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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신문모니터
제 목 [민언련] 조선일보의 유신찬양
민언련 홈페이지의 <언론개혁 핵심 조선일보 관련 기획모니터>에서 퍼왔습니다.  


'체육관 대통령' 뽑으려고 선포한 계엄령도 '구국의 영단'


박정희 정권 18년. 경제개발과 민주파괴라는 양극단의 담론으로 상징되는 박정희 정권의 역사적 공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근 일부에서 조장하는 요란한 미화작업은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장기집권에 협조한 대가로 사익을 챙기고 부귀를 누렸던 사람들의 '박정희 되살리기'에서는 역겨움마저 느껴진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분과



박정희 시대를 유지시켜 준 것은 물론 권위주의적 무력통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언론을 비롯한 지식인 집단의 직.간접적인 협조가 없었더라면 박정희 시대는 모래위의 성에 불과했을 것이다. 특히 누가 봐도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해 헌법을 바꾸는 것이 분명한데도 언론은 역사적 명분보다 기업의 실리를, 국민에 대한 책임보다 정권에 대한 협조를 우선시했다.

그 가운데서도 조선일보의 역할이 매우 두드러졌음이 모니터 결과 확인되었다. 조선일보는 3선개헌 초기에는 형식적 중립을 표방하고 개헌논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개헌 직전부터 노골적인 개헌 지지로 기울었다. 그러나 유신개헌 무렵부터 조선일보는 표면적으로나마 내세우던 중립마저 내던지고 노골적인 개헌지지로 돌아섰다.


1. 69년 3선개헌 관련 보도

국민투표 앞두고 각계인사 동원해 박정희 업적 찬양

3선개헌에 대한 조선일보의 논조는 대단히 기회주의적이다. 조선일보는 초기에는 개헌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찬반양론을 기계적 균형으로 기사화하기에 이르렀고 개헌 직전과 직후에는 노골적인 개헌 지지로 기울었다.

3선개헌이 있었던 해인 69년 1월 11일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정부와 국민의 거리감을 단축시킨 의의]라는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헌법은 국가기본법이니만큼 그때 그때의 집권형편에 따라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국가의 형편이 꼭 필요하다면 고칠 수는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이러한 논조는 일단개헌에 대해 다소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지만 명백한 반대라기 보다는 오히려 개헌의 가능성과 정당성을 열어 주었다는 분석이 더 타당할 것이다.


개헌논의 '불씨 살리기' 안간힘?

특히 조선일보는 "그 '필요불가피'하다는 당위성이 대다수 국민에 의해서 인정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얼마든지 여론조작이 가능한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대다수 국민에 의한 인정'이라는 조건으로 개헌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것은 결국 개헌 합리화의 길을 터 주기 위한 포석으로 읽혀진다.

실제로 개헌안 국민투표 다음 날인 10월 18일 1면에서 조선일보는 [국민투표...'개헌찬성' 압도적]으로 크게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10월 19일 사설 [국민의 심판은 끝났다-다수결에의 복종과 함께 소수파도 존중]에서도 "올해 최대의 정치적 쟁점이 되었던 개헌문제가 이렇듯 국민의 심판에 의해서 결말을 짓게 된 이상 비록 치열한 반대세력이었다 할지라도 민주주의의 원칙대로 이제는 다수결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헌과정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책임이 있는 언론이 도리어 논쟁에 종지부를 찍자고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잠복해 있던 개헌론은 69년 5월 초 윤치영 공화당 의장서리의 회견을 시발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시 윤 의장서리의 발언은 박정희 정권이 측근을 통해 '여론 떠보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5월 9일자 1면에 [개헌론-그 부침과 향방/길 트인 '사견'...여야논쟁 불가피]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여당 인사가 던진 '불씨'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객관적인 보도'라는 명분 하에 개헌논의에 대한 '불지피기'에 나섰다.

