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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조 흡
제 목 총선연대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
총선연대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

조흡 │문화연구가│

낙천·낙선운동은 상징조작의 결과다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텔레비전 연속극보다 더 화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관심의 열기가 다소 식어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한국 역사에서 국민들의 시민운동에 대한 지지와 관심이 이렇게까지 고조된 적도 많지 않다. 물론 이 땅에서는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시민운동이 존재했으나 이는 대부분 일격에 정권을 타도하려는 과욕 때문에 결과적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사건은 체제 속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소박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시민운동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 큰 기대를 거는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에서도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어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긍정적인 바람 말이다.

사실 해방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시민사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시민사회란 원래 서구 근대국가의 제도를 일컫는 헤겔과 맑스의 정치철학을 말하는 것이었다. 국가와 구분해서 사용하는 사회적 관계, 조직과 기구의 영역을 모두 시민사회라 불렀던 것이다. 이 개념은 더욱 발전되어 국가는 정치사회로 그리고 시민사회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따라서 경찰과 군대 같은 무력을 관장하는 정치사회는 국가의 책임하에 있지만 언론, 정당, 학교, 각종 이익집단, 자선단체, 사회운동기구 등은 시민사회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민사회의 개념을 정리해 보면 왜 한국의 독재정부들이 시민사회를 정권 유지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시민사회는 국가의 독재적 사고와는 다른 다양한 독립적인 목소리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자유스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정통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장소이기 때문에 독재정부가 그 성장을 방해한 것이다. 당시 언론은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되어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야당의 정당 활동도 사사건건 방해해 일당독재와 다름없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독재정부의 수명을 연장하려 온갖 노력을 다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죽어야만 됐던 것이다.

따라서 독재체제 아래서는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생산수단을 국가기구가 독점한 터라 정치적 힘과 사회적 힘의 긴장관계는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공법과 민법의 구분마저도 모호했다. 독재자가 곧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판단과 결정이 바로 법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를 정보부(안기부), 보안사, 경찰이 독점하다보니 국민들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정보 조작과 프로파간다뿐 여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국가의 시책을 열심히 언론에서 여론화해 준 덕분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내니 프로파간다가 여론이 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파워는 국가로 수렴되어 있었다. 그 어떤 독립된 사회적 힘도 용납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한국 정치가 ‘민주화’ 되었다는 의미는 이런 구체제가 형식적으로나마 타파됐다는 뜻이다. 국가의 예속물처럼 되어버렸던 시민이라는 개념이, 사회 조직이, 그리고 시민운동이 마침내 제 목소리를 찾았다는 말이다. 국가로부터 끊임없이 감시당하면서 일종의 영구적인 억류를 경험해야 했던 시민들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는 어떤 시민운동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제는 한마디로 국가(군대, 경찰, 법제도와 행정 등)와 비국가 영역(사적통제 하의 자발적 사회 기구)의 구분이 뚜렷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낙천·낙선운동이 이토록 주목을 받는 것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이룩했기 때문이고 또 이에 따라 권력이 한때는 국가의 전유물이었다가 이제는 시민사회로 분산된 증거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긍정과 부정의 혼합체이다. 부분적 긍정의 근거는 시민운동이 정치제도의 한 영역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예전과 달리 시민운동을 정권이 노골적으로 탄압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민운동은 이제 한국 정치의 일부가 된 것이다. 오히려 정권이 시민운동을 역이용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예전과 비교해 보면 ‘발전’된 정치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낙천·낙선운동이 뜨거운 국민적 관심을 얻고 있는 것은 ‘상징조작’의 결과라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다. 여론 조작이 독재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듯이 총선연대의 출현은 언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등장한 상징조작의 결과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조작’의 폐해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언론을 이해해야 정치가 보인다

