하다. 의미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이뤄질 수 없는 이유가 킬러였던 여인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심각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 많은 돈을 들여 뮤직 비디오를 제작했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서 논리는 중요하지 않다. {노을의 연가}는 그저 오락일 뿐이다. 청소년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감각적인 이미지를 혼성모방 스타일로 생산한 것일 뿐이다. 마케팅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상징적 폭력의 의미=텍스트+수용자

실제로 이 작전은 잘 맞아떨어졌다. 텍스트만 놓고 살펴보았을 때 {노을의 연가}는 별로 의미 있는 작품이 못 된다. 맹목적인 폭력성만 돋보일 뿐 어떤 오리지날리티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골적인 스타일의 모방으로 ‘차별화’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대중문화의 평가가 바로 이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라면 주영훈의 2집도 실패했어야 된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노을의 연가}에 환호하는 청소년들이 많아 이 앨범은 히트작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 노래의 어떤 점에 이끌린 것일까? 노래가 좋아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진부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곡이나 가사 모두 지극히 상투적인 노래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이 뮤직 비디오에 이끌리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스타일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물론 모든 수용자들이 그랬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주영훈의 2집 앨범을 선택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노을의 연가}라는 뮤직 비디오가 강하게 어필됐기 때문이다. 뮤직 비디오가 강렬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될 사실은 제작자가 뮤직 비디오에서 제시한 것이 고작 혼성모방에 불과하다고 해서 수용자들이 단순하게 이를 무의미한 스펙터클로만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스펙터클하게 전개되는 이 뮤직 비디오의 이미지는 그들의 능동적인 의미생산 과정을 생략해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용자들은 제작자가 만들어 놓은 {노을의 연가}라는 스펙터클을 즐기면서 폭력의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가 유행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작자가 스타일만을 강조해 만든 노래인데도 수용자들이 그 무의미한 스펙터클에서 자신들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그럴 수 있도록 어떤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에 유행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용자는 텍스트 못지 않게 중요한 변수다. 사실, 주영훈 2집 앨범의 성공여부도 결국 그들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텍스트의 최종적인 의미는 수용자들이 만들어 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미는 텍스트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의미는 텍스트와 수용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으로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주영훈의 팬들이 생산한 폭력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상징적 폭력에 이끌리는 것일까? 분명히 지배 이데올로기 가치로 판단해 보면 폭력은 금기적 의미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청소년들이 폭력적인 장면을 수용하며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나? 그것은 아마도 {노을의 연가}에 담겨진 상징적 폭력이 사회적 불평등을 재현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옥죄는 사회질서에 반발할 수 있는 하나의 분명한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폭력은 개인의 몸과 몸이 부딪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노을의 연가}에서처럼 상징적 폭력의 영역에서는 영웅과 악당, 그리고 희생자들이 사회구성체의 화신들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도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용자들이 상징적 폭력에서 얻는 의미도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을의 연가}에 나타나는 캐릭터들이 이런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차승원은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 역할을 맡고 있으며, 유지태와 장진영은 악한으로 분장하고 있으나 여자인 장진영이 경찰의 저격에 먼저 죽어가는 ‘희생자’로 묘사되고 있다. 차승원이 경찰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이라는 엄격한 규율과 그의 건강하고 균형잡힌 단련된 몸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자는 똑똑한 자질과(장진영이 발산하는 이미지다) 관계없이 모두 가부장적 가치에 종속된 희생자라는 점에서 뮤직 비디오의 스토리와 현실이 일치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여자를 보호하며 의리와 사랑을 지키겠다는 유지태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이렇게 보면 {노을의 연가}는 세상의 원리를 그대로 반영한 축소판의 세계인 셈이다.

