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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신문모니터
제 목 [민언련] 조선일보가 독재자를 옹호한 까닭
민언련 홈페이지의 <언론개혁 핵심 조선일보 관련 기획모니터>에서 퍼왔습니다.  

피노체트에게서 박정희 향수 느꼈나

독재정권이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의 하나로 언론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당시 조선일보가 보여 준 보도행태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의 그런 보도행태가 외국의 독재자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1.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 관련 보도

박정희식 경제개발 이룬 ‘위대한 칠레의 아버지’

“우리나라에서 내 명령 없이는 나뭇잎 하나라도 움직일 수 없다.” 봉건시대의 절대군주가 한 말이 아니다.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법정에 서서 ‘인간 도살자’로서의 죄상을 낱낱이 자백해야 할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해 있다. 우선 73년 그가 주도해 일으킨 쿠데타 시기에 5천명~1만5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에도 도살은 계속되어 3년 동안 3천명이 더 살해됐다.

그의 집권 기간에 줄잡아 칠레 국민 10만명이 장애자가 되었으며, 1백만명이 외국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월간조선> 96년 10월호 기사에서 김용삼 기자는 칠레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남미 여러 나라들 중 칠레 국민들이 가장 애국심이 강하고 군인과 공무원이 청렴결백하다는 점에 감명을 받게 됐습니다.”

사실 최근의 상황을 빼곤 조선일보에서 피노체트 철권통치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론하며 독재정권을 합리화하는 듯한 논조가 더 자주 눈에 띈다. 조선일보 93년 10월 6일자 <미래로 뛴다―신세계 신전략 ‘용들의 전쟁’―칠레편>(김철 국제부장)에 등장하는 “오늘 칠레의 번영이 전임 17년 군사정권의 실적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는 대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기사만 읽은 독자라면 틀림없이 피노체트를 ‘훌륭한 통치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조는 <월간조선> 96년 3월호 <아옌데의 사회주의 실패를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로 극복했다>(김용삼 기자)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기사에는 “칠레의 지식인들은 의외로 피노체트 장군을 ‘위대한 칠레의 아버지’라고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라거나 “중남미의 모범국으로 경제적 약진을 거듭하는 오늘날의 칠레는 피노체트 없이는 불가능했음을 그들은 인정하고 있다”라는 등의 표현이 나온다. 비록 칠레 지식인의 시각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전두환 찬양을 연상케 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이는 그대로 확인된다.

“피노체트 장군은 청교도적인 강직성으로 부정부패와는 담을 쌓았다. …피노체트는 부패하지 않은 유일한 군사정권 … 피노체트 장군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회 기강을 잡아나갔기 때문에 칠레국민들은 법을 어기거나 탈세를 상상조차 않는다.”(월간조선 96년 3월호)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월간조선>을 통해 ‘인간 도살자’ 피노체트를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박정희 대통령을 숭배했던 피노체트”라거나 “칠레의 경제약진 속에는 박정희가 자리잡고 있다” 등의 대목에서 조선일보의 의도는 어느 정도 드러난다.

이 기사에는 “지난 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 당시 피노체트가 전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고 애도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러한 ‘피노체트와 박정희의 상관성 찾기’ 속에서, 피노체트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조선일보의 ‘박정희 살리기’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혐의를 거두어들이기 어렵다.

조선일보가 피노체트를 미화하는 이유를 조선일보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응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앞의 <월간조선> 96년 3월호 기사에는 아옌데 정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칠레 국민과 의회가 아옌데를 선택한 대가는 혹독하고 참혹한 것이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이러한 평가가 급기야 군사쿠데타의 정당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위의 월간조선 기사와 <주간조선> 98년 1일 1일자 <과거청산보다 경제개혁 매달렸다>에는 각각 “50년 동안 정치불개입의 전통을 지켜 온 칠레 군부는 이 상황을 외면하지 않았다”와 “아옌데 정권 실정을 보다못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대와 무장 세력을 동원해 체제 전복을 시도한 것이다”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피노체트에 대한 조선일보의 우호적 시각은 피노체트가 국제적 심판을 받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98년 11월 26일자 기사에서 피노체트가 “경제기적을 이루고 오늘날 ‘현대 칠레’의 토대를 갖춘 공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조선일보는 “우익독재를 휘둘렀던 피노체트는 과거 3천여 명의 희생자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하는 죄과가 있다고 해도”라는 전제를 달긴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본심’은 98년 10월 20일자의 “피노체트가 아니었다면 오늘과 같은 ‘남미의 경제 우등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대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 관련보도

부처님 얼굴을 연상케하는 ‘박정희의 화신’

박정희의 화신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월간조선> 96년 9월호는 한 기사에서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잔잔한 미소는 꼭 부처님의 얼굴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는 표현도 나온다. 페루에서도 박정희가 ‘부활’한 것이다.

이 기사는 후지모리가 ‘페루판 유신’을 통해 통치기반을 강화한 것,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에 연임된 것 등을 예로 들며 “박정희의 통치술과 너무나 흡사하다”느니 “큰딸에게 퍼스트 레이디 역을 맡긴 것과 어찌 그리 닮은 꼴”인지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후지모리를 “기적을 일으키는” 대통령으로까지 칭송했다.

