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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조 흡
제 목 텔레비전의 경쟁전략은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뿐이다
텔레비전의 경쟁전략은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뿐이다

조흡 │문화연구가│

시청자가 외면한 연말특집

연말년시를 보내면서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아마 ‘21세기’ 아니면 ‘밀레니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소중하고 의미가 깊다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그들이 경험한 것은 고작 몇몇 어린 가수들의 립싱크뿐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봐도 눈에 띄는 것은 서태후를 닮은 ‘와와’대는 낭자와, ‘예예’탄(`彈`)을 쏘아대는 황야의 소녀 총잡이들, 가슴에 두 팔 얹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유치부 무용수들, 그리고 소리만 들으면 틀림없이 여학생일 것 같은 청년가수 뿐이었으니 말이다.

역사적 순간을 텔레비전 채널 하나도 아니고 세 개의 다른 채널에서 모두 똑같은 얼굴의 가수들이 독점했다는 사실은 많은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방금 이 채널에서 보았던 가수가 무대의상만 바꿔 입고 다른 채널에서 나타나 같은 노래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솜씨에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지겹다는 생각이 앞선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달라진 무대 환경에 맞춰 노래의 분위기도 약간은 달라질 수 있을 터인데도 립싱크로 때우다 보니 그 노래는 단지 기계소리로만 들릴 뿐 더 이상 감칠 맛 나는 노래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방송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도무지 서로 간의 차별화가 없이 거의 동일한 인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설정하다보니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어느 것을 보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마치 방송3사가 ‘중요한’ 축구 게임을 모두 중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미세한 차이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방송사를 대표하는 각기 다른 사회자들이 나와서 조금은 다르게 치장한 무대에서 조금씩 다르게 진행하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기도 했다. 뽕짝가수와 젊은 가수를 구분해 상을 주는 트릭도 기발한 아이디어임에 틀림없었다. 어느 방송사에선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수’를 뽑느라 무진 애를 쓴 흔적도 보였다.

문제는 아무리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런 프로그램들을 방송사 모두가 제작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그것이 전파낭비 아니었느냔 말이다. 이는 또 방송사들의 상상력 부재를 여실히 증명하는 대목이 아니냐는 것이다. 연말만 되면 가수들과 연예인들을 모아 놓고 즐거움을 강요하는 것이 그저 관행에만 의존하는 게으른 제작 태도가 아니었느냔 얘기다. 한편으로는 21세기를 맞아 틀에 벗어난 새로운 생각의 중요성을 부르짖으면서 또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구태에 젖은 제작 관행을 고집하는 방송의 이중성이 잘못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프로그램의 대표성에 있다. 그것이 하나같이 시청자들을 온전히 대표하지 못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빗발치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의식해 청소년용 가수와 노장층을 위한 가수로 나눈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래서 뽑힌 태진아, 송대관, 설운도 등의 뽕짝가수들이 도대체 누구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분명 나를 위한 가수들이 아니었다. 나는 한번도 그들의 노래를 3초 이상 들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20세기의 가수’로 뽑힌 조용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도대체 그런 평가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 내가 한때 좋아했고 그들 노래를 다시 들으면 나의 오장육부를 여전히 뒤흔들어 놓을 가수들은 어떤 연말 가요축제에도 참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청자들의 취향이 워낙 다양해 모두를 만족시키기가 불가능하다고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청소년 가수들과 뽕짝가수들만 있는 것이 아닐진대 어떻게 그들이 한국의 시청자들을 대충이나마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연말에야말로 묵은 백 년을 보내면서 한국의 가요사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볼 절호의 찬스였는데 이를 살리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10대 가수와 가요왕 뽑기만을 기획한 방송사들의 안이한 제작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차리리 동원 가능한 역전의 용사들과 당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을 모아 놓고 노래 대결을 별였더라면 세기와 밀레니엄이 바뀌는 시점에서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가요가 어떻게 변했는지, 어떤 점이 잘 되고 또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조감할 수 있을, 또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공감했을 그런 프로그램 말이다.

