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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손석춘
제 목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편집의 예술
편집의 예술

손 석 춘 (한겨레 매체부장)


왜 < 조선일보 > 편집을 문제 삼아야 하나

흔히 『조선일보』편집은 깔끔하다고 말한다. 적잖은 신문인들도 『조선일보』편집이 독자들을 유인한다는 데 동의할 만큼 『조선일보』의 편집은 자기 색깔이 분명하다. ...... 지면구성이라는 형식적인 면에서 편집이 깔끔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 없는 편집의 미덕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편집의 내용이 충실했을 겨우가 전제되어야 한다.

『조선일보』의 편집이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니, 오히려 『조선일보』의 편집은 왜곡과 뒤틀림이 가장 두드러진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외면적·형식적 편집은 혹 성공일지 몰라도 내면적·본질적 편집은 분명한 실패다. 그 편집의 실패 책임은 『조선일보』의 평기자들이라기 보다는 편집간부들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조선일보> 는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반민족적 편집

우리가 『조선일보』의 편집을 일러 '반민족적'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조선일보』의 과거 편집이 그러하거니와, 특히 김대중 정부 들어 남북관계에 관한 한 『조선일보』의 '수구적 자세'는 한층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냉전적이기를 넘어 호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99년 2월 27일 뉴욕에서 북한과 미국이 평안북도 금창리 지하시설의 핵의혹 규명과 관련한 북-미 4자 회담을 시작했을 때, 『조선일보』와 다른 신문의 편집이 얼마나 큰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는가 살펴보자.

당시 대다수 신문은 '금창리 사찰'의 조건으로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전망임을 보도했다. 그리고 이런 전망은 그 뒤 현실로 나타났다. 99년 3월 16일 북한과 미국은 '금창리 시설'에 대한 접근과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합의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첫 보도부터 뚜렷하게 달랐다. 3월 1일자 『조선일보』는 미국 내의 강경한 보수파인 '아미티지 보고서'를 표제로 올리며 보수층을 자극하는 시도를 계속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3면 머리로 「힘을 앞세운 北韓문제 해결책」을 주 표제로 한 관련기사를 편집한 뒤, 그 아래 작은 상자로 「4차 금창리회담 첫날」제하에 북-미 4차회담 기사를 편집했다. 표제를 「북한:식향 100만t 지원요구 되풀이/미국:核의혹 규명 '보상'은 없다」로 나란히 대비시켜주는 형태를 취했다. 표제만 보더라도 북한 쪽은 뭔가 억지를 쓰고 있는 반면 미국은 합리적이면서 원칙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회담이 타결되기 직전에 낸 3월 13일자 1판 신문 머리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북쪽에 대한 강경한 시각을 드러냈다. 표제를 구성한 편집형식은 3월 1일자 '아미티지 보고서'의 경우와 같다. 「북한이 核-미사일 포기 안 하면」을 역시 부제로 하고 「단호한 수단 건의」를 주표제로 1면 머릿기사로 편집했다. ...... 아울러 같은 날 3면에는 다시 우리 외교부를 꼬집는 기사를 싣고 있다. 「페리가 그런 말을… / '페리 발언 정부반응' "사견 말한 것 일뿐"」등 3줄 표제로 편집된 이 기사는 외교부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발언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였고 "곤혹스러워했다"고 꼬집었다.

또 같은 날 7면에는 '김대중 칼럼'을 게재했다. 가히 『조선일보』다운 집중적 편집으로 여론을 몰아가려는 의도가 역력한 대목이다. 김대중 칼럼은 『조선일보』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으로, 김주필은 이 글에서 정부의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

다행스러운 것은 『조선일보』의 일관된 편집방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타결된 점이다. .......북미회담이 완전히 타결되었을 때 『조선일보』18일자 사설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금창리 妥結의 虛實」이라는 제하의 이 사설은 "이번 합의는 문제해결이 아니고 문제해결 의 단초를 연 것에 불과하다"며 "북한이 '말썽'을 피우기만 하면 미국이 식량지원 등 당근을 제공하는 전례를 만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불편한 심기는 같은 날짜 4면 편집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1년 식량부족분 100t /북한은 모두 확보하는 셈」을 주표제로, 「'거래 냄새' 共和서 비판」을 부제로 편집해 타결 내용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내비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조선일보』의 편향적 편집은 '미사일 소동'에서도 이미 극명하게 드러났다. 98년 9월 1일 『조선일보』는 "북한이 8월 31일 정오에 동해 방향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일본방위청 발표를 「북, 彈道미사일 발사」제하에 1면 머릿기사로 편집했다. ...... '미사일 소동'을 반북소동으로 부풀려 그나마 존재하던 국내외의 식량지원 움직임이나 금강산 관광 추진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엿보이는 편집이다. .......

