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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강준만
제 목 『조선일보』 이규태 논설고문의 빛과 그림자
{조선일보}와 같이 한 40년

1996년 2월 22일 전북대학교 학위 수여식.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고문이 이 자리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는 학위 수여 배경 설명을 통해 “이 고문은 지난 59년 조선일보사 견습 기자로 입사한 이래 37년간 외길만을 걸어온 한국언론계의 중진으로서 언론 발전에 공헌한 바 크다”며 “특히 한국 역사를 빛낸 인물과 사라져 가는 민속들을 발굴해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 몰두하는 한편, 발굴한 전통 문물을 집성-분류해 그 존재 가치를 현대적 개념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학의 새 분야를 개척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이규태!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아예 책과 담쌓은 사람 아니라면 그의 책이나 칼럼 한번 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명예 박사 학위 받아 마땅하고 기회 있으면 한두 개 더 줘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겁난다. 내가 워낙 {조선일보}와 사이가 안 좋은 걸로 널리 알려져 혹 비아냥대는 걸로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봐 말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난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이규태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1933년 전북 장수에서 출생했다. 56년 연세대 이공대를 졸업한 뒤 단지 취직을 위해 때마침 공채 시험이 있던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그게 59년이었는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선일보} 한 우물을 지키고 있다. 현재 {조선일보}에서의 보직은 논설고문이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그건 아닐 것이다. 그에겐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라는 점이 가장 의미 있는 게 아닐까?

데스크보다 뛰어난 뉴스 감각을 가진 견습 기자

그는 기자 시절에도 남들보다 한 발 앞서가는 기자였다. 그가 {조선노보} 97년 2월 14일자 4면에 기고한 <선배들의 신문 이야기: ‘껍데기’를 뚫고 ‘알맹이’를 찾아라>라는 글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그의 뉴스 감각이 천부적으로 뛰어났다는 걸 잘 말해주고 있다.

내가 입사하여 사건 기자로서 처음 쓴 기사 생각이 난다. 용산 경찰서 출입을 했는데 원효로 종점에서 세 살 난 아기가 전차 밑에 깔린 사고가 있었다. 한데 죽었을 것이라는 대부분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찰과상 하나도 입지 않은 것이다. 경찰도 사고로 취급할 꺼리가 안 된다고 돌아와 버리고 타사의 선배기자들도 그 아기가 죽지 않았다니까 취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견습 기간인지라 현장에 가 열심히 취재하고 잣대 갖고 가서 전차 바닥의 높이를 재어보고 그 아기가 엎드렸을 때의 폭을 재는 등 하여 신나게 기사를 써냈다. 나는 중간 톱쯤 되리라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부장이 불러 세우고 ‘너 장난하는 거야!’ 일갈하더니 기사 쓴 원고지를 짜악짜악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죽었어도 1단이 될동 말동한데 …… 앞으로 헛수고 하지마?’ 하길래 ‘전차에 깔리면 죽는 것이 당연한데 왜 죽어야 기사가 됩니까. 당연히 죽었어야 하는데 죽지 않았기에 기사가 되는 게 아닙니까’ 하고 항변했지만 주변에 있던 선배 기자들의 조소거리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게 40년 전 일이다. 오늘날엔 웬만한 신문방송학과 1학년 학생이라도 당시 이규태 기자의 생각이 옳았다는 걸 알겠지만, 그 땐 그랬었나 보다. 견습 기자 주제에 그런 튀는 생각을 했으니 그의 뛰어난 뉴스 감각은 천부적인 게 아니고 무엇이랴. 이 고문은 그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기사를 쓴다 할 때 7할은 하드웨어로 쓰고 적어도 3할은 소프트웨어로 조화시킨다는 3 : 7 분할 비율을 체질화시키면 고소한 맛이 나고 독자에게 당기는 기사가 된다는 것이 나의 기자 생활에서 터득한 바요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황금 분할이다.

그 황금 분할을 가리켜 ‘이규태의 법칙’이라 해도 좋겠다. 그는 사실 그 법칙을 자신의 칼럼에서도 유효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는, 소프트웨어를 곁들이는 솜씨가 일품이다.

