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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임영태
제 목 신춘문예 규정의 참을 수 없는 관례 하나
신춘문예 규정의 참을 수 없는 관례 하나 임영태 │소설가·경기 안산시 본오2동 부당한 강요로서의 중복 투고 금지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언론사의 신춘문예 공모에 작품을 투고했다가 두 신문사에서 동시에 당선작으로 선정된 한 역량있는 신인 작가가 바로 그 ‘역량’ 때문에 두 곳 모두로부터 당선이 취소되었다. 그는 꿈에도 그리던 등단을 하지 못했고, 대신 온갖 모욕스런 비난의 말을 들어야 했다. 왜? 그는 같은 작품을 다른 신문사에 중복 투고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어겼던 것이다. 가장 순수하고 진실해야 할 문학이라는 길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그 첫걸음부터 요행수에 기대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노릇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점잖은 한탄으로 그 작가지망생을 나무랬다. 한마디로, 그 응모자는 도덕성 결격자라는 이야기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이런 시각과 견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다시 신춘문예의 계절이 왔으므로, 여전히 모든 언론사의 신춘문예 사고에 ‘중복 투고 사실이 발견되면 낙선 처리한다’는 서슬푸른 경고 문안이 실리고 있으므로, 그리하여 또다시 순수성을 의심받으며 졸지에 도덕성 결격자로 낙인찍힐 억울한 희생양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에 말이다. 신춘문예의 중복 투고 금지는 강자가 약자에게 자기 편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부당한 강요이다. 어째서 그런가는 신춘문예의 심사와 당선자 결정이 어떤 식의 과정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족하다. 대개 알다시피 신춘문예 공모는 매년 11월 중순경에 공고하여 12월 초순에 투고를 마감한 다음 새해 벽두 지면에 화려하게 발표된다. 보통 12월 하순이면 당선자에게 개인 통보가 가므로 실제 심사 기간은 보름 남짓이라 할 수 있는데, 신문사는 이 기간 동안에 수백 편(시는 수천 편)의 작품을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 심사를 한다. 예심은 대개 등단 십년 안팎의 비교적 젊은 문인들 서넛이 맡아 20여 편의 작품을 추리게 되고, 본심에서는 중진 이상의 문인들 두셋이 예심 통과된 작품들 중에서 대여섯 편을 걸러내 토의를 거친 다음 그 중의 하나를 당선작으로 결정한다. 모든 신문사는 저마다 심사위원의 선정과 심사 과정의 공정성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의심할 바가 없다. 자기가 아는 후배나 제자의 작품이 올라올 경우에 은근히 그 작품을 미는 경우가 혹 없지는 않겠지만,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심사는 대체로 공정하고 엄정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 공정성이 다만 절차상의 공정성일 뿐, 심사 자체의 객관성을 보증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곧, 심사위원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투고작의 작품성에 대한 판별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문학(예술) 장르 특유의 심미적 주관성에서 나오는 것인 바 굳이 ‘문제’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예술 영역의 고유한 속성으로 이해되어야 할 터이다. 예컨대 심사의 주관성은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모든 문예 공모가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는 고유한 한계(혹은 특성)인 것이며, 이는 기성 문인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 심사에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심사의 주관성은 특정하게 누구의 잘못인 건 아니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심사 전반과 당선 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 공정성의 한 함정으로 작용된다. 공정성의 함정이라는 표현이 좀 뭐하다면 우연성의 함정이라 해도 좋은데, 예컨대 한 신문사에서 당선작으로 결정된 작품이 만약 다른 신문사에 투고되었다면 떨어졌을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신문사에서는 예심에서조차 탈락된 작품이 만약 다른 신문사에서였다면 당선작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러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73년도에 모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작이었던 박범신의 {여름의 잔해}가 애초에는 예심에서 탈락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가 우연히 본심에서 발견되어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는 건 그 대표적인 일화이다. 이런 점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문예 공모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투고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당선작이 될 수도 있는 자기 작품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는 상상은 얼마나 끔찍한 상상인가. 문예 공모를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피말리는 초조감을 알 것이다. 아니, 문예 공모 이전에 문학에 대한 열정 자체가 한 사람의 생에 얼마나 심원한 갈망을 드리우고 그리하여 가끔은 속절없는 무력감에 빠뜨리는지도 알 것이다. 이렇듯 자기로서는 생을 걸고 투고하는 작품이 심사위원의 개인적 취향(이 취향은 물론 한 문학전문가의 나름대로의 안목이고 변별력이지만)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다는 상상은 그 투고자를 거의 휘청거리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자, 다시 말해 보자. 신문사 측에서는 한 작품을 여러 군데의 신문사에 중복 투고하는 것이 요행수를 바라는 안이한 자세라고 질타하고 있지만, 실상은 중복 투고를 금하므로 해서 오히려 투고자들로 하여금 의연하지 못한 요행적 심리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잠못 이루는 오랜 가슴앓이를 거쳐 잉태한 자기 분신을 드디어 신춘문예에 선보이려 하는데, 골라서 딱 한 군데만 응모하라는 엄한 경고는 이 작가지망생으로 하여금 ‘한판 승부’라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게 만들고, 결국 어느 신문사, 어느 심사위원이 자기 작품과 성향이 비슷한가를 알아내기 위해 엉뚱한 노력과 신경을 쏟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 해서 한 신문사를 골라 찍었을 때, 그가 만약 당선되지 못했다면 그 결과를 흔연히 승복할 수 있을까? 