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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현제명
제 목 H.O.T에 대한 왜곡된 혐오증에 관하여
H.O.T에 대한 왜곡된 혐오증에 관하여

현제명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월간 {인물과 사상} 1999년 11월호에 실린 정혁 씨의 글 <`H.O.T 그 왜곡된 신화에 관하여>(이하 신화에 관하여)를 읽고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글을 전개하기에 앞서 저는 H.O.T의 팬이 아니며 TV 음악프로그램의 대부분이 10대 위주로 편성되고, 음악장르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천박한 우리의 문화시장에 불만을 느끼는 30대임을 밝혀둡니다. 저는 <신화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한탕주의적인 가요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문제 의식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글의 전개 과정에서 필자의 근거 없는 자기주장과 감정적 인신공격을 접하면서, 왜 그토록 특정 연예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은 H.O.T 비난에 대한 반론이나 그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며 정혁 씨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임을 분명히 해두고자 합니다.
정혁 씨는 그 글에서 H.O.T의 결단력 있는 퇴진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이유로는 다음의 여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H.O.T는 기획사의 꼭두각시로서 서태지의 유산을 왜곡
2) 10대들의 욕구 중 본능에만 호소해 몰이성적인 행동을 유도
3) 음악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부재
4) 최근에 발생한 한소녀의 자살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져야하며, 이를 부정하는 H.O.T와 팬들의 관계는 사이비 교주와 광신도의 관계로 전락
5) 예견되는 비참한 종말의 운명
그러면 위에서 제시된 내용들을 다시 한번 이성적으로 차분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H.O.T는 기획사의 꼭두각시(`?`)

H.O.T는 서태지 이후 가장 강력하게 등장한 기획체였다. 서태지에게 혼재했던 음악적 자의식을 완전히 거두어 버리고 서태지가 완성했던 기획력을 극대화시켰다. 그들은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노래와 춤, 그리고 조작된 이미지를 그대로 ‘연기’함으로써(그들은 기획사의 완벽한 꼭두각시다) 서태지의 유산을 가감없이 왜곡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가수 자신이 작사, 작곡, 안무 및 무대연출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가수도 꼭두각시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특히 핑클·YG패밀리·샵·베이비복스 등 기획사의 상품이라 할 수 있는 그룹 등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또 과거의 가수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작곡가가 만들어준 노래를 부르고 자기 이미지를 연출했던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예를 들어 혜은이는 길옥윤의 꼭두각시?`). 그런데 정혁 씨는 왜 유독 H.O.T에게만 분노하는지 궁금합니다.

진로 소주의 두꺼비 상표를 생각해 봅시다. 회사는 망했어도 두꺼비 상표의 가격은 엄청난 금액을 호가한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하나의 상품이 시장에 출하되어 긍정적 이미지 구축에 성공하면 그것이 비록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운동성과 생명력을 갖게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상품인 H.O.T에 대해서 너무 단순화시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아무나 다섯 명을 채워서 그들이 불렀던 노래와 춤을 추게 한다고 그러한 인기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과 장점이 그 속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요?

10대들의 몰이성적인 행동유도 혐의에 대해

그러나 H.O.T는 10대들의 욕구에 혼재된 이성과 본능 중 비열하게 본능에만 호소했다. 그들은 그들의 팬으로 하여금 몰이성적으로 싸우게 했고 그 싸움으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들은 10대들의 감수성과 신화에 대한 욕구를 한 단계 전진시킨 것이 아니라 가장 저열한 것을 극대화 시키며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채우는 부도덕을 공공연히 실현시켰다.

위의 주장이 약간이라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에 알맞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H.O.T의 어떤 행위가(노랫말, 인터뷰, 팬들에 대한 답장 등) 10대 팬들의 본능(감성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합할 것 같지 않나요?)을 자극했는지 근거 제시가 있어야 합니다. 또 몰이성적으로 싸우게 했다는데 어떤 싸움이었는지, 싸움이 있었다면 H.O.T가 그 싸움에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충분한 사례와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비열하게’ ‘저열한’ ‘부도덕을’ 등의 선동적 문구만을 나열한다면 정혁 씨는 비열하게 인물과 사상 독자들의 감성에만 호소하는 부도덕을 저질렀다는 비난이 부메랑처럼 돌아갈 것입니다.

음악인으로서의 자의식 부재에 대해

“음악성이 거세된 상태에서 팬들의 열광은 그저 광기에 불과할 뿐이며” “그러나 그들은 서태지의 두 번째 유산-대중음악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로서의 신화창조-의 체현이 불가능하다.”

