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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동아일보}와 어경택 논설실장을 해부한다
{동아일보}와 어경택 논설실장을 해부한다

강준만


{동아일보}와 김대중 정권의 묘한 관계

해부한다? 나는 그간 글의 제목에 ‘해부한다’를 자주 써 왔다. 정중한 표현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게 선정주의적이지 않느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러나 여기선 그걸 논하려는 건 아니다. 이 글의 경우엔 선정주의적이지 않느냐는 질책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해부한다’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되묻겠지만, 내 나름대론 일부러 그 단어를 사용한 작은 뜻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왜 {동아일보}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조선일보}와의 싸움 때문에 전술적으로 그러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그건 아니다. 전혀 다른 이유가 있다. {동아일보} 논객들은 해부하기가 참 어렵다. 내 나름대로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둔 적도 있다. 지금 이 글의 주인공인 어경택 논설실장의 경우에도 그랬었다. 이제 곧 아시게 되겠지만, 이 글엔 ‘해부’라는 단어를 쓸 만한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해부는 해부다. 무슨 말인가? 그게 바로 {동아일보}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논객들은 자기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튈 만한’ 주장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해부를 하겠다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만저만 싱거운 게 아니다. 물론 최근 좀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조선일보}와의 경쟁을 의식하면서 그게 신문 장사하는 데엔 약점이라는 걸 {동아일보}도 깨달은 것 같다. 어찌됐건, 이 글의 제목을 <{동아일보} 어경택 논설실장을 해부한다>가 아니라 <{동아일보}와 어경택 논설실장을 해부한다>로 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동아일보}와 김대중 정권간의 관계는 참 묘하다. 그건 한 편의 박사학위 논문감도 되고 한 편의 소설감도 될 만큼 그 관계가 매우 복잡해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신문들 가운데 장사를 가장 잘 한다곤 하지만 그 자체로서 이념적·정치적 색깔이 뚜렷한 일종의 정치 집단이다. 물론 {동아일보}도 어떤 면에선 못 말리는 수구성과 보수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조선일보}처럼 심하지는 않다. 정치 집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대표적인 논객과 간부급들의 성향이 다양해 {조선일보}처럼 일사불란한 정치적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 다소 막연한 이미지이긴 하지만, {조선일보} 사람들은 제식훈련을 하는 해병대 훈련병을 연상시키는 반면 {동아일보} 사람들은 좀 느긋한 예비군을 연상시킨다. 군대와는 달라야 할 신문의 특수성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한 신문이다.

{조선일보}와의 관계가 문제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다. {동아일보}는 기업으로서 라이벌인 {조선일보}와의 싸움에서 이기거나 적어도 대등한 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게다가 그 목표는 역사적으로 오랜 라이벌 관계에서 비롯된 정서적인 것이기도 해서 경제적인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목표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동아일보}가 김대중 정권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는 별 의미가 없다. 말했잖은가. {동아일보}는 정치 집단이 아니라고 말이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의 관계라고 하는 관점에서 김대중 정권을 보고 있다. 이게 바로 정답이다. 그래서 {동아일보}와 김대중 정권간의 관계가 참 묘하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동아일보}는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시도한 {조선일보}와는 달리 중립을 지켰다. 혹자는 김대중 쪽으로 기울었던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각은 한국 언론의 김대중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근거로 해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찌됐건 내가 보기엔 중립이었다. 그러니 김대중 정권으로선 {동아일보}에 대해 비교적 호감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신문 장사가 정권의 호감만으로 되는 건 아니었으니 그게 바로 문제였다.

만약 김 정권이 승승장구해 계속 잘 나갔으면 {동아일보}는 과거 {조선일보}가 여당지 노릇하면서 재미를 보았던 것과 같은 길을 걸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김 정권이 죽을 쑤면서 인기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조선일보}는 그걸 신문 장사에 최대한 이용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조선일보}보다 더 세게 김 정권을 두들겨 패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한동안 김 정권과 {동아일보} 사이에 뜨거운 전운(`戰`雲`)을 감돌게 만든 그런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 {기자협회보} 1999년 6월 28일자, {내일신문} 1999년 7월 14일자, {미디어오늘} 1999년 7월 15일자 보도를 차례로 인용해 보자.

