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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신문모니터
제 목 [민언련] 진상규명은 필요없다. 마녀사냥이 최고다?
민언련 홈페이지의 <언론개혁 핵심 조선일보 관련 기획모니터>에서 퍼왔습니다.  


한국언론에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왜곡보도’와 ‘편파보도’라는 오명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는 사실을 왜곡하고 곧 역사를 왜곡한다. 뿐만 아니라 왜곡 편파보도 속에서 인권유린은 은폐되거나 정당화된다. 겉으로는 정론직필과 불편부당을 내세우고도 실제로는 왜곡 편파보도를 일삼은 한국언론. 그 대열의 선봉에는 항상 조선일보가 있었다. 민언연 신문모니터팀이 조선일보 보도비평을 마친 뒤 내린 결론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분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고양해 내부의 단결을 꾀하려는 부정적 방식으로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고양하기 위해서라면 내부의 일부가 인권침해를 당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발상은 너무나 위험하다. 그런 내부의 분열과 갈등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감정의 폭발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더욱더 위험하다”

우리가 조선일보의 국가안보상업주의를 비판하며 했던 말이다(여기에서 ‘외부’는 북한을, ‘내부’는 남한을 가리킨다). 이번에는 조선일보의 ‘남한판 국가안보상업주의’에 해당되는 사례를 찾아보았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대치되는 현상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주관적 잣대를 들이대고 주저없이 매도하였다. 이런 조선일보의 공세와 횡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항한 목소리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묵살 당했다. 우리는 바로 이런 과정과 현상이 조선일보의 오만을 키워 온 배경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사실 우리는 그간의 모니터 경험을 통해 조선일보의 이념적 공세와 횡포가 상습적(?)이라는 점과 그 오만함이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지금부터 기술하려는 내용은 그런 고민 속에서 진행된 작업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1. 유서대필 의혹 조장 관련 보도(91년 5월)

진상규명 필요 없다 마녀사냥이 최고다?

지난 91년 5월 8일 김기설씨의 자살로 야기된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에서는 세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유서대필 여부, 수첩조작 여부, 김기설씨의 여자친구인 홍성은씨의 엇갈린 진술의 진위 여부가 바로 그것이었다. 특히 유서대필 여부는 이 사건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언론은 검찰과 강기훈씨의 주장이 대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필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다. 특히 조선일보는 교묘하게 지면을 구성하여 대필 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검찰의 발표는 사회면 머릿기사나 적어도 6단 정도로 ‘크게’ 기사화한 반면 강기훈씨를 대변한 전민련의 발표는 2~3단으로‘작게’ 취급하였다.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조선일보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던 셈이다.

5월 9일 조선일보는 김기설씨의 분신보도를 중심으로 아래에는 <분신현장 2~3명 있었다> 라는 제목의 검찰발표를 실었고 왼쪽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세력 있다>는 제목으로 박 홍 전서강대 총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5단에 걸쳐 실었다. 이들 기사의 제목과 지면 구성은 김기설씨의 죽음에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분위기를 조장하기에 충분했다.

조선일보는 5월 19일자에서도 검찰발표를 인용해 <“김기설씨 유서 필적다르다” 검찰-대필 용의 20대 전민련 간부 추적>이라는 제목으로 뽑아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 기사는 김씨가 10년 전 조카의 생일에 보냈던 축하카드 글씨와 유서 글씨를 같이 실어 대필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한편 조선일보는 6월 15일자 사설 <천주교측의 정당한 결정> 에서도 “대필한 사실이 없다면 떳떳이 나와서 수사에 응할 일이지…수사는 고사하고 일체의 국가행위 자체를 무시하는 듯 버티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며 강씨를 몰아붙였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당시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은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담당자인 김형영씨는 80년, 92년. 98년 세 번에 걸쳐 허위감정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따라서 불충분한 증거로 유서대필을 기정사실화하고 한 청년의 인격과 명예를 무참하게 짓밟았던 조선일보는 이 사건 후유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에게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이 조선일보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지만.


