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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죄선일보 > 월간 인물과사상이 파헤친 죄선일보 - 1998년4월호~2000년9월호


이 름 김창은
제 목 강준만 교수와 {인물과사상}은 이현우씨에게 사과하라
김창은(학생, Georgia Tech)


이현우씨는 월간 {인물과사상}1999년 2월호에 국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국어의 계급성’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나는 이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주장에 찬성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국어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보자는 것이다.

왜 국어에 대한 문제는 지금까지 ‘표준말을 씁시다’말고는 논의된 일이 없는가? 정말 이상하게도 모든 국민들 사이에서 국어와 나라와 민족이 동일한 것으로 간주돼 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복거일씨나 고종석씨의 영어공용화론이 좋은 대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기에 쌍수 들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라는 게 순 어거지에 유치하기 짝이 없다. ‘아니 어떻게 감히 나랏말을…….’ 도대체 ‘표준말을 씁시다’말고 국어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놈은 다 매국노라는 말 어디에 이성이 있고 논리가 있는가?

이런 현실에서 {인물과사상}이 국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엄청나게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우리 민족의 성역과 금기였던 국어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외부인사들의 글을 싣기 시작한 것이다. 고종석, 이현우, 최준혁, 조우형씨의 글이 차례로 실렸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싫어하는 ‘연고주의’, ‘계급주의’, ‘치정주의’의 모든 근본 원인일지 모르는 국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고종석, 이현우, 조우형씨 등은 국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해결방안도 한두 가지씩 내놓았다. 대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국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필자나 지면은 문제제기를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월간 {인물과사상} 3월호에 실린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에 대한 반론>은 강준만 교수와 인물과 사상에 대한 기대와 어려운 논의를 시작해준 데 대한 나의 고마움을 싹 가시게 하기에 충분했다. 강 교수나 {인물과사상} 편집진은 ‘외부 필자나 독자들의 글은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다’고 말해선 안 된다. 내가 김현중씨의 위의 글에서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반론이라고 써놓은 글에 논리는 하나도 없고 원래 반박하고자 하는 글을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며 거칠기만 한 문장으로 읽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그의 논쟁 태도이다.

나의 글의 제목은 <강준만 교수와 월간 {인물과사상}은 이현우씨에게 사과하라>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각자가 가진 논리력이나 문장력, 정신적 수준이라는 것은 수평적으로 분포되어 있건 수직적으로 나열되어 있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김현중씨가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든지 그건 그 사람 자유라는 말이다. 그러나 논리나 논증은 하나도 없고 원래 반박하고자 하는 글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며 기본적인 예의까지 결여된 이런 글을 반론이랍시고 공식적인 지면에 올린 것은 더 큰 책임을 져야하는 사항이다. 강 교수와 {인물과사상} 편집진이 이현우씨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현중씨의 글을 읽어가며 왜 내가 이 글에 대해서 이렇게 혹평을 서슴지 않는지 설명해 보기로 한다.

월간 인물과사상 2월호에 실린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라는 글을 읽고, 이현우씨가 겪었으리라고 상상되는 수많은 정신적 피해와 불합리함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도 그 논리의 편협함과 민족언어에 대한 폄하를 참을 수가 없어서 펜을 든다. 이씨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결국 국어에서 반말을 없애버리자는 것인데, 그 이유는 제반의 사회문제가 반말을 사용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현중,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에 대한 반론>

첫 번째 문장에서 그는 이현우씨의 “논리의 편협함과 민족언어에 대한 폄하를 참을 수가 없어서 펜을 든다”고 했다. 김현중씨는 이현우씨의 글 어디에 “민족언어에 대한 폄하”가 있는지 어떤 논리가 그리도 편협한지 정확히 말해야 한다.

두 번째 문장에서 그는 자신이 이현우씨의 글을 요약했다고 했지만 이건 이현우씨 글의 요약이 아니다. 이현우씨가 “결국 국어에서 반말을 없애버리자”고 했나? 나는 지금 김현중씨에게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강준만 교수와 월간 {인물과사상} 편집진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현우씨의 글을 강준만 교수와 편집진도 읽었을 것이다. 이현우씨의 결론 부분에서 몇 문장만 인용해보자.

그럼에도 유감스럽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온 국민이 나면서부터 젖은 말과 생각을 고치는 건 하늘이 두쪽 나도 불가능하다.…… 먼저 되도록 경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건상 그게 안 될 경우 완전한 반말인 ‘해라’보다는 ‘하게’나 ‘하지’를 사용하는 게 좋다.
(이현우,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

이게 반말을 없애자는 얘긴가?

이씨가 의문을 제기한 존대말과 반말의 생성 원인에 대해 필자 또한 대답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씨가 ‘단죄’하듯이 “계급주의와 권위주의의 구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성된 것이라고는 보지 않으며 우리 민족이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는 언어학상의 통설만을 알고 있음을 밝힐 수는 있다.