이제서야 이 고문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으니 그 뛰어난 솜씨에 대한 결례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간 {조선일보}의 주요 논객들을 다 해부하는 글을 썼는데 이 고문만큼은 다룰 수가 없었다. 나의 해부라는 게 주로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 해대는 것이었으니 정치적 글은 거의 쓰지 않는 이 고문의 칼럼은 나의 비판 그물망에서 저만큼 비켜나 있었던 것이다. 또 그의 전공이라 할 ‘한국학’은 나의 역량 밖에 있는 것이니 나로선 그저 멀리서 구경을 하는 것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은 그런 한계를 안고서 출발한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그냥 이 고문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음미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독학으로 이룬 ‘이규태 한국학’

이규태 고문과 관련하여 첫 번째로 이야기해야 할 것은 우리 나라 학계의 배타성과 옹졸함일 것이다. 이 고문의 작업을 가리켜 ‘이규태 한국학’ 운운해대는데, 학(學)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거냐는 비아냥이 학계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아니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발설은 하지 않는데,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학(學)의 생명은 체계인데, 이 고문의 작업에 무슨 체계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체계 좋아하시네. 무슨 건데기가 있어야 체계도 나올 수 있는 것이지 아무런 기초 작업도 돼 있지 않은 허허벌판에서 무슨 얼어죽을 놈의 체계 타령이란 말인가? 이 고문의 자료 수집과 관리는 거의 광기(狂氣) 수준의 정열로 이루어졌으며, 그건 그만의 독보적인 작업이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의 자료 정리법을 소개하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까? ‘창간특집’으로 기획된 {조선일보} 98년 3월 5일자 기사에서 김태익 기자는 이 고문의 자료 정리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규태 코너’에 대한 독자들의 커다란 관심 중 하나는 그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 활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른바 ‘이규태 분류법’이다. 이에 대해 이 논설고문은 ‘왕도는 없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 자기 개성에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논설고문의 자료들은 성격상 1만5천여 권의 책들과 노트, 색인, 스크랩, 카드, 파일 등 6 종류로 나뉜다. 이것들은 다시 내용에 따라 적, 황, 녹, 청, 흑의 5종류로 분류된다. 이 논설고문은 ‘이 세상의 모든 정보가 이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색에는 인간에 관한 모든 것들이 속한다. 예컨대 진화론에 관한 책이 있으면 적색 범주로 표시해 놓는다. 같은 요령으로 황색에는 의식주에 관한 사항, 녹색에는 동식물 하늘 환경 기상 등 자연계에 관한 사항이 포함된다. 또 청색에는 제도에 관한 것, 흑색에는 종교 문화 등 정신에 관한 것들이 속한다. 이 5색 대분류 밑에 다시 황색(자연)의 경우 동물 식물 광물 등으로 나뉘는 중분류 단위, 동물의 경우 파충류 갑각류 등으로 나뉘는 소분류 단위가 있다. 이렇게 세분해 가다보면 각 분야를 합해 1백여 종의 소분류 단위를 운영할 수가 있다. 이 논설고문이 동서고금의 자료더미 속에서 필요한 자료를 즉각 뽑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계는 이 고문의 그런 눈물겨운 노력을 먼저 인정하면서 그에게 무릎을 꿇는 게 옳다. 그리고 나서 성실한 평가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계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나는 이 고문이 학계의 푸대접에 대해 상당히 기분이 상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이 해놓은 것에 대해서는 인색하면서 정작 자료가 필요할 때는 와서 손을 벌려. 과거에는 빌려주기도 했는데 하는 꼴들을 보니 안 되겠더라구. 요즘은 안 빌려줘. 빌려가면 안 돌려주거든.({월간조선}, 1999년 5월호)

맞다. 이 고문이 한 작업의 의미는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으면서 얌체처럼 자료만 빌려달라는 사람들에겐 자료를 빌려줄 필요가 없다. 학계와 언론계 사이에 높게 쳐진 장벽을 깨부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학문엔 미래가 없다. 이 고문이 처음에 갖게 된 문제 의식도 바로 그와 유사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문과 절친한 최정호 전 연세대 교수가 {조선일보} 93년 2월 23일자에 기고한 <나의 친구 이규태>라는 글에 따르면, 이 고문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부터 ‘한국의 야나기다 구니오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야나기다는 아사히 신문 논설위원 출신으로 ‘아카데미에 속하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학문을 형성한 근대 일본의 가장 독창적인 민속학자’라고 한다. 88세까지 산 그는 36권의 전집을 남겼다고 한다. 이 고문은 88세가 되려면 아직도 22년을 더 살아야 되지만, 이미 야나기다의 수준을 넘어선 게 아닐까?