열 군데에 보내 열 군데에서 다 떨어졌다면 자기 글을 냉정히 되돌아보는 겸허의 시간을 갖게 됐을지도 모르는데, 이 경우 그는 제대로 골라 찍지 못한 자기의 노련하지 못한 (문학외적) 판단력만 한탄하며 다음엔 잘 골라야지 라고 또다시 다음번의 요행수(?)나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언론사 특유의 권위주의 신문사에서는 대체 왜 중복 투고를 금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심사량이 쓸데없이(`?``) 늘어난다는 처리상의 부담이 한 이유일 듯싶은데, 이는 오히려 좋은 작품을 얻을 기회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쪽으로 사고의 방향을 바꾸어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신문사가 진정 문학에 일말의 애정이 있고, 그리하여 이왕이면 가장 재능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중복 투고 금지가 아니라 가능한한 투고자 범위를 넓혀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자기네가 선정한 당선작이 다른 신문사와 중복 선정되었다면 낙선 처리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어져야 할 것이다. 해당 심사위원(혹은 신문사)는 먼저 자신의 안목이 객관적으로도 입증된 걸 기쁘게 생각한 다음, 상대 신문사에게 당선자를 양보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그 재능있는 작가를 자신의 발굴 신인으로 내놓고 싶어서이다. 그리하여 만약 상대 신문사에서도 똑같은 심정이어서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두 신문사에서 동시에 당선작으로 발표함으로써 그 신인 작가를 아낌없이 축하해 주는 것이다. 신문사가 정말 사심없이 문학의 축제를 후원할 마음이 있는 거라면 당연히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지금과 같은 태도는 일종의 언론사 특유의 권위주의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신문사는 이러이러한 작가를 배출한 전통있는 곳이니까 일심으로 우리 신문사 하나만 선택하거나 아니면 아예 보내지 마라! 나로선 한 작품이 여러 곳에 동시 투고되었다고 신문사가 자존심 상할 건 전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신문사들이 그런 이유로 중복 투고를 금한다고는 잘 생각되지 않는데, 그러나 한편 그런 권위주의가 아니라면 대체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였다. 당선자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하루하루 전화통 앞에서 조바심쳤고, 혹시 우편 배달사고가 있지는 않았을까, 신문사를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온갖 상상을 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말하지만 중복 투고 금지는, 가능한한 다양한 심사자로부터 보다 객관적인 검증을 받고 싶어하는 작가지망생들의 소망을 외면하는 불합리한 규정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서두에서 예를 든 그 낙선자, 아마도 문학에 청춘을 걸고 오래도록 고통스런 창작수업에 매달려 왔을 것이 분명한 그 작가지망생, 드디어 두 신문사에서 동시에 당선작으로 인정받는 성취를 이루고도 납득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영예는커녕 요행수나 바라는 도덕성 결격자로 치부되고 말았으니, 모르긴 몰라도 그 칼날이야말로 그 사람의 생애에 가장 잔인한 폭력이 아니었을까?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03

2002/06/27 (16:05:09)    IP Address : 165.132.120.202

458    텔레비전의 경쟁전략은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뿐이다 조 흡 2002/06/28 859
457    연예계의 ‘약육강식(弱肉强食) 이대로 둘건가? 강준만 2002/06/28 793
456  [월간 인물과사상 2000년 1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950
455    편집부의 글 - 소송과 관련해서…… 편집부 2002/06/27 1128
454    왜 고소당하기인가? 홍세화 2002/06/27 934
453    {중앙일보} 김영희 상무‘대기자’라는 타이틀을 버려라! 강준만 2002/06/27 1494
452    언론개혁은 제2의 민주화운동이다 강준만 2002/06/27 809
451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바람직한가? 김동민 2002/06/27 641
450    {조선일보}와 재벌개혁 강준만 2002/06/27 696
449    김대중과 ‘조선일보 코미디’ 강준만 2002/06/27 745
448    제5중대 ‘진보’전사 홍세화 씨에게 갈채를 보내며 홍성주 2002/06/27 1029
447    ‘엉거주춤 정권’과 ‘엉거주춤 시민운동’ 강준만 2002/06/27 719
446    정형근과 신복룡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 강준만 2002/06/27 827
445    H.O.T에 대한 왜곡된 혐오증에 관하여 현제명 2002/06/27 1223
444    <H.O.T> 그 왜곡된 신화에 관해>에 관한 주석 정 혁 2002/06/27 953
443    통합방송법 통과를 지켜보며 정 언 2002/06/27 794
442    {인물과 사상} 원고 채택 기준의 엄정성을 묻는다 배복남 2002/06/27 835
441    강준만 교수와 {인물과 사상} 편집진에게 바랍니다 최연홍 2002/06/27 866
440    <저질스런 개그문화! 반드시 바꿔야 한다!!>에 대한 반론 김동일 2002/06/27 907
439    조흡 님의 ‘0양의 비디오’ 관련 글을 비판하며 SASAS 2002/06/27 1153
438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최성일 2002/06/27 1022
   신춘문예 규정의 참을 수 없는 관례 하나 임영태 2002/06/27 972
436    어느 외국어학원 강사의 주체적 토익공략법 김양미 2002/06/27 895
435    이것이 교육개혁이다 홍현성 2002/06/27 923
434    파나마 운하 반환과 21세기 미국과 중남미 송기도 2002/06/27 1073
433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12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802
432    편집부의글 편집부 2002/06/28 998
431    김수환 추기경님께 강준만 2002/06/28 966
430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은 법에 의해서라도 무조건 막아야 한다 오동명 2002/06/28 1185
429    신문 개혁을 바라는 한 독자의 애절한 편지 임명균 2002/06/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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