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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최성일
제 목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피부로 느끼는 ‘진보’ 나는 ‘리버럴’이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지금은 이렇게 내 입장을 당당히 밝힐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러질 못했다. 1980년대 내내 ‘자유주의자’라는 일컬음은 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때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긴 적도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몰입해서 읽은 결과인데 나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경제학 철학 수고},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 책을 열심히 읽었다. {자본론}도 약간 읽었다. 그러나,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머리 속으로는 그랬는지 모르나 몸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실천의 영역과는 철저히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관념으로나마 역사의 합법칙성은 얼추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끝끝내 승인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어느 날 갑자기 안면을 바꿔 반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여지가 내게는 없다. 내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까지’ 반대하고 싶은 것은 파시즘뿐이다. 나는 반파시스트다. 자유주의에는 ‘정전’이 없다 나는 지금 적잖이 부담스럽다. 이른바 우리 사회의 ‘진보’를 비판하려고 하는데 그들에게 진 빚이 있어서다. 연극연출가 이재상 씨가 {황해문화}(1999년 겨울호)에서 지적한 대로 “지금의 이 자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얻어졌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아는 까닭이다. 아울러 ‘진보’에 대한 섣부른 비판으로 ‘적에게 유리한 증거’가 되고 싶지는 아니한 탓이다. 역시 {황해문화} 지면을 통해 유시민 씨는 이 점을 적절히 언급하고 있다. 진짜 자유주의자는 자기가 사는 사회의 극단주의 정치세력과 싸운다. 극좌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극우를 비판하는 것은 극좌의 이데올로기에 날개를 달아 주는 행위에 불과하다. 극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극좌를 비판하는 것도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 해방 50년 동안 대한민국의 진짜 자유주의자들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와 북한 체제에 대해 별로 매서운 비판의 칼을 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극우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우를 비판할 자유가 허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시민 씨의 <전투적 자유주의자들 등장하다>라는 제목의 시평을 나는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정체성에 관한 유씨의 통찰은 예리하다. “진보와 극좌, 보수와 극우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 진보는 극좌보다 보수와 잘 어울리고 보수는 극우보다 진보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맞다.” 이에 대한 근거로 유시민 씨는 존 스튜어트 밀을 거론한다. 밀은 전체주의 사회를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한 사람의 양치기와 같은 날 같은 모양으로 털을 깎이는 수천 마리의 양으로 이루어진 사회.’ 본 칼럼의 ‘피부로 느끼는’ 시리즈는 2부작이다. 지난호는 ‘보수(주의)’라는 타이틀을 걸었지만 이때 보수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극우적 경향을 지칭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호의 ‘진보’는 좌파를 가리킨다. 나는 이 땅에 극좌파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피부로 느끼는’ 2부작은 리버럴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극우와 좌파의 모습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극우와 보수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고,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인정하고 경쟁하는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사상과 문화의 영역에서 극우의 헤게모니를 걷어내야 한다”`1)`는 대전제 아래, 보수와 진보를 입에 올린 것이다. 자유주의자에게는 정전(`定`典`)이 따로 없다. 나는 유시민 씨가 거명한 ‘전투적 자유주의자’에게서 자유주의의 자양분을 얻는다. 강준만·김정란·진중권의 텍스트는 내게 자유주의의 교과서이자 참고서다. 자유주의의 젖줄은 또 있다. 나는 고종석·김규항·변정수의 책과 글을 통해서도 자유주의를 배운다. 아래와 같이 말하는 유시민 역시 분명한 자유주의의 교사다. “진중권과 김정란은 홍세화와 김규항 등 다른 ‘전투적 글꾼’들과 함께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를 창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계간과 월간 {인물과 사상}에 뒤이어 또 하나의 전투적 지식인 매체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벼운 설레임이 인다.” 아직(12월 3일 현재) {아웃사이더}는 출현하지 않고 있다. 