2. 부천서 성고문 사건 관련 보도(86년 7월)

기사는 검찰발표문으로, 사설은 “정치적 비화 안된다”지난 86년 6월 발생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부도덕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은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의 횡포와 부도덕성이 폭로되어 5공화국의 종말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이 사건을 다루며 인권과 진실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인권단체와 시민단체가 언론을 향해 진실을 밝혀 줄 것을 요구했지만 언론들은 검찰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와 군사정권의 ‘보도지침’만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이 과정에서 촌지도 오고간 것으로 밝혀졌다. 89년 1월 13일자 <기자협회보>는 이 사건을 ‘촌지로 얼룩진 언론왜곡의 전형’으로 규정했다. <기자협회보>는 “대변인 봉투 건네며 ‘오늘은 좀 많습니다’” “취재기자의 고뇌……‘저는 기자도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등의 생생한 증언을 전하고있다.

이 사건에 대해 보도한 조선일보의 제목과 기사들은 피해자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예컨대 86년 7월 17일자 사회면 머릿기사에서 <‘성적모욕’ 없고 폭언 폭행만 했다> 라는 검찰의 발표문을 제목으로 뽑아 검찰의 주장을 기정사실화 했으며 <운동권, 공권력 무력화 책동>이라는 적반하장격의 제목까지 달았다.

또한 <‘부천서 사건’ 공안당국 분석>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도 <급진세력의 투쟁전략 전술 일환 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 한 사건> 이라는 검찰 발표 내용을 제목으로 뽑아 권인숙씨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았다. 결국 이 기사는 “검찰 발표 전문은 꼭 실어 줄 것”이라는 독재정권의 보도지침에 충실하게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설에서도 이 사건을 보는 조선일보의 ‘삐딱한’ 시각이 읽혀진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7월 18일자 사설 <‘부천서 사건’에서 얻는 것> 에서 ‘성고문’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은 채 “인권상황의 전환점을 마련하길 바란다”라는 막연한 표현으로 비켜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진심’은 “정치적으로 비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는 이 사설의 결론에서 솔직하게 드러났다.


3. 전교조 결성 관련 보도(89년 5월)

조선일보의 ‘전교조 빨갱이 만들기’ 입체작전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2월 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대다수 미복직 교사들이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전교조가 결성된 지 10년만의 일이니 사필귀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전교조는 비인간적인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을 개선하자는 교사들의 순수한 열망 속에서 탄생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교조의 노선과 성격이‘급진’과 ‘과격’이 아니라 ‘온건’과 ‘합리’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였다. 그런 비상식을 조장한 장본인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마치 교사들의 불평과 불만 때문에 전교조가 만들어진 것처럼 왜곡했다. 동시에 일부 학부모들의 우려와 전교조에 참여하지 않은 교사들의 이견을 부각하는 일에 적극성을 보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많은 신문들은 작은 지면이나마 할애하여 윤영규 전교협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 등 나름대로 형평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유독 조선일보만은 전교조의 정당한 주장을 전혀 기사화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갔다. 조선일보의 전매특허(?)인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조선일보는 일부 운동권 교사들이 이념교육을 하기 위해 전교조를 결성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조선일보는 색깔론을 전개할 때면 거침이 없어 진다. 예컨대 89년 5월 26일자 <학부모들의 우려>라는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교원노조 문제는 단순히 노동3권을 보장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일부 학교의 어머니회가 제기한 우려를 열거한 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학부모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했다(그렇다고 전교조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했다는 어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결국 조선일보는 ‘골치 아픈’ 이론 논쟁보다는 ‘손쉬운’ 사상논쟁을 택한 셈이다.

