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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오동명
제 목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
‘뭉쳐야 산다, 흩어지면 죽는다.’ 맹목과 획일만을 요구하며 윗것들이 아랫것들을 일방적으로 맹종하게 하는, 말로는 그럴 듯한  이 구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그래, 뭉쳐야 산다.’ ‘그래, 흩어지면 죽는다.’ 그래서 나는 정말 많이 망설였다. 나의 작은 행동이 중앙일보에 누를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나 침묵이 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지난 9월30일 저녁 9시 뉴스에 우리의 동료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사장님, 힘내세요” 하는  화면을 보고 난 직후이다. 언뜻 몇 년 전, ‘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인가 하는 딸랑딸랑 TV  코미디 프로가 떠올랐고, 그 몇몇 기자의 행동이 중앙일보 전체 직원의 뜻인 양 국민에게 오해를  심어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사장님, 힘내세요’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들이 어디  한 제조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인가! 우리가 쓰고 찍은 기사  하나하나가 여론을 창출하고, 그것은  국민성 내지는 국가의 장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런 자리에 우리는 있질 않은가. 우쭐해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자들의 책임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게다.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려거든 이런  책임감과 의무감이 먼저 앞서야 된다는 참으로 당연한 얘기를 하려는  게다. 국치의 책임자, 김영삼씨를 대통령이 되게끔 한 데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고 한, 일선 신문·방송의 정치부 기자 90% 이상의 뒤늦은 반성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나는 이런 글을 쓰기에 앞서 많이 주저했다. 나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이 있는데, 사주에게 반기를 드는 듯한 행동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주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며, 중앙일보의 장래가 걸린, 그리고 正`道를 걸어야 하는 신문의 입지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사표를 쓸 각오가 아닌, 퇴사할 결정을 하고서야 비로소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 크게 생각하자. 97년 대선 때, 우리 중앙일보 직원 상당수는  중앙일보의 이회창씨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보도에 염려하고, 걱정했었다. 또 신문 부수가 우수수 떨어지겠구나 하고. 내 개인적인 소견일지 모르나 그 이후에도 중앙일보는 정부에 대한 선의의 올바른 비판보다는 이회창 총재를 포함한 한나라당에 대한 우호적  기사가 압도적이었다고 본다. 언뜻  머릿기사만 보면, 국민의 뜻인 양 보도되었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대개가 야당인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결국 기만적인 편집으로 국민들을 호도하지 않았는가. 한나라당 한 국회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가 실리지 않자, 결국 회사를 그만 둔 선배도 있질 않은가.

작년과 재작년, 우리의 많은 동료들이 중앙일보를 떠나는 걸 우리는 목격했다. 남아 있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쯤, 고급  주택가가 늘어선 이태원동을 취재차량을 타고 오르다가 새로 건축 중인 큰 집을 보고, “어떤 개XX인지, IMF에 저 어마어마한 대궐을 새로 짓고 있는 X이 있네”하자, 옆에 차를 몰고 가던 수송부  한 직원이 “말조심해. 홍 사장 집이야!” “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회사를 떠난 동료들이 떠올려진 건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이내 착잡해졌다. 풍자가 아닌 단순한 자극으로, 비판이  아닌 저질 비아냥으로 일관된 내용의 만평만화가 한 사람을  신문업종의 도덕을 무시한 채 끌어들일  때쯤, 회사는 수십 명의 우리 동료들을 내쫓고 있지 않았던가.

또, 길진현 차장의 사전 정보에 의한 주식투자건을  들어보자. 처음엔 우리 중앙일보는 한 기자의 비리를 두고 ‘언론 길들이기’라고 펄쩍 뛰었었다. 그러나  길 차장의 불법이 드러나자, 길 차장 개인의 문제라며 중앙일보와는 무관하다는  기사를 그 아까운 사회면에  실어 발뺌하는 몰염치도 보였었다. 그때도 처음엔 ‘언론 길들이기’라고 지금의 정부를 비난했었다.