대신 {비평과 전망}(새움) 창간호(1999년 11월)가 먼저 나와 나를 즐겁게 한다. {비평과 전망}은 가히 최초의 본격 리버럴 문학잡지라고 할 만하다. {문학과 지성}이 닦아놓은 자유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독립적이다. “권력화된 제도 저널리즘 속에서 배제되어야만 했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숨죽여야 했던 담론들을 ‘공론화’하고 ‘쟁점화’하는 비판 담론의 데이터베이스가 되겠”다는 다짐이 야무지다. {비평과 전망}은 세 명의 젊은 문화평론가`-`이명원·고명철·홍기돈`-`가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그들은 모두 1970년에 태어났다. 이에 걸맞게 잡지는 패기로 넘친다. 청신함에 더하여 {비평과 전망}의 장점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6,300원. “손익 분기점의 최저점에서” 잡지를 발행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지켜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자유주의 색채가 짙은 잡지는 하나같이 값이 싸다. 격월간으로 발행될 {아웃사이더}의 연간 구독료는 3만 원 가량 될 거라고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저번호와 마찬가지로 이번호에서도 ‘성’을 바로미터로 삼는다. 좌파는 우리 시대의 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내 관심사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뭐도 약에 쓰려면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어서다. 주지하듯이 ‘성담론’은 문화 분석의 일환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문화 분석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다름 아니다. 또,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대표되는 좌파의 비판이론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더구나, 마르크스의 원전이 금서로 묶인 사이, 비판이론이 먼저 소개된 우리 실정에서는 문화 분석에 끼친 좌파의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나는 시방 ‘풍요 속의 빈곤’을 절감하고 있다. 정작 내게 필요한 구체적인 사안-마광수에서 발원해 장정일을 거쳐 서갑숙으로 이어지는 ‘필화’ 사건-에 대한 좌파적 접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다른 비유를 하자면, 한 내실있는 도서관이 어느 월간지를 20년 치나 수집해 놨는데 내가 참고해야 할 잡지 한 권이 온데간데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성에 대한 생각을 먼저 살펴보는 게 순서일 것 같아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겠다. 다음은 내가 마르크스와 엥겔스 독서를 통해 만난 사랑과 성에 관한 인상적인 구절이다. 먼저, 마르크스의 것부터 살펴 보자. {경제학 철학 수고}(이론과 실천, 1987)에 나오는 대목이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전제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전제한다면, 그대는 사랑을 사랑과 교환하고 신뢰를 신뢰와 교환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예술적 교양을 갖춘 인간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면, 그대는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극과 격려를 주어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그대의 모든 관계는 그대의 현실적인 개별적 삶을 그대의 의지의 대상에 따라 특정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하자면 그대의 사랑이 사랑으로서 발현되면서도 상대방의 사랑을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대의 삶을 표현했는데도 이를 통해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전화시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사랑이요 하나의 불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119쪽) 이어, 엥겔스의 ‘새로운 성’에 대한 시각을 접해 보자. 출전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아침, 1991)이다. 나는 1987년에 나온 번역서의 초판을 읽었지만, 인용은 개정증보판에서 한다. 앞으로 자본주의 생산을 지양(Wegfegung)한 후에 규제될 양성끼리의 관계의 형태에 관해 우리가 지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부정적인 측면들로서, 대다수의 경우에 소멸하게 될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새로 나타나게 될 것은 어떤 것들인가? 그것은 남녀의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서, 남자는 일생을 두고 금전이나 기타 사회적 권력수단으로 여자를 사는 일이 없게 되고 여자는 진정한 사랑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동기로도 결코 남자에게 몸을 맡기지 않게 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경제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허락해 버리는 일을 거부하게 될 때 확정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출현할 때면 현재 그들의 의무로 간주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들은 조금도 애태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알 것이며, 또 이에 따라서 각자의 행동에 관한 여론을 스스로 조성할 것이다. 오직 그뿐인 것이다.(110∼111쪽) 물론, 사랑과 성을 언급한 구절이야 더 있겠지만 내가 인상깊었던 대목은 위의 둘이다. 나는 마르크스를 통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상식의 허구를 깨달았다. 사랑은 받는 것이다. 