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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조선일보}와 재벌개혁
{조선일보}와 재벌개혁

강준만

재벌개혁이라고 하는 ‘집단 사기극’

{경향신문} 99년 8월 24일자엔 박명훈 수석논설위원이 쓴 <시장은 재벌을 원한다>는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다. 재벌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중성을 아주 날카롭게 분석하고 진단한 칼럼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나를 포함한 국민 대부분이 입으로는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기존의 재벌 지배 체제에서 한 발도 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은 안쓰럽다 못해 역겹기까지 하다.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도 그런 역겨움을 느꼈던 걸까? 그는 최근 어느 강연에서 재벌개혁이 어려운 이유로 우리 사회 각계가 갖고 있는 재벌에 대한 이중성을 지적했다. 강 장관은 “언론은 총론에서는 재벌 개혁을 지지하지만, 각론에서는 광고주의 입장도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도 했다. 지극히 외교적인 표현이다. 하기야 경제 장관이 그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이상의 말을 하는 건 나와 같은 사람의 몫일 것이다.

언론이 총론에서는 재벌개혁을 지지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신문들마다 차이가 있다. 총론과 각론 모두에서 재벌개혁을 지지하는 신문들도 있지만, 덩치가 큰 유력 신문들일수록 총론에서조차 재벌개혁에 교묘한 딴지를 걸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더욱 교묘한 반개혁 선동을 일삼고 있다. 재벌개혁이 아예 거론되지도 않을 땐 재벌과 ‘재벌 언론’을 감정적으로 꾸짖으면서 독자들의 환심을 샀던 이른바 ‘언론 재벌’이 이젠 색깔 논쟁까지 끌어들여 가면서까지 재벌개혁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꼴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신문들의 그런 선동이 먹혀 들어갈 만큼 우리 사회의 이중성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나를 속이고 모두가 모두를 속이는 ‘집단 사기극(`詐`欺`劇`)’이라고나 할까? 박 수석논설위원이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이 가슴에 와 닿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재벌개혁은 재벌만의 문제도, 정부의 의지만으로 풀 수 있는 과제도 아니다. 시장참여자 모두 파괴된 시장생태계를 되살리는데 나서야 한다. 곳곳에 배어있는 재벌식 문화와 우상을 지우는 일도 중요하다. 시장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나 시대는 이제 재벌의 시스템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세월에 ‘재벌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시장생태계를 되살릴 것이며 또 어느 세월에 곳곳에 배어있는 재벌식 문화와 우상을 지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이런 걸 가리켜 딜레마라고 하는 건가?

우리 사회의 재벌에 대한 이중성을 낳게 하고 강화하는 데에 지식인을 포함한 사회 각계의 유명 인사들이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예컨대, 그간 재벌 총수들이 낸 책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내로라 하는 유명 인사들의 덕담과 찬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유명 인사들은 우리 사회에서 ‘양심’과 ‘개혁 의지’가 있는 걸로 간주돼 꽤 존경받는 사람들이다. 왜 그들이 재벌 홍보의 전위대로 나서야 하는가?

박 수석논설위원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 각 분야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재벌을 뜯어먹’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유능한 대학 총장, 지식인, 예술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재벌로부터 돈을 끌어오는 것이다. 그간 정부 스스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재벌들에게 떠넘긴 탓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각계의 엘리트들은 사적으로 재벌의 은혜를 입었고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충만하다. 나는 그들이 앞으론 그런 마음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말고 은밀하게 사적으로 표현하길 바란다.

그런가 하면 ‘학술적으로’ 재벌을 옹호하는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나는 그들의 주장을 존중한다. 단 조건이 있다. 재벌로부터 연구비를 받거나 기타 어떤 형태로든 금전적 지원을 받고서 옹호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윤리는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너무도 뻔뻔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니 그들을 뻔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우리 모두 ‘집단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이념공세

누가 재벌개혁을 방해하는가? 우리 모두 다 방해자다. 그런 인식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런 인식을 통해 재벌개혁에 대한 방해가 우리 자신도 잘 눈치채지 못하게끔 매우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제대로 깨닫자는 말이다.

그런 자세를 갖고 일부 신문의 논조를 유심히 관찰하면 재벌개혁에 딴지를 거는 데 있어서 상호 상충되는 논리가 동시에 동원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컨대, 극우적 입장에서 이른바 ‘색깔 논쟁’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좌파적 입장에서 종속이론 비슷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니까 재벌개혁을 방해할 수만 있다면 극우적 입장도 좌파적 입장도 다 써 먹겠다는 것이다.