대안 프로그램을 제시하라

만약 이런 연중행사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면, 그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시간의 변화를 나타내는 일종의 축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방송사에서는 바로 그렇게 주장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해 온 가수왕 뽑기가 이제는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져 연말행사의 일부로 자리잡았다고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특별 프로그램들은 연말이 되면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것이라기보다 채널을 돌리다보면 저절로 화면에 나타나는 것쯤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 저기서 하는 ‘똑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시청자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잘못됐다는 말이다.

이는 한국 방송이 아직 대안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채널 간의 특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프로그램 제작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방송사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을 위해서 조금도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방송사로서는 시청률을 세 방송사가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에 손해고, 시청자들에게는 프로그램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불공정한 일이 되는 것이다. 방송사와 시청자에게 서로 좋을 선택을 저버리고 관행에만 매달리고 있다면 이는 또 국가적 낭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구태는 하루빨리 폐기돼야 마땅할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전략을 생각해 볼 때다.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 대안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 방송에서는 방송사간 경쟁은 서로 치열하게 하면서도 그 경쟁이 주로 같은 장르의 프로그램만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일이다. 연속극은 연속극으로 맞서고, 토크 쇼는 토크 쇼로 대치하는 소모적인 경쟁이 난무할 뿐 대안 프로그램 전략은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다.

우선 방송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전략은 가능하면 중복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연속극을 내보내고, 주요 뉴스를 9시에 방송하며(SBS가 8시로 차별화를 기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아울러 KBS나 MBC 중 하나가 뉴스를 10시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또 아침시간에 토크 쇼를 할당할 것이 아니라 한 방송사에서 뉴스를 하면 다른 방송사에서는 드라마와 토크 쇼를, 또 어느 채널에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면 다른 곳에서는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을 이런 식으로 방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방송사들이, 특히 공영 방송에서 지켜야 할 원칙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서 조금 구체적으로 대안 프로그램 전략을 살펴보면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잘 나가는 새로운 경쟁국 프로그램에 맞서 최근에 인기 있었던 국산영화를 방영해 물타기 작전을 시도할 수 있고(국산영화를 연말연시에만 방영하라는 법은 없다), 시청률 높은 경쟁사 주말 연속극의 인기의 맥을 끊기 위해 2시간짜리 TV단막극으로 맞서는 방법도 있으며, 무엇보다 ‘개그 콘서트’같은 전혀 시도해보지 않았던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청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 프로그램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방송사들이 지금도 경쟁사 프로그램을 의식해 방영시간을 조절하는 등 소극적 의미의 대안 프로그램 작전을 펼치고 있으나 이제는 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의 대안책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스케줄링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런 점에서 인천TV는 기존 방송3사와 비교해 보면 훨씬 앞서가는 방송사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빅 3와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과감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 내부사정이 시청자들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를 빨리 파악케 했고 또 이를 꾸준히 프로그램에 반영시키는 인천TV의 전략이 돋보인다는 얘기다.

거시적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자

대안 프로그램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방송사의 이익과 시청자의 선택권을 늘려준다는 의미로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는 또 그런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보다 복잡하고 거시적인 한국 방송문화의 사활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방송사들이 대안 프로그램 전략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직접적으로는 프로그램 다양화를 꾀할 수 있고, 간접적으로는 한국 방송 소프트웨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그램 개발과 대안 프로그램의 설정은 시청률을 높이고 시청자들을 두루 만족시켜주는 효과 이외에 방송 소프트웨어의 확보라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큰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텔레비전 채널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날 시점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실제로 한국의 케이블 TV가 요즘과 같이 침체에 놓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새롭게 태어난 채널을 채워줄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원인이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방송 시간을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 프로그램으로 유지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고, 그렇지 않아도 방송국을 세우느라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던 케이블 회사들이 외국 프로그램이나마 많이 들여올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실정이 이럴진대 ‘공짜’ TV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케이블을 굳이 돈 내고 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몰아닥친 경제위기로 케이블 가입자 확보가 더욱 어렵게 되었으니 케이블 TV가 제대로 성장할 리가 없었다.

