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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김정란
제 목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

- 부드럽고 멍청할 것,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할 것

김 정  란 (상지대 불문과 교수)



곤 혹

80년대의 방관자였던 내가 80년대의 투사들이 80년대를 부정하고 있는 마당(『창작과 비평』마저도 문학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에 뒤늦게 실천의 화두를 껴안고 싸움꾼이 되어가고 있다는 곤혹스러움은 98년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 곤혹스러움은 98년 말에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변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월간조선』98년 11월호에는 최보식 기자의 희한한 인터뷰가 실렸다. 90년대의 대표적인 문인들을 줄줄이 끌어내서 거의 모욕적이라고 할 만한 인터뷰를 했는데(그 인터뷰의 속내는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다른 문인들은 구색 맞추기로 동원되었을 뿐, 정작 최 기자의 속내는 마침 그 즈음에 『초원의 향기』라는 소설을 출간했던 박정희 숭배자 이인화를 띄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기사에서 이인화는 마치 '천재'처럼 묘사되어 있다.) 정작 문단에서는 사석에서만 비통한 심정을 주고 받았을 뿐, 아무런 공식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즉각 『경향신문』 「정동칼럼」에서 "문학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논지로 그 인터뷰 기사를 반박했다. 그러나 결과는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인터뷰에 끌려나갔던 문인들 중 나에게 그 칼럼에 대해 한마디라도 언급해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문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어떤 여성 시인의 가족으로부터 협박성 전화를 받았고, 그 여성 시인이 인신공격에 가까운 글을 어떤 문학지에 게재하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 인터뷰에 응했던 어떤 작가들은 오히려 나의 글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작가와 배우가 만나 영화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참으로 『조선일보』다운 소프트한 문화 기획기사에도 열심히 출연하고 있다. ......

정작 최보식 기자로부터 "촌스럽다" "재능이 없다" "성형수술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 "사회의 기생인간" "화장이 진하다" 따위의 소리를 들었던 작가들은 그런 말들을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매체에 또다시 방싯방싯 웃으며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고   백

강준만 교수의 매체비판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개혁은 언론개혁 없이는 백년하청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둘러보니, 문학 환경마저도 언론을 끼고 교묘한 방식으로 권력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선일보』의 극우 정치 이데올로기조차도 모르는 체하는 관행이 문단 안에 정착되어 있었다. 문제의 요체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실행 방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러한 맥락에서 문제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문언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 진정한 의미의 좋은 문학은 절대로 발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문인들은 대체로 정치적 행태에 둔감하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특수한 여건 하에서 『조선일보』가 가지고 있는 정치색채를 모르는 체하고 문학의 매개를 맡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문학인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조선일보』의 위험한 곡예를 돕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상황의 위험 - 토끼와 간

90년대에 스타가 된 작가들 거의 대부분이 언론의 후광을 입고 성장한 작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90년대 문학 지형도 안에서 언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90년대 한국 문학 안에서는 뻑뻑하고 골치 아픈 작가들 대신에 언론의 입맛에 맞는 만만한 작가들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이 작가들의 선택에 『조선일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물론이다. .......

90년대 『조선일보』의 문학적 선택은 철저하게 문화/정치의 분리주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조선일보』라는 토끼는 문화라는 간을 다른 데다 떼어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적 극우성을 문학적 첨단성(엄밀한 문학적 기준으로는 과연 그런지도 의심스럽지만)으로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게 읽힌다. 그리고 의식없는 작가들이 그 의도의 실현을 열심히 거들고 있는 셈이다.

난 그 이유를 안다. 『조선일보』처럼 당신들도 간을 따로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현대판 별주부전. 문화의 간은 편한 대로 아무 데나 들러붙는다. 양식 따위야 아무려면 어떤가. 대중이야 속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나는 내 몫만 생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앞날을 생각하기 바란다. 당신들이 따로 꺼내서 숨겨놓은 간을 담가놓은 물이 썩기 시작했다. 90년대 상황은 곧 끝난다. 그러면 지금 당신들에게 환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중이 어느 날 명징한 의식을 준엄하게 요청할 것이다. 의식이 없는 작가들은 얼마 가지 못한다. 언론의 영향력은 1백년, 2백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래로부터 당신들의 들척지근한 문학에 염증을 느끼는 젊고 칼칼한 싹들이 치고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문학, 부드럽고 멍청한 애첩

『조선일보』와 일부 작가들이 이렇게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대로 이 작가들의 대중적 성공을 이용해서 판매부수를 유지하고, 또 한편 싸구려 극우 이데올로기를 문화적으로 세련되게 포장해서 정치색을 흐린다. 정치의식도 진실에 대한 감각도 없는 작가들은 『조선일보』가 제공해주는 명성에 편승해서 모자라는 문학성을 보상받는다. ......

