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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엉거주춤 정권’과 ‘엉거주춤 시민운동’
‘엉거주춤 정권’과 ‘엉거주춤 시민운동’

강준만

김대중 정권의 앞날이 어둡다

열심히 잘해보겠다고 애쓰고 있는 김대중 정권에겐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나 나는 김 정권이 지금 이대로 가다간 이렇다 할 큰 업적을 남기진 못할 것이며 실패작이라는 소리만 듣지 않아도 다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국민의 숨통을 조였던 IMF 사태를 그런 대로 잘 극복해 나가고 있으며, 대북정책에 있어서 수구 냉전주의를 뛰어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건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는 김 정권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업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36년 묵은 영남 정권을 교체해 상징적이건 실질적이건 한국의 제3세계로 존재해 온 호남인들의 한(`恨`)을 풀어줌으로써 지금 당장은 아닐 망정 궁극적으로 국민 통합에 기여했다는 의미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 정권은 건국 이래 최초의 정권교체가 갖는 긍정적 의미만 만끽하고자 했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안이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내부 갈등에 국력을 소모하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김 정권은 누군가가 발목을 잡아 수렁에 빠졌다고 주장하겠지만, 발목이 잡히지 않게끔 날렵하게 행동하지 못한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 정권이 빠져 있는 수렁은 바로 지역주의다. 지역과는 무관한 이슈조차도 지역에 따라 편이 갈리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나라에서 지역주의는 만병의 근원인 동시에 만병통치약이다.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거나 엄청난 무능을 보였던 사람도 “호남정권이 ‘영남 죽이기’를 한다”고 외치기만 하면 적어도 영남에선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된 ‘호남 차별’ 또는 ‘호남 경계’ 문화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귀가 솔깃해진다. 비호남인들이 등을 돌린 가운데 김 정권이 큰 업적을 남기긴 매우 어렵다.

그간 김 정권은 영남의 민심을 얻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왔지만 대부분 정략적인 냄새가 풍기는 수준의 방법에 머물렀다. 영남인들이 그런 방법에 넘어갈 리도 없거니와 그런 방법은 새로운 반대 세력을 낳기 마련이다.

김 정권은 처음부터 긴장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50년 묵은 수구 기득권 세력이 한국 사회의 각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걸 망각하진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승리감에 도취했던 것 같다. 비장(悲壯)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긴장까지 잃어버렸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대통령부터 자화자찬(自畵自讚)하기에 바빴다.

문제는 자화자찬 그 자체가 아니다. 둔감증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통령의 둔감증은 밑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정권교체가 되면 부산의 통반장까지 다 호남인들이 할거라는, 영남에 널리 퍼져 있던 유언비어는 극악스러운 ‘호남 혐오’ 심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김 정권은 늘 그걸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김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이 언제든지 지역주의라고 하는 기름통에 불을 붙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비장하게 깨닫고 조심하면서 대응 태세를 갖추었어야 했다.

그러나 김 정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 정권은 구태의연한 정치 패러다임과 행태를 그대로 고수하면서 잘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김 정권의 적(`敵`)은 김 정권 내부에 있다. 구태의연하고 무사안일한 의식과 행태가 바로 제1의 적인 것이다.

김 정권 사람들부터 앞장서서 국민에게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문화와 행정 문화를 보여주겠다고 경쟁을 하는데 누가 발목을 잡는단 말인가? 김 정권 사람 모두가 청렴하고 겸손하다는 느낌을 국민에게 줄 정도로 청렴하고 겸손하게 구는 데에 누가 발목을 잡는단 말인가?

이런 반문이 너무도 이상적이고 순진한 이야기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김 정권 사람들이 현재 갖고 있는 너무도 현실적이고 고차원적인(?) 생각으론 김 정권이 지금의 수렁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점이다. 예전 춥고 배고프던 시절로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와 마음을 갖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늘 한발 늦게 가는 김대중 정권

지난 1년 9개월여의 실적을 근거로 김대중 정권에게 별명을 하나 붙여준다면 무엇이 어울릴까? 나는 김 정권을 ‘엉거주춤 정권’이라고 부르고 싶다. ‘엉거주춤’이란 앉지도 서지도 않고 몸을 반쯤 굽히고 있는 모양을 말한다. 그 자세를 취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그 자세론 무슨 일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앉건 서건 그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이 훨씬 낫다.
‘엉거주춤 정권’은 순수 국산품은 아니다. 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민주화의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민주화 투쟁을 통해 정권을 잡은 세력의 목적은 고상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그들이 타도 또는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세력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그러지만 ‘닮지 않고선 싸울 수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반민주적인 정권은 그들의 ‘수단’을 은폐하거나 적어도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게끔 할 수 있는 강제력을 갖고 있다. 반면 그들과 싸워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그들이 내세운 싸움의 명분이 있었던 만큼 그러한 강제력을 스스로 반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완전히 반납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이야 치겠지만 그 발버둥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반민주적인 정권에 가담했거나 그 정권을 지지했던 세력은 갑자기 민주화의 화신(`化`身`)인 양 행세하면서 새로운 정권의 ‘수단’을 공격한다. 그들은 그것이 새로운 정권의 ‘아킬레스의 건’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수구 언론의 경우 완전히 코미디 같은 일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른다. 수구 언론은 정치보도의 의제 설정을 180도 바꾸어 정권의 수단에 대한 감시를 위해 현미경을 들이댄다. 과거에는 그런 보도를 위해 망원경조차 사용하지 않던 자들이 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새로운 정권에 대한 혐오와 경멸의 확산이다. 죽은 독재자가 부활하고 예찬된다. 새로운 정권이 죽은 독재자처럼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완전히 무시하는 단세포적 발상이 횡행하는 가운데 사회적 혼란은 증폭된다.