이규태의 ‘문화결정론’

이 고문의 한국학 작업에 오로지 찬사만을 보내는 것이 예의는 아닐 것이다. 우선적으로 찬사를 보내되, 학문적 차원에서 냉정한 평가를 시도해보는 게 그의 노고에 대해 경의를 보내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발행하는 {정신문화연구} 99년 여름호에 실린,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의 권숙인씨가 쓴 <대중적 한국문화론의 생성과 소비: 1980년대 후반 이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이 고문의 한국학 작업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권숙인씨는 우선 이 고문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국 문화에 대한 대중적 글쓰기에 있어 누구보다 먼저 거론되어야 하는 사람으로 이규태가 있다. 그는 한국문화론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 그는 한국문화론을 고찰하는 데 그 양(量)이나 영향력 면에서 비켜갈 수 없는 저자이다. …… 이규태의 작업이 해온 ‘기여’는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의 틀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풍속사·민속사에 대한 그의 박식함과 그러한 지식을 꾸준히 기록하여 우리가 ‘전승’으로 참고하거나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55∼56쪽)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평가다. 이후 이 고문의 한국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해온 작업의 가치를 훼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해두고 싶다. 오히려 문제는 없는 건지 그걸 살펴보는 것이 이후 이 고문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권숙인씨는 비단 이 고문의 작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중적인 한국문화론 저작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문화결정론’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화결정론은 현상에 대한 궁극적 설명으로 ‘문화’를 말하는데, 이때 문화는 맥락과 역사성이 제거된 채 주어진 것으로 제시된다. 문화적 ‘원형’, ‘진수’, ‘심층’, ‘코드’ 등의 표현이 자주 쓰이는 것도 이런 탈맥락성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본질화된(essentialized) 문화에 의한 설명은 닫혀진 논리구조 속에서 원점을 도는 것으로(‘한국 문화의 특질은 이러이러하다. 왜냐하면 한국 문화가 그렇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나아가 역사적이고 정치·경제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부분을 탈역사화된 문화로 환원시켜 버리는 오류를 가져오기도 한다. 문화결정론적 설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가 이규태의 한국문화론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서두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대해 ‘외국인과 다른 한국인의 모든 행동과 특성을 지배하고 좌우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그의 ‘문화결정론’과 ‘관념론적 문화론’의 입장을 암시하고 있다.(65쪽)

물론 권숙인씨는 뒤이어 그런 입장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늘 이 고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의 박학다식함에 감탄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불편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히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의 정치·경제적인 이유와 조건 때문에 생겼음직한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도 이 고문은 그게 바로 한국의 문화요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해버리니까 답답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게 혹 자료 수집에 대한 지나친 열정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닐까? 수집에 몰두하다보면 아무래도 생각에 등한하기 쉽다. 조금만 시간을 내고 노력을 해, 왜 그렇게 됐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면 어떨까? 이 고문의 한국학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그런 고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논쟁을 피하지 말라

이규태 고문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이야기해야 할 것은 아무리 학계에서 푸대접을 하더라도 스스로 엄격한 기준과 성실성을 계속 지켜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문제 제기가 있으면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고문에게 그런 뜻이 없는 것 같아 이만저만 안타까운 게 아니다.

이 고문은 지난 3월 5일부터 매주 {조선일보} 금요일자에 전면으로 <이규태 역사 에세이-100년의 뒤안길에서…>를 연재하고 있다. {대한매일} 정운현 기자는 {미디어오늘} 99년 4월 22일자에 기고한 <조선 이규태 고문 ‘역사 에세이’ 긴급 문제 제기 : 25년 전 기사 대동 소이/새로운 학술 성과 의도적 무시/사관 검증 필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의를 제기했다. 제목에 이미 요지가 다 들어 있어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이 고문이 침묵으로 대응한 것은 유감이다. 이 고문이 앞으로도 계속 그런 문제 제기에 침묵으로 대응한다면, 이 고문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학계의 푸대접을 정당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학계로부터의 인정과 자극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고문이 그런 자기 폐쇄적인 행태를 보인 건지도 모르겠다. 학계도 반성해야 한다. 유력 일간지엔 앞 다투어 글을 쓰려고 기를 쓰면서 언론인이 독자적으로 이룬 작업에 대해선 코웃음을 치는 이중성을 버려야 할 것이다.

지난 94년 12월에 제기된 표절 의혹에 대해서도 이 고문이 적극 대처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당시 의혹은 10월 4일자 <이규태 코너: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일본 아사히신문 9월 26일자 4면 기사 <옛 동독의 복수>를 표절했다는 것으로, 처음에 PC 통신 하이텔에서 논란이 되었었고, 뒤이어 김두루한 한말글교육학회장이 {바른언론} 94년 12월 5일자 1면에 쓴 <정신조차 일본을 따르려는가 : 이규태 코너가 일본신문 베낀 일을 보고>라는 칼럼을 통해 다시 제기되었었다.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므로 이 고문이 적극 대응하거나 아니면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여성차별 의식을 버려라

이규태 고문과 관련하여 세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성차별 의식을 뒤늦게나마 버려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다. 아니 이 고문의 나이가 있는 만큼 이제 그건 어려울 게다. 또 아들만 셋을 두셨다니 그렇게 된 사연도 미루어 짐작해 이해하련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앞으로 남녀문제에 대해선 그냥 침묵만 해주시면 고맙겠다.

