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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김정환
제 목 통합 방송법 제정과 관련한 강준만 교수 비판
- 통합 방송법 제정과 관련한 강준만 교수 비판

김정환(skywalker@hananet.net)


‘개혁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변질시킨’ 강 교수의 ‘당파성’

이런저런 이유로 통합방송법 제정에 대해 강준만 교수가 월간 {인물과사상} 7월호에 쓴 글을 뒤늦게 읽게 됐습니다. 그리고 몹시도 당황했습니다. 강준만 교수가 내세우는 당파성으로 인해 개혁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변질시킨 지식인의 폐해가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그 글에서 강준만 교수는, 통합방송법 제정에 반발하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권력의 방송 장악 음모’라는 구호에 대해서 시큰둥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간 눈부신 방송 민주화 투쟁을 해”온 방송 노조의 “그 빛나는 투쟁은 늘 외부로부터 부당한 압력과 탄압이 가해질 때에 한해서 일어”났으며, “스스로, 주도적으로 방송개혁을 시도한 적은 없”기 때문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그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만큼 전폭적으로 신뢰할 만한 세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강준만 교수는 MBC의 민영화 주장을 예로 “방송을 보는 바깥의 싸늘한 시선”을 전달하며 신문을 제대로 비판, 견제하지 못하는 “방송의 노예 근성이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또 “한국 방송의 근본 문제가 제도보다는 조직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방노련, 언노련이 방개위를 중간 탈퇴한” “식의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이 앞으로 먹힐 수 있을 것인지 냉정히 따져볼 일”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강준만 교수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뒷부분에 가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발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KBS 박권상 체제와 김대중 정권의 1년을 비교한 뒤, 매우 위험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100% 찬성”하지만 그것은 “조건부 찬성”으로, “50년만에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는데도, “방송의 구질서는 (아무런 인적 청산도 없이) 그대로 온존”해 “그 방송에게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 독립을 허용”할 경우 “50년 묵은 구질서를 옹호하고 수호하는 색깔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50년 묵은 구질서를 어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으며, “개혁의 방법은 민주적이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고 “국민에게 크게 생색낼 수 있는 일도 아니”므로, 김대중 정권은 “역대 정권들처럼 방송을 정권홍보의 도구로 이용하는데 만족하겠다는”, “그러니까 방송 자체의 민주적 개혁은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방송민주화 세력은 김 정권이 안고 있는 그러한 고민과 딜레마적 상황을 냉철히 꿰뚫어보고 그에 따른 대안까지 제시하는 안목과 슬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준만 교수는 충고하고 있습니다.

강 교수의 ‘김대중 정권의 개혁성향에 대한 과신’

그럼 이 같은 주장은 왜 위험할까요? 강준만 교수의 당파성이 개혁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준만 교수는 자신의 여러 글에서 더하거나 빼지도 않고 김대중 지지라는 자신의 당파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강준만 교수는 그 같은 당파성이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호남 차별과 김대중 죽이기·남북 통일 등의 분석을 통해, 근거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강준만 교수는 이른바 지식인들에게도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스스로의 당파성을 분명히 나타낸 뒤 발전적인 논쟁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글쓴이 역시 이 같은 태도에 공감하는데, 적잖은 사람들이 찬성을 하고 있어 강준만 교수는 일정한 지분의 문화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번 글에서 찾아볼 수 있듯, 강준만 교수의 당파성이 때때로 도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통합방송법 제정과 관련해 방송 노조의 주장은 흔히 말하는 자사 이기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것인 측면이 분명 강하게 있습니다. KBS 예산권과 MBC의 공적 기여금 문제 등이 두드러진 예입니다. 그렇다면 강준만 교수가 비판하며 문제를 제기해야할 부분은, 방송 개혁의 원칙일 것입니다. 자본과, 특히 권력으로부터 독립되고, 공영성을 담보하며, 사회 공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틀 말입니다. 한마디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여전히 권력에 장악돼 있는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방송 노조와 관련 단체들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지적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방송 제 몫 찾아 주기’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준만 교수는 그 같은 질타 대신, “방송의 완전한 독립 허용이 가능한지 따져볼 일”로, “현 정권이 방송이나마 장악하지 않고 정권 유지가 가능할”지 회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방송 개혁보다는 정권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강준만 교수는 왜 이렇게 판단하고 있을까요? 바로 “구질서는 그대로 온존하고 있으며 구인물들은 재빠른 변신을 보이곤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색용 정권홍보 영역에서만 그럴 뿐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개혁적”이며 “그런 반개혁적 성향은 기존의 ‘장악’ 방식으론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듯한 분석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엔, 김대중 정권의 개혁성향-일부에서 김대중 대통령 자신의 독선과 오만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하는-에 대한 과신이 담겨 있습니다. 즉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대통령이 돼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왔고, 그 기간 동안 군부독재 정권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투사 출신 대통령에게도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개혁을 담보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민주적이며 도덕성이 강한 정권이기에, 게다가 50년 동안 유지돼온 옛 체제와 인물들이 아직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어 우군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방송 개혁은 필요 없거나, 적어도 미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겨레』·언론 단체, 그 ‘당파성’과 ‘방송 개혁’의 함수관계