이 문제제기 또한 모든 대중가수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음반사나 방송국에서 어떤 노래나 가수를 선정할 때 소위 뜰 수 있나 여부로 판단하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성(혹은 음악적 자의식) 여부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충분한 상품적 가치와 더불어 예술적 장인 기질까지 갖춘 가수가 출현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가수만 가수 생활할 수 있다고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오늘날의 대중가요에 대한 음악성 여부의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서태지와 H.O.T의 노래와 춤 그리고 팬들의 반응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 어떤 질적인 차이에 의해 한쪽은 예술성이 체현된 음악이고, 한쪽은 광기에 불과할 뿐인지 정혁 씨의 성의 있는 비교를 기대해 봅니다.  
한 소녀의 죽음에 대한 윤리적 책임

한 소녀의 자살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닌가? 그녀의 사인에서 H.O.T의 혐의는 대폭 축소되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왕따였고 가정에서는 불우했다. 우리는 이러한 객관성에 눈이 멀어 H.O.T가 상징하는 위험성을 놓쳤다. …… 그녀의 유서에 H.O.T가 아닌 교사의 체벌이 들어 있었다고 하자. 교사는 무죄인가? 죽음에 대한 시선은 ‘객관성’이 아니라 ‘윤리’여야 한다.

이 대목에서 정혁 씨가 왜 그토록 H.O.T를 혐오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는데,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주제를 제시하여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지나친 논리의 비약을 시도해, 현상에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정해 놓은 결과에 현상을 짜맞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봅시다. 철수와 영희, 길동과 순희라는 두 쌍의 남녀가 있는데 철수는 마을 처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총각이고 영희가 열렬히 짝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수가 옆 마을 갑순이에게 장가를 들기로 하자 너무나도 실망한 영희는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반면 길동과 순희의 경우 서로 혼인을 약속하고 깊은(`?`) 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길동이 갑자기 배신하여 다른 처녀에게 장가를 가자 이에 분노한 순희도 자살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과연 철수가 영희에 대해 가져야 할 윤리적 책임과 길동이 순희에 대해 가져야 할 윤리적 책임이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요? 만약 정혁 씨가 H.O.T의 노래 혹은 인터뷰 등에서라도 그들이 자살을 부추기고 팬들에게 삶의 허무를 극단적으로 주장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H.O.T에 대한 무고죄는 면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존재에 대한 정언적 동의는 쿤데라에 의해 반예술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속성으로 규정된다. 그것의 적극적 이용은 사이비 교주와 히틀러의 전매특허다. H.O.T의 공연장. 여기서 그들의 음악과 춤을 순수한 예술로 인식하기 위해서 수용자는 결코 열광해서는 안 된다. 냉담하고 관찰자적인 시선에 의해서만 그들은 예술로 인식될 수 있다. …… 그들은 환호와 열광을 통해 일상 생활 속에 앙금처럼 가라않아 있던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소되었다고 믿게되는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의 자아를 여전히 공연장에 저당 잡히고 나온다면? 현실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불순한 것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H.O.T는 그들의 빛나는 기획력으로(그것은 10대들의 불행한 시대적 환경에 기생한다) 그들에 대한 팬들의 ‘정언적 동의’를 부추겼다. 이 혐의만으로도 그들은 유죄다.

유럽의 모든 신앙 종파들 이면에는 창세기의 첫장이 자리잡고 있다. 창세기 첫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내용은 세상은 마땅히 그렇게 존재해야만 하는 것처럼 창조되었고, 존재는 선하며 그 때문에 올바르다는 것, 인간은 번식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신앙을 존재에 대한 정언적 동의라고 부르기로 하자.

5·1절 노동자의 날에 모든 학생들은 행진을 위해 아침 일찍 집합장소에 나와야 했다. 아무도 빠지지 않도록 학생간부들은 건물이 정말 비어 있는가를 조사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숨었다가 다른 모든 학생들이 떠나간 지 오래되어서야 비로소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유일한 정당이 모든 세력을 장악하고 있는 곳에서는 우리는 전적인 키취의 제국에 있게 된다. 전적이라고 내가 말할 때 이것은 키취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삶에서 추방된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정언적 동의라는 말에는 그것이 전 사회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 지배력으로부터 일탈할 때는 그 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당할 수도 있다는 심각한 현실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외 나들이를 하고 귀국할 때마다 수업 빼먹고 서대문 대로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는데 그때의 상황, 또는 평화의 댐을 만든다고 억지로 성금 내던 그 시기의 행태를 존재에 대한 정언적 동의라고 한다면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H.O.T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공연에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자기가 좋아서 열광하는 팬들의 태도를 광신도들의 광기로 매도해 가면서까지 H.O.T를 사이비 교주로 규정하는 것은 억지주장이 아닐까요?
  