엥겔스는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이건 그대로 리버럴한 애정관이다. 애정 외적인 조건에 결부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은 남녀 평등이 전제될 때라야 가능하다는 점은 리버럴도 모르지 않는다. 다만,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나는 ‘정전’을 받드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그네들이 따르는 ‘정전’을 인용하기를 즐긴다. 그런데 그네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예컨대, “제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장 13절)를 읊조리면, 크리스천은 참 좋아한다. 반면에, 앞서의 인용문구를 되뇌랄치면, 좌파는 대체로 언짢아 한다. 마광수, {자본론}, 장정일의 독서 취향 문화평론가 김상태 씨는 그럴 경우, 언짢아 하는 정도를 넘어 화를 낼 사람일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 것은 ‘우연의 일치’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진작에 마광수와 장정일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게다가 ‘서갑숙 현상’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를 다루는데 주저함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의 생각을 좌파의 견해로 봐도 되는지 의심이 들어서다. 아무래도 김상태는 ‘가짜 좌파’ 같다. 그래서인지 부담스러웠던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1990년대 한국사회 SEX라는 기호를 다루는 사람들}(새물결, 1996)의 머리말에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표명한다. “나는 성의 해방, 성적 자유, 페미니즘의 가장 급진적인 견해들에 대체로 동조적이다. 성적 상상력이 억압되는 것에 반대하며, 일부일처제의 이데올로기적 함의들에 대해 수상하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마광수와 장정일을 심하게 씹어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김상태 씨는 “스포츠 신문은 진보적 진영 앞에 세워둔 백골단 백 개 중대의 역량에 맞먹는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먹이며,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장정일 씨보다 훨씬 막강한 마광수 씨는 그 열 배의 역량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고 한다. 이 사람들-누군가와 김상태씨-이 제정신인가! 진보의 걸림돌은 {스포츠 신문}이 아니라,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 정론지들이다. 역시 진보를 방해하는 작가는 마광수와 장정일이 아닌, 이문열과 이인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상태 씨는 전혀 엉뚱한 대상을 볼모로 삼은 것이다. 김상태 씨가 진짜 진보의 적들에게 화살을 겨눴다고 가정해 보자. 그랬으면 그의 책은 쉽게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새물결’ 출판사를 통해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마광수와 장정일의 소설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산문은 읽은 게 있으므로 그걸 매개로 김상태 씨와 다른 의견을 내볼까 한다. 김상태 씨는 마광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가자! 장미여관으로}에 대해 자신은 “솔직히 말해 그것들을 손에 들기가 겁이 났다”고 한다. 그 이유는 프로이트주의와 심리주의의 대중적 확산을 겁냈기 때문이란다. “프로이트가 대중화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섞여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고 부연하는데, 이런 식의 논리는 ‘성담론’의 확산을 만류하는 극우의 어법과 묘하게 일치한다. 김상태 씨는 “다른 독자의 마광수 씨에 대한 소감이 어땠는지” 자신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한가지는 광범위하게 동의될”거라 생각한다. “마광수 씨가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건-새디즘, 메조키즘, 신경증, 페티시즘, 황제망상 등등-그의 작품들이 학문적으로 다루어지거나 고려할 만한 실천적 의미로 접근될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 역시 보수 우익의 전형적 ‘죽이기’ 수법에 놀라울 정도로 가깝다. 그나마 보수는 마광수 교수의 학문적 업적은 인정한다. 마 교수가 정신분석에 입각해 윤동주의 작품 세계를 해부한 박사학위 논문은 국문학계의 탁월한 성과 중 하나다. 김상태 씨는 “마광수 씨는 단지 생각과 펜이 가는 데로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 중요한 근거가 마광수의 스타일이다. 내가 마광수를 처음 읽은 건 {광마집}(심상)이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난해하지만 작품들이 나름대로 실속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자유문학사)를 군대에서 읽었다. 베스트 셀러라는 선입견이 작용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의외로 얻은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마광수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책이 전달하는 정보 또한 신선했다. 나는 책에서 좋은 인상을 받으면 떠벌리는 성격이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남의 눈을 의식한 탓이다. 헌데, 나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다 읽지는 않았다. 3분의 2정도만 읽고 내 책이 아니어서 3분의 1은 안 읽은 채로 있다. 나머지 부분을 안 읽은 건 남의 눈을 의식해서 이 책이 준 호감에 대해 침묵해온 태도와 관련이 있다. 혹여 읽지 아니한 부분이 내 기대를 배반하면 어쩌나! 