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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신문모니터
제 목 [민언련] "공산당이 싫어요" 는 조선일보의 작문
민언련 홈페이지의 <언론개혁 핵심 조선일보 관련 기획모니터>에서 퍼왔습니다.  

조선일보의 ‘국가안보상업주의’ 곡필과 오보 10선

공산당이 싫어요”는 조선일보의 작문


언론운동단체 회원들이 조선일보의 보도와 논조를 비평하는 일에 직접 나섰다. 그들은 첫 번째 작업의 초점을 조선일보의 ‘국가안보상업주의’에 맞추었다. 한 달간의 긴 작업을 끝낸 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일보는 '국가안보상업주의'를 먹고 자란 대표적인 언론사다. 조선일보의 북한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에 대한 보도는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규명한 기사보다는 주관적 판단에 근거한 일방적인 주장이나 작문성 기사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분과



‘반공’을 국시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독재정권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정권을 유지했고 보수언론 역시 국가안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마녀사냥도 서슴지 않았다. 조선일보야말로 그런 언론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안보상업주의는 “북한 관련 보도는 오보를 해도 괜찮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마치 이 나라의 사상검증을 책임진 ‘전사’처럼 수없이 현상을 왜곡, 과장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체제도 수호하고 신문도 팔자’는 발상으로 여겨진다.


1. 이승복 어린이 사건 관련 보도(68년 12월 11일자)

“공산당이 싫어요”는 조선일보 기자의 작문이었다 "

68년 12월 11일자 조선일보 3면에 실린 <“共産黨(공산당)이 싫어요” 어린抗拒(항거) 입 찢어>라는 제목의 기사는 ‘안보상업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장남 승원군에 의하면”이라고 취재원을 밝힌 뒤 “열 살 난 2남 승복 어린이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얼굴을 찡그리자……”라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 보도는 오보임이 밝혀졌다.

이 보도가 나간 뒤 당시 중앙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의 조간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공비의 만행을 맹렬히 비난, ‘이승복 신화’ 만들기를 거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 신문들의 자체 취재기사에는 승복군의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마디나 항거에 대한 보도가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신문들이 이 보도를 인용했는데도 특종보도한 조선일보가 후속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보도가 오보라는 결정적인 근거는 당시 취재원으로 밝혔던 장남 학관군(당시에는 승권으로 불렸다)이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기자협회가 발간한 <저널리즘> 1992년 가을호에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의 기사는 승복군의 형으로서,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학관씨로부터 얘기를 듣고 작성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학관씨는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일보 기사에서 장남의 이름을 ‘승원’으로 오기한 것도 이 보도가 기자의 작문이었음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증거다. 물론 조선일보는 반공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작문을 하면 좀 어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언론이기를 포기한 발상이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글을 쓰는 것은 소설가의 몫이지 언론인의 몫은 아니다.


2. 금강산댐 평화의 댐 관련 보도(86년 10월 31일자)

집단적 광신주의 부추겨 세계적 웃음거리 제공

86년 10월 30일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석간신문을 통해 처음 보도된 ‘금강산댐’ 관련 보도는 정부의 정보조작과 이에 적극 호응한 언론이 만들어 낸 대형오보로 유명하다. 조선일보는 10월 31일 이 건을 처음 보도했는데 ‘조국통일을 뇌까리는’, ‘악마의 목적’, ‘악마적 기도’, ‘북괴’, ‘무기화’, ‘물의 남침’ 등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저속하고 섬뜩한 용어로 반북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섰다.

보도 첫날부터 ‘대응댐’ 건설을 주장한 신문도 조선일보뿐이다. 10월 31일자 사설 <가공할 금강산댐, 이독제독(痢霽)의 적극적 대응책을> 에서는 “예컨대, 휴전선으로 갈라진 북한강의 수로를 동해 쪽으로 역류시키기 위한 터널수로를 팔 수도 있을 것이다”라거나 “댐을 건설하여 충분한 저수능력 갖추는 것도 적극적인 대처방안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둥 ‘대응댐’건설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이 ‘권고’를 받아들인 듯 11월 26일 정부는 대응댐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일보는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이른바 ‘평화의 댐’ 건설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정당화한 장본인인 셈이다.