지면에 찬반양론을 동등하게 기사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개헌론의 본질에 대한 정면비판은 회피한 채 '객관적인 형식'을 빌린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는 오히려 "여론추이 따라 개헌의 방법과 시기를 정하겠다"는 윤 의장서리의 발언에 부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일보가 개헌을 바라보는 시각은 반대가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일 뿐이었다. 5월 9일자 사설 [부질없는 '개헌' 논의]에서 조선일보는 "지금은 개헌운운의 시기가 아니라"며 "절대적인 필요성과 거론해도 좋을 시기가 도달했다고 공화당이 판단했을 때 개헌논의의 정도를 걸어 국민의 활발한 비판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입장은 무엇보다도 개헌안이 날치기로 통과된 9월 14일자 사설 [개헌안의 변칙통과]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하루 이틀 표결을 연기하여 질서 있는 표결을 위해 야당과 협상한들 그것이 뭐 그렇게 국가대사에 영향이 있겠는가"라는 대목에서 절차상의 문제만을 지적하고 있을 뿐 개헌 자체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이 사설은 절차상의 문제로 본질을 흐리는 동시에 "어쨌든 개헌안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그 표결방법의 유무효는 별도로 치고 실은 이제부터가 더 큰 고비인 것이다"라며 결국 날치기 통과를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는 국회에서 통과된 것으로 인정하여 개헌안을 빠른 시일 내에 공고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의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라며 국민투표에 그 책임을 넘기고 있다.

10월 9일자 사설 [국민투표 실시의 공고]에서도 조선일보는 "국민의 민주의식만 건전하다면 그렇게 심각할 것 없건만" "우리 민도(民度) 성장을 측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삼자" 등의 표현을 통해 국민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면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훌륭한 영도자를 중심으로"

그러나 조선일보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미 개헌지지로 돌아선 상태였다. 이는 조선일보의 이후 보도와 논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69년 10월 16일자에 게재한 ['영광의 후퇴'보다 '전진의 십자가'를###"나는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한 번 더"]라는 낯뜨거운 제목의 기사는 그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시선을 끄는 부분은 [각계인사들이 본 '성장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조선일보가 선택한 11명의 '각계인사'는 각각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발언했다.

"건설 중단은 혼란만 초래"(곽복산-중앙대 교수) "안보 위해 정치적 안정을"(박일경-헌법학자) "정국의 안정이 제일조건"(심상준-제동산업 사장) "대외적으론 국위선양"(이한원-대한제분 사장) "부정 시인은 올바른 자세"(김동익-동국대 총장) "지속적 발전엔 안정이 필요"(민병구-서울상대 학장) "안정과 성장을 위하여"(김용관-서울치대 교수) "보다 잘 사는 내일을 위해"(신영균-영화배우) "훌륭한 영도자를 중심으로"(최은희#영화배우) "우리에게도 기적은 있었다"(안은숙-영화배우) "강력한 영도력의 지속을"(강부자-탤런트).

개헌을 지지하고 찬양하는 의견만이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사가 국민투표를 앞둔 시점에 게재됐다는 점이다. 결국 '각계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권유한 셈이다.


2. 72년 유신개헌 관련 보도

계엄령도, 언론검열도, 통일주체국민회의도 좋다?

유신시대로 접어들 무렵부터 조선일보는 그간 표면적으로나마 내세우던 양비론을 거둬들이고 노골적인 지지와 찬양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남북대화를 뒷받침하며 격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국회해산과 모든 정치활동의 금지, 대학가 휴교와 언론-출판-방송의 사전검열 등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칙을 유린하는 조치들이 취해졌다. 당시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적십자회담과 남북조절위원회가 열려 통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이를 이용해 박 정권은 "너무나 갑작스러워 국민의 의표를 찌르는"(조선일보 11월 24일자 [유신헌법 확정을 보고] 좌담회 중 박일경 발언 중에서) 헌정파괴를 감행한 것이다.


"유신개헌은 가장 적절하고 가장 알맞은 조치"

이 폭거에 대해 조선일보는 단 한마디의 비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적극적 지지와 환영의 뜻을 표했다. 아울러 각계의 지지성명과 긍정적 반응만을 보도함으로써 독재권력의 장기집권 음모를 정당화했다.

조선일보는 유신 선포 다음날인 10월 18일에도 [평화통일을 위한 신체제]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유신 합리화에 열을 올렸다. 이 사설에는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이보다 분명하게 유신에 대한 지지와 환영을 밝힌 표현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헌법 기능의 일부 정지와 아울러 이에 따르는 몇 가지 조치가 선포된 것은 새로운 헌정질서의 존립을 위하여 만부득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헌정파괴'를 정당화한 것이다. 심지어 이 사설에는 "비상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독재권력 정당화에 급급한 나머지 궤변과 곡필을 늘어놓은 것이다.

