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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최성일
제 목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나는 이동하 교수의 강준만·리영희·조세희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화방송을 통해 매주 화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칭찬합시다』는 진행방식이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칭찬합시다』에서는 사회에 모범이 될만한 칭찬 주인공들을 ‘이어 달리기’식으로 소개한다. 본래 『21세기 위원회』라는 프로그램의 개별 코너 중 하나였던 『칭찬합시다』가 ‘분리·독립’하게 된 건 무엇보다 안방으로 전달된 칭찬 주인공들의 선행이 시청자들의 콧등을 찡하게 만든 덕분이지만, ‘릴레이’ 방식의 프로그램 전개가 시청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킨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칭찬합시다』의 릴레이 방식을 독서 캠페인에 응용하는 건 어떨까? 소설가 현진건이 묘파(`描``破``-`남김없이 묘사함`)한 이래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에 가깝지 책을 권하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작금의 독서 캠페인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칭찬에 인색한 사회 분위기를 약간이라도 변화시킬 목적으로 기획된 『칭찬합시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걸 감안할 때, 책을 ‘릴레이’로 권하자는 캠페인이 우리 사회가 ‘책 권하는 사회’로 가는 발판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최근 나는 ‘릴레이’에 의해 아주 좋은 책을 읽는 흐뭇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지적 생활의 방법}에 비춰

내가 흠뻑 취해 읽은 바로 그 책 {지적 생활의 방법}(세경북스, 1998)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 건 책이 막 나오고 나서다. 교보문고 비소설 코너의 신간 판매대에 뉘여져 있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앞에서 약간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쳤다. 한 페이지라도 읽었더라면 막바로 계산대로 가져가서 셈을 치렀겠지만 어쩐 일인지 책을 펼쳐볼 ‘욕망’이 일지 않았다.
얼마 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칼럼을 통해서 확인한대로 {지적 생활의 방법}의 외관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일과는 무관했던 것이다.

더욱 폭넓은 대중독자에게까지 접근해 볼 수 있는 이 책을 너무 학술책처럼 포장해 독자는 뭔가 우리에겐 맞지 않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접근조차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 소장의 글을 읽고 구입하기는 했지만 사는 족족 읽는 건 아니라서 책은 한동안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건 {책과 인생}(범우사) 9월호에 실린 강철주 편집장의 칼럼을 보고 나서다. 강 편집장은 막연한 불신 탓에 쉽게 책장을 열지 못한 책이 막상 읽고 나면 의외의 소득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고 말문을 열면서 그 예로 {지적 생활의 방법}을 들었다.

일본책이라면 왠지 처음부터 한수 아래로 보는 이상한 선입견 때문에 오랫동안 관심권 밖에 방치돼 있다가 독서를 통해 극적으로 ‘부활’한 경우이다.

그런데 사석에서 확인한 바로는 ‘극적인 부활’에는 {출판저널} 편집장인 김지원씨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했다. 강 편집장은 김 편집장의 권유로 책을 읽은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적 생활의 방법}을 읽기까지는 세 사람의 언질이 있은 셈이다. 게다가 나까지 포함한 네 명은 이 책을 매개로 ‘이어달리기’마냥 연결된다. 이렇게. 한기호→`김지원`→`강철주`→`최성일.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할 계획을 갖고 있다.

‘릴레이’를 이어나가려는 건 {지적 생활의 방법}에서 엄청나게 많은 걸 얻어서다. 이 책은 224쪽밖에 안된다. 내용도 아주 쉽다. 하지만 한 줄도 버릴 구석이 없이 알차다. 또한 이 책은 내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지적 생활을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것도 능동적인 지적 생활을 하기로 말이다.

능동적인 지적 생활이란, 책이나 논문을 쓰거나, 신문·잡지 등 매스미디어에 의견을 종종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섣부르게나마 능동적인 지적 생활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참말로 능동적인 지적 생활을 해야겠다. 이 책은 내가 2년 넘게 미뤄둔 ‘숙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동하 교수(서울시립대 국문학`)의 논리를 비판하는 작업이다.