말을 줄여, 중앙일보는 일 개인의 신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홍석현 사장의 탈세혐의 고발 사건에 대한 ‘중앙일보사의 입장’의 일부분을 여기에 다시 인용해  본다. “……중앙일보는 어느 개인이나 외부그룹이 간섭할 수 없는 독자들의 신문이자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여기서 어느 개인이나 외부그룹에는 홍석현 사장과 삼성도 포함돼야 한다.

요즘 우리 중앙일보를 보자. 정치면은 뒤로 접어두고라도, 스포츠면은 골프기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체육부로 독자의 항의전화가 잦다고 한다. 골프를  몇 명이나 본다고 그렇게 많이 다루느냐고.

보광그룹 탈세사건에 대한 세계신문협회 회장의 서한을 인용한 기사 중, ‘한국의 민주주의’ 내용에 대해서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작년에 개인적으로 책을 내고 난 뒤, 곧바로 한남규 편집국장에 불려가 면담 10여분 동안 일곱 번의 ‘명예훼손 고발’의 꾸짖음을  들어야 했다. 회사의 논설위원을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로. 정당한 비판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감히 민주주의를 인용하여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탄압’이니 ‘민주주의’니 ‘독립언론’ ‘언론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 편집국 간부가 몇이나 계신지 묻고 싶다. 그런 단어가  자기 이익에 따라, 입장에 따라 변질되어 쓰여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나는, 중앙일보가 제2의 조선일보가 될까 심히 염려스럽다. 신문은 결코 권력기관이 아닐진대도 ‘대통령을 만들어 낸다’는 그 오만을 좇는 우리 나라 양대  신문의 행태에 한 국민으로서 정말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최장집 사건이 한창일 때, 조선일보에서 ‘어디 두고 보자. 정권은 2∼3년이 지나면 끝이지만 우리는 영원하다’고 했다는 말이 언론 사회에 두루 퍼졌었고, 이번에는 중앙일보의 홍석현 사장이 국세청의 조사가 시작될 무렵, ‘내 재산을 잃어버리더라도 중앙일보만 가지고 있으면 돼. 정권이 바뀌는 2∼3년 후에  보자’고 했다고 한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간부들 앞에서 이렇게 피력했다고 한다.

다 알듯이,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자기 이익에 따라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압력·권력의 기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독자들에게 욕을 먹는 게 이 이유에서라는 건 이제 초등학생도 알  지경이니까. 더욱이 우리 일선 기자들의  각종 성명서를 보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독립언론’을 자의적으로 써먹고 있는데  그저 가만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에 있다. 현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가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강력히 대응하고 항거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이전에 우리가 해 온 행태도 또한 돌이켜 봄이 우선인 줄 안다. 특히 정치 기사에 있어 극히  편파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은  우리도, 또 많은 독자(`국민`)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처럼 되어 있다. 이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저항했어야 했다. 그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번 사태를 ‘언론 길들이기’ ‘언론탄압’으로만 사실을 변질시키는 데 온 힘을 경주한다면 중앙일보 사주는 다시 살아나되, 정론의 중앙일보는 영원히 죽게 될지도 모른다. 독자와의 약속에도 위배된다. 창간 기념일이 며칠이나 지났다고 독자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려 드는가.

다시 한번 이 기회에 우리 크게 생각하자. 정말 ‘제대로 된 신문 만들기’에 힘을  모아 제2의 조선일보가 아닌, 진정 독자와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고 때로는 존경도 받을 수 있는  신문과 기자들이 되도록 힘을 모아 보자. 그러기 위해 나는 두 가지 구체적인 제안을 한다.
첫째, 현재의 편집부 권한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탁상편집은 신문이  위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갖게 하기 때문이다. 편집권의 독립은  취재기자의 기사책임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중앙일보의 가족이라기보다는 삼성그룹의 전령으로밖에 더 여겨지지 않는 송필호 전무도 이 기회에 물러나게 해야 한다. 삼성과의 진정한 분리를 위해 필요한 첫 과제라고 본다.