더욱이 평화의 댐은 건설이 중단된 상태라 엄청난 예산낭비를 초래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성금모금에 앞장섰던 각 언론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당시 학계에서 주장한 “정부의 발표 중 댐 높이나 저수량은 과학성과 현실성을 도외시한 채 발전용량을 근거로 무조건 역산출한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또한 12월 25일 북한이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관한 백서> 를 통해 남한측에서 주장하는 수공위협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보도되지 않았다. 결국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정부의 조작을 용인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3. 김일성 사망설 관련 보도(86년 11월 16일 19일자)

‘세계적 오보’ 제조비법─북한 관련 보도는 오보해도 좋다?

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가 세계적 특종으로 보도한 ‘김일성 피살설’은 18일 김일성 주석이 몽고 주석 영접을 위해 평양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틀 만에 오보로 확인되었다.

이를 최초로 보도한 조선일보는 11월 16일자에서 “북한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 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라고 했지만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휴간일인 17일 호외까지 발행했다. 18일에는 총 12면 중 7개 면에 걸쳐 사망배경, 국내외 반응, 자사의 특종에 대한 자화자찬 등을 대서특필했으며 이 날부터 다른 언론들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이상징후를 발견할 수 없다는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의 발표나, 확인된 정보가 없으므로 분명해질 때까지 추측하지 않는다는 미 국무성의 브리핑 등 주목할 만한 내용들은 단신으로 처리, 무시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오보로 판명된 후 단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 없이 오히려 <한국 대외신뢰 실추기도 국민불신 조장 등 노린 듯>이라며 모든 책임을 북측에 떠넘겼다. 특히 “그들 수령의 죽음까지 고의로 유포하면서 그 무엇을 노리는 북괴의 작태에 서방언론들은 정말 놀라고 있다. 정상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세계적으로 알린 셈이 되었다”는 신용석 외신부장의 ‘적반하장’격 주장은 조선일보의 후안무치를 대표하는 사례라 하겠다.


4. ‘서울 불바다’ 발언 관련 보도(94년 3월)

선제기습론 제기하며 전쟁위기 부추긴 자칭 민족지

94년 3월 북 미 핵협상 당시 한미 양국은 팀스피리트훈련 재개,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등 일련의 강경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며 북한을 위협했다. 북한은 이를 ‘전쟁선언’이라고 규정하면서 3월 19일 열린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강경발언을 했다. 물론 이 날 북측 대표의 발언이 강경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전후관계를 거두절미한 채 ‘서울 불바다’라는 표현만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런 보도는 마치 북한이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남북간에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음은 물론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 가능성을 가장 앞장서서 보도한 신문은 조선일보다. 특히 3월 22일자 사설 <정부에도 문책한다>에서는 “동맹관계보다 민족이 우선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아마추어적이라고 비난하며 강경대응을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3월 24일자 1면 머릿기사에서는 불분명한 취재원(평양을 방문했던 중소기업인의 발언과 신화통신 기사)을 근거로 “주민들에게 폭탄주머니를 차고 다니게 하고 전쟁지도를 지급하는 등 전쟁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자매지 <월간조선>은 더욱 강경했다. 94년 3월호에서 조갑제 기자는 “북한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위적 선제기습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민족지’를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태도는 ‘민족’의 안위보다 신문의 ‘실리’를 우선한다는 상업주의의 속성을 잘 보여 준다.


5. 김일성 사망 조문논쟁 관련 보도(94년 7월 9일 이후)

“조문 용의 없나”를 “조문 주장”으로 해석한 의도

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망했다. 이에 대해 선정성과 냉전이데올로기를 가장 심하게 드러낸 신문은 역시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의 선정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은 김정일 비서에 대한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결벽증이 심하고 잔인”이라거나 “‘난쟁이 똥자루’ 스스로 비하”(7월 12일) 등 공식적인 매체에 담기 어려운 노골적이고 인신공격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김일성 독살 가능성’을 주장하고, <부검 왜 했나, 의혹 무성>(7월 11일), <홍콩 관측통 ‘자연사 위장 타살’ 주장>(7월 13일) 등 사망경위에 대한 온갖 추측보도를 남발해 조선일보는 다시 오보 가능성을 안게 되었다.

