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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박기홍
제 목 박수빈의 부모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 기 홍 │수빈이 아빠│



수빈이가 월간 {인물과 사상}에 투고한 글에 대해 인터넷 통신란에서 그렇게 말들이 많을 줄 상상도 못했다. 아니, 그 이전에 {인물과 사상}에 그 글이 실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해 보았다. 딸애가 ‘초딩 마지막’을 보내면서 뭔가 추억에 남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 해서 투고를 허락했던 것이고, 실리지 않더라도 자기 생각을 잡지에 투고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무척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쓴 글이 내가 보기엔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물과 사상} 편집진들이 아이의 글을 싣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놀라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 즐거운 경악이었다. 누구나 자기 딸이 똑똑하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그런 차원에서보다는 아이의 글이라도 타당하게 보이면 무시하지 않는 성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런데 최근 통신란에 오르는 글들을 보면서 또다른 놀라움을 경험하고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가만히 있기엔 곤란한 이러저러한 말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겠고, 또 딸애에 대해 쏟아지는 여러 기상천외한 공격의 말에 대해 어른들을 대신해서 딸애한테 사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통신란에 오르는 글을 정리해 보면, 부모의 입장에서 의견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이 된다.

첫째, 설마 초등학생이 썼겠느냐?
둘째, {인물과 사상}에 초등학생이 이용당한 것 아니냐?
셋째, 천재 문학 소녀가 등장했다.  

이상의 세 가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설명을 하고 내 개인적인 생각 몇 가지를 피력하겠다.

설마 초등학생이 썼겠느냐?

이런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해보진 못했다. 우선은 아이가 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고, 수빈이가 글솜씨가 있다고 늘 생각해 왔던 터라 단지 어른들 소설에 대해서도 제법 눈이 날카롭구나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오해하려고 들면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어린아이에게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벌써부터 대필까지 해가면서 언론에 띄우겠는가. 자식 키우는 부모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들의 무책임한 발상이라 생각은 하지만,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또, 명색이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가 대단한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잡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지식층이랄 수 있는 고정 독자를 가지고 있고 통신에서 누가 말했듯이 {조선일보} 저격 잡지로 통하는 곳이라면서, 이런 곳에서 꼼수를 쓴다면 타 매체에서-우선 {조선일보}와 신경숙씨 측에서-가만히 있었을까?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잡아야 할 만큼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대단하고 해로운가? 그렇다면 굳이 어떤 초등학생이 투고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직접 써야지. 왜냐하면 딸애는 자의에 의해 투고를 한 것이지 {인물과 사상}에서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인물과 사상}측에서도 편집진에서 수차에 걸쳐 수빈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진위를 파악했었고 기타 언론 매체-이미 몇 개의 신문에 보도가 나갔음-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검증을 했음을 밝혀두고 싶다.

위와 같은 객관적 검증을 떠나서, 요즘 초등학생들의 수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싶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놀라웠던 몇 가지 점을 적어 보겠다.

내가 자랄 때-참고로 나는 40대 중반이다-와 비교할 수밖에 없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초등학교 5∼6학년 지적 수준이 내가 대학 1·2학년 때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더라 하는 점이다. 물론 학력 수준이야 당연히 떨어지지만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나 자기의 의견 개진 능력,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나 음악에 대한 분석 등 학력과는 상관없는 부문에서는 오히려 경직된 교육 환경에서 자랐던 우리들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나 자신도 가끔 딸애와 대화하면서 표정 관리를 해야지 자칫하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까.