당장 우리는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경향신문이나  문화일보처럼 되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러나 경향이나 문화의 동료들은 신문을 자기들이 만든다는 긍지로  신명나게 일할 수 있어서 좋다고도 한다. 위기는 또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  이번 사태를 오히려 ‘제대로 된 신문 만들기’의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리 한번 크게 생각해 보자. 크게. ‘독립언론’ ‘언론의 자유’가 한 집단의 이기적 목적에 의해 변질·변용된다면 우리가 결국 얻어내야 하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언론·언론의 자유는 영원히 이 나라에서 설 땅이 없어지고 만다. 탈세 조사 이후  기자들의 대응은 이것에서 더 벗어나 있지 않다고 본다. 드골 대통령도 당선 직후 기성언론인  숙청으로부터 개혁을 시작했다지 않는가. 언론이 제4의 권부라고 하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다름  아닌 일선기자들마저 외면한 채, 오직 살기 위해 수단의 잘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목적만을 위해 행동한다면 이 또한 독자들을 우롱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근 중앙일보가 청와대의 압력사례를 1면에 싣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이것 정말 막가는 구만’ 하는 마음에 정말 염려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랄지, 고양이에 몰린 쥐가 뭐든 못하겠냐는 심정일지 모르나, 작은 이득을 위해 큰 것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까 또 염려스럽다. “신문은 어느 개인이나 외부그룹이 간섭할 수 없는  독자의 신문”이라고 며칠 전 중앙일보가 밝혔듯이, 독자들의 지면을 그렇게 함부로 광고지면화해서야  되겠는가. 먼저 독자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무엇을 해도 해야 한다. 청와대든, 한나라당이든  재벌로부터의 압력 내지 로비는 반드시 거부하고 폭로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기가 문제다. 방법이  너무 졸렬하지 않은가. 중앙일보의 기자들을 포함한 직원들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는데도, 기자들은 왜 이런 행동에  스스로 앞장서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사장님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신문은 진짜 독자들의 신문이어야 한다. 진짜 그렇게 행동하자. 말로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들지 말고.

그리고, 청와대의 압력 사례를 계속 싣는다고 한다니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문화답사기의 유홍준씨가 취재 중 불쾌했다며(`자기 말을 안 들었다며`) ‘오동명, 그 놈을 가만 안 놔두겠다’고 편집국장에게 전화했단다. 한남규 편집국장은 나를 불러 첫마디가 “왜  말썽을 피우고 다니냐”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지만 내 말보다는 유씨의 말을 믿고 내 잘못이라며 질타했다. 유씨 정도의 고자질(`또는 저질 로비`)로도 기자를 불러 그쪽 말만 믿고 꾸짖는 편집국장이 이번 사태로 청와대 압력 사례를  그대로 실으라고 지시했다면 그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정말 코미디다.

하고싶은 말은 정말 많고 많지만  각설하고, 신문사 사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들춰진 많은 비리마저도 기자들이 앞장서 ‘언론탄압’이라는  미명하에 감춰두고 막으려 든다면,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고 바라던 진정한 언론의 독립은커녕, 단지 글씨 박힌  신문지 제조업체의 직원으로의 전락을 우리 스스로가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중앙일보에는, 그리고  작년·재작년에 쫓겨나간 우리 옛  동료 중에는 이런 생각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안다. 오랜만에 한데 모아진 힘을 전환한다면 옛  동료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우리 중앙일보를 살리자고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우리들이 정당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면 말이다. 우리의 든든한 빽은 독자들이지, 돈 많은 사주나 그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

지금의 사태 대응에 많은 시민단체들마저도 냉담해하지 않는가. 오히려  탄압이라고 맞장구치는 한나라당이 참 이상한 집단이라고 비난하지 않는가. 으랏차차! 우리 ‘제대로 된 신문 만들기’에 힘써 보자. 어떤 행동이 중앙일보에 대한  참된 사랑일까 깊이 생각해 보자. 이번  기회에, 말로만이 아닌 한국의 진정한 대표 신문, 중앙일보를 만들어 보자. 모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 정정당당하게 힘을 모으자!

※`참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도 찢지 맙시다.
                                                          1999.10
                                                     중앙일보 편집국 사진부 오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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