결국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이다. 첫째도 김 대통령의 책임이요, 둘째도 김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의 측근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는 구태의연한 ‘수단’으론 정권 유지조차 어렵다는 초보적인 사실조차 그들에게 제대로 주입시키지 못했다. 그건 그의 책임이다. 그러한 ‘수단’이 문제가 되어 곪아터질 때에 비로소 그걸 시정하려는, 한발 늦게 가는 행태를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김 대통령에게 있어서 더욱 비극적인 것은 호남의 지역주의가 과거 영남의 지역주의와 비교해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과거 ‘저항적 지역주의’라 불려진 호남의 지역주의엔 개혁 지향성이 있을 걸로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기대는 배반당했다. 단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득세를 한 수구적 인물들의 수가 적지 않고 그들은 권력의 맛에 도취한 가운데 자신의 잇속만 채우는 ‘개인 플레이’에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김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까지 ‘개인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없지 않으니 김 정권의 앞날이 암울하기만 하다.
고문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모 의원이 단지 ‘김대중 죽이기’의 첨병이라는 이유만으로 영남의 일각에서 지지를 받는, 이 기가 막힌 현실은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몰락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구태의연한 수단과 방법으론 안 된다는 걸 전혀 배우지 못했다. 의혹의 소지가 없는 상황에서 정공법으로 강력하게 대처했어야 할 세력을 엉거주춤 껴안으려다가 뒤통수를 맞는 것도 어찌나 똑같은지 놀랄 지경이다. 때를 기다리던 ‘하이에나’들은 이제 서서히 활동을 개시했는데, 김대중 정권은 그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전철을 밟는 것인가?

불행한 역사의 업보일까? 하기야 누굴 탓하랴. 그 동안 수많은 정치적 격변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 영역만큼은 집권 세력의 교체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게 바로 한국 국민의 수준이다. 국민 수준에 어울리는 정치에 대해 너무 짜증내지 말고 정략의 대결이나 재미있게 구경하자.

김성재 청와대 민정수석의 개혁관

너무도 한심하고 답답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씨알이 먹히지도 않을 소리나마 또 해 보자.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사회가 발행하는 {참여사회} 99년 12월호엔 김성재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엔 김 정권의 개혁과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핵심 사항이 거론되고 있다. 그걸 인용한 다음 이야기를 해 보자.

(문) 시민단체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 후퇴 현상을 우려하는데요.
(답) 개혁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분명합니다. 개혁 원칙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문제는 국민의 정부가 자민련과의 연립정부라는 데 있습니다. 개혁입법을 하는 데 있어서 자민련과의 조율을 거쳐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하고, 또 한나라당과도 협의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혼자 개혁을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이지요.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왜 개혁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지만, 정부의 의지와 이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을 분리해서 봐야하지 않을까요. 시민단체들은 개혁을 가로막는 특정 정파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서 정부와 협력해 개혁을 이끌어가야 하는 겁니다.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문) 개혁이 추진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뿐입니까.
(답) 아니죠. 5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지만 관료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관만 바뀌었을 뿐이죠. 공직자들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의식이 개혁되지 않으면 추진되지 않습니다. 이게 순식간에 되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필요한 거죠. 시민단체들은 집권초기가 아니면 개혁이 물 건너 간다고 주장했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개혁작업을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개혁을 뒷받침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 데 국민회의가 제2당이니까 법제도 개혁에서도 힘이 부칩니다. 개혁을 하는 순간 모든 대상이 곧 적이 돼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무조건 비판해서는 안 되지요.

(문) 정부 비판에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까.
(답) 우선 가려서 비판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도 정부의 개혁 의지는 명확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를 거부하는 세력을 비판해야하는 겁니다.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해서는 지지 의사를 적극 밝혀야하고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략)
(문)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것은 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입니다.
(답) 정치개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입장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통일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개혁을 발목 잡는 세력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해야지요. 아니면 비판을 위한 비판이고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중략)
(문) 시민운동과 정부와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답) 시민사회(시민운동)의 모습은 달라져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보다 전문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단순 정부비판 기능에 머물 게 아니라 자기 개혁을 해야겠지요. 과거의 지평이 아니라 21세기 새로운 지평에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건강한 파트너 관계를 통해 비판·협력해야 합니다. 정부에 협력하면 관변·어용이라는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언론 문건을 의식한 듯) 언론개혁도 말만 무성하지 시민단체들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정부가 하면 언론탄압이라고 합니다. 성명서 한 개 내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겁니까. 시민사회의 역할을 방기하는 게 많습니다.