이제 위성방송이 코앞에 다가온 현실이 되었고, 또다시 케이블 채널보다 5배 이상의 위성채널이 확보된 상태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도 역시 늘어난 채널을 채워줄 소프트웨어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정보·통신 분야의 한국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고, 머잖아 어떤 형식으로든지 한국 방송 시장의 외국자본 침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만약 외국회사가 한국의 위성채널을 확보한다면, 그것은 곧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의 홍수를 의미한다. 이는 또 한국의 영화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가 고스란히 위성방송으로 무대를 옮겨 재현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한국 방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곧 밀려올, 보다 정확하게는 이미 만연한, 헐리우드 프로그램과 맞설 수 있는 한국 프로그램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충실하게 개발할 수 있느냐 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지난 수 년 동안 한국 방송계를 떠나지 않았던 스캔들 중 하나가 표절시비였던 점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한국 방송이 외국 프로그램을 표절했다는 사실은 진정한 의미의 대안 프로그램 개발에 실패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결국 한국 방송이 외국 프로그램에 종속된 셈인 것이다.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대안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할 때다. 우선 방송에서 잘 된 국산 영화를 매 주마다 정기적으로 방송해 주어야 한다. 수개월 동안 엿가락 늘리듯 질질 끌기만 하는 일일 연속극 대신에 2시간 만에 끝나는 단막극을 정기 프로그램화 해야 헐리우드의 프로그램과 경쟁할 수 있다. 1시간짜리 독서 토론회 프로그램을 프라임 타임에 할당해야 된다. 아마추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콘테스트를 매주 열어야 한다. 60년대 70년대 유행했던 가수들의 옛노래와 신곡 발표회를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에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렇게 대안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방송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문화산업도 함께 발전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방송사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안 프로그램을 모두 방송사가 제작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독립 제작소와 신디케이션 제도의 확보는 프로그램 다양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조건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또 늘어나는 위성채널의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에서만이 방송의 프로그램을 다양화 할 수 있고, 주변 문화산업을 활성화시키며, 밀려오는 헐리우드의 공세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요 시장에서 교훈을 얻자