'국제정세와 남북대화 국면에 효율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라는 유신의 명분이 허울뿐이라는 것은 10월 27일 헌법 개정안이 공고되면서 확연히 드러났다. 이 헌법에 의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하여 대통령을 간선제로 선출하게 되고, 대통령이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통일주체국민회의가 뽑는 국회의원의 3분의 1(일명 유정회 의원)에 대한 일괄 추천권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1인영구집권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유신개헌 전후의 한국 사회는 무조건 유신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사건을 시작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꿈틀대기 시작하면서 도시빈민들의 광주대단지사건, 대학생들의 교련반대투쟁, 언론인들의 언론자유수호투쟁 등이 잇따랐다.

재야에서도 민주수호국민협의회가 결성되는 등 반독재투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더욱이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신민당 후보는 도시표의 52.3%(특히 서울에서 58%)를 얻는 성과를 올렸다. 총선에서도 야당이 이전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의석을 차지했다. 양대 선거 결과는 독재정권에 대한 민심의 반영이었던 셈이다.

유신개헌은 바로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정권 차원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헌법 개정안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기에 급급했다. 조선일보는 10월 28일 [유신적 개혁의 기초-민주주의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헌법]이라는 사설에서 "발의측의 문제의식이 이렇듯 왕성하고 과감한 개혁이 담긴 개헌안을 우리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다.

또한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고 민주제도의 후퇴를 가져온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통령을 직접 선거함으로써 빚어졌던 여러 가지 폐해와 부작용을 일소할 수 있게 된다"고 평가한 것이다. 의회를 행정부 에 종속시킴으로써 대통령이 견제 당하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도 "알맞게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신개헌과 관련해 조선일보의 곡학아세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같은 날 실린 헌법 개정안에 대한 해설기사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아시아 질서는 미일의 중공 접근 내지 수교로 안정체제의 균형이 깨어질 것으로 판단...이 중 대 국면에 대처하기 위해 자위적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헌법 개정의 근거로 거론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시아가 냉전구도에서 벗어나 해빙관계로 접어들면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진척되는 계기가 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것을 "희생을 강요하는 도전적 시련"으로 보았다. 결국 유신개헌의 당위성을 강변하다 보니 전향적 국제정세마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찬양기사 시리즈 '축포' 속에 탄생한 유신정권

조선일보는 유신선포 전후 그 어느 신문보다도 사설-보도-좌담-기고 등 여러 형식의 기사를 동원해 노골적인 유신찬양에 나섰다. 그 중에서도 11월 23일자에 실린 [새역사의 출범]이라는 사설은 유신개헌 지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설에는"그 어느 때보다도 압도적인 지지와 찬성을 나타냈다.....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모든 것을 바친 그의 뜨거운 애국심과 뛰어난 영도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성원의 발현"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제단 위에 모든 것을 바친' '뜨거운 애국심' '뛰어난 영도력' 등의 표현은 정부 기관지에서도 사용하기 민망한 표현이지만 조선일보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사실 서슬 퍼런 계엄령 하에서 반대운동을 철저히 막아 놓은 채 진행된 투표에서 절대다수의 찬성표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역사적 문제의식과 사명감에 불타는 박 대통령의 영단에 의하여 태동된 10월유신은 이에 대한 전체 국민의.........압도적이고도 열렬한 지지#찬성에 의해 확고부동하게 된 것이다"라고 보도한 것은 현실을 왜곡하고 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2년 12월 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전국 70.3%, 서울 57%라는 낮은 투표율 속에서 치러졌다. 국민들의 직접적인 대통령 선출권이 박탈되고, 야당 인사들의 참정권이 철저히 봉쇄된 채 친여 인사들 일색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어쩌면 당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은 12월 23일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했다.

단독후보 박정희는 총 대의원 2천3백59명 중 2천3백57표의 찬성표를 얻어 99.9%의 지지율로 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투표 절차의 오류로 무효 처리된 2표를 감안한다면 사실상 완전 1백%의 지지율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12월 23일, 24일, 28일 등 3일에 걸쳐 유신체제에 대한 확실한 지지와 충성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를 단독후보로 추천한 사실에 대해 조선일보는 12일 23일 [국민회의와 대통령 선거-영광스런 순간에 공감을 함께 한다]는 사설을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에 합당한 후보인물을 추천하는 절차를 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인 12월 24일자 사설 [줄기찬 통일에의 의지-8대 대통령 선출을 경하하면서]에서는 "이 역사적 전환기에 국민의 최고 영도자로서의 새로운 중책을 맡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민족의 앞날에힘찬 발전이 있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라고 적고 있다.