이러한 태도는 이날자 사회면 ‘기사 배치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선일보 편집자는 <전교협 회장 사무처장 검거령> 이라는 제목의 기사 중간에 <평양학생축전 포스터 단국대에 대량 내붙여> 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을 배치했다. 뿐만 아니라 사진 바로 오른쪽에는 <어젯밤 연대서 교육악법철폐대회>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어수룩한’ 독자라면 그 사진이 전교조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조선일보는 부인하겠지만 그런 오해를 살 만한 ‘교묘한’ 편집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5월 28일자 <‘교원노조’, 이해와 걱정> 이라는 제목의 류근일 칼럼은 더욱 교묘했다. 류근일 논설위원은 “우리가 직면한 교육현실의 고질적인 현안들에 대한 근본적인 조명과 타개에 의해서만 그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이라고 말문을 열어 마치 전교조의 입장에 동조하는 듯한 전향적인 제스처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성동격서(?) 전법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다음 대목에서 곧 드러난다. 그는 “일부 교사들이 혹시나 그 어떤 치우친 시각에서 자기 자녀들의 역사관과 현실인식을 사뭇 급진으로 몰아가고 물들이지는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비비꼰 말투로 자신의 ‘본심’을 내보였다. 사상논쟁으로 귀결시킨 것이다.

전교조 결성 이후 조선일보는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5월 30일자 사설 <학교가 싸움판 안돼야─전교조 결성의 파문>에서 “그러나 그것(법의 규제)을 모를 리 없는 교육자들이 희생을 각오하고 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중시되어야 한다”며 '불법성'을 강조하였다. 조선일보는 이어 “우리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어기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교사들의 방식을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그 ‘법’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사상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4. 철도 지하철 파업 관련 보도(94년 6월)

<가장 부적절한 파업>은 ‘가장 부적절한 사설’

파업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인식은 철저히 도식화된 것이었다. 우선 조선일보는 파업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들을‘폭력과격집단’으로 매도하였다. 한편으로는 파업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이나 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강조하여 노동자들에게 반대하는 여론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반응은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이나 집단행동이 있을 때마다 그대로 반복되었는데 지난 94년 6월 철도 지하철 연대파업에 대한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일보는 정부의 공권력 투입과 그에 대한 반발로 예정보다 앞당겨 진행된 파업과 관련하여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이와 달리 파업을 촉발시킨 공권력 투입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도리어 사설을 동원해 공권력 투입의 정당성을 제공하였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인데 조선일보는 아예 ‘때리는 시누이’로 나선 셈이다.

조선일보는 6월 17일자 사설 <가장 부적절한 파업>과 6월 24일자 사설 <불법과는 타협 없다> 등을 동원해 노동악법 조항을 근거로 노동자단체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일에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으로 파업이 발생한 것처럼 보도해 본질을 희석시키는가 하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강조하였다.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해야하며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훈수한 셈이다. 아울러 철도파업과 함께 진행된 일부 사업장의 연대파업에 대해서도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파업자에 단호한 조치를’(6월 28일자 사설 제목)취할 것을 정부에게 요구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파업 발생 당일 ‘교통대란’ ‘정치투쟁’ ‘국민이 인질인가’ 등의 용어를 동원해 파업에 대해 비난하고 매도하는 기사도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그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검찰 본격 수사> <수출 지체 하루2백억> <대정부 선전포고> <전직기관사-시민 “한마음 운행”> 등의 제목을 동원해 파업으로 인한 각종 피해를 강조하였다. 사용자의 입장만 옹호하는 한편 정부의 강경대응을 유도한 셈이다.


5. 연세대 사건 관련 보도(96년 8월)

경찰에게 강경진압 촉구한 조선일보의 정신상태

지난 96년 8월 발생한 연세대 사건에 대해 한국언론은 객관성을 상실한 채 왜곡 편파보도로 일관했다. 당시 언론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검찰의 입장만을 사실인 양 보도함으로써 ‘객관보도’라는 보도의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서슴지 않았다. 이 사건을 1면 혹은 머릿기사로 가장 많이 다룬 신문도, <한총련, 연대 과학관 ‘볼모’ 대치 “산소통 터뜨리겠다” 협박><주사파가 장악…폭력투쟁 선동> 등 선정적인 제목을 애용한 신문도 조선일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금언을 잘못 이해한 것일까. 조선일보는 호전성(?)을 유감없이 노출시켰다. 8월 20일자 1면 기사 <필요하면 총기사용>과 8월 28일자 39면 기사 <폭력시위 ‘고무총탄’ 쏜다>에서 알 수 있듯 경찰발표를 부각시켜 보도한 것이다. 물론 총기를 사용하겠다는 경찰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은 전혀 없었다. 조선일보는 학생들에 대한 발포마저 고려되는 극히 위험한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이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강경 진압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

