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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김영수
제 목 어느 개인주의 교사가 꿈꾸는 학교
어느 개인주의 교사가 꿈꾸는 학교

김영수 │서울시 은평구 증산동│

나는 교단에 선 지 2년이 채 안 된 서울 변두리 중학교의 신출내기 교사다. 대충 월간 {인물과 사상}의 나이와 비슷하게 내 교직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어찌하다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교직에 첫발을 내디딜 무렵, 학교와 교육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이러했다. 공부는 어차피 혼자서 책보고 하는 것이고, 교사는 학생들을 이끌어주고 관리해줄 뿐, 학교의 ‘탁아소적’ 기능이 제일 중요하다. 부모님이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낮 시간에 아이들을 돌봐줄 곳이 필요하다. 기왕이면 친부모와 같은 사랑으로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면서. 놀이방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교사의 주요한 임무는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것. 고등학교 시절, 내가 경멸했던 선생님은 폭력을 휘두르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공공연히 이런 식의 푸념을 해대는 선생님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너희들 데리고 이런 짓이나 하고 있는 것이 참 한심스럽다.” 모르긴 해도, 우리들에게 전달된 그 푸념 속에 담긴 학교와 교육에 대한 경멸이 그대로 그 선생님에게 되돌려졌던 것 같다.

아이들을 데리고 실랑이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는 놀이방 교사를 상상해 보라. 울고 보채고 참을성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룰지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 곳에 당신의 자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내 자신, 우연찮게 들어온 교직이고 때로 피곤함 때문에 붙들고 실랑이를 벌여야 될 아이들을 외면하는 ‘직무 태만’을 심심찮게 저지르고 있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는 것이 한심하다고 느껴진다면 지체없이 교단을 떠나야된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학교와 개인주의

곁으로 나간 이야기를 되돌리자. 나는 개인주의자다. 그런 성향은 일단 나의 뿌리 깊은 습성이겠고,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이 용어를 대놓고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사람은 개인주의자 고종석 씨다. 그가 어느 책에선가,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를 발견하거든 혹시 그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는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로 손꼽히는 파리가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이기도 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지나친 정돈과 질서와 청결함 뒤에는 강제와 획일이라는 폭력이 숨어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개인주의는 말 그대로 개인 자신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문제는 개인들 간의 이해관계의 충돌을 어떻게 해소하고,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용해 줄 것인가 하는 것. 기준은 분명해 보인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것.’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판단이 항상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학교와 개인주의. 학교 붕괴를 말하는 요즈음에 나는 교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풀어내야 될 숙제라고 생각한다.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 예전부터 계속되어 온 학교 관행과 교칙들 중에는 나 자신도 이해 못할 것들이 적지 않다. 하물며 어떻게 아이들을 설득시킬 것인가.

왜 학교에서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없는가? 그래, 옷은 그렇다고 치자. 왜 내 머리 모양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가? 그게 내 머리지, 당신 머리인가? 당신 머리를 내가 재단한다면, 당신 기분이 어떻겠는가? 이 학교 교복 입기 싫고 머리 네 마음대로 기르고 싶으면, 다른 학교로 가라고? 누군 여기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가?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았는가.

개인주의는 ‘똘레랑스’를 전제로 한다. 홍세화 씨는 이 개념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 점에 주목한다. ‘내가 남과 다른 점을 인정받으려면, 남이 나와 다른 점부터 인정하라.’ 그리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똘레랑스가 부족한 사회라면,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학교 문화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선생님은 폐휴지 가져올 것을 강요하는가? 왜 선생님은 학급 평균이 나쁘다며 우리를 혼내고 못살게 구는가? 내 성적이 중요한 거지, 학급 성적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학급 성적으로 대학 가는가? 좀더 불평해보자. 선생님은 왜 내가 과제물도 내지 않고 시험도 못 봤다고 혼내시는가? 나를 위해서라고? 거짓말이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하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못살게 하지는 않는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이런 것들은 사실 내가 학창 시절 모두 경험했고, 별 불만 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이다. 하지만 만약, 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본다면, 아이들을 ‘권리와 책임을 지닌 시민의 한 사람’으로 본다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규칙들이다. 외모의 획일화와 집단 성적의 우선시. 학교가 군대인가?

물론 짧은 교단 경험으로도, 이런 교육 책략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이 때론 쉽지 않다. ‘외모의 획일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생의 탈선과 방종은 제일 먼저 복장과 두발에서 탐지된다. 학업에 관심이 없어진 아이들을 다루는 것은 정말이지 고역이다. 학교 안에서 만큼은 학습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복장, 두발을 규제해야 한다.

통제수단으로서의 집단주의적 학교 문화

‘집단 성적의 우선시.’ 이것은 많은 부분 관리자의 편의에 봉사한다. 학교 시책을 잘 시행하기 위해서는 학급별 실적 경쟁을 시키는 것이 최고다. 학급 담임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다. 자기 학급이 1등을 하면 내가 1등한 것처럼, 욕을 먹으면 내가 욕을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아이들을 몰아대는 수밖에.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집단을 우선하는 것이 훌륭한 통제 수단이라는 점이다. 한 학급이 결속력 있는 한 덩어리로 되면, 다루기가 편리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과거에는 어땠는가? 몇몇 친구가 잘못한 일에 반 전체가 기합 받기 일쑤였다. 일일이 잘못한 아이들을 가려내는 일은 얼마나 피곤한가. 전체적으로 혼내면 억울한 아이들이야 있겠지만, 잘못한 녀석은 그만큼 더 미안할 것이고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지.

