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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김동민
제 목 진보정당은 진보적인가?
김동민(한일대 교수·신문방송학)


무늬만 진보 아닌가?

지난 8월29일 진보정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있었다. 당명은 민주노동당으로 하고 연말까지 창당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보적인 정당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진보정당이 반드시 성공해서 우리 사회를 일보 ‘진보’시켜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보수정당만 존재해서는 진보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과거 수차례 시도했던 진보정당이 참담한 실패를 거듭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대중의 정서가 그다지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는지 의문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미 입증이 되었다. 무늬만 진보로 포장한다고 해서 진보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최소한 개혁적인 측면에서도 철저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87년 대선에서 민중후보를 추대한 이후 88년 민중의 당, 90년 민중당, 97년 국민승리21에 이르기까지 이 흐름을 주도한 사람들이 진보적이었느냐는 것이다.

민중당을 보자. 백기완씨가 진보적인 인물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우재씨는 어떤가?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하는 까닭을 조목조목 설명했더니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란다. 이부영 이재오 김문수 정태윤 등이 하는 작태들은 또 어떤가? 정말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작태들을 저지르고 있다. 이부영 의원은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내가 저런 개새끼들을 위해서 정치를 해야 해?”라며 망발을 했다고 한다. 그래, 제발 정치 그만 둬라.

이념적으로 투철하지 않고 정의감 하나로 버티는 경우 그 당시에는 진보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 있으나 상황이 바뀌면 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목표를 상실한 이들은 ‘진보’ 또는 ‘개혁’이라는 상징을 앞세워 직업정치인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무늬마저 진보적이지 않게 되며 최소한의 양식과 양심을 지킨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보수 반동의 대열에까지 합류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 진보정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다를까? 아직은 의문부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활동의 결과만이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한 가지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본다면 『조선일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지하철 파업 때 『조선일보』의 왜곡 보도에 분노했던 경험이 있으니 알아서 잘 하리라고 믿어보겠다.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 배포나 기고 등에서 『조선일보』를 다른 언론매체들과 동등하게 대우하느냐 달리 대하느냐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강령기초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면면을 보면 『조선일보』에 당당하게(?) 기고했던 이들도 눈에 띄어 걱정은 된다. 나 자신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지만, 진보정당이라면 『조선일보』는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리라고 믿는다. 왜냐고? 그걸 모른다면 진보의 깃발을 내리고 당장 그만 두는 게 좋겠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의 정치 노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막연하게 개혁 노선이 조금 더 철저하다고 해서 진보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진보의 무늬를 입힌 개혁적 보수정당일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이건 정말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다. 진보정당은 한나라당보다는 국민회의를 투쟁의 타깃, 또는 주된 경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공동대표를 비롯해서 반DJ 인사들이 적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독자들은 권영길 대표가 지난 97년 대선의 군소후보자 TV 토론에서 이회창 후보보다는 김대중 후보 비판에 열을 올렸던 사실을 상기해 보시라.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8월29일의 발기인대회에서 발표한 발기취지문에서 “진보정당은 재벌지배 경제체제를 해체한 뒤 사회적 소유를 기본으로 하며,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결합한 민주적 경제체제를 수립할 것”이라고 밝히고, 결의문을 통해 민중 기본권 확보 및 실업문제 해결 등을 위한 사회복지예산 20% 확보, 정리해고제 철폐, 재벌해체 특별법 제정,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군축 및 군사비 삭감 투쟁,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다짐했다. 모두 다 좋다. 정말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론이다. 목표만 훌륭하면 뭐 하는가? 방법이 그르면 모두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아예 시도하지 않으니만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강령이 진보적이고 원칙만을 기계적으로 주장하고 투쟁의 수위를 높인다고 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원칙과 전술에 심각한 문제

진정한 진보정당은 이념적 원칙에 투철하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세 판단이 객관적이고 정확해야 한다. 사적인 호불호(好不好)가 개입돼서는 안 되며, 주적과 전술적 연대의 대상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추진위는 심각한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추진위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준비5호에는 보수정치권의 정계 개편을 비판(난)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1면 표지에서의 제목은 <개혁 위장한 보수·지역 연합구도>였다. 2면으로 넘기면 <늙은 보수 짝짓기… 젊은피 줄서기, 국민회의 맴돌던 정치지망생 등 개혁 세력으로 분칠… ‘진짜’ 창당은 진보정당이> 라는 제목이 보인다. 제목에서 표현된 점만을 보아서는 비판의 대상이 국민회의라는 것이 명확히 나타난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아야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곁다리로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달리 생각하면 국민회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진보적이라는 정당이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국민회의를 감싼다면, 가뜩이나 아직까지도 색깔공세를 펴는 보수 반동들에게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진위가 그렇게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원칙적으로 따져보기로 하자.  