한편 김 주석 사망 이후 조선일보의 첫 번째 마녀사냥은 이른바 ‘조문논쟁’으로 시작되었다. 7월 11일 국회 외무통일위에서 한 이부영 의원의 “조문단 파견용의 없나”라는 대정부 질문이 발단이 되었다. 조선일보는 이를 ‘조문사절 운운’, ‘조문 주장’ 등으로 표현하며 이 의원의 발언을 왜곡했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7월 20일자 시론 <호지명이 죽었을 때>에서 ‘친북세력 추방’을 문민정부에 요구하며 매카시즘 광풍을 일으키는 일에 정부도 동참하라고 촉구하였다.


6. 박 홍 주사파 발언 관련 보도(94년 7월 19일 이후)

대한민국 검찰은 안 믿어도 박 홍 총장은 믿겠다?

김 주석 사망 이후 조선일보의 두 번째 ‘마녀사냥’은 박 홍 전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 보도로 시작되었다. 94년 7월 18일 청와대 오찬에서 당시 서강대 박 홍 총장은 “대학 내에 주사파가 생각보다 깊이 침투해 있으며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이, 사노맹 뒤에는 사로청,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고 말했다. 사노맹과 사로청의 차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함을 드러낸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각 신문들은 다음날 이를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박 총장 키워 주기’는 민망할 정도다. 조선일보는 7월 21일 <박 홍 총장의 용기……사회가 보호하자>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부 지식인들의 박 총장 지지를 대서특필했다. 반면 같은 날 시론 <끌려 다니는 지식인, 뒷북만 치는 정부, 주사파의 천국─한국대학> 에서는 박 홍 총장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사상이 의심스럽거나 용기없는 지식인이라도 되는 듯이 매도했다.

뿐만 아니라 “박 총장 발언의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주사파”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특히 박 전 총장의 발언에 신빙성이 없다는 검찰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그의 발언을 간접적으로 지지했다.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은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그의 ‘북한장학금’ 발언으로 성균관대 정현백 교수는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 중재신청을 했다. 또한 한국통신 노동조합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사파 발언으로 박 총장은 97년 5월 12일 7천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박 총장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확대재생산했던 조선일보는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7. 성혜림 망명설 관련 보도(96년 2월 13일 이후)

한국언론 오보사에 영원히 남을 ‘전설적 오보’

조선일보가 ‘세계적 특종’이라고 자랑한 <김정일 본처 서방탈출> 보도는 5개월여 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기부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안기부 당국자에 의하면 성혜림이 애초 망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월간조선>의 취재내용을 토대로 96년 2월 13일부터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본처가 망명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김정일 후처들이 괴롭혀 결행>(2월 13일 3면), <김정일 여성편력에 가슴앓이>(2월 14일 2면) 등 선정적인 제목으로 망명의 근거를 설명했다. 더욱이 조선일보는 “엄마 보러 모스크바로 갈게요”(2월 13일), “오지 마, 나 지금 무슨 계획 있어”, “평양에는 안 들어가……나 갈데 있어”(2월 14일) 등의 표현으로 마치 망명의사를 밝히는 것처럼 긴박하고 현장감 있게 기사를 써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등 상업적인 접근으로 일관했다.

뿐만 아니라 2월 17일자에서는 <무너지는 북한……정치권 공안통들의 분석>이라며 이를 북한붕괴론으로 이어갔다. '성혜림 망명' 오보는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이용하여 상업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대표적인 오보 사례로 한국언론사의 오보란에 영원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8. 황장엽 망명 관련 오보(97년 4월)

김현철 비리사건을 한방에 잠재운 황장엽 특종?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망명과 관련 조선일보는 “평화통일 위해 몸바치겠다”(97년 4월 21일자)는 한 탈북자의 의지를 안보상업주의에 악용했다.