시민운동 단체들의 조직 이기주의

아주 좋은 이야기다. 먼저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분명하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나는 그걸 믿는다. 그러나 개혁 의지만 있으면 무얼 하나?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만 해도 초기에 참여연대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고 대통령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끔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언로(言路)에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정작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소리는 듣지 않고, 아니 그럴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언론홍보용 행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대통령에게 개혁 의지가 있다는, 하나마나한 말만 되뇌일 게 아니라, 그런 문제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할 것이 아니라는 말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니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시위자들에 대해 개탄과 더불어 짜증이 난다. 그 우둔함에 대해서 말이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할 힘이 있으면 ‘조선일보 불매운동’이나 해라. 생각해 보자. {조선일보}는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개정에조차 결사 반대하는 사설을 여러 차례 실으면서 매우 위험한 선동을 하고 있다. 매카시즘 수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어떻게 나오건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김 정권이 무조건 알아서 폐지하라는 건데 그건 대단히 무리한 요구다. 아니 우둔한 요구다. 정권은 여론이라는 밥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국가보안법을 결사 지지하는 신문이 한국 제1의 신문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기가 막힌 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걸로도 모자라 {조선일보}에 기고를 하고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는 짓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라, 이 한심한 양반들아. 국가보안법 폐지나 주장하지 말아라. 지금은 여론을 총칼로, 탱크로 짓밟을 수 있는 박정희 정권 시절도 아니고 전두환 정권 시절도 아니라는 걸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다음 이야기로 넘어 가자. 김성재 민정수석은 개혁을 발목 잡는 세력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는 정부에 협력하면 관변·어용이라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간 김 정권이 그렇게 신뢰할 수 있게끔 행동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손발은 따로 놀면서 왜 우리 마음을 몰라주냐고 가슴을 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말이다. 김 정권부터 이전의 정권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 개혁도 그렇다. 나 역시 시민단체들의 ‘조직 이기주의’와 그에 따른 파렴치한({조선일보}까지 이용의 대상으로 삼는) 언론플레이엔 개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이지만, 김 정권도 큰소리 칠 게 전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소위 ‘가신 그룹’에 속한다는 인사들이 앞장 서서 {조선일보}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아양을 떨어대고 있다는 걸 모르는가. 김 정권이나 시민운동 단체들이나 피장파장이다. 모두 다 입으로는 ‘개혁’을 떠들어대지만, 다들 ‘개인 플레이’에만 미쳐 있다.

그렇다. 그게 정답이다. 우선 나부터 크고, 우리 단체부터 키우고 나서 개혁에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하자는 게 이른바 ‘개혁 세력’에 속한다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그런 이기주의가 개혁 진영 전반에 만연돼 있다. 그 이기주의의 총합은 개혁을 죽이고도 남을 만큼 크고 강하지만, 파편화된 개혁 진영에선 그 계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계산을 철저히 하고서 말하는 사람만 미친 놈 되는 세상이다. 내 전공이 언론이라서 자꾸 {조선일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오늘날의 정치가 여론정치가 아닌가. 그런데 그 여론이라는 걸 떡 주무르듯이 하는 게 언론인데, 어떻게 언론을 오로지 이용의 대상으로만 삼고서 개혁을 하겠단 말인가?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이른바 빅 3 시민운동 단체들은 이 점에서 썩어도 너무 썩었다. 이 사람들에겐 도무지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란 게 없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네 단체 키워볼 생각으로 언론을 이용할 생각만 하고 심지어 {조선일보}와의 포옹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운동을 위해 {조선일보}를 이용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운동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게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이익이 10이라고 하자. 그들이 {조선일보}를 이용하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힘을 키워주는 건 얼마나 될까? 즉 {조선일보}가 얻는 이익이 개혁에 미치는 악영향의 크기가 얼마이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100이다. 시민운동 단체들은 90을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90이라고 하는 손해는 개혁진영 전체의 손해이지 그 시민운동 단체의 직접적인 손해는 아니다. 시민운동 단체의 1차적인 목적은 자기네 단체 잘 되게 하자는 것이고 진짜 개혁에 기여하는 건 어디까지나 2차적인 목적이다.

이게 지금 시민운동 단체들이 저지르고 있는 바보 같은 장사의 진상인 것이다. ‘엉거주춤 시민운동’이라고나 할까? 정권도 엉거주춤이요 시민운동 단체들도 엉거주춤이니 개혁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너무 답답하다. 나만 미친 놈 되는 줄 알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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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제5중대 ‘진보’전사 홍세화 씨에게 갈채를 보내며 홍성주 2002/06/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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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    H.O.T에 대한 왜곡된 혐오증에 관하여 현제명 2002/06/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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