한 가지 예를 들면, 수빈이네 반 숙제에 ‘주제 학습’이라는 것이 있는데, 조별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조사하고 연구해서 연구보고서·탐구보고서·체험보고서 등의 제목으로 리포트를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서부터 역사, 민속, 심지어 아토피성 피부염에서 에쵸티(H·O·T)에 이르기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6학년 올라오자마자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이 리포트를 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인터뷰(설문 조사 포함)도 하고 도서관이나 서점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자료를 다운 받고 등등 해서 마지막에는 워드 작업에 편집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사진들을 적절히 끼워가며 편집해 놓은 보고서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지금 내가 하더라도 내 딸애보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나는 대학 4년 동안 한번도 그 정도의 리포트를 써본 적도 없고 자칭 과에서 우등생이라는 친구들의 리포트도 요즘 딸애가 제출하는 것보다 못했다고 기억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초등학생을 과거-심지어 불과 2∼3년 전-의 수준에서 생각하면 낭패를 당한다는 것이다.

{인물과 사상}에 초등학생이 이용당한 것 아니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렇게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꼭 그렇게만 보여질까가 내 생각이다. 반드시 실릴 것이라는 확신은 없어도, 투고를 할 때는 매체의 성격이나 편집 방향 정도는 고려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딸애도 집에서 구독하는 일간지와 {녹색평론} 등등의 매체들을 나름으로 훑어본 끝에 {인물과 사상}이 비교적 독자란도 크고 실리는 글들도 자기 글하고 비슷한 데가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아닌 말로, 수빈이가 {조선일보}에 투고했다면 과연 실어주었을까?

여기서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분들은 수빈이가 초등학생이기 때문이지 만약 똑같은 글을 성인이나 저명한 문필가가 썼다면 그 때도 이용당했다고 생각할까? 초등학생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인격에 손상되는 말을 들어야 한다면 이는 사회적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많은 종류의 등급을 매기며 살고 있다. 고졸이다 대졸이다, 서울대다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다 없다, 어리다 아니다 등. 그러면서 자기보다 하위 등급에서 한소리 하면 버릇없다, 건방지다로 몰아붙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상의하달만 되고 하의상달은 찾아보기 어려운 풍토가 되어 버렸다.

바로 이런 풍토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거기에 물들어 있다보니 이용당했다는 표현이 쉽게 나오는 것으로 보여진다. 백 번 양보해서 어린 학생이 그러한 생각도 하는구나 내지는 신경숙에 대한 반대 의견에 동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천재 문학 소녀가 등장했다.

한마디로 고맙기는 하지만 과찬은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에 사양하고 싶다. 그리고 수빈이가 천재다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분들 가운데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모욕과 상처를 안기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는데, 수빈이가 그런 모욕 때문에 상처를 입고 안 입고를 떠나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비범하게 보이는 것에 대해 이토록 거부 반응을 보이는 하향평준화 사고를 지닌 줄은 정말 몰랐다.

어쨌거나, 내가 아는 수빈이는 요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조금 특이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조금 특이하다고 하느냐 하면-이것도 나는 당연시했기 때문에 알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알았다-첫째, 부모로부터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공부하라는 소리를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속으로야 공부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을 당연히 가진다. 그렇다고 수빈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반에서 5∼6등 안에는 드는 것 같으니까. 어떻든 내 지론은 그 유명한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일념뿐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둘째,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고 친척들로부터도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적이 없고 항상 인격체로서 존중을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책임도 항상 수반되어 왔다.
셋째, 무언가 하지 말라는 소리보다는 너 생각이 그러면 한번 해봐라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수빈이는 발레도 했고 지금은 태권도를 배우고 있지만, 이것도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이상 세 가지는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수빈이에게서 직접 들은 다른 집과의 차이점이다. 실제로 나는 지금까지 애를 키우면서 어리다는 이유로 의견을 묵살하거나 대화에서 제외시켜 보지 않았다. 수빈이가 가만있지도 않지만. 아이라도 그 나름대로 생각과 주장이 있기 때문에 일단 모두 들어주고, 어른-이때 어른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님-으로서 경험과 가치관을 들려주고 본인 스스로 사고를 잡아 나가도록 했다. 물론 이러한 점은 다른 가정과는 좀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수빈이도 저희 반 애들에 비해서 대접을 받고 있고 존중되고 있음을 항상 나와 아내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이런 생활적인 차이들이 처음엔 작을지라도 13년이 쌓이고 보면 남다른 아이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을까? 수빈이는 동네에서도 똑똑한 아이이기 이전에 예의바르고 믿음직하고 싹싹한 아이로 통한다. 이 점만큼은 부모로서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천재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부모라도 당연히 베풀어야 할 자식에 대한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본다. 수빈이보다 타고난 머리나 조건이 모자란 아이라도, 사랑을 듬뿍 주고 존중까지 한다면 얼마든지 수빈이처럼 할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수빈이의 꿈은 작가가 아니라 자기 브랜드를 가지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빈이의 글은 표현이 뛰어나거나 아름답거나 하진 않다. 다만 생각이 분명하고 깊이가 있다. 생각을 제대로 할 줄을 안다. 그리고 위트가 있다. 이것은 글재주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말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글도 문학적인 글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얼마 전 진짜 문학지에 실은 동화 두 편이 있는데 그것은 상당히 문학적이긴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글을 쓰는데 반드시 문학적일 필요가 있는가도 의문이다.