신문들 가운데 재벌개혁에 가장 적대적인 신문은 {중앙일보}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한 한 {중앙일보}는 의외로 중요하지 않다. {중앙일보}는 형식이야 어찌됐건 실질적으론 여전히 ‘재벌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재벌개혁이 전혀 논의되지 않을 때엔 반재벌적인 것처럼 냄새를 피워 독자들의 정서에 영합하다가 최근처럼 재벌개혁이 이뤄지려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엔 친재벌로 돌아서 재벌개혁을 방해하는 신문이다. 누군가? 바로 {조선일보}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한때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엔 쌍두마차 체제를 유지하면서 재벌개혁에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1999년 8월 26일자는 <‘재벌개혁’ 쌍심지 켜고 반대하는 ‘보수언론’: 재벌개혁의지 ‘재벌해체·색깔론’ 둔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두 신문의 활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재벌개혁을 반대한 것은 재벌이 아니라 보수언론이었다. 그들은 ‘적법한 절차와 심사숙고’를 이유로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강하게 비판했고 정부도 늘 그렇듯이 보수언론이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눈먼’ 칼날이 두려워 피하기에 급급한 무기력한 모습을 연출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8·15 경축사의 핵심은 재벌개혁이었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 재벌개혁에 역점을 두겠다. 이제는 시장이 재벌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다”라고 말하고 집권 초부터 추진해 온 경영진 책임강화 등 다섯 가지의 원칙에 금융 지배를 막고 내부거래와 변칙상속을 억제하겠다는 ‘5+3’ 원칙을 천명했다.

이 원칙을 바로 치고 나온 것은 한나라당도 전경련도 아닌 조선과 {중앙일보}였다. {조선일보}는 16일자에 <결국 재벌해체로 가나>는 해설기사에서 “내년 경기가 좋지 못하다면 재벌은 그 책임을 재벌해체정책으로 돌릴 수 있다”며 재벌 반발에 대한 ‘원려’(遠慮)로서 재벌입장을 대변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재벌개혁에 유의할 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재벌과 정부를 모두 비판하며 “재벌을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고 미우나 고우나 재벌은 한국산업을 끌고가는 견인차”라며 정부의 재벌개혁 방법과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재벌개혁을 재벌해체라는 논리로 몰아감으로써 비판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고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해체’가 아니라 ‘개혁’이라는 것만을 거듭 강조할 뿐이었다. 정부는 재벌개혁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말하기보다 재벌해체가 아니라며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절차와 합리’라는 논리를 앞세운 보수언론의 판정승이었다.

2라운드는 역시 이념공세였다. 조선은 <재벌이 해체된다면>이라는 제목의 17일자 사설에서 “결국 정부가 재벌해체를 지향하고 있고 정치적 판단마저 마친 것으로 짐작된다”고 지적했다. 또 조선은 다른 사설에서는 ‘보안법 서두르는 이유는 뭔가’라며 정부의 대북관을 함께 비판했다. 오비이락일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바로 그 날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정책과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회창 총재는 “김 대통령의 정책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 중앙이 처음에 제기했던 절차와 방법론 문제로 딴지 걸던 재벌개혁이 색깔론 공방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이 색깔론은 17일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 김태동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 노골적으로 터져 나온다. {조선일보}는 18일자 사설에서 “이 정권의 이념적 정체성을 덮어놓고는 나라의 앞날을 말할 수 없다”며 “인적 청산이 설마 혁명시기의 숙청방식은 아닐 터이고”라는 식으로 비꼬며 대통령의 공약 때와 현재의 이념적 차이를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청산’이라는 말에서 섬뜩함을 느낀다며 “김씨의 말이 소모적 색깔논쟁에 말려들 소지를 주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솔직하게 진의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계속해서 , <재벌개혁 왜 두말하나?>, <재벌개혁의 허와 실> 등 사설과 칼럼을 이용, 계속해서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한국, 경향, 한겨레 등은 조선, 중앙과는 달리 재벌개혁에 강한 의지를 천명하며 재벌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하이에나식 색깔논쟁은 덕분에 힘을 잃은 채 막 뒤로 사라졌다. 이들은 재벌개혁의 정당성에 방점을 뒀고 동아도 색깔론 논쟁의 소모성을 지적하는 등 그 전과는 상당히 다른 식으로 전선이 형성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조선일보 보도에 발끈’