“먼저 서열을 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라고 했는데 그러면 먼저 서열을 정하면 대화가 가능한가? 오히려 어려워하거나(아랫사람) 가소로워서(윗사람) 대화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밖에도 상대방보다 힘이 세니까 반말을 하고 약하니까 존대를 한다느니, 폭력이 악순환되고 경쟁력이 저하된다느니 하는 주장들은 모두 반쪽의 진리밖에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한 주장을 했다면 어쭙잖은 선동이 되는 것이고, 모르고 한 말이라면 통찰력을 좀더 기를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습니’다.(김현중,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에 대한 반론>)

“‘먼저 서열을 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러면 먼저 서열을 정하면 대화가 가능한가?”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한다. {인물과사상}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자격이 있다면 이현우씨에게 대신 사과하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잘 읽어보시길 바란다. 이현우씨가 “먼저 서열을 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라고 했을 때 그는 우리가 언어 구성상 말하기에 앞서 서열을 정해야만 한다는 불합리함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유분수지 “그럼 먼저 서열을 정하면 대화가 가능한가?” 이게 할 말인가 말이다. 더 웃기는 건 그의 다음 문장이 오히려 이현우씨가 주장한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려워하거나(아랫사람) 가소로워서(윗사람) 대화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맞다. 내말이 그말이다. 그래서 이현우씨가 바로 국어의 그런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어쭙잖은 선동”이라는 둥, “통찰력을 좀더 기를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둥 할 말 안 할 말 다 하고서 오히려 이현우씨가 지적한 국어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반론이 이래도 되나? 이제 또 어려운 비유 문단이 나온다.

약간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러한 면에서 어설픈 진보주의자보다는 멋모르는 보수주의자 쪽이 그나마 낫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존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다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악화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만히 놔둬도 나빠질 걸 뭐하러 힘을 빼나. (김현중,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에 대한 반론>)

도대체 왜 이현우씨를 어설픈 진보주의자에 비교했을까? 왜 그가 어설프다는 걸까? 멋모르는 보수주의자는 누굴까? 가만히 놔둬도 나빠지는 건 우리 사회인가? “어설픈 진보주의자”인 이현우씨가 기존의 나빠질 사회를 더 적극적으로 악화시킨다는 말 같은데 한국어의 계급성을 없애려고 노력하면 왜 사회가 적극적으로 악화되나? 물론 아무 설명도 없다.

이건 단순히 힘 빼는 사람만 생각해주는 발언이 아니다. 차라리 그렇게 뺄 힘의 근원이 되었던 밥을 “하급계층”으로 고통받는 노숙자에게 주었다면 이 얼마나 숭고한 계급성의 타파인가. (김현중,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에 대한 반론>)

이게 말인가? 강준만 교수와 편집진에게 다시 한 번 묻겠다. 이게 말인가? 도대체 제정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무지막지한 글을 공공의 지면에 올린 순 없는 거다. 이건 이현우씨에 대한 아주 심한 욕이다. 김현중씨에게 되돌려줄 더욱더 심한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너 그렇게 힘 빼지 말고 그러려고 먹은 밥, 노숙자에게나 주라고 말하는 건 정도를 벗어난 언어폭력이다.

한국어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글들이 다양한 반론을 접해야 함은 물론이다. 나는 사실 영어공용화를 무지 찬성하는 사람이었지만 최준혁씨의 <고종석의 언어관에 대한 반론>을 읽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최준혁씨의 주장에는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어서 영어공용화는 너무 이른 성급한 대안이라는 데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그가 복거일이나 고종석을 마치 매국노처럼 모는 것과 국어가 가진 문제점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점은 참 답답하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가자는 말이다. 같이 문제를 생각해보고 해결방법이 있는지 고민해보고, 토론해보자는 얘기다. 그러나 김현중씨의 글은 공공의 지면에 올리기에는 논리, 논증, 예의가 많이 부족하다.

왜 이렇게 나는 이 글에 흥분했는가? 내가 김현중씨의 짧은 글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이 글은 나를 포함한 {인물과사상} 독자들에게 ‘{인물과사상}은 말이 되든 안되든 무조건 말을 거칠게 쓰기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구나’하는 의심을 심어준다. 실제로 이 글을 읽고 나는 한 달간 {인물과사상}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래서야 인물과사상이 추진하는 다른 좋은 일들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가 있겠는가?

둘째, 이건 강준만 교수나 편집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정말 어렵게 고개를 들기 시작한 국어에 대한 문제제기의 싹을 싹둑 잘라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이런 글이 나올까봐 이후부터 국어에 대한 논의를 한 글은 사실 읽기가 겁났다. 독자 입장에서 이 정도인데 이현우씨는 필자의 입장에서 {인물과사상}에 국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는가?

마지막으로 국어의 문제점에 대한 이현우씨와 다른 필자들의 계속되는 논의를 기다리며, {인물과사상}이 국어에 대한 논의의 완급과 선후를 중간에서 잘 조절해서 이 문제를 토론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중심 역할을 맡아 주길 바란다.
저질스런 개그 문화!
반드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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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8 (18:38:43)    IP Address : 147.46.1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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