조선일보는 4월 22일자 1면 머릿기사에서 “황씨 논문 <조선문제> 단독입수”라고 밝힌 뒤 <북 핵 화학 로켓무기로 남한 초토화할 수 있다> 는 긴 제목을 먹컷으로 뽑았다. 또한 조선일보가 뽑아 놓은 <무력통일 의심하면 머저리 중 상머저리>, <개방유도땐 오히려 우환……붕괴시켜야> 등의 제목을 보면 황씨가 진심으로 ‘평화통일을 위해’ 망명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실제로 이 논문과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서 해외언론은 의혹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4월 23일 한국발로 황씨가 내밀한 군사정보를 알 수 있는 신분이 아니라는 것과 조선일보가 어떤 경위로 논문을 입수했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당시 황장엽씨 보도로 인해 김현철씨의 비리보도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는 지적도 있다.‘황장엽 리스트’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정부 내 친북세력 색출 시사>, <권 부총리 “황씨가 알고 있을 것”>(4월 23일자)이라며 거의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황장엽 리스트는 결국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정치권은 물론 국제엠네스티도 ‘황장엽 리스트 악용 반대’의 입장을 폈다.(인권하루소식 97년 7월 25일자) 결국 조선일보는 ‘주사파 리스트’에서 범한 우를 다시 한번 반복한 셈이다.


9. 이석현 의원 명함파동 관련 보도(97년 8월)

이성적 논의 원천봉쇄한 색깔선동의 노림수

이석현 의원 명함파동은 색깔론을 앞세운 언론의 무차별 공세 앞에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증명해 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석현 의원은 영어, 독어, 불어, 러시아어, 일어, 아랍어, 중국어 등 7개 국어로 명함을 제작했고 현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어로는 서울(한성), 중국어로는 한국(남조선)을 나란히 써 놓았다고 한다. 실제 중국에서는 남조선이란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8월 20일자 사회면에서 <남조선 국회의원>으로 제목을 뽑는 등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같은 날 사설 <남조선 국회의원>에서도 “국회는 마땅히 이런 무자격 의원의 제명도 불사하는 단호한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다”라고 마녀사냥을 선동했다. 사안의 본질이나 당사자의 의도, 행적 등에 대한 설명없이 여론을 오도하고 감정적인 단죄를 내린 것이다.

이 의원의 해명에 의하면 조선일보에 첫 보도가 나간 뒤 기사와 사설을 쓴 기자와 논설위원에게 전후과정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고 본인들도 잘 알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후보의 비서 출신이었던 이 의원은 다음날부터 ‘빨갱이 의원’으로 낙인찍혀야 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이석현 의원의 명함파동은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주도한 정치공작이었다고 한다.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해 사회의 이성적 논의를 원천봉쇄한 조선일보의 한 인간에 대한 전횡은 희비극과도 같은 한국분단사의 일그러진 편린이다.


10. ‘양심수 사면’ ‘전향제 폐지’ 관련 보도(97년 12월/98년 7월)

이회창이 하면 인권옹호, 김대중이 하면 용공발언?

15대 대선을 앞둔 97년 10월 31일 광주 TV토론에서 김대중 후보는 “우리가 집권하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이들 중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사면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포문을 열었다.

11월 1일자 1면에 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한 데 이어 11월 2일 <양심수 사면 파문 확산……공안사범 사법판단 부정한 셈>이라고 보도하면서 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조선일보는 11월 2일 <디제이 양심수론>과 6일의 <양심수 재론> 등 연속적인 사설을 통해 “양심수 논란에 전국민이 참여해서 끝까지 논쟁할 것을 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당시 여당 후보였던 이회창씨의 ‘양심수 사면’ 발언에 대해서는 침묵의 관용(?)을 베풀었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11월 2일 평화방송 대담에서 “진정한 의미의 양심수라면 정치인 사면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조선일보가 차별적인(?) 보도를 한 진짜 목적은 딴 데 있었던 셈이다.