어쨌든 글을 쓴다는 것이 자기의 생각을 정리해주고 순간순간의 명상들(아이디어)을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지금은 권하고 싶다. “나에게 보다 많은 경험을 시키고 글 속에서 성장하고 싶어서” 틈틈이 쓰고 있는 소설이 잘 되었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램이다.

그 밖의 느낀 점들

나는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별로 알지 못한다. 오히려 최근 작가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요즘 유행하는 가수를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있겠다(박지윤, H.O.T, 잭키, 엄정화 등). 그 원인을 이 기회에 곰곰이 살펴보니, 크게는 우리 나라에 문화 정책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작게는 문학에 몸담고 있는 모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그 국가가 일류냐 아니냐는 인문학의 발달로 평가되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우리 나라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다. 최고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교수들은 학문의 발전보다는 어떻게든 정치 권력의 언저리에 머물 것인가--여기서 정치는 POWER집단을 말한다--에 관심이 더 많고 제4의 권력 집단인 언론은 최근 시끄러운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 집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 권력과 야합하는 언론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작품을 엄격히 평가하여 대중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야하는 평론가들이 제 몫을 못할 때 그 해독은 대중을 우민으로 이끌고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연과 학연 각종의 연결 고리에 묶여 제대로 된 평론을 못한다면 타락한 언론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영화를 잘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역사가 우리 문학의 역사보다 짧다는 것은 알고 있다. 비교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 짧은 역사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평은 비교적 정확하게 대중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다. 명작과 졸작, 예술영화와 오락영화 등으로. 관객도 나름대로 취향과 분위기에 따라 선택을 하고 있다. 우울할 땐 오락성이 짙은 영화, 이렇게 좋은 가을날엔 예술성이 짙은 영화를 나름대로의 정보를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문학을 그러한 나름의 기준으로 읽을 수 있는 정보를 우리가 제대로 얻을 수가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기껏 신문의 광고나 혹은 교묘하게 포장된 기사화 된 광고--기사 광고는 실제광고보다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일반 사기업에서도 기를 쓰고 기사화 하려고 노력한다--에 의해서밖에 얻을 곳이 없다. 당연히 그 내용은 과대포장 되고 알맹이가 없음은 기사를 믿고 책을 사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누구의 잘못일까?