얼핏 생각해 보면 한국 프로그램이 헐리우드의 막강한 물량공세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인 듯싶다. 실제로 이 지구상에 헐리우드의 독주를 막을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방송 프로그램이 되었든, 영화든, 음악이든 상관없이 헐리우드는 연예오락물의 메카인 것이다. 세계의 모든 문화상품은 헐리우드가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헐리우드 산업의 특징은 출판, 음반,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산업을 거대 기업이 모두 관여하고 있어 경쟁력이 뛰어나며, 따라서 세계 문화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타임(Time) 잡지회사는 CNN과 HBO라는 케이블 방송사뿐만 아니라 워너 브라더스라는 영화제작소와 음반회사와 출판사를 소유하고 있다. 호주 출신의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뉴스 콥(News Corp)이라는 그룹 또한 방송사, 신문사, 출판사, 영화제작소 등을 동시에 운영하는 미디어 재벌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미디어 제국을 이루고 있는 헐리우드에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을 이미 제작했고 지금도 제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경쟁력을 당해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헐리우드의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바이어컴, 유니버설 등의 메이저 회사들이 2000년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일 수입은 헐리우드 전체 수입의 60∼70%나 차지하는 막대한 양이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해외 시장이 중요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미디어 산업의 확산 또한 이들 헐리우드 거대 기업들이 더욱 더 활개칠 여건을 조성해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미디어와 연예부분의 발달은 GDP 성장 속도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늘어나는 미디어 시장은 헐리우드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축복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문화 시장을 헐리우드가 손쉽게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9년 한국의 영화시장은 이런 만고불멸의 진리를 여지없이 그릇되게 만들었다. 한국 영화시장의 40%에 달하는 부분을 방화로 채웠다는 사실은 한국 영화의 승리로 영원히 기억해야 할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은 이런 쾌거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 영화의 인기가 유지될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영화의 주 관람층이 청소년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얘기는 앞으로 한국 영화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구미에 맞는 영화만 제작해야 한다는 얘기일 텐데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못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성장은 우선 당장 한국 영화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문화의 다양성이 결여된, 따라서, 결국에는 또다시 헐리우드 상품의 침투를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한 요인을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가요 분야에서 이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음반 시장은 소위 말하는 ‘팝송’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 60년대와 70년대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팝송이 우선적으로 방송되었고 가요는 그야말로 ‘무식한 늙은이’들이나 듣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런 서양 유행음악의 헤게모니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몰락하고 대신 가요가 대중음악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대역전극을 주도한 주역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의 유행음악을 모방·도입한 서태지와 교포가수들이였고, 또 그들을 환호하는 10대 청소년들이었다. 가요가 노장층의 유행문화에서 하루아침에 청소년들의 전유물로 전환된 것이다. 그리고 가요는 의례 청소년을 위한 장르쯤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문제는 외국 음악을 듣고 자라왔던 팝송세대들이다. 현재 텔레비전의 가요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그들을 외면한다. 라디오에서도 이제 팝송은 잘 틀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핑클을 즐기기에는 너무 낯간지럽고, 조성모의 노래로 만족하기에는 그들이 한때 좋아했던 가수들의 수준이 너무 높다. 그들은 비틀즈, 롤링 스톤즈, 도어스, 김추자, 신중현, 송창식 등의 노래에 젖어 있어 요즘 가수들의 가창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문화 판에서 완전하게 소외된 그들은 가끔 미사리에서 또는 신중현 콘서트에서 자신의 문화적 존재를 확인해 보지만 그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결국 그들이 요즘 빠져든 새로운 음악은 재즈라는 장르다. 그들에게서 아직도 서양 음악의 헤게모니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모두를 위한 방송이어야 한다

이런 딜레마, 즉 헐리우드의 공세를 막아내고 동시에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현재 방송계가 안고 있는 과제다. 한국 영화와 가요의 예에서 보았듯이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요와 영화의 경우, 한편으로는 한국 문화시장의 확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문화``=``청소년 문화라는 경제 원칙에 입각한 공식이 많은 노장층을 소외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느 하나를 희생해도 되는 선택적 가치가 아니다. 문화가 만인의 생활 속에서 그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지는 영역이라면 대중문화 또한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된다.