혹시 조선일보는 8월 23일자 사설 <경찰진압의 문제>도 있지 않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 제목에 현혹되면 안된다. 여기서 조선일보가 비판한 것은 결코 경찰의 강경진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조선일보는 “무엇보다 경찰의 의지와 의욕의 부재가 큰 문제다”라면서 “경찰을 이대로 나 둬서는 안되겠다”고 호통을 쳤다. 더욱 강경한 진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동시에 펜을 함부로 휘두르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한다). 실제로 격렬한 시위의 원인이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에 있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조선일보는 이런 여론을 철저히 무시했다.

한편 조선일보에서 두드러진 것은 역시 ‘색깔론’ 공세였다. 조선일보는 14일자 <‘신촌사태’의 본질>에서 한총련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한 패거리가 돼 쇠파이프와 육탄공세식으로 밀고 들어오는 집단”이라고 규정한 뒤 “친북세력의 이런 밀어붙이기는 지금 착실히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일부 학생들의 친북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우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한총련 소속 학생 전체를 친북으로 단정하는 조선일보의 마녀사냥식 재판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는 그 동안 학생운동이 통일논의를 대중화하고 진전시키는데 기여한 점을 전면 부정한 것이기도 하다.

연세대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한총련 학생들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이 역시 조선일보가 가장 심했다. 조선일보도 8월 20일자 47면에서 인정했듯이 “대학생들은 1백여 명이 탈진상태……경찰봉쇄로 음식물 공급이 끊기자……”와 같이 생명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엄마’ 작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동원해 혹시라도 생겨날지 모를 학생들에 대한 국민들의 동정심을 차단하려 했다. “다분히 정서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웬 갑작스런 엄마타령인지……눈물짜기 작전”이라는 대목을 보면서 우리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의 처지를 비아냥거리는 언론의 횡포에 비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6. 북한 식량지원 관련 보도(97년 3월~5월)

굶어 죽는 소말리아는 도와도 북한동포는 안된다?

지난 97년 봄과 여름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기다. 당시 북한은 수해와 가뭄 등 계속된 자연재해로 사상 초유의 식량난을 겪고있던 터였다. 뼈만 남은 앙상한 팔다리의 북한 어린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는다는 북한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북한동포돕기운동의 물결이 이어졌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처럼 굶어 죽는 사람을 두고보는 것은 “동포애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도 조선일보가 나섰다. ‘동포애’를 ‘전도된 대북지원 논리’로, ‘인간의 도리’를 ‘감상적’이라고 폄하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97년 3월 31일 정부의 쌀지원 허용 발표 이후 사설을 통해 북한의 변화와 분배과정의 투명성 확보가 지원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절박성을 고려할 때 조선일보가 형식적 논리를 내세운 ‘심사’가 무엇인지 읽혀진 셈이다.

이는 다음의 대목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조선일보는 민간차원의 북한동포돕기운동에 대해 ‘감상적’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민의 애꿎은 죄의식만 짜내려는 전도된 대북 지원논리’라고 몰아붙였다.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제를 정치적 논리로 비난한 것이다.

물론 솔직하게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북한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북한 어린이들이 영양결핍으로 키가 자라지 않고 두뇌발달이 정지됐다거나, 심지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지는 데도 굳이 “실상이 과장되어 있고 과장법을 통해 군량미를 챙기고 있기 때문에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도리는 아닌 듯하다. 이는 목숨을 담보로 흥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7년 5월 말 지정기탁제도의 합의로 투명성이 확보되고 북한군 식량탈취가 오보로 확인된 이후에도 조선일보에서 “지원하자”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동포의 굶주림을 방치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쌀을 주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북의 태도가 변한 다음에”라는 토를 달았다. 심지어 <북의 추락에 대비해야 한다> 는 제목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정부도 부정한 대북정책인 ‘흡수통일’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셈이다. 조선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북한동포돕기운동에 대해 ‘휘몰이하는 식’이라거나 ‘감상적’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비판했다.

