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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장형석
제 목 [대자보] 조선일보 - 기자정신인가 투견정신인가
대자보(http://www.jabo.co.kr) 17호에서 퍼온 글입니다.


조선일보 - 기자정신인가 투견정신인가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88 올림픽 무렵부터 잊혀질만하면 한번씩 시비를 걸어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던브리짓 바르도가 한국에 투견 도박이 성행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마도 니들 하고 싶은대로 살아라는 식으로 한국인을 포기할지도 모를일이다. 개가 본래 말처럼 뒷발차기가 강한 것도 아니고 호랑이처럼 육중한 앞발이 위협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코모도 도마뱀 종류처럼 채찍같이 단단한 꼬리를달고 다니는 짐승이 아니라서 개싸움은 무술의 달인들처럼 법도에 맞게 기회를 노리다가 치고 빠지는 나름의 미학을 가지고 있는 대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날카로운 이빨 하나만 믿고 어떻게든 상대의 이빨을 막아내면서 목줄기를 물려하기 때문에 체면이고 뭐고 없이 온통 땅바닥을 딩굴어대며 싸움도 아니고 겁탈도 아닌 요상한 광경을 연출하게 된다. 그 꼴사나운 모습을 빗대 추잡한 밥그릇 싸움을 일컬어 이전투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싸움이 볼거리가 뭐 있다고 투견대회를 여는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투견대회가 열리면 눈이 벌개진 아저씨들 사이에 거액의 판돈이 오간다고하니 한국인의 심성도 이해 못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이빨로 상대를 물었다고 해서 모든 개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목과 같은 급소를 물었어도 상대의 뿌리치는 힘을 이겨내지 못하면 되려 반격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강력한 턱근육이 투견에게는 필수적이다.

조련사들은 투견의 턱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이빨의 힘만으로 공중에 매달아놓는 훈련을 종종 시킨다고 한다. 강한 놈의 경우에는 이빨만으로 두 시간 이상을 공중에서 버틴다고 하니 오래 매달리기 몇 분 하고 나면 온 몸의 진이 빠지는 필자와 같은 사람은 그 힘이 어느 정도인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어쨌든 프로의 길이란 사람에게나 개에게나 힘든 것만은 확실하다. 7월 21일자 조선일보 1면과 31면에는 철저한 투견정신에 입각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뭔가 끊임없이 긴장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아마도 도사견 배 속으로 들어가려다 하나님이 술 취한 탓인지 아무튼 조준이 빗나가 사람 배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 조선일보 기자단, 이번에도 여지없이 건수하나 터뜨렸다.