그러나 <월간조선>이 이처럼 극찬한 후지모리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테러 진압이라는 미명하에 숱한 인권유린을 자행한 독재자다. 그것은 세계적인 인권단체들이 증언하고 있는 객관적 사실이다. 80년부터 92년까지 페루에서는 2만6천1백49건의 정치적 살인이 발생했다고 한다. 국제사면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이 가운데 보안군 등 정부가 개입한 경우는 무려 53%에 달한다. 후지모리는 95년에도 게릴라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생 10명을 무단 학살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트 워치도 90년 이후 반군 가담 혐의로 체포된 1천4백명 중 무고하게 수감된 사람이 1백20∼7백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에서 이런 내용들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페루의 박정희’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후지모리는 92년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를 해산하였으며 일부 방송국을 폐쇄하고 모든 신문을 검열하였다. 또한 연임이 금지된 헌법을 고쳐 95년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3선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헌법재판소 판사들을 모두 교체하는 반민주적 폭거를 자행했다.

외형적인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민주주의를 압살한 철권통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에 대해 <월간조선> 96년 9월호 기사(김용삼 기자)는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쿠데타에 대해 “사사건건 정부정책에 제동을 거는 국회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미 93년 <미래로 뛴다―신세계 신전략 ‘용들의 전쟁’―페루편>(김철 국제부장)이라는 기사에서도 “후지모리 경제개혁의 토대는 그가 뿜어 내는 엄청난 정치 역동성, 람보형 개혁 드라이브”에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물론 정치적 기반이 없던 후지모리가 높은 지지율을 얻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후지모리 개인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 우선 전체 인구의 12%밖에 되지 않는 백인이 GNP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페루의 상황이다.

다수를 이루고 있는 가난한 유색인종들의 백인들에 대한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들의 지지율만으로 후지모리의 개발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완전 소탕되었다던 게릴라의 활동이 재개되고 잠재적 실업률이 80%가 넘는 등 불평등한 사회적 모순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후지모리가 박정희와 닮은 건 부인하기 어렵다.


3.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관련 보도

용맹과 절도로 경제기적 이룬 ‘개발의 아버지’

지난 32년간 철권통치를 펴다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에 밀려 물러난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 그는 65년 쿠데타 성공 이후 공산주의자 처단이라는 명목으로 50만 명의 양민을 살육한 학살자이기도 하다. 75년에는 강제적 병합에 저항하는 동티모르 원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했던 그는 독재통치와 부정부패 끝에 결국 인도네시아를 경제파탄으로 이끌고 말았다.

그런 그를 조선일보는 82년 10월 16일자에서 ‘개발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어 같은 날 사설에서는 “비단 인도네시아의 국가원수일 뿐만 아니라, 아세안의 지도적 인물이며, 비동맹운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정치가”라는 극찬도 빼놓지 않았다.

<주간조선>은 98년 5월 21일자에서 수하르토가 하야하기 직전에야 “수하르토 일가와 측근들이 경제를 ‘말아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에 그 독재자를 비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조선일보에게는 독재자 수하르토의 ‘개발독재’를 옹호하느라 바빴던 과거가 있지 않은가.

또한 조선일보는 93년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3회에 걸쳐 연재한 <미래로 뛴다―신세계 신전략 ‘용들의 전쟁’―인도네시아편>(변용식 경제부장)에서는 “‘빈곤 벗었다’ 경제 자신감 점화” “21세기 생산기지-소비시장 부상” 등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인도네시아의 개발독재를 옹호했다.

“경제기적을 이룬” 인도네시아를 조명한 이 기사에는 “인도네시아가 그 동안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권위주의 체제에 의한 정치안정,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유능한 행정 테크노크라트,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이었다. 이러한 매력은…”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매력’으로 본 조선일보는, 부정부패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관료들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공무원들이) 앞을 길게 보고 정책을 세울 수 있는 나라가 인도네시아”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 조선일보는 “(인도네시아) 경제는 지금 손쓰기 힘든 중증에 허덕이고 있다. 이미 40%로 치솟은 인플레는 연말까지 80%, 실업자는 연말까지 1천3백만으로 폭증할 전망이다”(주간조선 98년 5월 21일)라고 썼다. 그나마 현상의 나열에는 충실했으나 경제파탄의 원인을 개발독재에서 찾아보려는 시각은 전무했다.

조선일보는 과거 정권의 군부독재와 개발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타가 공인하는 외국의 독재자들에 대해서조차 긍정적인 평가를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낯뜨거운 찬양도 서슴지 않았다.

과연 경제성장만 이뤄낸다면―그것도 일시적인―그 과정에서 헌법파괴와 인권유린등이 자행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조선일보가 높이 평가했던 독재정권은 결국 경제파탄과 부정부패의 주범으로 몰려 비참한 말로를 걷고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오늘도 ‘박정희 살리기’에 여념이 없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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