{동아일보}와 김대중 정권의 갈등

동아일보가 ‘이현락 주필 땅투기 의혹’과 관련, 여권에 강한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가운데 이번에는 김병관 회장이 직접 국민회의에 불만을 표시했다. 김 회장은 22일 국민회의 이영일 대변인을 만나 이 주필과 또다른 사내 인사가 관련된 내용이 정보지에 유포되는 것을 여권의 언론 공작으로 규정하고 “좌시하지 않겠다”고 언성을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 대변인은 ‘관련 없음’을 강조하며 오히려 동아일보 논조에 대한 여권의 불만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이에 앞서 “출처로 짐작되는 기관에 항의문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동아일보}와 국가정보원의 한판 대결이 식을 줄 모른다. 동아 측이 제기한 국정원 ‘언론단’과 ‘정치단’ 문제는 이제 야당의 싸움 카드가 됐다. 야당은 진상을 밝히라며 목청을 계속 높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한 당국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동아 측 공세의 배경은 국정원의 ‘{동아일보} 대출불가’ 보고서에 대한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아 측은 “자금난도 없고, 공작정치를 막기 위해 진실보도를 한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언론계와 정치권에서도 언론단 등 국정원 구조조정의 사실 여부보다 그 싸움의 배경에 더 관심을 갖는 눈치다. …`… 고위 간부인 ‘이현락 주필 부동산투기 의혹’도 {동아일보}를 자극하는 내용이다. 이 회사 사회부 모 기자는 “최근 정부 비판 논조가 강해진 것은 이 주필 관련 내용이 공개된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 기자는 “자료 출처를 국세청과 국정원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동아 충돌의 또다른 배경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현락 주필의 땅투기 의혹, 이도성 정치부장의 세풍자금 수수 사실 등이 본지를 통해 공개돼 홍역을 앓은 동아일보가 사내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전격적으로 임금 협상을 타결짓는가 하면 김병관 회장이 ‘일치단결’을 호소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 사내 추스르기에 나선 것. 그러나 동아일보의 이같은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론계에서는 제기된 의혹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동아 노사는 지난 9일 첫 번째 임금협상 자리에서 전격적으로 임금협상안에 합의했다. 당초 사측이 상여금 150% 인상안을 제시해 난항이 예상됐지만 이날 회의 6시간 만에 사측이 전격적으로 상여금 400% 인상에 합의한 것. 이를 두고 노조는 일부 신문사가 올해 임금협상에서 IMF 이전 임금수준 회복에 합의한 데 대해 사측이 부담을 느낀 결과로 분석했다. 그러나 언론계 일각에서는 같은 날 김 회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단독회동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하기도. 즉 김 회장이 김 대통령과 만나 모종의 언질을 받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과 김 회장이 만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임금협상안 조인식이 있던 지난 12일 사내 게시판과 통신망을 통해 ‘친애하는 동아가족 여러분’ 이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이 담화문에서 임금협상을 ‘단합과 화합의 정신’으로 타결지은 데 대해 ‘치하’하며 동아 가족의 일치단결을 호소했다.

김 회장은 담화문에서 “일치단결은 바로 동아의 정신이며 어려울 때마다 되풀이해서 발휘되는 동아의 역량”이라고 밝힌 뒤 최근의 ‘악성소문’에 대해 언급했다. 김 회장은 “최근 우리는 밖에서 나돌고 있는 몇 가지 악성소문에 대해 유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이런 얘기들이 …`… 본보에 대한 조직적 음해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이런 외풍에 맞서 칼같은 비판정신으로 굳게 무장하여 정론지로서의 동아일보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다져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회장은 말미에 “모두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엄격히 관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완곡한 경고의 말도 덧붙였다.