나는 지금 집단주의적 학교 문화를 질책한다. 내 행동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나의 개성을 죽이려 하는가?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같이 욕을 먹어야 하는가?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개인의 책임의식은 길러질 수 없다. 겉으로는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집단 눈치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규칙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상황만 허용되면 쉽게 어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집단주의에 기인한 ‘하지 말아야 될 것’을 과감하게 ‘해도 되는 것’으로 바꿔야 된다. 학생들의 개성과 자유를 ‘될 수 있는 한’ 인정해주자. 개인주의 문화를 학교에 도입하자.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자기 행동은 자신이 책임질 것’이라는 단서도 함께.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수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학습 활동을 위해 교과 교사가 좌석을 재배열할 수는 있지만, 일렬로 앉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잡담할 의도가 아니라면 수업 시간에 짝지어 앉을 이유가 없다. 모여서 떠드는 것은 쉬는 시간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 옛날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는 일렬로 앉는 공간이 구조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업 중에 자거나, 혼자 다른 짓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과목별 유급 제도의 신중한 검토를 제안한다. 지금 학생들이 졸업장에 조금의 의미라도 두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학력을 그토록 맹신하는 우리 사회에서 졸업장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민족사관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독일인 교사에 의하면, 독일에서는 보통 10`∼15%의 학생이 유급을 당하며, 개중에는 한 과목을 무려 4년 동안 유급당한 친구도 보았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중학교 1학년 교과서조차 제대로 이해 못하는 적지 않은 학생들과 대부분의 운동 선수들. 그들에게 졸업장을 주는 것은 아주 비교육적인 처사다.

학교에서 실내화를 교칙으로 정했다면, 이를 어기는 학생은 엄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다른 학생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청소 당번을 게을리 한 학생, 실내에서 침을 뱉는 학생도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부모님 소환과 징계도 필요하다. 폭력과 절도 등의 일탈 행위 역시 엄하게 교화되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작은 행위라도 아량 없이 처벌되어야 한다.

학교는 학습을 위한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은 부모의 책임 아래 학교를 떠날 수 있어야 하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다시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벌든, 방황을 하든, 관심이 떠나버린 학교 안에서보다는 차라리 밖에서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왜 귀중한 시간을 애정 없는 학교에서 어영부영 보내도록 방치하는가? 우리는 몇 해 전, 뒤늦게 공부에 뛰어들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학 수석을 차지했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저자 장승수 씨를 기억한다. 공부란 그런 것이 아닌가? You can take a horse to the water but you can’t make him drink.

현실 여건에 대한 고려를 떠나서, 나는 개인적으로 담임 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담당 학급 학생들과의 상호 애착이 교직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학생의 생활에 대한 담임의 지나친 개입은 때로 학생의 책임감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교사는 담임보다는 교과지도라는 교사 본연의 업무에 매진해야 하고, 상담 교사 확충과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생활지도 문제를 해결해가야 할 것이다.

무질서한 다양함과 규칙이 똑같이 존중받는 학교

최근 TV에서는 학교 붕괴의 사례로 엉망이 되어버린 교실 수업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었다. 공감이 가는 면도 많지만, 아직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선생님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격의 없이 따라주는 우리 순수한 아이들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예전에 투고했던 글에서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가 한 대학생 독자의 맹렬한 오해를 샀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학교 교육은 노동량이나 시간으로 성과를 잴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당시 나는 교사를 노동자로 본다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한 바 있다. 노동은 효율성을 제일로 친다. 백 마리 착한 양보다 한 마리 죄지은 양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성직자는 과연 효율적인가? 같은 맥락에서 교사를 봐야 한다. 내가 스스로를 노동자로 취급한다면, 나는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려 들지 않을 것이고, 방과 후에 남아 아이들이 좋아할 활동 자료를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많은 선생님들이 생기는 것도 없이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은 교직이 주는 신성함을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재 나는 합법화된 전교조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개인주의 습성상 단체 행동을 즐기지는 않지만,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육개혁의 방향이 교육 현장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에 조그만 힘이라도 더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면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이 제일 관건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한 교실 선진화 장비 도입보다는, 끊임없는 교육 투자로 학급당 학생 수를 계속 감소시키고 아이들에게 인간다운 교육 여건을 제공해주는 것이 더 절실하다. 나는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교직원 화장실에 들어온 학생을 야단칠 수가 없다. 나 자신 학창 시절 내내 대변을 보기 위해 더러운 재래식 학생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므로.

논지를 강조하면서 글을 끝맺고자 한다. 나는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도 되는 것’에 대한 기준이 혼탁한 현실을 우려한다. 규칙은 궁극적으로 집단 구성원의 편리를 위한 것이며, 그래야 호소력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규칙들을 가지고, 학교는 명실공히 규칙 준수의 연습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주의를 도입하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으며, 자기 행동의 결과는 자신이 책임진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우리 학교 문화들을 하나씩 검토해보자. 그러면 분명해질 것이다. ‘해도 되는 것’으로 바뀌어야 될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바뀌어야 될 ‘해도 되는 것’들이. 나, 개인주의자는 무질서한 다양함 속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규칙들이 존중받는 그런 학교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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