작년 8월 27일부터 9월 2일까지 언론개혁 시민연대에서 주최한 '오보 전시회'에서는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이 조선일보의 조작이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전시되었다. 이때부터 이승복의 외침이 진짜냐 조작이었느냐의 문제로 한동안 사회가 시끌벅적했고 특히 조선일보에서는 몇 달 간, 지면을 할애해서 이승복 기사가 진실이었다고 물고 늘어졌었다. 그 뒤로 일 년이 지나 그 논쟁이 어느 정도 잊혀진 지금, 검찰에서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언론개혁 시민연대의 김주언 사무총장과 미디어 오늘의 김종배 차장을 불구속 기소했고 7월 21일자 조선일보에 그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정도로 오래 물고 버티리라고는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조선일보에서는 작년 여름 갑자기 이승복 기사가 조작이라는 주장이 일어 법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승복 기사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문제제기가 있었다. 다만 군부독재 시대에 반공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승복 신화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남산 모처에 끌려가 물배 채울 각오 하지 않고는 힘들었기 때문에 공론화되지 않았던 것에 불과하다. 이승복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취재를 나간 다른 모든 신문 기자들은 현장에서 조선일보 기자를 보지 못했다고 PD 수첩에서 증언한 바 있으며, 특히 필자의 경우에는 아직 이승복 문제가 제기되기도 훨씬 전인 96년 강의 시간에 모 일간지의 편집국 차장으로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 기사가 오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검찰에서는 당시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 현장사진과 동네 주민들에 의해 확인되었다는 이유로 두 기자를 불구속기소했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삼십년전에 찍은 흑백사진이 증명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증명자료가 되는 사진이 어느 것인지 검찰과 조선일보는 현재 공개하고 있지 않다. 조선일보 기자의 모습을 확인할 만큼 선명한 대형사진이라면 조선일보는 작년 이승복 논쟁 때 진작 그 사진을 공개했을 것이다. 또한 동네 주민들의 증언을 증거로 삼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의 증언은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승복의 형은 금전적 보상을 받았고 이승복의 생가는 성역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주민이 동네의 영웅 이승복에 흠집 낼 행위를 하겠는가. 그리고 조용하던 동네에 갑자기 참극이 벌어지고 수십명의 기자들이 몰려드는 정신없는 와중에 누가 조선일보 기자이고 누가 동아일보 기자인지 명확히 구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것도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 당시 한겨레 신문 기자가 있었느냐고 물어도 있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본 기자는 이승복 기사의 사실여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솔직히 열 살도 안된 꼬마가 공산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기에 싫다 좋다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소년 이승복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 '제국주의론' 같은 저작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깊은 판단 끝에 나온 결론이 '공산당 싫어요'였다면 우리는 그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저 텔레비젼에서 높은 분들이 나쁘다니까 나쁜 줄로만 알던 어린 아이를 현대 영웅으로 승격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삼십 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역으로 남기려는 조선일보의 처절한 몸부림은 그야말로 진흙 뒤범벅된 몸으로 딩굴딩굴 구르면서도 목줄기를 놓지 않으려 이빨을 앙 다문 한 마리 싸움개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룩하고 장엄한 광경이다. 그 철저한 프로 근성을 본 기자 진심으로 치하한다. 중요한 것은 삼십년전 이승복 어린이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다. 어린 아이의 한 마디를 담론으로 승격시켜 이 사회에 매카시즘의 광기가 몰아치게 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긴 세력의 농간에 더이상은 넘어가지 말아햐한다. 조선일보의 역사는 그 자체가 싸움개의 일생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을 물고 늘어졌고 군부독재 시대에는 온갖 미사여구로 전두환을 붙들고 늘어져 권력을 얻었다. 지금 조선일보가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승만, 박정희, 이승복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반공주의이다. 아무리 옆에서 물을 뿌리고 몽둥이로 때려도 놓지 않는다. 그것을 놓는 순간 자신들이 손에 쥔 권력이 떠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조선일보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열린 사회로 가는 길에 최대의 걸림돌이 조선일보라는 관점은 기본적으로 공유되었으나 대응방식은 너무 점잖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토론이 일어도 그 때뿐이고 불매운동이 벌어져도 그 때뿐이었다. 진보적인 인사들은 조선일보에 자기 글을 싣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판매부수가 높다는 이유로 은근히 조선일보에서 자신을 다뤄주길 바라기까지 한다. 하나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데 다른 하나는 발길질만 두어번만 하다 끝낸다.

조선일보는 한 번 노린 타겟은 절대 놓지 않는다. 한완상, 최장집 등 일련의 개혁인사를 정부에서 몰아낼 때도 그랬고 이승복 기사 문제도 그렇다. 이 튼튼한 턱뼈를 가진 짐승을 떨쳐내려면 옷에 흙 묻힐 각오를 해야할 것 같다. 점잖게 논리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평소 인자한 성품의 소유자인 필자는 일부 조선일보 기자들이 적성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지금이라도 소질을 살려보기를 권한다. 몇몇은 이승복 동상도 닦을 겸 환경미화원이 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일부는, 태생이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어지간한 도사견 서너마리쯤은 눈 감고도 물어제낄 대단한 턱근육과 이빨을 무기로 투견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한다. 필자는 조선일보 쪽에 배팅할 것이다.

사회부 장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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