‘옛 명성 회복’을 위한 몸부림

결국 {동아일보}와 김 정권간의 갈등은 흐지부지되었고, {동아일보}는 아닌게아니라 “칼같은 비판정신으로 굳게 무장”하면서 점점 상승세를 유지해갔다. {중앙일보}와 김대중 정권간의 전쟁도 {동아일보}의 상승세에 한 몫을 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찌됐건, {미디어오늘} 1999년 12월 9일자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신문업계 1위를 탈환하라!’ 동아일보에 지상 과제가 떨어졌다. 새천년을 맞아 사옥 이전과 창사 80주년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동아가 주요 출입처 취재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대적인 지면 개편을 예고하는 등 신문업계 1위를 향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동아는 지난 10월 시사저널이 조사한 ‘영향력 있는 언론사’ 순위에서 신문업계에선 조선에 이어 2위를 기록하자, 주요 출입처의 공보관 등 취재원들에게 ‘동아와 조선의 지면을 비교, 평가해 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때 ‘조선은 주장이 선명하며 아프게 비판한다’, ‘기사량이 적절해 편집이 세련됐다’, ‘칼럼니스트가 맘에 들고 자극적인 내용도 적절하다’, ‘엘리트 공무원들이 밤새 만든 보고서 같다’는 등의 대답을 얻었다는 것. …… 편집국의 한 기자는 “올 하반기 들어 동아일보에 대한 평판이 좋아졌다”며 “회사측이 내친김에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옛 명성’이 뭔가? 역시 화끈한 비판이다. 김대중 정권은 옛 정권들과 다른데 그래도 되겠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김 정권 스스로 신문들이 화끈하게 깔 만한 건수를 무진장 제공해 주는 데다, 김 정권 탄생에 표를 던진 사람들보다는 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동아일보}의 ‘옛 명성 회복’은 1999년 12월 18일자 1면에서도 화끈하게 드러났다. 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과거 기득권세력의 저항이 심하며 특히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자, 다른 신문들은 엉거주춤 하고 있는 통에 {동아일보}는 1면 사설로 치고 나간 것이다. 사설 제목이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충언(`忠`言`)’>이다. 그 핵심 내용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개혁에는 으레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나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저항을 이겨내는 것은 도덕성에 기반한 정치력이고 국민의 신뢰가 그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은 먼저 현정권의 정치력과 도덕적 신뢰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하물며 정치가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국가 최고지도자에 집권여당 총재인 김 대통령의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 대통령은 “언론이 옷로비만 갖고 7, 8개월간 쓰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 사건은 애초 대통령 측근이 사실대로 보고를 했었더라면, 또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만 했었더라도 진작에 끝났을 사건이었다. 애초부터 권력핵심부에서 진실이 조작 은폐되어 특검수사를 거쳐서야 진상이 밝혀진 이 사건 보도를 언론의 ‘개혁 발목잡기’로 볼 수 있는가.

옳소! 지당하신 말씀이다. 이 지적에 100% 동의한다. 이 지적만 놓고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 묘미가 있다. 김 정권에 대한 {동아일보}의 호된 비판 하나하나는 흠잡을 게 거의 없다. 건수를 잘 잡아 명중시키는 데야 건수를 제공한 김 정권 탓을 해야지 언론 탓을 할 일은 아닐 게다. 그러나 비판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체의 흐름과 방향을 살펴보면 ‘이거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그런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무조건 비판하고 반대만 하면 됐다. 물론 그 비판과 반대는 정당하다. 문제는 바로 그런 형식의 비판이 비단 {동아일보} 뿐만 아니라 유력 일간지들의 주요 메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말이다.

{동아일보}의 ‘옛 명성 회복’을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장의 법칙’인 걸 어찌하랴. 지금 ‘눈덩이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속도의 법칙’이라고 해도 좋다. 상승세면 상승세로 힘이 몰리고 하락세면 하락세로 힘이 몰리는 법칙 말이다. 현재 김 정권은 바로 그 함정에 빠져 있다. 물론 스스로 판 함정이다. 그 함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는 머리 좋은 김 정권 수뇌부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계속 진도를 나가도록 하자.

어경택은 누구인가?

어경택 논설실장 정말 오래 기다리셨다. “칼같은 비판정신으로 굳게 무장”한 {동아일보}의 새로운 면모는 최근 어 실장의 칼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대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그의 약력부터 소개하겠다.