당시 1년에 8조원을 음식쓰레기로 버리는 남한과 먹을 것이 없어 참혹하게 죽어 가는 북한의 상황을 비교해 볼 때 과연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감상적인지 자명해진다. 조선일보는 급기야 4월 14일자 사설 <북 기아 우리 탓이라고?>에서 “따지고 보면 우리도 식량자급율이 27%밖에 안되고 외채가 1천억달러에 이른 빚더미에 앉아 있다”며 구차한 변명까지 늘어놓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 고베 지진 때나 아프리카 난민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자고 했던 때와 비교하면 너무나 대조적이다.

조선일보의 ‘남한판 국가안보상업주의’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6월 29일자 칼럼 <‘금강산행’의 조건>에서 조선일보는“(금강산 관광에 대한) 기대로 남쪽이 달궈지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시대적 흐름이 바뀔 수는 없다.

최근 잠수정사건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경제협력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통일소가 북한으로 가고 금강산 관광도 목전으로 다가왔다. 통일 독일의 한 국회위원은 조선일보의 지면을 빌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통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그러나 통일 뒤에 얻는 기쁨은 희생과 고통보다 크다”라고. 조선일보가 경청해야 할 고언이 아닐 수 없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hoisun_mor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6

2002/06/24 (14:27:12)    IP Address : 147.46.116.76

36  [뉴민주]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현재 고문)에 관하여 밝힌 기사 5편 보스코프스키 2006/12/15 3775
35  [딴지일보 / 시론] 좃선, 아직도 멀었다 열리자 2006/08/30 3797
34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왜 하필 조선일보 인가? 김민웅 2002/06/24 6965
33  [민언련] 조선일보가 독재자를 옹호한 까닭 신문모니터 2002/06/24 4886
32  [민언련] 조선일보의 낯뜨거운 외신기사 왜곡 인용 신문모니터 2002/06/24 5324
31  [민언련] IMF와 조선일보의 이중성 신문모니터 2002/06/24 4418
30  [민언련] 조선일보의 유신찬양 신문모니터 2002/06/24 4521
29  [민언련] 조선일보의 5공 찬양은 '현대판 용비어천가' 신문모니터 2002/06/24 4536
 [민언련] 진상규명은 필요없다. 마녀사냥이 최고다? 신문모니터 2002/06/24 4270
27  [민언련] "공산당이 싫어요" 는 조선일보의 작문 신문모니터 2002/06/24 4896
26  [월간 말]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한 조선일보를 검증한다. 정지환 2002/06/24 5134
25    [re] 첨부 사진 정지환 2002/06/29 4027
24    [re] 첨부 사진 정지환 2002/06/29 3991
23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의 진실 김동민 2002/06/24 4775
22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편집의 예술 손석춘 2002/06/24 4471
21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 김정란 2002/06/24 3858
20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광수생각' 그리고 '조선일보 생각' 노염화 2002/06/24 5053
19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와 지역분열주의 민언련 2002/06/24 4111
18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특파원 기사 팔어 융자받고.. 내일은 대동강물을 팔을려나.. 문명자 2002/06/24 4134
17  딴지일보가 발키고 까발린 죄선일보 딴지일보 2002/06/20 11061
16  [한겨레21] 한국의 극우는 러시아의 극좌? 박노자 2002/06/24 3375
15  [대자보] 조선일보 - 기자정신인가 투견정신인가 장형석 2002/06/24 3529
14  [대자보] 조갑제의 어린양 이승만? 장형석 2002/06/24 3349
13  [대자보] 월간죄선-졸병의 6.25 장형석 2002/06/24 4411
12  [대자보] 월간 조선이 민족문학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홍기돈 2002/06/24 4299
11  [대자보] 수준 떨어지는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의 이유 장형석 2002/06/24 4281
10  [대자보] 갑제야! 기마민족하고 인터넷하고 무슨 상관인데? 장형석 2002/06/24 4537
9  [대자보] 조선일보의 저질스런 양비론의 실체를 파헤친다. 장형석 2002/06/24 4495
8  [대자보] 월간죄선 조갑제를 조목조목 비판해주마. 장형석 2002/06/24 4341
7  [대자보] 정형근과 죄선일보 장형석 2002/06/24 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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