이같이 개혁이 아닌 정권을 위한 당파성의 또다른 예로 최근의 방송법 파업에서 보여준 『한겨레』와 일부 언론 단체의 모습을 들 수 있습니다. 권력의 손아귀에서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KBS와 MBC, 그리고 방송위원회 노조가 벌인 이번 연대 파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었습니다. 즉 통합 방송위원회 구성의 독립성 문제, 방송위원회 위원장과 공영방송 사장 선임 검증 장치 마련,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등 5가지를 요구하고 나섰는데, 하나같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필요한, 방송 개혁의 핵심들입니다.(이번 파업과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의하겠습니다. ‘통합 방송법 제정과 방송 노조의 연대 파업’과 관련한 강준만 교수의 글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7월 16일자 <방송노조 파업을 보며>라는 사설에서 대단히 반개혁적이고 친권력적인 내용을 담으며 파업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개인의 의견을 실은 칼럼과 달리 사설은 그 언론사의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인 만큼 이 사설은 경악이었습니다(사설이 실린 며칠 뒤 『한겨레』에 항의 방문을 간 방송 노조에게 김 근 논설주간은 그 사설이 개인의 의견이 아닌 논설실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파업의 정당성이나 준법성을 따지기에 앞서 방송 파업이 이제 막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나라 형편을 어렵게 하는 악재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는 이 논리는, 지하철 노조 등의 파업 때마다 ‘시민을 볼모로 했다’며 몰매를 가한 보수적인 대다수 신문들의 주장을 고스란히 베낀 것입니다. 사설은 또 “노사 동수의 편성위 구성이나 인사청문회 도입은 현 단계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적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거나 “통합방송법은 우리의 현실 여건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에서 대체로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라며 누가, 언제, 어디서 주장했는지는 빼먹고 익명성을 내세워 파업의 명분을 갉아먹고 있습니다(놀랍게도 이 같은 수법은 모두 ㅈ 일보의 주특기입니다).

문제의 사설에 대해 할 말은 더 있지만 이 정도로 그치고, 그럼 무엇이 『한겨레』를 이렇게 했을까요? 『한겨레』 편집국의 기자들과 간부들이 보수 우익으로 기울어서일까요? 아니면 방송 노조의 파업이 반개혁적이어서 그럴까요?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한겨레』가 친 DJ적이라는 요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 『한겨레』는 ‘북풍’이나 ‘50억원대 보궐선거’ 같은 자칫 정권에 충격을 줄 수도 있는 특종을 많이 했습니다. 언뜻 『한겨레』가 바뀐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한겨레』는 결코 방송 개혁을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DJP 연합정권의 한계, 즉 김대중 대통령을 밑에서 받쳐줄 수 있는 개혁 세력이 탄탄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방송 독립을 주장하는 노조의 파업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시점에서는 개혁의 우군이 필요하므로 방송 개혁은 필요 없거나 적어도 미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 기울어져 있는 『한겨레』의 당파성이 지난 88년 창사이래 최악의 사설을 낳은 것입니다.

이와 함께 언론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태도 역시 당파성이 방송 노조의 파업을 발목 잡은 적나라한 예입니다. 민언련(이사장 성유보)의 경우 파업 초기부터 방송 노조의 요구 사항에 대해 적극적인 동감을 표시하면서 지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방송 노조의 연대 파업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예상했던 대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파업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민언련은 발벗고 나서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280여 개의 시민단체로 이뤄진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개련(공동대표 김중배)은 민언련과 다른 견해를 보이며 처음에는 파업에 대한 지지를 유보했습니다. 결국 공대위에 참가는 했지만, 활발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기본적으로 언개련이 방송 개혁보다는 신문 개혁에 더 치중하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다른 무시 못할 이유는, 언개련은 친DJ적인 성향이 짙은 인사들이 이끌고 있다는 것입니다(거꾸로 민언련 측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이 많습니다). 당파성 때문에 방송 독립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역설을 가져온 것입니다.

강 교수께 드리는 질문 두 가지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먼저 김대중 정권이 정말로 개혁적이고, 개혁을 제대로 하고 있냐는 물음은 놔두고, 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해 봅니다. 아무리 민주적이고 도덕적이며 개혁 성향이 강하다 하더라도,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언론, 그것도 대중적인 영향력이 신문보다 훨씬 큰 방송을 손아귀에 넣고 있는 정권이 올바른 것일까요? 정말로 제대로 된 자신 있는 정권이라면, 방송을 권력의 품에서 풀어줘 공영성을 확보하도록 도와주고, 그 결과로서 개혁의 우군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로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한 공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공약이란 것도 못 지킬 때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못 지키게 되면 그에 대한 설명과 사과를 해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KBS의 공영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사장과 방송위원 선출 과정에서 정치적 입김을 배제하겠다, 특별 검사제를 도입해 각종 의혹이 짙은 사건을 맡도록 하겠다, 인권위원회를 만들어 인권 시비를 없애겠다 등의 획기적인 약속을, 이제 대통령이 됐다고 모른 체 하려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개혁은 전리품이 아닙니다. 개혁은 김대중 정권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산소호흡기와 같습니다.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국민의 성원을 얻지 못할 때, 국민의 정부는 빈사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 정권이 부실한 개혁 세력의 기반 확대와 보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이유로 방송을 계속 장악하려 하거나, 정권의 정통성이 이전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워 방송 개혁을 유보하고 조건부로 찬성한다면, 방송을 정권 홍보의 앞잡이로 이용한 이전의 정권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같은 문제점을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려 하거나 오히려 정권의 주장을 강변하려는 강준만 교수의 입장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그토록 파괴하려는 성역과 금기를 만드는, 너무나 위험한 장난인 것입니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insa&page=9&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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