특히 12월 28일자 사설 [새역사의 전개-제8대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을 경하한다]는 미사여구가 총동원된 유신 찬양문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부와 근대화의 씨앗을 뿌려 가꿈으로써 이 나라 국민의 뼈에 젖은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용기와 자신으로써 대체해 주고 지난 4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어 온 냉전 속에서의 동족상잔과 남북결원의 민족사에 10.17 구국의 영단으로 종지부를 찍고 평화통일의 새역사를 위하여 정초한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취임토록 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미덥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조선일보는 장기집권을 도모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한 박정희의 10.17 '쿠데타'를 도리어 '구국의 영단'이라고 추켜세운 것이다. 이 사설은 다음과 같이 계속 이어진다.

"무엇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5.6.7대나 대통령을 역임한 그를 또다시 환영하는 것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그의 영도력 때문이다. 그의 높은 사명감과 뛰어난 능력과 역사의식의 정당성 때문이다.....온갖 난경서 오늘의 굳건한 역사발전의 기틀을 구축한 그의 훌륭한 정치역량을 우리는 더욱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더욱 전망적인 민족통일의 사명감과 구국중흥의 신념에 불타는 탁월한 영도자를 가졌다."

유신시절의 조선일보 사설이 '위대한 수령' 운운하는 북한의 선전문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조선일보에게 정론직필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 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정희를 그리며'에서 '박정희를 넘어서'로

합법적으로 철권통치의 칼자루를 쥔 박정희 정권은 이후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정치적 타협이나 대화보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권력을 지켜 왔다. 박정희가 집권하는 동안 각각 계엄령 3번, 위수령 3번, 긴급조치 9회가 발동되었다. 이 기간을 합산하면 자그마치 1백5개월이나 된다.

박정희 정권은 5.16쿠데타에 따른 비상계엄으로부터 부마항쟁에 따른 위수령까지 초법적 방식을 통해통치를 시작했고 마감했다. 총 집권기간인 2백20개월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기간이 공포정치의 시대였던 것이다. 유신체제 하에서 의회민주주의는 부정되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아래로부터의 참여는 차단되었고 관료 사회의 선의에 입각한 경쟁도 봉쇄됐다. 독재정치, 정경유착, 권언유착, 부정부패, 복지부동, 관치금융, 정보공작, 인권유린 등 우리 시대를 옭아맸던 부정적 편린들이 뿌리를 내린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물론 박정희와 관련해 경제성장에 대한 찬반과 논란이 많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압살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외면한 채 박정희 찬양에 열을 올리는 것은 역사에 대한 편향이며 기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유신개헌과 유신체제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미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에 대한 사전검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조선일보 지면에서 검열을 통해 기사가 삭제된 흔적을 찾기는 거의 어렵다. 오히려 당시 조선일보 지면에서는 절대 권력자의 의중을 알아서 미리 자기검열을 행한 한국언론의 굴종의 단면이 엿보인다. 우리의 보다 진전된 내일은 과거지향적 '박정희 되살리기'가 아닌 미래지향적 '박정희 뛰어넘기'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3. 조선일보의 '박정희 살리기'

유신찬양도 언론자유다?

18년간의 군사독재가 땅에 묻힌 지 꼭 18년만에 부활한 박정희 신드롬 형성에 가 장 크게 기여한 언론은 단연 조선일보다. 물론 중앙일보도 비서실장의 회고록을 20회에 걸쳐 실었고 [실록 박정희 시대]를 장기간 연재한 바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꾸준하고 계획적으로 박정희의 정치적 부활을 기도한 대표적 언론으로 꼽힌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조선일보는 자매지인 월간조선까지 동원해 박정희 살리기를 시도했다. 82년 이후 현재까지 월간조선은 박정희 관련 기사를 총 1백48건이나 실었다. 이는 1년에 7건 이상의 기사가 게재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82년 이후에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관련 기사를 싣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막상 기사를 보면 비서실장, 유족, 관료 등 박정희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의 신변잡기식 회고담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발언은 당시 상황에 대한 자기 합리화와 변명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정권이양계획' '사우디 아라비아와 안보경협' '등소평과의 회담 추진' 등 일명 '미완성 프로젝트' 등을 별다른 검증없이 게재하여 선견지명과 추진력은 물론이고 청렴과 소탈함까지 갖춘 '영도자' 혹은 '혁명적 지식인'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박정희는 완벽한 인물이었는데 부하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책임전가가 뒤따른다. 마치 이승만은 괜찮았는데 이기붕이 문제였다는 식이다.