강준만의 지론인 ‘정치를 알기 위해서는 언론을 파악해야 한다’는 말 만큼 이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가장 전형적인 언론 플레이의 결과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주장이 이제까지 외쳐왔던 일상적 구호에 불과할 수도 있는 사건을 이렇듯 ‘중요한’ 안건으로 부상된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물론 여·야 정치권의 ‘선거판 담합’이라는 기폭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의 나눠먹기 식 협상이 한국 정치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더 신빙성이 있는 얘기다. ‘담합’이 문제며 총선연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일 먼저 결론 내린 곳은 언론이었다. 낙천·낙선운동의 담론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군사독재에서 ‘민주정부’로 넘어오면서 언론은 상대적인 자율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제 막 획득한 막강한 권력을 남용하기도 했다. 신문이 방송보다 대체적으로 더 심하게 정치권력과의 밀착을 실험했고, 그 결과 성공의 단물을 만끽하기도 했다. 독재정부 시절에는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대가로, 민주정부 아래서는 정권을 겁주는 역할로 항상 지배층의 일원으로 속해있는 세력이 신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언론에 정면 도전하거나 때가 아니다 싶으면 언론도 꼬리를 내릴 줄 안다. 그러면서 공격의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하이에나’ 전법이라는 것이다. 정권의 가장 취약한 요소와 시간에 맞춰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그 수법 말이다.

언론이 낙천·낙선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당시 ‘국민의 정부’는 지극히 수세적인 입장에 있었다. 지난 일 년 내내 정국의 주도권을 거의 상실한 채 야당에게 고삐를 단단히 잡힌 꼴이었다. 이렇게 여당이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민회의(민주당)가 야당과 언론과의 ‘말 싸움’에서 여지없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말에 대해서 더 말이 안 되는 말로 받아치는 방식이 너무 설득적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것도 항상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늦장 대응하는 아주 어설픈 모습으로 말이다. 이 경우 가장 좋은 교과서적 대응법은 역시 입체적으로 말 반격을 즉각 올려붙이는 방법이다.

여하튼 보수 신문들은 김 정권이 그렇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시점을 골라 공략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총선연대는 언론의 입지를 정권보다 우위에 위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었다. ‘여야가 선거판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 또는 ‘시민들이 화났다’라는 표현으로 지난 일 년 동안 유지돼 왔던 정권의 허약한 이미지를 지속시키고 싶은 언론사들이 이런 기회를 맞아 자신들의 욕구를 폭발시킨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의례적인 시민단체들의 반응일 수도 있는 논평들이 확대해석되기 시작했고 일단 시민들의 공감을 얻은 이 운동은 산불 번지듯 퍼져나간 것이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이러니는 이렇게 언론에 의해 시작된 낙천·낙선운동이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제는 더 이상 언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해버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동안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엉뚱하게 사건이 발전됐다. 당황하기는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수습하기 어려우리만큼 일이 커진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런 변화가 그들의 이익에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이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헤게모니 ‘게임’으로 돌변한 것이다. 언론과 총선연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주인공인 담론전(`戰`)으로 말이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죽 쒀서 개한테 준 꼴이 된 셈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낙천·낙선운동은 더욱 확산되고 있었다.

보수 신문이 여야의 선거법 협상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당시 비난의 주요 목표는 양비론의 ‘객관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당이었다. 그러나 김 정권이 발빠르게 이 사건을 정국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고, 한나라당이 뒷북을 치자 보수언론들은 묘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낙천·낙선운동을 크게 보도할 수도 없는 것이, 만약 그렇게 되면 민주당에 더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었다. 담론과 의제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성에 문제있다’, ‘실정법 위반이다’, ‘여당의 정략에 이용되고 있다’, ‘정치적 효과 미지수’ 등의 또다른 문제들을 부각시키면서 잘못 꼬인 사건의 방향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안건의 핵심을 비껴나가 마치 원래부터 그것이 문제였다는 듯이 말이다. 2차 낙선자 명단이 신문의 헤드라인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신문과 달리 방송은 상대적으로 이 문제를 아직까지 순진하게(`?`) 다루고 있다. 실상은 순진한 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방송사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연예오락에 능하고 뉴스에 약하다는 점이다. 매체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뉴스, 특히 정치보도는 신문보다 한 수 아래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낙천·낙선운동 같이 시민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안건에 대해서는 방송도 신문보다 더 빠른 기동력을 발휘해 심층취재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사건이 공익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으니 이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그야말로 ‘기쁨주고 칭찬받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연유에서든 방송은, 신문의 어법대로라면, 총선연대를 키워줌으로서 ‘민주당의 정략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방송의 최대 수혜자는 낙천·낙선운동이라 할 수 있다.