나는 {도서신문}(제159호, 1997년 7월 28일자, 5면`)에 ‘리영희 교수의 사상’에 대한 상반된 내용을 담은 책들을 요약한 기사를 쓴 일이 있다. 그 때 내 나름의 시각으로 이동하 교수의 논리를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건 기자의 본분에서 어긋나는 일이라는 주위의 만류가 있었거니와, 당시로서는 마땅한 대응논리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문학평론가의 역사읽기}(문이당, 1997, 이하 {‘역사읽기’}`)를 읽고 확인한, 내가 갖고 있던 이동하 교수에 관한 두 가지 정보의 진위 여부는 어떤 형태로든 담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지금껏 남아 있다.

{‘역사읽기’}는 이동하 교수에 관한 내 사전정보 중 하나를 사실로 확인시켜주었으나 다른 하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군대시절 알고 지낸 내가 속한 대대의 다른 중대원 가운데 이 교수의 제자가 있었다. 그로부터 나는 이 교수가 “꽉 막힌 선생”이라는 소릴 들었다. 그 친구는 아주 똑똑한 편이어서 나는 그의 진술을 믿을만한 정보로 입력했다. 내가 ‘감투’를 선호하는 쪽은 아니지만 그 친구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력도 정보에 신뢰성을 더해주었다. 제대하고 7년 후에 읽은 {‘역사읽기’}는 그 정보가 그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정보는 소문이었다. 나는 이동하 교수가 ㅇ대학에 있는 홍 아무개 교수와 ㄷ대학에 있는 윤 아무개 교수와 함께 고교시절, 출신학교에서 세 명의 문학 수재로 통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허나, {‘역사읽기’}는 소문의 진위 여부에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교수의 글은 나머지 두 교수의 문장과는 달리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솟는 짜증과 역증을 애써 억누르며 {‘역사읽기’}를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 되도록 읽지 않으려는 {조선일보}를 볼 때 나타나는 현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역사읽기’}와 {조선일보}를 훑으며 ‘육두문자’를 내뱉은 건 수양이 덜 된 탓도 있지만, 그네들의 주장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무슨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내세우고 있으니, 이걸 어쩌랴! 그렇다고 내가 이 교수의 문장과 세계관을 건드릴 생각은 없다. 그럴 능력이 없는 데다 ‘그냥’ 자유주의자인 나는 ‘엄밀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 교수의 ‘자유’를 존중한다.

다만, ‘방종’으로 흐르는 자유를 보고 말없이 지나쳐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고깝게 여기는 이들을 향한 이 교수의 비판은 제멋대로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다. 비평가가 응당 지녀야할 태도인 텍스트 앞에서의 ‘불신의 자발적 정지’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허나 이것들은 엉터리 반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이 교수의 반박 논리의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지 {지적 생활의 방법}에 비춰 살펴볼 작정이다.

강준만은 평범한 교수가 아니다

때마침 이동하 교수는 신간을 펴냈다. {한 자유주의자의 세상읽기}
(문이당, 이하 {‘세상읽기’})에서 이 교수는 강준만 교수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나는 이인화가 {인간의 길}이라는 소설에서 보여준 박정희관(觀)에 대해 전혀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지만, 그 점은 기회가 있으면 다른 자리를 빌려서 거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강준만을 향해 사실을 정반대로 왜곡하지 말라는 얘기 하나만 해두고 싶다. 강준만은 위에 인용한 글에서, 선입견 없이 접근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충분하다’고 수긍할 만한 수준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박정희를 미화한 ‘자료’나 ‘역사책’은 그동안 차고 넘칠 만큼 많이 나왔지만 박정희를 비판하는 ‘자료’나 ‘역사책’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우리 나라의 한심한 상황 때문에 거의 혹은 전혀 나오지 못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인데, 이것은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사실을 백팔십도로 왜곡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나 자신이 지난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만 돌이켜봐도, 선입견 없이 접근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충분하다’고 수긍할 만한 수준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를 매도한 자료나 역사책이 훨씬 많았고,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자료나 역사책보다는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자료나 역사책이 훨씬 많았다. 강준만의 독서체험이 나의 경우와 다르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나라 지식인들 대부분의 보편적인 독서체험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추측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박정희를 매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독서체험(그리고 이 나라의 지식인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공유하고 있을 보편적인 독서체험)을 실제와 정반대로 뒤집어서 내세워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126∼127쪽)