사정이 그와 같은데도 김대중 정부는 여전히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매우 소심하게 대응하고 있다. 99년 10월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김대중 정부 내에 실세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친 조선일보 맨’들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기자협회보} 1999년 8월 23일자는 <청와대 조선일보 보도에 발끈: 재벌정책 ‘말 바꾸기’ 비난에 언론중재 신청키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청와대는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정책에 대한 일부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강경대응 방침을 세우고 언론계 풍향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준영 대변인은 19일 “대통령 경축사는 물론 정부가 재벌해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며 “일부 언론이 스스로 재벌해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정부가 이를 부인하자 오히려 정부가 말을 바꾸었다거나 혼선을 빚는 것으로 비난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재벌 해체’로 보도한 일부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 중재신청을 내기로 방침을 세우고 관련 자료를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언론중재위 한 관계자는 “청와대 대변인의 이날 발언이 곧바로 반론이자 정정 형태로 보도돼 중재신청을 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별 소득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중재신청 방침에는 변함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히고 “해당 언론사를 검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말을 바꾸었다고 비난한’ 언론사는 ‘조선일보’임을 분명히 했다. {조선일보}는 19일자 <정부정책 왜 두말하나?> 사설과 해설기사에서 정부가 오락가락한다고 공격했다.

따라서 중재신청만 놓고 보면, ‘재벌해체’ 문제는 사실상 해소된 상태여서 {조선일보}에만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대가 사설·칼럼을 제외하곤 ‘최장집 사태’ 이후 정권과 유화관계를 지속해온 {조선일보}란 부담이 중재신청 하나를 놓고도 심사숙고하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가 공언한 대로 실행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 기사에서 “상대가 사설·칼럼을 제외하곤 ‘최장집 사태’ 이후 정권과 유화관계를 지속해온 {조선일보}란 부담”이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만의 하나 김대중 정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거다. 사설과 칼럼이 얼마나 중요한 데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감성은 ‘반재벌’이나 이성은 ‘친재벌’

{조선일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신문이다. 겉과 속이 똑같은 신문이 얼마나 있겠는가만서도, {조선일보}의 경우 해도 너무한다. 좋게 말하면, 정말 상술(`商`術`)이 탁월한 신문이다. {조선일보}는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재벌에 대한 이중 심리를 잘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 국민은 말로는 재벌개혁을 몹시 원하는 것 같은데 그건 말뿐이고 몸은 기존의 재벌 체제에 절어 있다. 앞서 인용했던 경향신문 박명훈 수석논설위원의 진단을 더 인용해 보기로 하자.

시장 속으로 들어가 보면 재벌을 향한 환호성이 요란하게 들려온다. 같은 곳에 짓는 아파트도 ‘현대’나 ‘삼성’의 이름이 붙으면 청약 인파가 줄을 잇고 값이 뛴다. 자동차, 컴퓨터, 휴대폰에서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5대 재벌의 브랜드를 빼면 남는 게 없다. 재벌회사 배지를 다는 게 사회초년생들의 꿈이고, 망자(亡者)마저도 삼성병원이나 현대병원(중앙병원)의 영안실에 머물렀다가 가고 싶어하는 세상이다. 현대펀드와 삼성생명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는 데서 드러나듯 IMF 이후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재벌편중 현상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재벌들의 세상’은 시장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벌식 발상, 재벌식 문화가 뿌리내리며 재벌이 우리 사회의 우상이 된 지는 오래다. 모든 것이 재벌 지향적이다. 기업들은 조금만 커지면 재벌 흉내부터 내려한다. 그러다가 망한다. 청소년은 ‘LG 트윈스’와 ‘부천 SK’에 열광한다. 황제경영, 황제경영 하는데 우리 나라에 황제가 재벌 총수뿐인가. 정계나 교육계·언론계·체육계에도 황제는 즐비하다. 이집트에 죽은 왕들의 골짜기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황제의 무리가 있다. 재벌에 기생하는 세력은 또 어떤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재벌을 뜯어먹고, 재벌이 마련해 준 너른 사무실에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면서도, 아니 그러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말로는 재벌이 큰 문제라고 그런다. 그래서 재벌을 욕할 땐 감정적으로 욕한다. 그러니까 이성은 ‘친재벌’이고 감성은 ‘반재벌’이다. 그러한 감성적 ‘반재벌’ 심리에 가장 잘 영합하고 그걸 부추기는 데에 앞장서다가도 막상 이성적인 재벌개혁이 이뤄지려고 하면 그걸 한사코 저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신문이 있다. 그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인 것이다.