어경택 논설실장은 1945년 12월 18일 충북 청원 출생으로 68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한일보} 사회부 기자, {경향신문} 취재부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사회부 차장·문화부장(1985)·생활부장(1989)·기획특집부장(1990)·사회 1부장(1993)·생활부장(1994)·편집국 부국장(1994)·출판국장(1997) 등을 거쳤다.

어 실장은 매주 토요일 {동아일보} A6면에 ‘어경택 칼럼’을 쓰고 있는데, 주로 정치 칼럼들이다. 그는 1999년 10월 9일자에 쓴 <물컵 미스테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김대중 정권에 대해 다음와 같은 고언을 했다.

“무엇보다 개혁을 외치는 권력핵심부터 도덕 불감증에서 깨어나야 한다. …`… 개혁은 자기 혁신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명확히 밝힐 것은 밝히고 책임 물을 것은 묻고 넘어가야 남에게 개혁을 요구할 수 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건수를 잘 잡아 제대로 명중시킨 탁월한 비판으론 1999년 4월 3일자에 쓴 <개혁 허무주의>라는 제목의 칼럼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어 실장이 이 칼럼의 앞부분에서 한 다음과 같은 비판이 오늘날 김 정권이 비틀거리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야 산다!-를 적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의지’는 살아있는가.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의지 실종의 예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정부조직개편이나 장관경질인선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개혁’을 지향하는 정부여당의 처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가까운 예로는 3·30 재보선 과정에서 보여준 반개혁적인 행태다.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선거 13일 전인 지난달 17일 청와대회담에서 ‘정치개혁’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와 함께 본격화된 선거운동 과정은 향응 및 금품제공, 불법사랑방좌담회, 관권개입, 흑색선전, 폭력 등 갖가지 부정과 불법 타락으로 얼룩졌다. 만약 총재들의 ‘개혁합의’가 빈말이 아니었다면 선거판이 이렇게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야 모두의 책임이긴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여(`與`)의 책임이 더 크다.”

DJP 약속 위반에 대한 분노

그런 지당하신 말씀 이외에, ‘어경택 칼럼’은 내각제 개헌 문제에 대해 비교적 깊은 관심을 쏟아 왔으며, 이른바 DJP의 약속 위반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해 왔다. 어찌나 집요한지 ‘분노’라 해도 좋을 정도다. 몇 가지 살펴볼까? 1999년 4월 17일자에 실린 <9월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연내 개헌공약을 어기게 될 경우 DJP는 그 이유를 뭐라고 둘러댈까. 흔히 쓰이는 ‘상황변경론’을 동원할까. 그렇다면 무슨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할까. 이와 관련, 김 대통령이 엊그제 부산 MBC와의 회견에서 내각제 문제는 양당의 약속 외에 ‘국민여론’ ‘국가적 필요성’을 감안해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는 기사는 시선을 멈추게 한다. 정치인이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 대체로 권력을 더 오래, 더 강하게 잡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정치사(`史`)가 입증하는 ‘비극’이다.”

1999년 7월 24일자에 실린 <`DJP 2인극이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보통사람들의 대화 기법의 형식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분들(DJP)은 웬만한 거짓말을 하고서는 떨 사람들이 아니지. 그분들이 떨고 있었다면 국민에게 벌써 정중하게 고개 숙여 사죄했을 텐데. 뒤늦게 김 대통령이 ‘유감’을 표하면서 경제사정과 남북관계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두 가지 이유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3선개헌과 10월유신을 선포할 때도 내걸었던 메뉴야. 김 대통령이 내건 두 가지가 ‘사정변경’의 충분한 사유가 되기는 되는 건가. 이미 물 건너간 얘기 갖고 왜 꼬치꼬치 따지고 드나. 여하튼 내각제 짐을 벗었으니 두 분은 아주 홀가분하겠군. 그러나 더 큰 짐을 지게 됐잖은가. 불신의 짐이지. 최고의 정치지도자가 신뢰를 잃는 것, 도덕적 기반에 큰 흠을 남기게 된 것처럼 큰 짐이 어디있겠나.”

