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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김원일
제 목 역사의 평가는 비껴 갈 수 없다
김 원 일 │김상진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정치적 계산의 냄새가 진동하는 박정희와의 화해

김대중 대통령과 박정희와의 화해를 적극 응원하는 김동민 교수의 주장이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과, 개인의 이익을 떠난 용기 있는 발언임은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시류에 몸을 담그기 전에 몇 가지 꼭 기억해 보았으면 하는 지난날들의 교훈이 있다.

좁은 시야에서 비롯된 단견과 경박함, 조급증은 정말이지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는 특징적인 성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단견과 경박함, 조급증은 어디서 왔는가? 해학과 기지가 넘치던 우리 민족의 정서가 어째서 조급한 짜증의 정서로 바뀌게 되었을까? 나는 그 이유가 역사 안에 들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오직 경제성장을 위해서 다른 것들은 돌보지 않고 달려온, 그 시절이 우리에게 남겨준 흔적은 아닐까?

우리가 김 대통령의 박정희와의 화해에서 정치적 계산의 냄새를 맡는 것은 결코 경박한 사고 때문은 아니다. 우리편이 아니면 절대 손잡지 않겠다는 편견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과연, 박정희 기념사업의 국가적 지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속 좁은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그 내용들이 타당한지 세세히 들여다보자.

박정희와 유신잔재를 청산하는 일은 역사학자에게 맡겨두고, 대통령은 국가적으로 기념사업을 지원하면 동서화합에 도움이 된다는 김동민 교수의 주장은 한마디로 몰역사적인 발언이다. 결코 이 시기의 박정희 기념사업이 동서화합의 시금석일 수는 없다. 박정희와 유신잔재의 청산은 단지 현 시기의 정치적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피를 흘리며 세워온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의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이다.

일제 잔재 청산의 실패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산되지 않은 역사 속의 모든 악이 여전히 뒤엉켜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자본주의가 아닌가? 이러한 과거에 쌓여온 악의 청산 없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을 말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곧 이런 악의 청산 과정이라고 본다. 역사적 평가의 핵심이 인적 청산에 있다고 한다면 박정희를 놔두고 유신 잔재 청산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김동민 교수야말로 이 시대에 성취해야 할 과제에 조급함을 보이지 말고, 시대와 역사를 좀더 길게 보았으면 한다. 해방 후 5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친일인명사전’을 만든다고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기나긴 시간이 걸렸지만, 역사는 결코 비껴 갈 수 없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 모든 권력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은 모두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에겐 역사를 신뢰하고 기다릴 줄 아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박정희 기념사업에의 김 대통령의 참여가 동서화합에 도움이 될 것처럼 착각하는 김동민 교수가, 오히려, 짧게, 눈에 보이는 정치적 성취를 이루려는 이들의 시류에 영합하고 있다는 점을 알기 바란다.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퍼뜨린 잘못된 상식을 기초로, 오도된 채 깊어져 온 우리 모두의 허물이다. 그것은 허구적 추상이 구체적 현실까지 좌지우지하는 웃지 못할 우리의 현실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여론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을 진실한 민의(`民``意`)라 할 수 있을까?

지식인과 언론은 비판적 시각으로 여론의 길잡이 역할을 잘 하여, 후세에 유신시대와 같이 인권과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파시즘 사회가 돌아오지 않도록 방파제가 되어야 하지, 오도된 여론에 힘입어 허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선 안 될 것이다.

화해에 앞서 ‘청산’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박정희 기념사업의 국가적 지원이 동서화합을 위한 노력이라고, 그런 김 대통령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많은 국민들은 뻔히 보이는 정치적 술수가 아니냐고 짐작하는 걸까? 이제야 동서화합을 이루게 되었다고 감동 받는 국민이 어째서 없는 것일까?

동서화합의 주체는 그로 인해 혜택받고, 피해 입은 국민들이어야지, 상징일 따름인 정치인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동서화합이라면, 동서분열이 일어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동서의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반목을 했던가? 정치인들의 모략으로 굳어진 동서분열이 정치인들의 제스처로 허물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김동민 교수는 화해의 당사자로 박정희로 대표되는 유신 세력과 TK를 한 축으로 삼고, 나머지 한 축으로 민주화운동 세력과 호남을 삼은 듯한데, 진정한 화해라면 입장이 대등한 관계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대등해 본 적이 없다. 한 쪽은 하늘이었고 다른 한 쪽은 그 밑에서 굴종을 요구받던 땅이었다. 우리가 화해의 손을 내밀고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는데, 그게 도대체 어떤 위치란 말인가?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라도 되었는가? 그저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한 일부가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직도 인권3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시절의 피해자인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의 국회 앞 천막농성은 여전히 처절하게 외면당했다. 그 노인들의 단식이 얼마나 계속됐던가? 화해를 말하기에는 청산되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을 뿐더러, 피를 흘리며 싸워온 민주열사와 유가족에 대한 국가적 지원조차 없다. 서글픈 현실이다. 진정 복권되어야 할 자는 박정희인가, 아니면 민주화운동에서 피 흘린 사람들인가……. 화해는 누구와 누가 해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 김 대통령은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큰 수혜자일 수 있다. 백 보 더 양보해서, 김 대통령이 국민과 더불어 진정 피해자, 희생자들의 눈에 맺힌 눈물을 먼저 닦아주었다면 그깟 역사가 무어야, 하고 박정희에 대한 ‘나쁜 기억’을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도 있겠다. 대통령이 정녕 국민적 화합을 위해 용단을 내렸다면, 어찌 국민들 속에서 관용이 샘솟고 감동이 치받쳐 화합과 용서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화해라는 말은 적당치 않다. 해방 이후 친일 잔재로부터 유신 잔재, 군부 잔재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쓸어버리지 못한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지식인이라면, 화해를 말하기에 앞서 ‘청산’할 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동서화합이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인가를 생각해보자. 물론, 동서화합 없이는 남북통일이 온전할 리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심지어 남북통일까지도 동서화합의 품안에 수렴시키는 논리는 위험하다. 우리에겐 기억에도 생생한 한때가 있다. 그 시절엔 모든 것이 국가안보라는 말속에 파묻혔다. 인권과 민주적 가치는 고개도 내밀지 못했다. 소위 북풍이 한번 불고 나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추위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따뜻한 봄날이 오나 했더니 동풍이 불고 있다. 안보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보(`핵심은 반공`)만 지키면 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는 결국 정권안보로 귀착되고 말았다. 남북통일과 21세기를 앞두고 동서화합을 하자는 주장은 지당한 말씀이지만, 동서화합 주장 이면에 안보논리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폭력이 도사리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동민 교수의 내심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 요구로 탄생된 김대중 정권이 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본다. ‘젊은 피’들의 줄서기도, 허튼 소리도 아니다. 진짜 충정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나는 김 교수가 역사와 민중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놓치지 말고 굳게 부여잡길 바라는 것이다. 분명 김동민 교수의 발언은 용기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이런 진지한 주장은 계속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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