길게 인용한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소득이 있다. 이 교수는 꼭 얘길 “하나만” 해서 사람 심기를 뒤튼다. 그것도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선입견 없이 접근하는 다수의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못내 궁금하지만, 바로 이어 (`강 교수가 다수가`) “수긍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점을 나무라고 있어서 이 교수는 얼마나 대단한 근거를 제시하는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요게 뭐야! 이거보다 저게 훨씬 많았고, 저거보다 이게 훨씬 많았대나. 어라, 이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논증 방식. 진중권의 표현을 빌리면 ‘우익 똘반’ 얘들이나 즐겨 쓰는 방법인데. 어쨌든 이동하 교수는 그 이유를 “이 나라에 표현의 자유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의 서재에만도 수두룩하게 널려 있는, 박정희를 매도하는 내용의 수다한 ‘합법적’ 출판물들이 웃는다”고 말한다. 이거 참! “표현의 자유”와 “「합법적」출판물” 운운 하는 것이 무지 웃기지만, 말문이 막힌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미리 준비해둔 질문을 던진다. “이 교수님! 책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는 서재 좀 보여주시죠? 서재 공개가 곤란하시면 박정희를 매도하는 합법적 출판물들의 제목만이라도?”

나는 이동하 교수의 서재를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강준만 교수의 서재를 구경한 적도 없다. 그렇지만 “강준만의 독서체험 역시 나의 경우와 다르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이 교수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추측”은 억측일 뿐이다. 왜냐하면 강준만 교수는 “지식인들 대부분의 보편적인 독서체험”에서 벗어나는 특출난 독서체험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지적 생활의 방법}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쓰려면 50배, 100배의 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현대다”(`59쪽`). 2년전 출간된 {‘역사읽기’} 머리말에서 이 교수는 “겨우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천 매 분량의 원고가 쌓였다”며 책은 그 원고를 토대로 엮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 년에 원고지 천장은 보편적인 지식인의 수준을 웃도는 원고량이나 강준만 교수의 집필량에는 그야말로 쨉도 안되는 분량이다.

월간 {인물과사상}(`1999년 5월호`)의 말미에 수록된 목록에 따르면, 같은 기간(`9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 강 교수는 세 권의 책을 펴냈다. 그나마 이 때는 강 교수가 책을 적게 펴낸 시기에 속한다. 98년에는 개정판 한 권을 포함해 무려 11권을 출간했다. 그러려면 도대체 책은 몇 권이나 갖고 있어야 할까? 강 교수는 목록의 서두에서 “책을 많이 낸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건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지적 생활의 방법}에 따르면 그렇다.  

{지적 생활의 방법}에서는 장서와 지적 생산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왜 그토록 책이 필요하느냐 하면, 능동적으로 지적 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애독하는 것과는 달리 참조하거나 또는 알고 있어야 될 일이 많기 때문이다.(61쪽).

그리고 재능은 뛰어나지만 개인 장서가 별로 없는 학자들보다는 자질은 평범해도 개인 도서관을 구비한 학자를 높이 평가한다. 이유는 축적된 자료가 어느 시점에서 연구의 질적인 비약을 가져오는 까닭이다.      
          
사상의 ‘은사’와 ‘사은’회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다 기억하겠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마오쩌둥이 지배하던 시절의 중국에 대한-그 중에서도 특히 마오쩌둥이 주도했던 이른바 문화혁명에 대한-저자 리영희의 찬탄과 동경이다. (169쪽)

“{출판저널}이라는 잡지”가 각계 인사에게 추천을 의뢰해 선정한 ‘21세기에도 빛날 20세기 책들’속에 {전환시대의 논리}가 들어있는 걸 본 이동하 교수가 고소를 금치 못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내 보기에는 그가 ‘쓴웃음’을 짓게 된 사유라는 게 오히려 더 우습다. 상식에 어긋난 ‘막가파’식 재단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나는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된 대목은 중국을 주제로 한 글들이 아니라, 베트남 전쟁을 다룬 일련의 글들이었다. 특히, 제1부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가 가장 인상깊었다. 이동하 교수의 ‘넘겨짚기’는 제2부에 수록된 글들을 염두에 둔 걸로 보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설득력을 결하고 있다. 이른바 ‘문화혁명’을 언급한 것은 2부에 수록된 다섯 개의 글 가운데 <대륙 중국에 대한 시각 조정>이라는 글 뿐이다.