예견되는 비참한 종말의 운명

그 전도된 신화의 말로는 그들 개개인에게 비참한 게 될 것이다. 80년대 New Kids On The Block을 보라. …… 그들의 노래는 이제 ‘추억’조차 되지 않는다. 그토록 열광했던 팬들은 다 어떻게 되었는가. …… H.O.T는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그들의 운명을 좇을 것이다.

위의 글은 H.O.T가 퇴진해야할 이유라기보다는 정혁 씨의 희망사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945년 해방 이래 우리 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가수들과 또 그들의 노래가 있었을까요? 그들 가운데 과연 몇이나 오늘날까지도 추억이 되고 꾸준한 팬들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못하고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나머지 가수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이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가수들이 인기가 있을 때도 있고 또 다른 가수들이 강력하게 출현하면서 잊혀질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런 걸 두고 개개인의 비참한 종말까지 언급해가면서 악담을 퍼부을 성질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정혁 씨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면 적어도 수많은 기획사의 산물로써 나타난 가수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비참한 삶을 현재 살고 있는지 사례들을 제시하고, 이 결과에 그들의 과거 가수생활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성의는 보였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정혁 씨의 글에 나타난 논리적 부족과 근거의 부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정혁 씨가 좀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H.O.T가 싫다. 왜? 그냥 싫으니까!” 라고 하면 될 걸 가지고 온갖 논리적 궤변과 살벌한 언어폭력-꼭두각시, 비열하게 10대의 불우한 환경에 기생하고, 한 소녀의 자살을 유도한 책임 등-으로 매도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정혁 씨의 글이 대중문화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대안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대중가요는 단순히 기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경호를 좋아할 수도 있고, 김정호를 좋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가수의 가창력일 수도, 외모일 수도, 가사의 내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란 다양성이 보장될 때 활발한 창조력과 예기치 않은 훌륭한 작품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용자들의 반응 또한 아주 이성적으로 분석하면서 다가서는 평론가적 자세도 있을 것이고, 몸으로 감각적으로 느끼고 반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서 서로 존중되고 자유롭게 표현될 때 우리의 문화가 한 단계 진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끝으로 월간 {인물과 사상} 편집진에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인물과 사상은 활발한 토론문화의 선구자를 자임하는 터라 명백한 사실 날조가 아닌 이상 그러한 명예훼손의 소지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라고 99년 7월호에서 공언한 바 있습니다. 적어도 타인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는 비판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타당성과 객관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기본 전제가 부재한 글이 가지고 있는 해악성은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신화에 관하여>는 논리적 궤변과 제시되지도 않는 일들을 기정사실화 하여 잔인할 정도로 특정 연예인과 그들의 팬들을 매도하고 있으며, 한 개인의 감정적 배설이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인물과 사상} 편집진은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싣게 되었는지 해명이 필요하며, 적어도 그 글을 통해 상처받았을지도 모를 여러 사람들에게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글이 {인물과 사상}에 실린 것이 아니었다면 비판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인물과 사상}은 최소한 그 정도의 분별력은 갖춘 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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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95

2002/06/27 (16:19:38)    IP Address : 165.132.120.202

458    텔레비전의 경쟁전략은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뿐이다 조 흡 2002/06/28 859
457    연예계의 ‘약육강식(弱肉强食) 이대로 둘건가? 강준만 2002/06/28 794
456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1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50
455    편집부의 글 - 소송과 관련해서…… 편집부 2002/06/27 1128
454    왜 고소당하기인가? 홍세화 2002/06/27 935
453    {중앙일보} 김영희 상무‘대기자’라는 타이틀을 버려라! 강준만 2002/06/27 1494
452    언론개혁은 제2의 민주화운동이다 강준만 2002/06/27 810
451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바람직한가? 김동민 2002/06/27 642
450    {조선일보}와 재벌개혁 강준만 2002/06/27 697
449    김대중과 ‘조선일보 코미디’ 강준만 2002/06/27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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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에 대한 왜곡된 혐오증에 관하여 현제명 2002/06/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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