이 고문이 지난 92년에 낸 {한국 여성의 의식구조}에 대해 부산대 역사교육과 정용숙 교수는 {서평문화} 93년 봄호에 <여성의 의식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제목의 서평을 기고했다.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다. {서평문화}라는 책이 널리 읽히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이 지면을 통해 정 교수의 지적을 널리 알리고 싶다. 정 교수가 지적한 세 가지 사항 가운데 마지막 세 번째 지적에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먼저 지적할 것은 본서가 여성의 신선한 자질을 발굴하겠다고 서론에서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다음으로 본서는 사실에 대한 피상적 관찰과 해석에 머무르고 있는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한국 여성이 나약한 것은 양반 사회였을 뿐 상민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면서 금운이란 용감한 기생의 사례를 들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사례만을 들 것이 아니라, 왜 그와 같은 대비적인 태도가 나타나게 되었을까에 대한 사회 원인을 구조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에 대한 의문이다. …… 저자는 평소 강한 남성 우위의 시각을 거침없이 글로 써서 세상에 공표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선입견에서 보는 한 저자가 여성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앞으로 여성의 인간적인 삶을 구현하는데 일조가 되는 방향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문이 있다.

저자는 우리 나라 모 화백이 70이 넘은 고령으로 손녀와 같은 여제자와 결혼하게 된 사실을 두고 쓴 {조선일보} 1992년 1월 21일자 칼럼 가운데서 노인들이 14∼15세의 동녀와 동침 기식함으로써 동안을 유지하고 백수를 누린 사례들을 소개하고 “노 피카소가 손자뻘 아가씨와 결혼해서 노인의 성에 인식을 달리했듯이, 이 한국의 기존 인식에 변화를 주는 결혼이라서 우러러 보이는 70대 신랑이기도 하다”라고 글을 끝맺고 있는데, 이러한 서술에서 젊은 부인을 남성의 노인화를 예방하는 데 이용되는 대상물로 전락시키고 있다.

또 1993년 2월 13일자 <왜 수컷이 예쁜가>라는 발제의 칼럼에서는 “가공할 동물세계의 우먼파워가 아닐 수 없으며 수컷 아름다운 것이 창피해지기만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라 하여, 사람의 범주에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편파적이고 여성차별적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평소의 사고가 그와 같을진대 저자가 {여성의 의식구조}를 쓰게 된 동기도 순수하게만 보기는 어렵다. 수천 년에 걸친 오랜 질곡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왜곡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 2차적 성징을, 여성 내면에 면면히 이어져 온 보석 같은 본질로 파악함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미화하고, 다시 이를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내세워 미래 여성상의 이상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남성 중심의 이해관계가 이 글을 쓰게 된 근본 동기로 오해될 소지도 없지 않다.

남성들의 일상적 대화나 혹은 주석(酒席)에서, 여성을 인간 이하로 비하하는 언동이 빈번함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전국에서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일간지의 명칼럼에서조차 여성을 물화(物化)한 상식 밖의 글들을 대하게 된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있는 한국 여성의 슬픔이기도 하다. 공인의 위치임을 인식하고 미래사회의 바람직한 방향 정립에 일조가 되는 신중한 내용의 글을 발표해 주기 바란다.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지 말라

이젠 끝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다. 이규태 고문은 {조선일보} 97년 3월 5일자에 실린 창간 77주년 특집으로 기획된 <조선일보를 만드는 사람들: ‘최신참 기자’가 만난 ‘최고참 기자’ 이규태 논설고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불의-부정에 대한 비판 정신은 영원한 기자의 덕목”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조선일보}는 그 말씀을 소제목으로 뽑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은 삼가해 주시는 게 고맙겠다. 나는 ‘한국학’과 관련된 이 고문의 선구적인 작업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 고문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훌륭한 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고문은 후배 기자에게 “한 가지 일에 미치는 탐구 정신은 영원한 기자의 덕목”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로 만족하셨어야 했다. “불의-부정에 대한 비판 정신은 영원한 기자의 덕목”이라는 말은 이 고문이 감히 감당하거나 책임질 수 있는 몫은 아니다. 굳이 자세히 설명 드리지 않더라도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들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 신문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기 분수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 이 고문까지 그래서야 쓰겠는가?