이렇게 사회적 갈등을 잘 묘사한 축소판 세계는 항상 인기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대부분 상징적 폭력이 내재해 있다. 그것이 실제 사회적 갈등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적 폭력이 유행한다는 것은 일종의 파라독스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적(예를 들어 법과 질서)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폭력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바로 이런 모순적 상황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구성원들이 불의와 연합해 더 큰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에서 착한 영웅보다는 악마를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치에서다. 파괴력과 영향력이 훨씬 큰 악마가 더욱더 매력적인 것이다. 청소년들이 {노을의 연가}를 시청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그들이 범인들과 일체감을 가질 때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수용자들이 상징적 폭력이라는 스펙터클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세력에 맞서 복수를 통쾌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대리만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상징적 폭력의 검열

{노을의 연가}가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상징적 폭력을 통한 현실에서의 심리적 해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는 상징적 폭력이 현실세계의 폭력에 대한 억제력을 약화시켜 결국 폭력을 더 조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충 권력이나 재산을 지켜야할 입장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경우 폭력이 담겨있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검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묘사가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만들어진 폭력물은 오히려 개인과 사회생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상징적 폭력(또는 섹스의 표현)을 검열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배그룹의 이기적인 착각일 뿐이다.

물론 현실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폭력은 주영훈의 뮤직 비디오에서 보여주는 상징적 폭력과는 차원이 다르며 즉각적인 법적 제재를 받아야 마땅하다. 여기서 아주 당연한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에서 상징적 폭력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그런 취향을 선호하는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것밖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상징적 폭력의 이미지를 억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아예, 상징적 폭력이 흥미롭지 못하게끔 사회적 조건을 비폭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 문제라는 얘기다.

따라서 검열은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검열이 우리들의 온갖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제시되는 순간 지배그룹의 헤게모니는 그만큼 연장되는 것이다. 검열은 그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검열은 시민들(특히 청소년)이 제 인생을 꾸려나가는 데 꼭 필요한 문화적 취향과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의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뿌리다. 청소년들이 생산하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신세대 문화나 그들이 즐기는 상업문화를 무가치한 것 또는 위험한 것으로만 취급하여 검열이 자행된다면 이는 분명 다양성을 말살하는 반민주적 행위인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자본도 때로는 독재의 반대편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은 그 속성상 이익이 극대화되는 모든 일에 관대하다. 청소년이 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이즈음, 자본이 청소년 문화에 관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자본은 청소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그들이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는지, 무슨 음악을 듣는지, 어떤 패션을 즐기는지, 그리고 무슨 잡지를 읽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이 모든 것이 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본은 청소년들의 신문화에 대해 지극히 관대할 수 있다. 때로는 그들이 문화 생산자의 첨병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는 청소년들이 자본에 일방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자본이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새롭게 창조해 내는 문화의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자본도 그들이 매일 쏟아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모두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다양한 생각은 바로 청소년들의 목소리이자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변동을 이끌어 나갈 원동력인 것이다. 자본은 이러한 청소년들의 원기 왕성한 사고를 이용할 뿐 검열하지는 않는다. 상업문화가 곧 청소년 문화이기 때문이다. 검열은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검열의 궁극적인 수혜자는 오로지 지배그룹일 뿐이다. 그들은 단순히 상징적 질서를 평정하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진정으로 변화되어야 할 사회질서를 외면하는 수단으로 검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상징적 폭력이 사회적 폭력을 야기시킨다는 전제는 사회적 알리바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 때문에 모든 폭력적 이미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징적 폭력이 실제 상황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작용하는 특수한 상황에 달려있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미지가 행동으로 옮겨지는 가능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폭력적 이미지는 항상 사회적 조건의 일부이다. 그것이 때로는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을 테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상징적 폭력과 실제 폭력과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노을의 연가}가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현실세계에서 받는 억압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형태의 폭력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보다 정확한 두 개념의 관계는 복잡한 사회적 힘의 관계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서로의 산물이자 동시에 매개가 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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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에셜론, 미디어제국주의, 그리고 지식사기꾼들 이도흠 2002/06/28 1103
521    “인터넷을 모든 교실에”, 그 문제점과 제언 이재경 2002/06/28 820
520    교육문제를 풀어가는 두 가지 원리: 경쟁과 정의 김영석 2002/06/28 672
519    미국 멤피스시의 법정 풍경 신선우 2002/06/28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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