바로 제대로 된 평론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과감히 말하고 싶다. 우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예술성 짙은 소설과 오락성이 풍부한 대중소설의 잣대도 분명치 않다. 신경숙의 작품이 일반 대중소설이라고 했더라면 그 나름으로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훌륭하신 분들이 좋은 문학 작품이라고 말한 데 잘못이 있는 것이다. 신경숙이 원했건 아니건 간에. 에쵸티는 에쵸티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조수미는 조수미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에쵸티를 최고의 성악 가수라고 했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는 다양성의 시대가 아니던가.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자기 자리뿐만이 아니라 남의 자리까지 차고 앉아서 내가 내노라고 하니까 문제이다. 이것을 교통정리하고 제자리를 잡아주는 사람이 평론가들인데 앞서 말한 지연, 학연 기타 등등으로 감싸고 돈다면 우리 문학은 점점 더  20∼30년대 수준으로 퇴보할 것 같다. 수빈이의 글이 잘 썼든 못썼든 간에 문단을 향해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외친 용기만큼은 정말 아버지로서 기특하게 생각한다(아마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왕 글을 쓴 김에 독자로서 두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첫째, 문학 작품도 평론을 할 때 어렵고 좋은 말 많이 하는 것은 좋은데 마지막 부분에 영화평처럼 별 숫자로 표시를 하자. 문학지에서까지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집사람 덕분에 집에 수많은 문예지가 있어도 사실 나는 보지 않는다. 하물며 문학잡지하고 거리가 먼 독자들이야 당연히 신문에 난 작품평에 의존할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신문이나 주간지에서만이라도 그렇게 하자.

예를 들면 {기차는 일곱시에 떠나네} : 문학성 ★, 예술성 ★, 오락성 ★★★, 대중성 ★★★ 이렇게 하면 누가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필요한 대로 찾아 읽을 것이고. 괜히 어렵고 복잡한 이론으로 잘 모르는 대중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지 말고, 옛날 작고하신 영화평론가 정영일씨가 그랬듯이 말이다.

둘째, 딸 덕에 PC 통신에 처음 들어가 보았는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열린 토론의 장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거의 열린 욕설의 장이었다. 꼭 구체적인 욕설을 하지 않더라도 토론 상대자에 대한 기초적인 인격적 배려가 실종되어 버리고 없다. 자기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왜 나하고 다르게 생각하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이기지 못하면 모욕이라도 해야 한다. 거기다가 제대로 자기 이름 석자 걸고 글을 올리는 사람은 몇 없고 대개가 별명을 쓴다. 어차피 얼굴이 안 보이니까 실명인지 가명인지도 확인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의 품위 예절은 온데 간데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는 말이 더러워야 오는 말이 곱다는 세상이지만, 험악하고 몰상식한 말들은 사회를 정말 좀먹는다. 꼭 뇌물 받고 부실공사하는 사람들만 파렴치한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수준 낮고 거짓투성이 말들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아보고서도 자기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반성이 안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을 자격이 있을까?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예의를 지키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개진하는 분들에게는 존경심마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인터넷 통신 하는 사람치고 이메일 주소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고, 학생들의 경우는 아예 입학하면 주소를 준다고 하므로 자기 이메일 주소를 밝히고 자기 실명으로 글쓰지 않는 사람은 게시물을 작성하지 못하도록 하면 좋겠다. 자기 이름 걸고는 하기 어려운 말이라면 말할 가치가 없는 말이 아닐까? 자기 이름으로 책임질 수 없는 말이라면 안 하면 된다. 더구나 {인물과 사상} 게시판에 글을 올릴 정도의 의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들의 인권은 너무 낮다. 친부모에게 살해되는 아이들조차 있다. 이런 와중에 수빈이의 글과 행동은 무척 돌출 되어 보일 것이고 그래서 혹자에겐 불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칙은 수빈이를 모욕할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빈이에게 어른들 세계에 끼어들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어른답게 수준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딸애의 수준이 한국 평균적 어린이의 수준이기를 바라고, 우리 아이로 내가 지극히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처럼,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가 우리 나라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비판과 미움은 다른 것이다. 수빈이의 신경숙 비판이 훌륭한 문학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듯, 수빈이의 글에 대한 여러분들의 비판이 어른들 자신의 불신과 자신감 없음에 대한 반성이기를 바란다.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사랑하면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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