1999년 8월 7일자에 실린 <민심이 천심이라면서>라는 제목의 칼럼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약속을 어기게 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고 성의 있는 설명을 했다는 걸 소상히 지적하면서 다시금 DJP의 약속 위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DJP(김대중`-`김종필)는 대선공약인 ‘99년말까지 내각제 개헌 완료’를 지키지 못하게 됐다면서도 사과다운 사과를 했는가. 하지 않았다. JP는 기자회견(7월 21일)에서 연내개헌불가 이유라며 몇 가지를 얘기했지만 ‘사과’는 없었다. DJ는 그 다음날 지방나들이를 하던 중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만 했지 ‘사과’는 안 했다. 공약으로 내걸 때는 ‘합의문에 사인하고 칵테일 마시고 기념 사진까지 찍더니…’(자민련 이원범 의원의 국회발언) 그 공약을 깨면서는 겨우 ‘유감’ 표명 정도다. 공약의 성격은 다르나 그 비중은 노태우 후보의 ‘중간평가 실시’나 김영삼 후보의 ‘쌀시장 개방 불가’ 공약만 못하지 않은 게 내각제 개헌 공약 아닌가. 그렇다면 ‘국민에게 드리는 사과의 말씀’ 정도의 담화문은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어경택 칼럼’이 내각제 개헌 문제에 대해 쏟는 깊은 관심은 심지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한 비판에서까지 나타났다. 1999년 5월 1일자에 실린 <이회창 총재, 원칙주의자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은 내각제 개헌 문제에 대한 이 총재의 불투명한 태도를 지적하면서 야유인지 아니면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어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와대측에서는 한 달여 전 총재회담에서 두 총재가 나눈 얘기까지 까발리면서 “이총재가 ‘꼼수’로 여당을 교란하려한다”고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투표 결과 승복 약속을 헌신짝 내버리듯 깨버린 분은 ‘야당 태도는 기회주의적’이라며 정직하게 나가야 한다고 충고하지 않습니까. 신의를 저버리고 뒤통수를 치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야 3김정치의 구태라고 치부해버린다지만 어떻게 만인 앞에서 되풀이한 약속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깨버린 후배로부터 ‘정직하게…’ 운운하는 충고까지 들어야 합니까. 원칙을 존중하는 법치주의자, 3김정치를 청산하고 지역주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깨끗한 지도자,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정의감으로 무장한 ‘새시대의 정치인’이라는 믿음 때문에, 1천만명에 가까운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이 총재인데 말입니다. 두 분(DJP)의 내각제 개헌 미봉 때문에 흐려진 정국을 더욱 흐리지 않기 위해서도 이 총재께서 먼저 태도를 분명히 밝히고 DJP를 엄하게 추궁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큰 정치’를 앞장서서 실천하기 바랍니다.

사담(`私`談`)을 칼럼으로 써도 되나?

정말 집요하다. 그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할까? 모르겠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어경택 칼럼’은 인터뷰에 근거한 독특한 형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1999년 5월 29일자에 쓴 <‘정치인은 현금이 있어야 돼요’>라는 제목의 칼럼과 1999년 9월 18일자에 쓴 <어느 일선 검사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일선 검사의 고백>은 검사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정치인은 현금이 있어야 돼요’>는 공식 인터뷰가 아니라 유종근 전북지사의 서울관사 3천5백만 원 도난 사건과 관련하여 유 지사와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칼럼에 게재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야기의 주된 내용(정치를 하려면 1억 원 안팎의 현금이 있어야 한다)으로 인한 사회적 파문도 컸지만, 이 칼럼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그 취재 방법이 언론 윤리에 부합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문제가 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전주 관사에는 현금을 얼마나 갖고 있나.
“정치를 하려면 1억 원 안팎을 현금으로 운용해야 한다. 보통 그 정도 갖고 있었는데 작년 말에는 선관위에서 뒤늦게 정산해준 6·4 지방선거 기탁금 및 공영비용 환급금이 많아서 2억 원 정도 됐다. 이중에는 동생 등에게 꾸어준 채권도 포함돼 있다.”