이와 관련해 {지적 생활의 방법}은 이동하 교수가 새겨들어야 할 조언을 하고 있다.

지적 정직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정말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것은 짐작으로 아는 것과는 다르므로 자기가 알고 있었던 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럴 때마다 발전 내지는 향상된다.(18쪽)

그러니까 <김학철·마오쩌둥·리영희·레닌>이라는 글에서 이동하 교수가 {전환시대의 논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김학철의 {20세기의 신화}가 같은 창작과비평사에서 출판된 걸 두고, 무슨 대단한 스캔들이라도 되는 양 비꼬는 태도는 뭘 모르고 하는 행동으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와 {20세기의 신화}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만에 하나 그렇더라도 이건 우리네 상황에서는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정치 분야로 살짝 눈을 돌려 보시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고,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가 되어있지 않은가! 또, 이동하 교수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현자의 지혜로 가득찬 책”이라는 {소수를 위한 변명}과 70년대 한국을 이디 아민의 우간다와 동일시했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 같은 문학과지성사에 나온 것도 ‘골 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골 때리는’ 일은 이동하 교수가 틈나는 대로 리영희 교수를 씹는데 혈안이 된 나머지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이다. {‘역사읽기’}에 실린 <리영희가 행한 이승만 비판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한다>는 글을 읽고 미심쩍었던 구석을 나는 이제야 풀 수 있게 되었다. 이동하 교수는 이승만 정권이 친일세력을 중용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그런데 각주에 “이 문제에 분명한 사실을 말해 주는 증거물로” 제시된 “다음과 같은 기록”에 나도 깜박 속고 말았다. 그것도 2년 넘게.
각주에는 대한민국 초대 내각의 명단이 그들의 항일 이력과 함께 나열돼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2년 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각주 전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태호 편저, {김대중의 양날개 정치}, 새앎출판사, 1996, pp165∼166.

이태호가 누군가? {김대중의 양날개 정치}가 어떤 책인가? 강준만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태호가 편저한 {김대중의 양날개 정치}는 다른 책들과 같이 지난 대선 시에 대량 살포된 책인데, 이 책이 ‘자유민주총연맹’의 이름으로 나에게까지 거저 날아와 나는 이 책을 2권이나 갖고 있다. 이 책엔 이런 내용이 있다. “강준만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서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대중씨의 후배다”.

나는 그게 이 책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주장을 그럴 듯하게 만들기 위해 그냥 소설을 쓰는 거다.  

나는 이런 책을 분명한 증거라고 들이미는 이동하 교수의 용기가 솔직히 부럽다. 그러나 이 교수가 {‘역사읽기’}에서 행한 리영희 교수 비판의 압권은 ‘사상의 은사’라는 호칭에 대한 조롱이다. 나는 리영희 교수에게 붙여진 ‘은사’(`恩`師`)라는 칭호가 당신네들이 해마다 참가하는 호텔급의 연회 장소에서 행해지는 ‘사은회’에서의 ‘사은’(`師`恩`)보다는 그 말값을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강준만 교수는 제외된다. 내가 만난 강 교수의 제자는 그를 일컬어 한마디로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의 허물부터 직시해야

소설가 조세희 선생 역시 리영희 교수와 마찬가지로 {‘세상읽기’}와 {‘역사읽기’}에서 수모를 겪었다. {‘역사읽기’}를 보자.