{조선일보}의 감정적 재벌 비판

지금 내가 괜한 말을 하는 것 같은가? 최근 수원대 이한구 교수가 펴낸 {한국재벌형성사}(비봉출판사, 1만9천원)라는 책을 보자. 이 교수는 이 책의 제9장 <한국 재벌의 성과와 과제>에서 재벌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인용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 기사가 많이 눈에 띈다. 이 교수가 인용한 기사 몇 개를 여기 다시 인용할 터이니 독자들께서는 {조선일보}가 과거에 재벌 비판을 얼마나 화끈하게 했던 신문인지 그걸 잘 감상하시기 바란다.

재벌총수들은 아직 철이 없는 자녀들에게까지 계열사를 떠맡긴다. 그리고 그런 계열사가 유지되도록 그 회사에서 만든 상품을 대거 구매해 준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자동판매기에는 이건희 회장의 친척이 경영하는 제일제당의 음료수들이 가득 들어 있다.({조선일보}, 1997년 12월 14일자)

거인이 되어 버린 재벌들은 돈으로 정치를 사서 노예로 만들었다. 정치권에서 음성적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얻어진 영향력 덕분에 재벌총수들은 정부가 제공하고 있는 국민저축을 빨아먹었고 은행들을 피 흘리게 했다. 재벌총수들은 파라오처럼 야망과 세계정복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을 파산의 나락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조선일보}, 1997년 12월 25일자)

재벌은 다국적기업이기보다는 하나의 사이비 종교처럼 기능했다. 재벌총수들은 유리와 철강으로 지어진 빌딩 속에 경호원에 둘러싸여 스태프진에게서 우상숭배에 가까운 경배를 받으며 마치 옛 황제처럼 살았다. 그들은 반대를 받은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다.({조선일보}, 1997년 12월 25일자)

재벌총수들은 아직도 계열사들로부터 왕족 취급을 받는다. 자동차에 20억 달러를 쏟아 부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의 어느 누구도 이의 제기를 못했다. 자신의 취미를 사업으로 연결시켰다는 지적에 대해 이 회장은 ‘한국의 자동차 사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투자했다’고 강변한다.({조선일보}, 1998년 1월 1일자)

이수화학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사돈인 김준성 회장이 오너이다. 이수화학은 자동차 윤활유를 대우자동차에서 출고되는 신차와 대우자동차 정비소 등에 전량 납품하고 있다. 한때 대우자동차 부사장을 지냈던 김우중 회장의 동생 성중씨가 독립해 경영하는 델코전지의 달코벳데리 역시 대우자동차가 받아쓴다. …… 96년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 계열사로 편입시킨 보광그룹(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처가 쪽에서 경영)은 90년대 초 커피자판기 사업으로 출발했다. 보광은 전국의 삼성계열 빌딩 및 사업장 자판기 사업을 독점, 노사협의회가 있는 공장에선 1잔에 1백 원을 받고 일반 사무실 빌딩에선 150원씩 받았다. 보광은 삼성그룹의 지원에 힘입어 유통업 및 부동산 개발사업에 진출, 대형 편의점 체인인 ‘훼밀리마트’와 보광피닉스 파크 등을 소유한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경영 지원을 위해 삼성 계열사에서 일부 임직원을 파견하기도 했었다. …… 국내 운송업계 역시 재벌 친인척들의 이권사업으로 유명하다. 친인척들은 화물 알선업체를 차려놓은 후 대기업에서 받은 큰 규모의 물동량을 다른 알선업체에 나눠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차량 한 대 없이 사무실에 전화기 몇 대 놓고 중간에서 소개비를 받는 ‘꿩 먹고 알 먹는 장사인 셈.’ 운송업계에선 LG그룹 오너의 인척이 경영하는 한 운송회사를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전국 화물자동차운송사업조합 연합회 측은 ‘재벌 친인척이 운영하는 알선업체는 10여 개인 것으로 안다’며 ‘알선업체들의 난립과 알선업체-화주간의 리베이트 관행은 오래된 병폐이며 고비용 물류의 고질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조선일보}, 1998년 1월 9일자)

송희영의 같잖은 훈수

그 정도였다. 분명히 지나친 면도 있다. 나는 선동(煽動)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재벌 비판엔 찬성하지 않는다. 미우나 고우나 재벌들은 우리의 국력을 책임지고 있는 주체인데 나라 망하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감정적인 매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 점을 개탄하는 것이다. 순전히 신문 팔아먹기 위해 재벌을 감정적으로 극렬히 매도하다가 정부가 재벌개혁을 하려고 하면 색깔론까지 끌어들여 그걸 훼방 놓으려는 {조선일보}의 이중성, 그리고 그 이중성에 경악하여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 구독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이 기막힌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1996년 7월 24일자 5면을 펴 보자. 송희영 경제과학부장이
<「삼성 공화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내가 언젠가 다른 지면에서도 인용한 바 있지만, {조선일보}의 경제과학부장이 토로하는 재벌 비판을 다시 한번 감상해 보자.