{동아일보} 내부 필진의 칼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어경택 칼럼’은 {조선일보} 논객들의 칼럼과는 달리 비교적 강한 주장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칼럼을 통해 어경택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성향을 간파하기는 어렵다(물론 최근의 변화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다만 어떤 면에선 미루어 짐작해볼 수는 있다. 1999년 6월 26일자에 실린 <‘달빛정책’>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김대중 정권이 추진하는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은 다소의 과장과 단순화를 범하고 있어 어경택이 햇볕정책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시사해 주고 있다.

“어느새 두 패로 갈라져 이것을 지지하는 사람은 진보적인 통일론자로, 반대하는 사람은 냉전적 사고의 틀에 갇힌 보수론자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또 햇볕론자는 개혁적인 인물로, 반(反)햇볕론자는 반개혁적인 성향의 인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 햇볕정책의 방향이 옳으냐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문제는 방향이 옳다고 해서 그것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식의 교조적인 태도다. …`… 자식이 귀엽다고 무슨 떼를 쓰더라도 다 받아주고 매일 맛있는 음식만 먹인다고 해서 우등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회초리를 드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종아리를 때린다고 해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부인이 입은 옷은?’

이제 최근 이야기를 해 보자. 어 실장이 99년 11, 12월 들어 쓴 칼럼들은 매우 화끈하다. 물론 그 화끈함은 {조선일보} 논객들의 화끈함과는 좀 다르다. 후자(後者)의 경우 오만한 독선과 끈적지근한 음모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반면, 어 실장의 경우 적절한 내용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철저함과 뚝심을 보여주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고 할까. 몇 개만 살펴보자.
어 실장은 1999년 11월 6일자에 쓴 <“이젠 정치 그만 두시지요”>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른바 ‘언론 문건’ 사건으로 망신살이 뻗친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를 향해 이젠 정치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밝힌다.

어 실장은 99년 11월 20일자에 쓴 <대통령부터 바로 서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검찰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검찰이 바로 서려면 대통령이 바로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99년 12월 4일자에 쓴 <대통령부인이 입은 옷은?>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더욱 화끈하다. 고급 옷 로비 사건을 다룬 이 칼럼은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로열 패밀리가 국민과 친해지려면 보다 투명하고 솔직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알고 싶다. 대통령 부인께서는 그 국회의원의 말대로 20년간 남대문시장 옷만 입었는지,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옷은 몇 벌이나 되는지, 문제의 라스포사에서 산 옷은 없는지, 있다면 몇 벌이나 샀는지, 라스포사 것 이외의 고급옷은 어느 어느 디자이너의 것을 구입했는지, 특히 이번 필리핀 방문 때 입고 간 옷은 참 좋아보이던데 어디서 만든 것인지. …`… 무슨 옷을 입느냐는 것이 로비의 본질과는 무관하겠으나 이런 것들을 소상히 밝힐 때 이 여사와 청와대를 감싸고 도는 갖가지 소문들은 사라지고 국민과 청와대의 간격도 좁혀질 것이다.”

대단하다. 과연 그렇게까지 소상히 밝혀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좀 들긴 하지만, 이 칼럼에선 “칼같은 비판정신으로 굳게 무장”하겠다는 어 실장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동아일보}도 일부 간부들의 비리 의혹에 대해 그렇게 칼같이 밝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 실장의 칼럼은 인상적이었다.

어 실장이 1999년 12월 18일자에 쓴 <누구 탓인가>라는 제목의 칼럼도 화끈하지만, 아무래도 압권은 <대통령부인이 입은 옷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동아일보}와 어경택 실장의 “옛 명성 회복” 전략에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말씀은 이 글의 결론 삼아 드려야겠다.

{동아일보}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앞서 {조선일보}는 일종의 정치 집단이라는 말을 하면서 {동아일보}가 그렇지 않은 걸 칭찬한 바 있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경우엔 또 그게 너무 심해서 문제다. 이건 김대중 정권과 관련하여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를 꿰뚫는 중요한 이야기이니 천천히 잘 들어 보시기 바란다.