조세희의 {난장이……}은 상당한 수준의 교양과 감식안을 가진 독자라야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결코 평이하지 않은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한 바 있다. 그것은 당시(1970년대 후반기)의 한국 사회 속에 그만한 교양과 감식안을 가진 다수의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현상이다(그리고 당시의 한국 사회 속에 그만한 교양과 감식안을 가진 다수의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한국 사회가 과연 얼마만한 경제적 수준에 도달해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도외시하고서는 전혀 설명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만한 독자층의 형성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수준 높은 교육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 있었던 덕분인데, 수준 높은 교육의 확산은 그 사회가 전체적으로 볼 때 상당한 정도의 경제적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173쪽)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난·쏘·공}을 읽었다. 이동하 교수는 그 시기 독서를 잠시 접어두었지만 나는 그러질 않았다. 그 결과 내 성적은 중상위권을 겨우 유지했고, 꼭 그만한 수준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상당한 수준의 교양” 및 “감식안”과는 무관한 독자였다. 그럼에도 {난 ·쏘·공}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묵은 {창작과비평}을 통해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를 읽을 적에는 감응이 별로였지만 단행본은 푹 빠져서 읽었다.
신기한 것은 괄호 속의 주장이 전형적인 ‘경제결정론’ 또는 ‘경제환원론’에 가깝다는 점이다. 게다가 “전체”주의“적”인 시각마저 드러내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이 교수는 “1970년대 한국 사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전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역사읽기’}, 172쪽`)고 말한다. 나는 이 교수가 “전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이라는 식의 상투적인 표현을 자주 쓰는 게 정말 놀랍다. 우간다의 이디 아민`氏`가 놀라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氏도 놀랐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세계인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는 의심스럽다. 모르긴 해도 경제 발전보다는 정치 상황에 대해 더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발전이 아무리 자랑스럽다 한들 그걸 빌미로 우간다 국민을 얕잡아 보는 건 글로벌 에티켓이 아니다.    

{홀로 가는 사람은 자유롭다}(`문이당, 1996`)는 제목을 책에 붙일 정도로 이 교수는 ‘홀로’에 집착한다. 이 교수는 홀로 가는 사람이고, 고독한 사람이며, 단독자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 교수가 홀로 가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는 ‘홀로×홀로’ 가는 사람이다. 홀로 가고자 한다면 브란도처럼 제도권이 주는 상은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자신의 ‘홀로’ 이력이 20년 가까이 된다고 하지만, 그새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언론의 대접 역시 ‘홀로’와는 거리가 있다. 나는 {한 자유주의자의 세상읽기}의 출현을 언론 지면(`여기에는 웹진도 포함`)을 통해 알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럴 가치가 없는 책을 언론은 꽤 크게 다뤄주었다. 이런 현상은 강준만 교수의 저서에 대해 침묵하는 대다수 언론의 행태와는 크게 비교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대 언론관계에서 만큼은 이동하 교수는 외롭지 않다.

어디서 들은 얘기지만 무릇 지식인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기성찰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눈에 있는 티눈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눈에 박힌 들보를 고민하는 게 학자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8&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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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이도흠의 한국 대중 문화와 미디어 읽기 이도흠 2002/06/28 1247
418    새천년에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들 조흡 2002/06/28 1004
417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의 이상한 경제학 강준만 2002/06/28 1145
416    프란시스 후쿠야마‘스타 지식인’의 사회학 강준만 2002/06/28 1155
415    아르헨티나의 21세기와 데 라 루아(De la Rua) 대통령 송기도 2002/06/28 1159
414    어느 고등학생의 외침 허태연 2002/06/28 1344
413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황인용 2002/06/28 1287
412    내안의 고3 강정호 2002/06/28 1145
411    교육계에 불어닥친‘신자유주의’의 허와 실 이기홍 2002/06/28 992
410    TEPS 과연 무엇인가? ② 성기완 2002/06/28 1026
409  [월간 인물과사상 1999년 11월호] 인물과사상사 2002/06/26 857
408    ‘오 기자님 힘내세요’ 위택환 2002/06/28 1133
407    김정환씨와 김창은씨의 반론에 답합니다 강준만 2002/06/28 881
406    사고(社告) ‘ 인물자료 이용 회원’ 에 관한 안내 편집부 2002/06/28 1188
405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 오동명 2002/06/28 1072
404    ‘폭로’하는 길이 중앙일보를 영원히 살릴 수 있다 오동명 2002/06/28 1009
403    TEPS 과연 무엇인가? ① 성기완 2002/06/28 1193
402    “똘레랑스” 혹은 “관용”, 그 미덕과 해악 조상식 2002/06/28 983
401    교수 정년 평생 보장? 그 황당함에 대해 김재영 2002/06/28 922
   최성일의 출판동네 이야기 최성일 2002/06/28 1042
399    도청의 정치·사회학적 의미 조흡 2002/06/28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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