그러나 「조선일보」로서는 '유감'스럽게도 인공위성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한발을 빼는 모습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9월 11일자 사설은 이런 문제를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 "북한이 태평양을 향해 쏜 발사체 탄두에 인공위성을 실었는지 아닌지의 논란은 본말(本末)을 전도할 우려가 있다"며 "우리도 미사일 개발을"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군비경쟁 가속화라는 방향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은 『조선일보』가 남북문제와 관련해 냉전적이고 심지어 호전적인 편집으로 일관하는 점에만 있지 않다. 자신들의 편집방침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싸잡아 '친북인사'로 몰아치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신문인가-반민주적 편집

남북문제의 반민족적 편집이 반민주적 편집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는 다름 아닌 '최장집 교수 사상 사건'이었다. ..... 왜 『조선일보』는 98년 11월 최장집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좌익'으로 몰아세우는 '마녀사냥'에 나선 것일까.

『조선일보』가 한완상 씨를 비판하고 나섰던 93년 8월에서 김정남씨를 공격했던 94년 6월까지의 시기는 '문민정부'가 '개혁'정책을 과시하듯 펴나가던 때였다. 93년 7월 6일 국가보훈처가 친일혐의 독립유공자를 재심사하고 나선 것이다. 94년 3월 발표된 국사 교과서 개편시안에서 "일부 민족지도자들이 일제 말 황국신민화 운동과 침략전쟁에 협력하였음을 간략히 서술한다"고 규정한 것은 친일파 후예들인 유력 언론의 사주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김영삼 정권 안에서 일부 인사들에 의해 언론사주들의 재산공개 등 언론 개혁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개혁정책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마녀사냥이 필요했던 것이다. ......

최교수의 사상검증 사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98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신문개혁 여론이 폭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 신문개혁이 공론화되고 정치권에서도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이 논의되자 개혁의 대상이 되는 유력 언론들로서는 여기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 가장 쉽게 떠오는 방법이 여전히 민감한 남북문제와 관련한 '사상문제'가 아니었을까. ..... 이처럼 남북문제나 사상검증 문제를 '이용'한 국내 민주화의 저해 사례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학생운동과 남북문제를 『조선일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편집하면서 이를 몰아세웠는가는 96년 8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연세대학에서 통일집회를 열 때 벌어진 이른바 '한총련 사태'가 좋은 예이다. 학생들을 일러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쇠파이프 특공대'로 몰아세우면서 '공권력'을 한없이 부추긴 것은 가히 마녀사냥의 압권이었다. 당시 『조선일보』김대중 주필은 '전 안기부원의 울분'을 칼럼에서 대변했으며, 그 칼럼이 나간 뒤 국가안전기획부법 개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학생운동 못지않게 노동운동에 대한 왜곡된 편집도 『조선일보』의 유구한 '전통'이다. 98년 5월 18일 현대자동차 노동쟁의 때 '공권력 투입' 했던 『조선일보』는 해외언론의 반응까지 소개하며 협상타결을 '불행한 선례'로 몰아세웠다.
그래서였다. 98년 9월 3일 만도기계 노동쟁의는 헬기까지 동원한 경찰병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해산당했다. '공권력 투입'을 소리높여 주장했던 수구언론의 '승리'였다. 98년 9월 4일자 『조선일보』는 이를 반기기라도 하듯 「不法파업 더 이상 안된다」표제 아래 경찰 투입을 정당화하는 지면 편집을 보여주었다.

< 조선일보 > 기자들의 비극

삼성맨'이라는 말이 재계에서 나돌 듯이 언론계에서 '조선맨'이란 말이 떠돈 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언론과 언론인의 본령으로 볼 때 '조선맨'이란 말은 그 누구보다 『조선일보』기자들에게 모독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내부에서 민주언론으로 거듭나게 할 '담보'인 노동조합의 모습(『조선일보』속에서 '모가 깎이고 다듬어짐으로써' 제도화해나가는 모습)에 절망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

그러나 절망 끝에 희망이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아니 『조선노보』의 주장에,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젊은 기자들이 『조선일보』안에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문제는 소유구조이다. 특정 가문이 독점적·배타적으로 주식을 소유하는 편집구조 속에서 편집의 자율성을 누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이 엄정하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일보』안에 있는 개혁세력들이 숨쉴 공간을 전략적으로도 남겨두어야 한다. 『조선일보』기자들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그 공간을 만들어가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글은 개마고원에서 나온 <조선일보를 아십니까>에서 발췌, 요약한 것으로, 원제는 '조선일보 기자들을 위한 변명'입니다. 정리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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