따라서 방송은 더 이상 청소년들만의 미디엄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열광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중문화가 유지되고 헐리우드 문화를 배척할 수 있다는 논리는 반쪽의 논리일 뿐이다. 청소년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대중음악을 듣고 온갖 사회적 압박을 털어버릴 수 있듯이, 직장과 가정에서 시달리고 있는 40대, 50대의 어른들도 자신들의 온 몸에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의 영역에서조차 이런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삶에 대한 의미를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은 원래 신문과 달리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특별한 언론매체이다. 원칙대로 한다면 방송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에서 소외받는 계층,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계층, 정치·경제적 힘이 없는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모든 방송사들은 그러기로 약속하고 시민의 재산인 전파를 잠시 동안 사용하기로 그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다. 만약 청소년들의 구매력이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프로그램 편성을 그들 기호에만 맞춘다면 그 방송사는 이미 이런 공익 의무를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며, 따라서 전파를 계속 사용할 권한을 잃게 되는 것이다. 원칙만 따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현재 시청자들은 방송사가 경제적 손해를 보면서까지 무리하게 공익 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방송사가 최소한의 공익성을 고려해 방송 프로그램 편성을 좀더 다양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할뿐이다. 솔직히 이런 요구를 하루빨리 수용하는 것이 결국 방송사의 이익을 위한 길이 될 것이다. 혹시 외국 방송이 국내에서 허용된다면 방송3사에 불만이 많은 시청자들이 모두 그 쪽으로 채널을 돌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가서 아무리 노장층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법석을 떨어봐야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시선을 쉽게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굳이 외국 방송이 아니더라도 방송사들은 현재 인터넷TV나 케이블 그리고 위성방송과 비디오로 인해 시청자를 확보하기가 갈수록 어려운 환경 속에 처해 있다. 만약 이런 변화된 시장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청소년이라는 한정된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만을 주로 제작한다면 방송사의 파산을 스스로 재촉하는 길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그들은 컴퓨터 통신과 게임에 빠져 있어 더 이상 방송이 그들의 주된 오락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텔레비전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방송사들이 프로그램 장르의 다양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일은 작게는 상대국과의 시청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지름길이며 크게는 방송이 비로소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익인 것이다. 그리고 민주방송인 것이다. 방송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할 수 있다면 어떤 변화와 역경에서도 쉽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방송사와 시청자가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윈-윈(win-win)전략은 아무래도 방송사가 시청자 위에 군림하는 구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새로운 모습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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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2

2002/06/28 (14:44:16)    IP Address : 165.132.120.202

   텔레비전의 경쟁전략은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뿐이다 조 흡 2002/06/28 858
457    연예계의 ‘약육강식(弱肉强食) 이대로 둘건가? 강준만 2002/06/28 793
456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1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50
455    편집부의 글 - 소송과 관련해서…… 편집부 2002/06/27 1128
454    왜 고소당하기인가? 홍세화 2002/06/27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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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바람직한가? 김동민 2002/06/27 641
450    {조선일보}와 재벌개혁 강준만 2002/06/27 696
449    김대중과 ‘조선일보 코미디’ 강준만 2002/06/27 745
448    제5중대 ‘진보’전사 홍세화 씨에게 갈채를 보내며 홍성주 2002/06/27 1029
447    ‘엉거주춤 정권’과 ‘엉거주춤 시민운동’ 강준만 2002/06/27 719
446    정형근과 신복룡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 강준만 2002/06/27 827
445    H.O.T에 대한 왜곡된 혐오증에 관하여 현제명 2002/06/27 1223
444    <H.O.T> 그 왜곡된 신화에 관해>에 관한 주석 정 혁 2002/06/27 952
443    통합방송법 통과를 지켜보며 정 언 2002/06/27 794
442    {인물과 사상} 원고 채택 기준의 엄정성을 묻는다 배복남 2002/06/27 835
441    강준만 교수와 {인물과 사상} 편집진에게 바랍니다 최연홍 2002/06/27 866
440    <저질스런 개그문화! 반드시 바꿔야 한다!!>에 대한 반론 김동일 2002/06/27 907
439    조흡 님의 ‘0양의 비디오’ 관련 글을 비판하며 SASAS 2002/06/27 1153
438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최성일 2002/06/27 1022
437    신춘문예 규정의 참을 수 없는 관례 하나 임영태 2002/06/27 972
436    어느 외국어학원 강사의 주체적 토익공략법 김양미 2002/06/27 895
435    이것이 교육개혁이다 홍현성 2002/06/27 923
434    파나마 운하 반환과 21세기 미국과 중남미 송기도 2002/06/27 1072
433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12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802
432    편집부의글 편집부 2002/06/28 998
431    김수환 추기경님께 강준만 2002/06/28 966
430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은 법에 의해서라도 무조건 막아야 한다 오동명 2002/06/28 1185
429    신문 개혁을 바라는 한 독자의 애절한 편지 임명균 2002/06/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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