이들 기사가 회고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구시대의 인물을 되살리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할 만하다. 특히 조선일보가 90년대 이후 박정희 관련 기사를 부쩍 많이 싣는 것은 개혁과 민주화의 진전에 대한 위기의식이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박정희 전기까지 연재하고 있는 조갑제 기자는 98년 8월 5일 발행된 뉴스피플에서 "권위주의 정권일망정 독재는 아니었다...........언론의 자유와 야당의 견제와 비판기능이 상당히 살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법대로라면 3선개헌 유신개헌 찬양으로 얼룩진 조선일보의 보도도 '언론자유'에서 비롯된 셈인지도 모르겠다.

본질과 과정을 무시한 채 현상과 결과만을 중시하다 결국 이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21세기를 코앞에 두고도 화려했던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러나 역사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흐른다. 명암과 청탁을 안고도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처럼.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mor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

2002/06/24 (14:32:54)    IP Address : 147.46.116.76

36  [뉴민주]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현재 고문)에 관하여 밝힌 기사 5편 보스코프스키 2006/12/15 3971
35  [딴지일보 / 시론] 좃선, 아직도 멀었다 열리자 2006/08/30 4003
34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왜 하필 조선일보 인가? 김민웅 2002/06/24 7151
33  [민언련] 조선일보가 독재자를 옹호한 까닭 신문모니터 2002/06/24 5088
32  [민언련] 조선일보의 낯뜨거운 외신기사 왜곡 인용 신문모니터 2002/06/24 5528
31  [민언련] IMF와 조선일보의 이중성 신문모니터 2002/06/24 4621
 [민언련] 조선일보의 유신찬양 신문모니터 2002/06/24 4735
29  [민언련] 조선일보의 5공 찬양은 '현대판 용비어천가' 신문모니터 2002/06/24 4748
28  [민언련] 진상규명은 필요없다. 마녀사냥이 최고다? 신문모니터 2002/06/24 4482
27  [민언련] "공산당이 싫어요" 는 조선일보의 작문 신문모니터 2002/06/24 5114
26  [월간 말]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한 조선일보를 검증한다. 정지환 2002/06/24 5399
25    [re] 첨부 사진 정지환 2002/06/29 4239
24    [re] 첨부 사진 정지환 2002/06/29 4183
23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의 진실 김동민 2002/06/24 4973
22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편집의 예술 손석춘 2002/06/24 4673
21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 김정란 2002/06/24 4058
20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광수생각' 그리고 '조선일보 생각' 노염화 2002/06/24 5265
19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와 지역분열주의 민언련 2002/06/24 4303
18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특파원 기사 팔어 융자받고.. 내일은 대동강물을 팔을려나.. 문명자 2002/06/24 4315
17  딴지일보가 발키고 까발린 죄선일보 딴지일보 2002/06/20 11251
16  [한겨레21] 한국의 극우는 러시아의 극좌? 박노자 2002/06/24 3562
15  [대자보] 조선일보 - 기자정신인가 투견정신인가 장형석 2002/06/24 3719
14  [대자보] 조갑제의 어린양 이승만? 장형석 2002/06/24 3542
13  [대자보] 월간죄선-졸병의 6.25 장형석 2002/06/24 4624
12  [대자보] 월간 조선이 민족문학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홍기돈 2002/06/24 4510
11  [대자보] 수준 떨어지는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의 이유 장형석 2002/06/24 4498
10  [대자보] 갑제야! 기마민족하고 인터넷하고 무슨 상관인데? 장형석 2002/06/24 4756
9  [대자보] 조선일보의 저질스런 양비론의 실체를 파헤친다. 장형석 2002/06/24 4731
8  [대자보] 월간죄선 조갑제를 조목조목 비판해주마. 장형석 2002/06/24 4548
7  [대자보] 정형근과 죄선일보 장형석 2002/06/24 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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