강준만 교수가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특성은 『조선일보』특유의 카멜레온 기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쪽에서는 계속 군사문화를 옹호하는 박정희 예찬을 늘어놓으면서, 다른 한쪽면에서는 박노해와 백무산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싣고 있는 것이다. 『창작과 비평』은 또 그들대로 이러한 상황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조선일보』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전파력을 무시하지 못하고 유야무야하면서 모순의 확대 재생산을 도와왔다. .....

최근 들어 『조선일보』에서 집중적으로 띄워주고 있는 작가는 은희경인데, 이 작가의 행태를 잘 분석해보면 그녀가 어째서 『조선일보』의 총애를 받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 그녀의 문학적 태도는 『조선일보』의 입맛에 딱 맞는다. 잘 팔리는데다가 작가라고 진지하게 굴어서 기자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
다음 글은 이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조선일보』의 타락한 남근적 권력주의를 만족시켜주고 있는지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써온 소설 속의 인간은 유리와는 무척 다르다. 나는 인간을 미화하기보다 그 이면을 들춰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 내가 『닥터 지바고』를 쓴다면 나는 유리에게 "치사한 도움 좀 받으면 어떤가. 눈 딱 감고 썰매를 타기만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안전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데"라고 유혹했을 것이다. 그처럼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을 인정해 주는 것이 내 나름의 휴머니즘이다. (『조선일보』, 「아침 생각」, 1999. 3. 19.)

  언젠가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언론가에게 "우리도 그런 분들 입다물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연구비도 드리고 외국 여행도 좀 시켜드리면 입을 다무실 것이다."라고 했다던 『조선일보』간부의 말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스꽝스러운 일은, 국내에서 생산된 난해한 작품들로부터는 완강히 고개를 돌리고, 국내 작가들에게는 그렇게 '나긋나긋'하고 만만할 것을 요구하는 『조선일보』가 외국에서 생산된 난해한 작품들과 문학 이론서들은 죽어라고 목을 빼고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에코, 바르트, 데리다, 푸코, 푸르디외 등, 외국에서 책이 나오기 무섭게 소화도 안 된 채로 마구 써댄다. 그리고 오래 전에 사라진 카프카까지도 무덤에서 불려나온다. 그러면서도 몰이해를 견디다 견디다 못해 캐나다로 이민까지 갔다가 30년을 견딘 후 최근에 돌아온 세계적인 작가 박상륭은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다. 아주 희한한 일이다. ......

물론, 한 언론사가 세계적인 최신 정보를 전해주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 문제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어려운 문학에게는 외국에서 생산되는 난해한 문학에 쏟는 정성의 십분의 일의 정성도 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이러한 특유의 결핍감은 『조선일보』가 정치적 정당성을 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일보』의 화려한 문화면에서는 뭔가 남들과 다른 것을 얼른 가져다가 독자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도리면서 겁주고 싶어하는 심리가 읽힌다. 『조선일보』의 문화면이 그토록 요란한 치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언론사 특유의 자기 정당성 결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치 자신의 역사성과 지적 교양에 대해 자신 없는 졸부들이 3천만 원짜리 골프세트를 보란 듯이 거실에 진열하듯이.

돌쇠들의 쉰밥덩이

결국 『조선일보』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는 한국 문학에는 아주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는 셈이다. 의식 없는 문인들은 자존심도 없이 『조선일보』라는 거대 언론권력에 시녀처럼 시중을 들고 있고, 한 거대 출판사는 단지 상업적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정반대 되는 언론에 버젓이 매개를 부탁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학은 점점 더 자신의 정당성을 잃고 언론에 끌려다니고 있다. 언제까지 이 어리석은 질주를 계속할 것인가. 이 질주가 계속되는 사이에 한국 문학은 점점 더 대중의 경멸을 받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조선일보』기자들에게 간절히 당부한다. 당신들은 모자랄 것 없는 당대의 엘리트들이다. 사주(社主)의 철학이 어떤 것이든, 소신을 가지고 자신의 원리에 따라 삶을 재구축하기 바란다. 조선일보사내의 분위기가 어떻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기 바란다. 이대로 살면, 당신들은 부잣집 돌쇠밖에 되지 않는다. 돌쇠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돌쇠이다. 돌쇠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당신의 젊은 가슴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거짓으로 연명하는 부자가 되지 말기 바란다. 가난하더라도 당신 자신의 주인이 되기 바란다. 당신들이 바뀌면, 한국이 바뀐다.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는가?

이 글은 개마고원에서 펴낸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에서 요약 발췌한 글입니다.



문서정리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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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딴지일보 / 시론] 좃선, 아직도 멀었다 열리자 2006/08/30 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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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편집의 예술 손석춘 2002/06/24 4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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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와 지역분열주의 민언련 2002/06/24 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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