어느 대학교수는 “학계 토론회나 세미나에서 삼성의 사업확장을 반대할 수가 없다”고 실토했다. 한번은 그가 삼성그룹의 신규사업 진출을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더니, 삼성그룹에 취직해 있던 제자 5명이 연구실로 찾아왔더라는 것. “선생님, 저희들을 봐서라도 다음 번 세미나 때는 제발 반대의견을 말하지 말아주세요.” 애원하는 제자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삼성그룹의 ‘가증스런 로비전’을 실감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삼성은 잘 나가는 변호사에겐 사건을 맡기고, 유망한 학자에겐 연구 프로젝트를 제공하며, 언론계에는 광고를 준다. 손발이 부족한 공무원들에게는 외국자료를 선물하고,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기관 사람들에겐 해외시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가 적발된 사건도 부지기수다. 이런 삼성그룹을 {월 스트리트 저널}은 “재벌이라기보다는 교조집단(컬트)이랄 수 있을 정도”라며, ‘삼성은 공화국’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을 매도했던 송희영씨가 이제 ‘편집부국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조선일보} 1999년 8월 26일자에 <재벌개혁과 ‘행복지수’>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송희영씨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과거 자신이 쓴 칼럼들을 기억하는 최소한의 기억력이 있기 때문일까? 그는 노골적으로 재벌 편은 들지 않고 정부와 재벌을 모두 꾸짖는 양비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칼럼의 결론은 이렇다.

“신흥 정치세력이든 재벌이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논쟁하고 행동해야만 자신의 응원단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참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재벌그룹의 ‘가증스런 로비전’을 폭로하며 혹독한 비판을 가했던 인물이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니네들 어떻게 싸우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쪽으로 싸워야 한다고 같잖은 훈수를 두고 있으니 말이다.

‘조선-현대 밀월 삼매경’

{조선일보}는 도무지 윤리가 없는 신문이다. {조선일보}에게서 무슨 윤리를 찾느냐고 항변하지는 마시라. 눈감고 길을 걷다 부딪히는 사람 그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 감각도 없다는 말이니까 말이다. 이미 나는 그 점을 충분히 지적해왔지만, 이 글을 끝맺으면서 {미디어오늘} 1999년 5월 6일자에 실린 기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현대 밀월삼매경: 수뇌부 골프회동에 협찬사업 등 ‘훈훈’>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재벌 언론’과 ‘언론 재벌’의 차이는 없다는 걸 잘 시사해주고 있다.

{조선일보}와 현대그룹간의 밀월이 깊어지고 있다. 경영진간의 대규모 골프회동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협찬사업도 활발하다.

지난 4월 10일 동두천 다이너스티 CC에서 이루어진 {조선일보}와 현대그룹측간의 골프회동이 우선적인 관심거리. 이날 양측의 회동은 방상훈 사장을 비롯해 조선측에서 32명이 참석했고, 현대측에선 정몽헌 현대전자 회장 등 12명이 참석했다. 양측의 주요 임원진이 대부분 필드에 나섰다. 골프비용은 물론 현대측이 부담했고 만찬도 가졌다는 후문이다. 한 언론사에서 32명이 참석하는 것도 이례적인데다 그것도 양측의 수장이 반공개적으로 함께 골프를 쳤다는 점에서 이 골프 회동은 유달리 많은 관심이 쏠렸다.

양측의 밀월은 협찬사업에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가 ‘벤처 코리아 99’ 사업을 전개하면서 현대증권으로부터 10억 원을 협찬받은 것이다. 이 사업은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벤처기업을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해 50개 팀을 선발, 창업자금 3억 1,000만 원을 지원한다. 개별 언론사 사업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

양측의 이같은 밀월은 {월간조선}에서 취재 중이던 ‘현대의 대북 투자사업 점검’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 기사는 {월간조선} 5월호에 실렸지만 당초 편집진의 계획보다 분량은 물론 ‘톤’도 대폭 약화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지난 4월 30일 1박2일간 {월간조선} 팀이 현대가 소유하고 있는 ‘서산농장’에서 단합대회를 가진 것까지도 의혹의 시선을 던지기도 했으나 {월간조선}측이나 현대측 모두 “순수한 단합대회일 뿐”이라는 해명이다. {월간조선}의 우종창 차장은 “인근의 공군 레이더기지를 견학하는 등 그야말로 순수한 야유회에 불과했다”며 “현대측 인사를 만나거나 자리를 같이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조선과 현대의 밀월은 의례적인 관계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양측이 갖는 무게감 탓인지 언론계 안팎의 예사롭지 않은 눈길을 받고 있다.