‘상술(`商`術`)로서의 비판’엔 문제가 있다. ‘정치 집단’화 되는 건 곤란하지만, 그 어떤 가치는 추구해야 한다. {조선일보}의 경우엔 무조건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는 그 목표엔 동의할 수 없기에 {조선일보}를 비판한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도대체 무얼 추구하는가?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보호하는 건 아직까지 한국에선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그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얼마나 갈까? ‘밀레니엄’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건 한번 크게, 멀리 내다보는 생각을 가져보라는 기회이다. 지금 당장은 {조선일보}가 부럽게 생각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나중에 {조선일보}가 그걸 깨닫고 변신할 때에 {동아일보}는 그때 가서 또 {조선일보}의 뒤를 따를 것인가?

{동아일보}는 언론으로서의 분수에 맞는 선에서 나름대로 한국 사회 개혁을 위한 에이젠다를 만들고 그에 따라 수시로 기존의 보도와 논평이 전반적으로 옳은 흐름과 방향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분수에 맞는 선’이라 함은 {조선일보}처럼 ‘대통령 만들기’를 시도하는 오만방자한 짓은 저지르지 말라는 뜻이다. 나라야 어찌 되건 말건 못난 정권의 헛점만을 파고들어 ‘비판’이야말로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건 아닐 망정 {동아일보}가 제1면에 창간정신으로 내건 구호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나는 김 정권에 대한 가혹한 비판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문제는 방향과 건수다. 사실 이런 말은 굳이 할 필요도 없다. {동아일보}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조선일보}와의 경쟁 전략에 있다. 양쪽 모두 논조나 주장과 같은 언론 상품을 중심으로 한 정면 대결은 피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동아일보}가 더 피하는 것 같다.

{동아일보}가 그런 소심함을 버리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옛 명성의 회복”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에 비해 훨씬 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왜 그걸 썩히는 쪽으로 소심하게 구는지 이만저만 안타까운 게 아니다. 정녕 시대를 선도할 생각이 있다면 용기를 가져야 한다. 김 정권의 스캔들만 물고 늘어질 게 아니라 진정한 개혁의 입장에서 김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동아일보}의 리더십을 목격하는 건 영영 불가능한 건가? {동아일보}의 임직원들은 유신 시절 동아광고사태 때 독자들이 {동아일보}에게 보낸 격려 광고를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란다.

공론장의 연쇄반응 효과에 주목하자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도 한 가지 유념하셔야 할 게 있다. “강준만이가 언론을 전공한답시고 너무 조선이니 동아니 하는 신문들의 중요성을 뻥튀기하는 거 아냐?” 혹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는가? 없으리라 믿지만, 노파심에서 다시 한말씀 드린다.

우리는 ‘연쇄 반응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지식인 집단이 어떻고 시민사회가 어떻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모래알들의 느슨한 집합에 불과하다. 각 모래알들은 자기 살 궁리 하기에 바쁘다.

한국처럼 1등에 집착하는 나라에서는 1등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등 자체의 힘이 대단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1등이 미치는 영향이다. 한국 지식인들이 신문에서 칼럼 쓰면서 하는 소리와 자기네들끼리 술집에서 떠드는 소리는 다르다. 물론 다른 게 당연하다. 우리의 경우 그 다른 정도가 너무 크다는 데에 있다. 지식인들은 적정 수위에서 ‘자기 검열’을 한다. 그 적정 수위는 누가 결정하는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그 수많은 모래알들로 그야말로 모래성을 쌓을 수도 있고 63 빌딩을 지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 검열’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의 언론 비판을 그런 관점에서 다시 이해해 보시기 바란다.

나는 {조선일보}가 한국 사회의 주요 에이젠다를 설정하고 지식인들의 발언 수위를 결정하는 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그대로 두고선 절대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개혁관인 것이다.

이건 한국 지식인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서양의 석학 한 트럭을 실어와도 만들어낼 수 없는 탁견(`卓`見`)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식계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왜? 각 모래알들은 자기 살 길 찾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언론은 자신의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젖줄과도 같은데 왜 언론을 건드린단 말인가? 이게 한국 대다수 지식인들의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게 억울하냐고? 아니 전혀 억울하지 않다. 독자들께서라도 그 점은 제대로 아시면 좋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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