총선연대를 위한 변명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총선연대에 관한 시민들의 고조된 관심은 다분히(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언론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다면 현재 총선연대가 벌이고 있는 낙천·낙선운동이 어떻게 결말 날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된다. 처음부터 이 운동은 성공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물론 나의 이런 성급한 진단이 잘못되기를 간절히 기원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일을 언론이 한껏 부풀린 것이다. 신문에서 누차 지적한 대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이 실제로 국회의원의 대폭적인 물갈이로 이어지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각 당에서 소수의 인물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도덕적 우위를 지키려는 상징적 제스처만 보일 것이 고작일 터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에 의하면, 그러나 낙천·낙선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운동이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정치 현실은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거국적 관심이 결국 타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농성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무능과 부패한 정치인들을 성토하면서도 ‘우리’ 지역의 ‘우리’ 국회의원은 항상 예외로 인정하려는 이중적 심리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이런 이중적 사고구조는 총선연대의 시민운동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큰 장벽으로 남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운동이 오히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번 시민운동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부정적으로 진단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이렇게 긍정적 지지를 곁들이면서 문제점을 부각시키다 보면 자칫 보수세력의 헤게모니 작전에 이용될 위험이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그들이 지적한 문제점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정치 현실을 상기시켜준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척동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자명한 문제점을 다시 한번 언급하는 것이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일에 별로 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어떻게 실행하느냐의 방법만 남았을 뿐이다. 누군가가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말이다.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이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총선연대가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그런 ‘혁명적 방법’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체제 내에서의 점진적인 개혁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낙천·낙선운동을 ‘법치’에 벗어난 불법운동으로 규정하며 반체제적 운동으로 몰아가는 세력들도 있다. 그러나 체제 속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시민운동이라면 그것은 결코 반체제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시민운동을 제한하는 악법을 지키려는 무리들이 반체제적인 것이다.

분명히 한국의 지역주의는 뿌리가 깊은 고질병인지라 이를 하루아침에 근절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총선연대가 벌이고 있는 낙천·낙선운동이 이 문제까지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 운동이 정치사회에 팽배해 있는 지역주의를 청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수로 하루아침에 한국의 ‘정치구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혁명을 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번 낙천·낙선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아주 작은 것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낙천·낙선운동은 틀림없이 국민들의 정치 의식을 한 단계 높여준 효과가 있었다. 그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소외감을 관심으로 바꿨다는 사실은 아주 커다란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한국의 정치적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이 의식의 연습을 한 셈이다. 비록 그 의식이 투표장에서 행동으로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가까운 장래에 아주 긍정적으로 작동할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것이 진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사회변동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우선 시민들의 굳어있는 생각을 바꾸고, 그 바뀐 생각을 그들이 오래 품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까지 이보다 더 좋은 사회운동 방법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가 알고 있다면 듣고 싶은 얘기다.

언론개혁운동이 바로 낙천·낙선운동이다

물론 총선연대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지적이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시점에서 정작 우려해야 할 점은 지당한 얘기를 되풀이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이번 시민운동이 더욱 효과적일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도 아직까지는 총선연대가 잘 대처해 나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모론’과 ‘불법’ 논란에 대한 즉각적인 논리적 해명과 반박, 운동의 분산화, 언론을 위한 이벤트 실시 등 잘하고 있는 점이 잘못하고 있는 것보다 돋보여 큰 걱정이 안 된다는 말이다.

한편 생각해 보면 총선연대의 이번 운동은 이미 그 성과를 초과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운동이 계층과 성차 그리고 지역을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아주 보기 드문 사회운동의 성공 사례다.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낙천·낙선운동이 더 크게 발전되기를 기대한다면 과욕일까? 여전히 욕심을 버릴 수 없다. 여기서 나는 앞으로 이 운동이 궁극적으로는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이 대결하는 전장(`戰`場`)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개혁은 정부가 주도해 이룩할 수도 있으나 권력의 속성상 이를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이미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사회변동의 이니시어티브는 시민사회가 붙들어야 그 효과가 크다. 국민들의 일치된 목소리에 떨고 있는 저들을 보라!