조선과 현대의 밀월을 의례적인 관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선 안 될 것이다. 왜 언론인들이 재벌 돈으로 골프를 치는가? 그게 바로 ‘향응성 촌지’인 것이다. 그게 아무 문제가 없는 관행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관행을 왜 말단 공무원들에겐 적용시켜 주지 않는가? 정치와 행정 분야를 향해선 추상과 같은 도덕의 잣대로 독설을 내뿜는 신문이 그러한 잣대를 왜 자신에겐 적용하지 않는 건가? 어리석은 질문임에 틀림없겠지만, 이제 독자들께선 재벌개혁을 방해하는 주범이 누구인지 그 점을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는다.

이 기회에 분명히 이야기해 두지만, 언론인들이 향응성 골프를 치면 절대 안 된다. 골프 치려면 자기 돈으로 쳐라. 그리고 재벌 협찬도 받지 마라. 현대증권으로부터 돈 받은 {조선일보}가 이익치 회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익치 신화’에 무슨 함정은 없는지, 그걸 의심할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니 그리고 이 회장의 구속 이후 주가 조작사건에 대한 보도가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 그 점에 대해 {조선일보}는 해명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 사건이 오직 이익치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는 건가?

참여연대와 {조선일보}

끝으로 {조선일보}를 여전히 너그럽게 대하는 참여연대 사람들에 대해 한마디 하자. {조선일보} 1999년 9월 4일자 11면엔 <정부경제팀 ‘삐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이 기사에 대해 논하기 전에 잠시 8월로 되돌아가 보자. {조선일보}는 8월 18일자 사설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끝맺은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은 김 대통령의 경축사 내용과 관련해 ‘좌경화’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현 집권세력은 2년 전 대선공약 때와 현재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차이를 분명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조선일보}는 김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좌경화’로 몬 야당의 주장에 맞장구를 친 것이다. {조선일보} 9월 4일자 기사는 그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이 기사의 끝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김대중 대통령의 ‘8·15 경축사’ 후속 대책으로, 경제부처가 재벌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재경부-공정위-경제수석실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시장 메커니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경제관료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며 ‘특히 경제부처간의 의견조율이 제대로 안 되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김상조 교수는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맡고 있다. 그가 {경향신문} 1999년 8월 19일자에 쓴 <재벌개혁이 ‘좌경’이라니>라는 제목의 칼럼, 그리고 {한겨레} 99년 8월 27일자에 쓴 <총수체제 놔두곤 개혁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잘 보여주듯이, 그는 정부의 재벌개혁이 영 시원치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정부를 비판하는 그의 말이 {조선일보} 기사에 인용된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조선일보}는 김 교수가 시원치 않다고 꾸짖는 정부의 재벌개혁을 ‘좌경화’로 보는 신문인데, {조선일보}가 김 교수의 정부 비판을 인용하면 어쩌잔 말인가. 그러나 일반 독자들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진 못한다. 김 교수는 무조건 정부 비판을 위한 {조선일보}의 목적에 이용당한 것이다.

여기서 정부 비판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젠 참여연대 사람들도 재벌개혁에 관한 한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그 정체를 충분히 알고도 남았을 터이니 {조선일보}에 기고를 한다든가 인터뷰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재고해 달라는 말이다. 정부는 중립 영역일 수 있다. 사회세력간 갈등을 구경하다가 기회주의적으로 힘이 센 편으로 기울 수 있다. 그런 성향을 아무리 꾸짖어봐야 소용없다. 사회세력간 갈등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참여연대는 정부가 전지전능한 것처럼 정부만 몰아세우면서 {조선일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말고 {조선일보}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걸 고려해 보는 게 어떨까. {조선일보}를 그대로 두고선 절대 재벌개혁 안 된다.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 제발 참여연대 사람 그 누구라도 좋으니 반론 좀 주시라. 내 생각이 모자라거나 잘못됐다면 내 생각을 바꾸겠다. 물론 반론을 안 주셔도 욕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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