이 기사는 “새로울 것이라곤 전혀 없는 ‘신당’ 창당론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면서 DJ의 신당 창당, 이회창의 제2 창당 선언, YS의 PK 중심 신당설, 충청권 신당설 등 정계의 신당 창당 논의들을 거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의 공통점은 “본질적으로는 ‘보수’와 ‘지역’을 기반으로 하되 개혁이라는 포장지를 그 위에 덮어씌우고” 있으며, “「새로운 피」를 수혈 받아 보수정치권의 강장제로 쓰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또 내년 총선용이라는 공통점도 있다고 한다. 그 아래로 나머지는 모두 국민회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국민회의는 이 같은 보수지역 연합구도를 은폐하고 개혁을 앞세우면서 재야 및 시민단체 인사들과 전문가들을 대거 끌어들이는 ‘전술’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최근 신당 참여를 선언한 국민정치연구회와 젊은한국 등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에는 『조선일보』에 너그러운 인하대 정영태 교수(정치학)와 추진위의 노희찬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집권세력의 기만적 정권 재창출을 위한 움직임에 대항하고 민중 중심의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창당되는 신당’인 진보정당도 8월29일 준비위 출범과 연내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은 진보정당 창당의 당위와 계획을 선전하기 위해 국민회의를 공격한 셈이다. 개혁을 위장한 보수 지역연합이라는 국민회의의 기만적 정권 재창출 움직임을 진보정당이 차단하면 누가 정권을 잡을까? 민중정권? 웃기는 소리다. 진보는 고사하고 개혁마저 물거품이 되고 다시 보수주의와 지역주의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그리 되면 또 그나마 진보진영의 입지도 위축되고 말 것이다.

국민회의와 대적하는 기사가 또 하나 있다. 제목은 <노무현 ‘지역감정 정면돌파’ 선언은 허구였나>이다. 노무현 의원을 겨냥하는 까닭은, 부산 출마를 선언한 노 의원이 하필 부산 연제구 출마를 선호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지역은 박순보 전 전교조 부위원장이 14, 15대 총선에서 진보진영 후보로 출마해 2위를 기록했던 곳으로 진보정당이 기대를 걸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자신의 지역구였던 동구를 피해 오랫동안 진보의 터전으로 일궈온 곳에 무임승차하려 한다느니, 당선가능성만을 쫓아 부산행을 결심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노 의원이 당선가능성만을 생각했다면 종로를 떠날 결단을 내렸을까? 그리고 동구가 됐건 연제구가 됐건 부산에서 진보정당이 표적으로 삼아야 할 상대가 국민회의여야 할까? 나는 이 대목에서 이회창 총재의 후삼김시대론을 연상하게 된다.

이회창 총재의 후삼김시대론과 진보정당의 네거티브 전략

3김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3김과 3김 비판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판의 맥락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자. 누가 무엇 때문에 비판을 해왔는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3김을 비판해왔던, 또 하고 있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들의 지금 행태는 또 어떤가? 80년대에 3김 낚시론을 부르짖었던 김동길 교수는 한때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추한 모습을 연출하였고, 최근에는 김영삼 전대통령을 집에서 맞아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오래 전에 주장하기로 진즉에 낚시나 하고 지내야 했을 사람과 정치적 회동을 했던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김동길 교수는 얼마나 진보적이었던가?

양 김을 비판하며 야권통합의 기수처럼 행동하던 박찬종씨는 또 어떤가? 야권통합의 기수 박찬종. 그것은 독재정권 시절, 독재정권의 나팔수였던 보수언론이 만들어준 기만적인 이미지였다. 사실 그는 야권분열의 기수였다. 그는 결국 97년 대선을 눈앞에 두고 그토록 비난했던 김영삼씨 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뛰쳐나왔다. 그밖에 DJ를 사기꾼으로까지 매도했던 고 제정구씨를 비롯해서 숱한 반DJ 정치인들이 노리는 것은, 독재정권이 만들어놓은 반DJ 정서에 영합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영남지역 출신들이다. 이를테면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편승하려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지형이 별 변동이 없는 구조에서 김영삼씨의 준동을 기화로 하여 이회창 총재가 소위 후삼김시대라는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모두가 스스로 실력을 양성하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국민의 신임을 얻으려 하지 않고 실력자를 헐뜯고 깎아내려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안이한 네거티브 전략에 기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해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된들 나라꼴이 무엇이 되겠는가?

진보정당추진위원회도 똑같은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나는 3김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고 진보정당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주의에 기반하는 가부장 정치는 청산되어야 하고 진보정당은 성공해야 한다. 다만 진보정당에 바라는 것은 과거의 민중당과도 다르고 네거티브 전략에 의존하는 구태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여 큰 그림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겠다. 어느새 진보의 기치는 색이 바래고 조직의 생존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일이 벌어져서도 안되겠다. 제2의 이우재, 제2의 이재오 등을 배출하는 것으로 막을 내려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혁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진보진영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를 먼저 가져주기를 바란다. 진보의 원칙만을 강조하다가 개혁마저 좌절시키는데 일조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9&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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