그러나 보수와 개혁연합 세력의 구도로 이어가는 데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뒤따른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이번 시민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운동 자체가 미디어 이벤트라는 점이다. 낙천·낙선운동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끈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말이다. 물론 언론의 이익과 부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얘기하면 이 운동의 가장 큰 적 또한 언론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낙천·낙선운동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덤비면 가장 먼저 당혹해 할 그룹이 정치권(특히 야당)과 보수언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반격이 시작됐고 앞으로는 이들이 총선연대를 더 거세게 몰아붙일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낙천·낙선운동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번 운동이 부디 낙천·낙선운동으로만 끝나지 않고 언론개혁의 계기로 삼게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두 운동은 서로 떼어서 생각해 볼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궁극적으로 낙천·낙선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론개혁이 선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요원한 일이라면 당분간 보다 개혁적인 언론과 손잡고 운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반개혁적 언론의 입지를 차츰 조이는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수언론이 드러내놓고 낙천·낙선운동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개혁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소위 ‘비판적 검증’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총선연대의 작은 실수를 부풀리며, 운동 주변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낙천·낙선운동의 본질을 훼손할 것이다. 이렇게 그들에게 있어서 말은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된다. 만약 그들의 언어가,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시민운동의 성공을 좌우하는 커다란 요소라면 총선연대가 이들과 맞서는 데 필요한 무기 또한 담론일 수밖에 없다. 결국 시민단체가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보수언론과 정면대결을 벌여야 하고, 그 정면대결은 담론의 싸움인 것이다. 총선연대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를 충실히 전해줄 언론인 것이다.

이렇게 총선연대에 있어서 언론은 동지이자 동시에 적이 될 수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언론 모두를 우군과 아군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점이다. 작게 보이는 차이지만 언론사와 언론사 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운동을 지속해 나가면서 개혁에 반대하고 자사 이익에만 몰두하는 언론을 골라내 그들과 담론 대결을 벌여야 한다. 개혁이 안 되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를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도덕적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이미 확보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수구세력의 논리가 얼마나 자기이익에 빠져든 논리인지 총선연대는 즉각적인 반격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운동이 더욱더 성공할 수 있다. 낙천·낙선운동은 바로 언론개혁운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론과 시민운동과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시민단체들이 모든 언론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할 때다. 이미 시민단체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충분히 성공했다. 국민 대부분 시민운동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더 이상 개혁적인 시민운동 단체가 보수언론의 힘까지 빌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모순을 지속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일은 결국 개혁의 메시지를 헤게모니화(`化`)하여 개혁의 본질을 변형시킨 대가로 단체의 사회적 힘만 키워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시민운동의 이상과 목표에 반(`反`)하는 언론이 있다면 그들과 정면대결하는 것이 오히려 시민들로부터 더 큰 지지를 얻어낼 것은 물론이고 단체의 지명도까지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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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한 일본인의 교묘한 과거 합리화 전진식 2002/06/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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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3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25
502    {시사인물사전} 정기 독자 1천명에게 알립니다 편집부 2002/06/28 882
501    제2의 독자 배가 운동을 제안 드리며 편집부 2002/06/28 890
500    총선시민연대와 {조선일보} ] 강준만 2002/06/28 838
499    송복 조갑제를 능가하는 ‘극우 코미디’ 강준만 2002/06/28 1060
498    {조선일보}와 법치주의 박형진 2002/06/28 837
   총선연대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 조 흡 2002/06/28 774
496    이현우 님의 글을 읽고 윤수정 2002/06/28 914
495    김용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2002/06/28 859
494    이진우‘전투적 자유주의’에 관하여 강준만 2002/06/28 881
493    두더지의 슬픈 초상 강준만 교수에게 답함 임지현 2002/06/28 1024
492    최규정 님과 박지훈 님의 반론에 답한다 강준만 2002/06/28 918
491    <의약분업, 소비자의 이익에서 다시 보기>를 읽고 백한주 2002/06/28 943
490    나의 교육개혁안 비판에 답함 홍현성 2002/06/28 1045
489    어느 개인주의 교사가 꿈꾸는 학교 김영수 2002/06/28 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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