일부 독자들께서는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면서 약간 헷갈려 할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독자가 있다면 그건 자신이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보시기 바란다. 사회적 공인에 대해서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꾸짖을 건 꾸짖자는 말이다. 앞으로 계속 이 고문의 ‘한국학’이 큰 결실을 거두길 기대한다.

사족(蛇足): 골프에 푹 빠진 이규태

이 고문은 요즘 골프에 푹 빠져 있다. 언젠가 {조선일보} 사보에서 그가 역사적인(`?`) 홀인원을 한 기념으로 사내에 기념 수건을 돌렸다든가 하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정도면 왜 {조선일보} 99년 10월 19일자 33면에서 스포츠 담당 기자나 데스크가 아닌, 한국학을 전공한다는 이 고문이 프로골퍼 김미현씨와 ‘가을 정담’을 나누었는지 이해가 갈 거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 간 대화 한 토막을 인용한다.

김- 재밌는 기억은 없으신가요?
이- 필드 나간지 두 달만에 곤지암 CC에서 홀인원을 했어요.
아무 생각없이 쳤는데 데굴데굴 구르더니 구멍에 쑥 들어갔어요.
김-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는 골프 시작한 지 11년만에 올해 처음
홀인원을 했는데요.
이- 사실은 지난주에도 안양 CC에서 ‘멀리건 홀인원’을 했어요.
첫 티샷이 물에 빠졌는데 동반자들이 하나 더 치라고 하더군요.
연못앞 돌에 튕긴 볼이 그린에 올라가서 그대로 컵에 들어갔어요.
그건 홀인원이 아니고 그냥 파라고 하데요.
김- 어휴, 점점 더 기를 죽이시네요.
이- 나는 골프를 치면서 참 인생을 많이 느껴요. 왜 ‘힘 빼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실력 없는 초보자나 나쁜 버릇이 든 골퍼들이 힘을 못 빼요.
인생도 그래요. 실력도 없고, 권력도 없고,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있는 척할 때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8&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3

2002/06/28 (22:16:48)    IP Address : 147.46.116.76

428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기관지인가? 김동민 2002/06/28 960
   『조선일보』 이규태 논설고문의 빛과 그림자 강준만 2002/06/28 1156
426    박수빈의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고>에 대한 생각 이성은 2002/06/28 1233
425    박수빈의 부모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기홍 2002/06/28 1065
424    H·O·T 죽이기, 그 왜곡된 정서에 관하여 서하니 2002/06/28 1055
423    ‘여성차별철폐 협약’에 대한 최강국님의 논지를 비판하며 고은광순 2002/06/28 1043
422    법조인의 절대지존을 타파하라 서울대 공대생 2002/06/28 1199
421    대중문화와 일상에서 바라본 남녀 관계 조정용 2002/06/28 969
420    출│판│동│네│이│야│기 최성일 2002/06/28 1094
419    이도흠의 한국 대중 문화와 미디어 읽기 이도흠 2002/06/28 1247
418    새천년에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들 조흡 2002/06/28 1003
417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강준만 2002/06/28 1145
416    프란시스 후쿠야마‘스타 지식인’의 사회학 강준만 2002/06/28 1155
415    아르헨티나의 21세기와 데 라 루아(De la Rua) 대통령 송기도 2002/06/28 1159
414    어느 고등학생의 외침 허태연 2002/06/28 1343
413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황인용 2002/06/28 1287
412    내안의 고3 강정호 2002/06/28 1145
411    교육계에 불어닥친‘신자유주의’의 허와 실 이기홍 2002/06/28 991
410    TEPS 과연 무엇인가? ② 성기완 2002/06/28 1025
409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11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857
408    ‘오 기자님 힘내세요’ 위택환 2002/06/28 1133
407    김정환씨와 김창은씨의 반론에 답합니다 강준만 2002/06/28 881
406    사고(社告) ‘ 인물자료 이용 회원’ 에 관한 안내 편집부 2002/06/28 1187
405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 오동명 2002/06/28 1071
404    ‘폭로’하는 길이 중앙일보를 영원히 살릴 수 있다 오동명 2002/06/28 1009
403    TEPS 과연 무엇인가? ① 성기완 2002/06/28 1192
402    “똘레랑스” 혹은 “관용”, 그 미덕과 해악 조상식 2002/06/28 982
401    교수 정년 평생 보장? 그 황당함에 대해 김재영 2002/06/28 922
400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최성일 2002/06/28 1042
399    도청의 정치·사회학적 의미 조흡 2002/06/28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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