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안티조선 커뮤니티 우리모두 -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악랄하게.. 또박또박..
관리자 메일  |   사이트맵  |   연결고리  |   관리 원칙   
공지사항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
제발 이상한 공지사항좀 ...
우리모두 후원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2020년] 우리모두 은행 1...
쟁점토론 베스트
 안티조선 우리모두 종료 예정 안내 (~'21.01.15)
 우리모두 사이트 종료 관련 논의 진행 중입니다.
 미디어법과 다수결
 광복절 앞날 읽은 신채호의 글
 8개의 나라중 5는 같은 편 3은 다른편.
 균형이 다시 무너졌군. 간신히 잡아 논건데,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는군..
 악인은 너무나 쉽게 생겨나고.. 착한 사람은 쉽게 생...
 태평성대에 관하여
 음 ...이 냥반도 군대 안갔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자들 혹은 노동단체...
 세상 참 불공평하지 -박재범을 보며
 천재면 뭐하나?
 궤변론자 최장집
 국정원고소사건 환영!!

접속
통계
오늘 36
전체 7092729
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훈
제 목 구로다 가스히로의 글을 읽고
구로다 가스히로의 글을 읽고

강훈 │뉴질랜드 오클랜드│



{월간조선} 1999년 12월호에 <한국의 지식인과 언론은 수구적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스히로 씨에게 전한다.

구로다 가스히로 씨는 한국특파원 생활을 상당기간 오래 하고 있으며,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책도 내고 한국 언론에 자주 글도 기고하고 있는데 나는 그의 글을 몇 번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 양반은 한국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핑계(?)를 대고 지한파인 척하면서도 실상은 아주 한국을 얕잡아 보는 돼먹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접어두고라도 위의 제목으로 기고한 그의 글은, 일본 왕의 호칭에 대한 문제이다. 요약하면 한국의 언론은 일본의 국가원수를 ‘천황’이라고 호칭하지 않고 ‘일왕’이라고 부르는데 작년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외교문서 등 공식적으로는 천황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지만 “상대 나라의 호칭을 존중하는 것이 국제관례다”라고 하여 ‘천황’이라는 호칭의 사용을 새삼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동아일보}와 KBS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반면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MBC 등은 여전히 ‘일왕’이라고 호칭하고 있으므로, 이 글을 쓴 구로다 가스히로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더구나 그 이유를 대일 감정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구로다 씨의 글은 한국인의 국제 의식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중국문화권에 속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천(天)이라는 호칭은 중국의 천제(天帝)나 천자(天子)라는 단어로 절대적 신을 의미해왔는데, 한국인들은 이것을 중국이 아닌 일본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구로다 씨의 그 뒤의 글 내용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을 옮기겠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日皇’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 ‘皇’이 남은 일제시대의 흔적이었을까. 언론에서는 1980년대 후반까지 거의가 ‘日皇’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는데, 이것이 1989년을 기점으로 일제히 ‘日王’으로 바뀐다. 그 계기는 1989년 昭和 천황(히로히도 천황)의 사망에 관한 보도와 관련해 한국 언론에서는 “일제시대도 아닌데 왜 ‘일황’이라고 부르는가. ‘일왕’으로 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주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언론은 황을 왕으로 격하시켜 일제히 일왕으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20세기 말의 이야기이다. 김대중 정부가 정부로서 천황을 정식 호칭으로 부르겠다는 견제를 재확인했을 때 한국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찬반 토론이 있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 조선일보의 1998년 5월 15일자 <이규태 코너>였다. 이 기사는 중국 문화권에 있어서 지배자의 호칭 문제를 역사적으로 해설한 뒤 ‘대일 감정은 제쳐 두고서라도 이와 같은 역사적 관행, 즉 황과 왕은 복속, 사대주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왕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논리는 아주 흥미롭다. 19세기 또는 그 이전의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 즉 華夷秩序 체제하에 있어서 황과 왕의 종속관계를 현대까지 그대로 연결시켜 한국으로서는 천황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화이질서의 붕괴는 오래된 일로 중국에는 천자도 황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에도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로다 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탈반일 선언과 국제화 노선의 추진은 편협된 민족주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며, 한국 내셔널리즘의 변화 추구에 대한 혁명적 선언이라고 하고 있다. 아울러 구로다 씨는 ‘택시운전사는 어느 나라에도 정보통으로 유능한 사회평론가다’라는 견지에서 자신이 겪은 두 택시 기사와의 이야기를 썼다. 한 30대의 택시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탔는데 그 기사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걸 알고 과거에 1년간 일본에서 트럭운전을 했던 경험을 되살려 한국과 일본의 교통질서를 비교해가면서 “한국이 일본에 지배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일본보다 우리들이 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다른 택시 기사는 50대의 모범운전기사로서 “일본에 사죄나 반성을 추구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본이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왜 일본에 당했는가를 우리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나는 이 두 개의 예문에서 구로다 씨에게 강력히 얘기하고 싶다. 설사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택시 기사가 있었고 이것보다 더한 이야기를 한 한국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이런 예문을 예로 들어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한국인 중에는 더러 이것보다 더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나도 언젠가 어떤 술자리에서 어떤 분의 “일본이 한 10년만 더 한국을 지배했으면 우리 나라가 더 발전되었을 수도 있었다”라는 망발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두 택시 기사의 얘기를 들은 일본인으로서 이런 얘기를 잡지에 예로 들어가며 한국인 자신이 먼저 반성하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수년 전 사귄 한 일본인은(이 사람은 일본 기술자로서 당시 마산의 수출자유 지역에 기술자로 파견 나와 있었다.) 나랑 술자리를 자주 가졌는데 그때 내가 “당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그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한국인에 대해 잘못했다고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본인도 있다. 구로다 씨의 예에 비추어보면 당연히 일본인들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독일과 일본

구로다 씨는 ‘과거 복귀냐 미래로 가느냐’를 언급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탈민족주의 선언과 탈반일선언을 지적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협력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글을 맺고 있다.