또한, 나는 김상태 씨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마지않는 {자본론} 역시 읽다가 말았다. 나는 1권은 독파했으나 2권은 상편의 중간쯤에서 읽기를 그만뒀다. 내가 {자본론} 읽기를 중단한 이유는 김상태 씨의 추측과는 좀 다르다. 불현듯 이 책을 다 읽어서 뭐하냐는 회의가 들어서 책장을 접었다. 회의의 근저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읽기로 했다. 김상태 씨는 아무 거리낌없이 {장정일의 독서일기}(범우사, 1994)를 폄하한다. “사람들은 장정일 씨가 대단히 독서량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화책으로 따지면 우리 국민학생도 그 독서량에 미치고 남는다. 거기엔 어떤 집착이 스며있다. 장정일 씨의 독서일기란 사력을 다해 만든 자기 이미지이다.” 독서일기에 드러난 장정일의 독서목록이 폭넓지 않은 것은 나도 아쉽게 생각하지만 그건 그대로 그의 취향의 반영으로 여기는 편이다. 리버럴은 취향을 문제 삼지 않는다. 단, 파시즘적 취향일 경우는 제외하고. 설익은 리버럴 비판 김상태 씨의 재미없는 책 {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이후, 1999)를 줄을 쳐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밑줄을 그은 대목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내용이다. 예컨대 “대중의 입장을 물적으로 경제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바라본 것이 진보성이다”라거나, “영화 자본이 한국 현대사 안에서 대중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전자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후자는 뭐든 역사 속에서 대중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표출인데 언제쯤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려나. 심지어 김상태 씨는 “강간은 어쨌든 성행위다. 즉 그에 불과하다. (…) 한마디로 대수롭지 않다는 얘기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게다가 동성애에 대한 시각은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 자신은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처럼 잔인하게-일부는 눈에 보이도록, 더 많은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도록-처우되어야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그런데, 이런 식의 접근은 그에게 하나의 패턴으로 설정돼 있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김상태 씨는 성에 결부된 모든 잘못의 책임을 리버럴에게 돌리는 생떼를 쓴다. 그의 주장이 어거지인 것은 그가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를 도매금으로 비판하는 데서 기인한다. 김상태 씨는 한국에서 ‘성담론의 문제가 정치적 자유에 속하는 점’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억지 주장은 그런 분별없음의 당연한 귀결이다. ‘마음만 맞으면 한다’는 자유주의 강령에 대한 그의 비난만 해도 그렇다. 이에 대한 반박은 연세대 앞의 서점 ‘오늘의 책’이 발행하는 같은 이름의 서점 소식지 편집장 김보경 씨의 논리를 빌려 오기로 하자. 내가 김보경 씨의 논리를 빌리려고 하는 것은 김상태 씨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대학 2년생에게 맡겨놀 참”이라는 둥의 건방을 떠는 것은 아니다. 김보경 씨보다 더 잘 말할 재간이 없어서다. 그가 진부한 리버럴리즘이라고 한 그것. “마음만 맞으면 어떤 상대하고든 섹스한다”에서 그의 강조점은 마음‘만’과 어떤 상대‘하고든’에 놓여 있다. 하지만, ‘마음만 맞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마음’이 맞는다는 것만큼 중요한 전제는 없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상대보다도 더 나은 어떤 상대도 없다. 그런 상대를 찾게 된다면, 그의 말대로 ‘인간의 빛’을 보는 관계로까지 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김보경 씨의 결론까지 빌려 온다. 김상태가 아무리 좌파라고 하더라도, 그가 아무리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그가 개인의 성적 쾌락의 윤리적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리를 주장하는 한에서 그는 또다른 파시즘이다. ‘요점정리’만 읽어도 이런 김상태 씨가 급기야 {말}(1999년 12월호)지의 지면에도 등장했다. 그것도 서갑숙 씨의 문제의 책에 대한 ‘독후감’으로. 헌데, 초장부터 약간의 불만(?)을 토로한다. “허용된 지면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 편이다. 그러니 이야말로 그냥 요점정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말 나는 못 믿겠다. 김상태 씨에게 할애된 여섯 페이지는 {말}에서 외부필자가 쓸 수 있는 최대치에 속한다. ‘요점정리’라는 어휘가 발견되어 하는 말인즉, {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가 어떤 책인지 알고 싶은 독자는 책 뒷표지에 있는 요점정리를 참고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독후감’은 요점정리가 제대로 안 된 것 같다. 예의 ‘공식’이 나타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이 그와 같은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억압이나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 특히 사법부 또는 검찰의 개입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출판의 자유는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나. 서갑숙 씨가 문제의 책을 통해 성해방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공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안검사 마냥 따지고 드는 김상태 씨의 저의가 못내 궁금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서갑숙 씨의 성체험담에서 그가 가장 문제시한 ‘초점’만 따져보기로 하자. 