최근 정부가 ‘전향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우리 체제를 수호하는 데 그 어떤 역작용과 부작용을 끼치지는 않겠느냐”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양심수 몇 명이 사면된다고 해서 현 체제가 곧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 도리어 그런 즉자적 접근이야말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국론분열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도 있는 것은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는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고양해 내부의 단결을 꾀하려는 부정적 방식으로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더욱이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고양하기 위해서라면 내부의 일부가 인권침해를 당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발상은 너무나 위험하다. 그런 내부의 분열과 갈등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감정의 폭발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더욱더 위험하다.

우리가 조선일보의 보도와 논조에서 드런난 ‘국가안보상업주의’ 경향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과 원칙을 내부에서부터 합리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실천하는 긍정적 방식을 통할 때 진정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조선일보가 민족대단결과 민족재도약의 깃발 아래 21세기를 향해 힘겨운 길을 떠나야 하는 7천만 겨레의 벗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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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4 (14:23:46)    IP Address : 147.46.116.76

36  [뉴민주]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현재 고문)에 관하여 밝힌 기사 5편 보스코프스키 2006/12/15 3971
35  [딴지일보 / 시론] 좃선, 아직도 멀었다 열리자 2006/08/30 4003
34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왜 하필 조선일보 인가? 김민웅 2002/06/24 7151
33  [민언련] 조선일보가 독재자를 옹호한 까닭 신문모니터 2002/06/24 5088
32  [민언련] 조선일보의 낯뜨거운 외신기사 왜곡 인용 신문모니터 2002/06/24 5528
31  [민언련] IMF와 조선일보의 이중성 신문모니터 2002/06/24 4621
30  [민언련] 조선일보의 유신찬양 신문모니터 2002/06/24 4736
29  [민언련] 조선일보의 5공 찬양은 '현대판 용비어천가' 신문모니터 2002/06/24 4749
28  [민언련] 진상규명은 필요없다. 마녀사냥이 최고다? 신문모니터 2002/06/24 4482
 [민언련] "공산당이 싫어요" 는 조선일보의 작문 신문모니터 2002/06/24 5114
26  [월간 말]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한 조선일보를 검증한다. 정지환 2002/06/24 5399
25    [re] 첨부 사진 정지환 2002/06/29 4239
24    [re] 첨부 사진 정지환 2002/06/29 4183
23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의 진실 김동민 2002/06/24 4973
22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편집의 예술 손석춘 2002/06/24 4673
21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 김정란 2002/06/24 4058
20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광수생각' 그리고 '조선일보 생각' 노염화 2002/06/24 5265
19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와 지역분열주의 민언련 2002/06/24 4304
18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특파원 기사 팔어 융자받고.. 내일은 대동강물을 팔을려나.. 문명자 2002/06/24 4316
17  딴지일보가 발키고 까발린 죄선일보 딴지일보 2002/06/20 11251
16  [한겨레21] 한국의 극우는 러시아의 극좌? 박노자 2002/06/24 3562
15  [대자보] 조선일보 - 기자정신인가 투견정신인가 장형석 2002/06/24 3719
14  [대자보] 조갑제의 어린양 이승만? 장형석 2002/06/24 3542
13  [대자보] 월간죄선-졸병의 6.25 장형석 2002/06/24 4625
12  [대자보] 월간 조선이 민족문학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홍기돈 2002/06/24 4510
11  [대자보] 수준 떨어지는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의 이유 장형석 2002/06/24 4498
10  [대자보] 갑제야! 기마민족하고 인터넷하고 무슨 상관인데? 장형석 2002/06/24 4756
9  [대자보] 조선일보의 저질스런 양비론의 실체를 파헤친다. 장형석 2002/06/24 4731
8  [대자보] 월간죄선 조갑제를 조목조목 비판해주마. 장형석 2002/06/24 4548
7  [대자보] 정형근과 죄선일보 장형석 2002/06/24 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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