이제 나도 결론적으로 구로다 씨에게 제언한다. 독일 뮌헨 시티에서 자동차로 약 20분간 교외로 나가면 ‘바카오 형무소’가 있다. 이 형무소는 히틀러 시대 때의 그 악명 높은 유대인 수용소 중의 하나로 독일 내의 수많은 형무소는 다 없어졌지만 지금 유일하게 바카오 형무소만은 그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둬 역사의 유적지로 만들어 두고 있다. 그 형무소엔 나치들이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실과 유대인들을 때릴 때 사용한 회초리, 고문기구 등등 그때의 물건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고 당시의 여러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나는 그 형무소의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독일은 그 형무소를 그대로 뒀을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독일은 지금도 이스라엘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후손들에게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당시의 역사를 교육의 장으로 쓰고 있으며 유대인들에게 사죄하는 내용으로 모든 안내판과 로고는 검정색 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되어 있다. 유대인 관광객들은 거기에 오면 다들 피눈물을 흘리고 가는데, 당시 단체로 교육 왔던 독일 내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역사의 장을 진지하게 설명하는 독일인 선생을 보면서 나는 일본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와 동행한 70대의 노인이 그 장소에서 과거 일제시대를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을 보았다. “일본 놈들은 이 나찌 놈들보다 더했다”고 하면서.

독일은 지금도(1992년) 이스라엘의 잉여농산물을 사준다든지 해서 늘 유대인들에게 반성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본은 과거 한국에 침략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살해하고 수많은 한국인들을 전쟁터로 또 의학생체실험용으로 희생시키고 그 후손(일본인 후손)들에게 똑바른 교육을 하고 있는가? 그저 역사를 바꾸려 하고 전혀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 독일과 비교되지 않는가? 그때 나는 독일의 그 유학생 가이드로부터 그 바카오 형무소에 일본인들은 관광을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택시 기사의 예를 들은 구로다 씨는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독일의 그 형무소를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다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일본의 지식인으로서 그 형무소를 방문해보면 진짜 느끼는 게 있을 걸로 믿는다. 일본이 진심으로 한국에 사죄하고 조상의 잘못을 후손들에게 교육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여기(뉴질랜드 오클랜드)는 다양한 인종들이 많이 사는데 요즘 젊은 일본인들과 얘기해보면 역사에 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왜 일본이 한국에게 사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오히려 내가 듣는다. 일본의 잘못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은 모른다. 다 역사 교과서의 왜곡 덕분인지. 진정한 사죄와 반성하는 마음을 일본인이 가질 때 한국 택시 기사의 이야기나 탈일본선언이나 탈민족주의 이야기가 진짜 말이 되지 않겠는가.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4

2002/06/28 (00:56:54)    IP Address : 211.195.124.241

518    의약분업과 명분론 박형욱 2002/06/28 796
517    한 일본인의 교묘한 과거 합리화 전진식 2002/06/28 1128
   구로다 가스히로의 글을 읽고 강훈 2002/06/28 857
515    강준만 님의 일관되지 못한 김용옥 비판 채석용 2002/06/28 1126
514    도올 김용옥의 친일파관 비판 (2) 이현우 2002/06/28 870
513    4·3 특별법과 제주도민을 더 이상 우롱하지 말라 김종민 2002/06/28 948
512    『조선일보』‘기부문화’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강준만 2002/06/28 834
511    신문 선택의 자유 좀 누려보자 강준만 2002/06/28 844
510    미래 역사의 폐해 정대신 2002/06/28 861
509    이 땅의 사람들에게 띄우는 편지 김동호 2002/06/28 797
508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깨우칠까? 미국독자 2002/06/28 813
507    광주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광주 사람들 양순권 2002/06/28 844
506    부산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이완근 2002/06/28 927
505    ‘언론권력’ 교체는 정말 불가능한가? 강준만 2002/06/28 783
504    실리지 못한 원고 ? ‘독자가 주체가 되는 책’! 편집부 2002/06/28 752
503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3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25
502    {시사인물사전} 정기 독자 1천명에게 알립니다 편집부 2002/06/28 882
501    제2의 독자 배가 운동을 제안 드리며 편집부 2002/06/28 890
500    총선시민연대와 {조선일보} ] 강준만 2002/06/28 838
499    송복 조갑제를 능가하는 ‘극우 코미디’ 강준만 2002/06/28 1060
498    {조선일보}와 법치주의 박형진 2002/06/28 836
497    총선연대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 조 흡 2002/06/28 774
496    이현우 님의 글을 읽고 윤수정 2002/06/28 914
495    김용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2002/06/28 859
494    이진우‘전투적 자유주의’에 관하여 강준만 2002/06/28 881
493    두더지의 슬픈 초상 강준만 교수에게 답함 임지현 2002/06/28 1024
492    최규정 님과 박지훈 님의 반론에 답한다 강준만 2002/06/28 918
491    <의약분업, 소비자의 이익에서 다시 보기>를 읽고 백한주 2002/06/28 943
490    나의 교육개혁안 비판에 답함 홍현성 2002/06/28 1044
489    어느 개인주의 교사가 꿈꾸는 학교 김영수 2002/06/28 755

[1][2][3][4] 5 [6][7][8][9][10]..[22] [NEXT]

Admin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WiZ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