김상태 씨는 “서갑숙이 비범하고 만족스런 성적 쾌락을 누린 것으로, 성적 쾌락의 절정 아니면 적어도 모범적이거나 쓸 만한 양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그리고는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주의를 환기한다. 정말이지 나 같은 리버럴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다. 서갑숙 씨의 경우는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김상태 씨는 “성적 쾌락을 포함해 쾌락은 그 극한까지 추구되어야 할 것인데 궁극적인 변혁의 이념은 반드시 이것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쾌락이 편향되어 굳어진다면 이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만에 하나 서갑숙의 쾌락이 성적 쾌락의 전형으로 취급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라며 자못 심각한 척한다. 이걸 보니 생각나는 우화가 있다. 한국 대표팀이 참패한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관계자들이 우리 청소년 축구 선수를 두고 했다는 말. ‘프로그래밍 된 대로 이리저리 움직일 줄만 아는 머리가 텅 빈 로봇 같은 선수들.’ 하여간 김상태 씨는 별 걱정을 다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김상태 씨가 마광수 교수를 일컬어 한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다. “그렇게 예민하고, 현실적으로 막중한 주제를 다룰 만한 힘도 능력도 진지함도 김상태 씨는 가지고 있지 않다.” 끝으로 내가 김상태 씨를 주목하게 된 계기를 밝히고자 한다. 그건 바로 {진보평론} 창간호 광고에 실린 그의 멘트다. “나는 글쟁이다. 그리고 무어라고 말하건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입장 없는 글쓰기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평론은 바로 그 입장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것은 말하자면 만사의 핵심인 것이다.” 행여나 김씨가 {진보평론}만 구독하면 저절로 좌파가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심히 걱정된다. 레닌이 그러지 않았던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는 당비를 꼬박 잘 내는 사람이라고. 한국에는 당이 없으므로 ‘만사의 핵심’인 잡지의 구독료가 당비에 갈음한다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02

2002/06/27 (16:09:43)    IP Address : 165.132.120.202

458    텔레비전의 경쟁전략은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뿐이다 조 흡 2002/06/28 858
457    연예계의 ‘약육강식(弱肉强食) 이대로 둘건가? 강준만 2002/06/28 793
456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1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50
455    편집부의 글 - 소송과 관련해서…… 편집부 2002/06/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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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    언론개혁은 제2의 민주화운동이다 강준만 2002/06/27 809
451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바람직한가? 김동민 2002/06/27 641
450    {조선일보}와 재벌개혁 강준만 2002/06/27 696
449    김대중과 ‘조선일보 코미디’ 강준만 2002/06/27 745
448    제5중대 ‘진보’전사 홍세화 씨에게 갈채를 보내며 홍성주 2002/06/27 1028
447    ‘엉거주춤 정권’과 ‘엉거주춤 시민운동’ 강준만 2002/06/27 719
446    정형근과 신복룡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 강준만 2002/06/27 827
445    H.O.T에 대한 왜곡된 혐오증에 관하여 현제명 2002/06/27 1223
444    <H.O.T> 그 왜곡된 신화에 관해>에 관한 주석 정 혁 2002/06/27 952
443    통합방송법 통과를 지켜보며 정 언 2002/06/27 794
442    {인물과 사상} 원고 채택 기준의 엄정성을 묻는다 배복남 2002/06/27 835
441    강준만 교수와 {인물과 사상} 편집진에게 바랍니다 최연홍 2002/06/27 866
440    <저질스런 개그문화! 반드시 바꿔야 한다!!>에 대한 반론 김동일 2002/06/27 907
439    조흡 님의 ‘0양의 비디오’ 관련 글을 비판하며 SASAS 2002/06/27 1153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최성일 2002/06/27 1021
437    신춘문예 규정의 참을 수 없는 관례 하나 임영태 2002/06/27 972
436    어느 외국어학원 강사의 주체적 토익공략법 김양미 2002/06/27 894
435    이것이 교육개혁이다 홍현성 2002/06/27 923
434    파나마 운하 반환과 21세기 미국과 중남미 송기도 2002/06/27 1072
433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12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801
432    편집부의글 편집부 2002/06/28 998
431    김수환 추기경님께 강준만 2002/06/28 964
430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은 법에 의해서라도 무조건 막아야 한다 오동명 2002/06/28 1185
429    신문 개혁을 바라는 한 독자의 애절한 편지 임명균 2002/06/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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